Masuk태주는 회사에서 주말 회의를 마치고 있었다.서경이 만나고 싶다고 하자 바로 시간을 비웠다. 회의실로 들어온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제가 월요일에 도쿄에 간다고요?”태주의 손이 멎었다.직원이 물을 놓으려 들어오자 그가 잠시 나가달라고 했다. 문이 닫히고서야 서경이 의자에 앉았다.태주는 맞은편에 앉지 못한 채 서 있었다.“오늘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언제요?”그는 대답을 늦췄다.“숙소하고 현지에서 지낼 곳을 먼저 알아봤습니다. 괜찮은 조건을 찾고 나서 제안하려고요.”“제안하기 전에 예약부터 했어요?”서경은 가방을 무릎 위에 놓았다. 휴대전화에는 대행사와 통화한 번호가 남아 있었다. 화면을 끄고 태주를 보았다.태주가 의자에 앉았다.“항공권은 발권하지 않았습니다. 가시겠다고 하면 진행할 생각이었습니다.”“숙소는요.”“취소하면 됩니다.”“그럼 제 월요일도 취소하면 되는 거예요?”태주의 시선이 그녀의 가방으로 내려왔다. 안에는 검수할 악보가 들어 있었다. 서경은 가방을 열어 보여주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도 있는 일이어야 했다.“그걸 왜 제가 모르는 사람이 저한테 먼저 말해요?”태주가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그건 내 잘못입니다.”“직원이 먼저 전화한 게요? 아니면 저한테 묻지 않은 게요?”그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사무실을 나와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닭강정집은 아니었다. 그냥 그 시간에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태주는 주문을 마치고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서경이 맞은편에 앉아 물병을 들자 그제야 화면을 껐다.“오늘은 생각보다 말이 많아졌군요.”그가 말했다.“싫지는 않았어요.”서경은 자기 컵에 물을 따랐다. 태주에게도 병을 건넸다.“그런데 내내 죄지은 사람처럼 말씀하세요.”태주는 물병을 내려놓았다.“늦었다는 생각이 없어지지 않습니다.”“그날 저녁에요?”“그날도 그렇고. 사고 뒤에도요.”그는 창밖을 보았다.“돌아와서 자료를 찾는 사이에도 누나 이야기가 달라졌어요. 무리했다, 혼자 일을 벌였다. 누나를 변호하고 싶은데, 먼저 그런 말부터 확인해야 했습니다.”서경은 수저를 들었다가 놓았다.“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면 끝날 줄 알았습니까?”태주가 먼저 물었다. 서경이 대답하지 않자 그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나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누나를 잘 알면 바로잡힐 줄 알았어요.”음식이 나왔다. 두 사람은 잠깐 대화를 멈췄다. 서경은 국물을 한 숟갈 뜨고, 태주가 아직 수저를 들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다.“저 먼저 먹을게요.”그녀가 말했다.태주가 고개를 들었다.“식으면 맛없잖아요.”서경이 먹기 시작하자 태주도 수저를 들었다. 국물의 김이 두 사람 사이로 올라왔다. 서경이 뜨거운 무를 식히
태주가 도착했을 때는 로비가 평소처럼 조용해진 뒤였다.서경은 직원이 안내한 휴게 공간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저도 모르게 출입구부터 보았다. 시우의 모습은 없었다. 태주가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는 가방을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 정장 재킷 소매에 비행 중 생긴 주름이 있었다.“이쪽에 앉지요.”서경은 그가 부른 자리에 곧바로 앉지 않았다. 출입구를 등지게 되는 의자였다. 옆 의자를 당기자 태주가 자기 자리를 바꾸었다.“여기가 낫겠군요.”그는 그녀가 보려던 출입구를 가리지 않는 쪽으로 가방까지 옮겼다. 서경이 앉고 나서야 자기 의자를 당겼다.태주는 시우를 어디서 찾아낼지 묻거나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받은 연락을 정 변호사에게 남겼는지 확인한 뒤에는 휴대전화를 엎어놓았다.“어디 안 가셔도 돼요?”서경이 물었다.“지금은 괜찮습니다.”“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서경은 테이블 위에 손을 놓았다. 한참 힘을 주고 있었더니 약지가 뻣뻣했다. 태주의 시선이 그쪽으로 내려왔다가 멈췄다.그녀가 먼저 손을 조금 뻗었다.“이 손 말고.”왼손을 내밀었다.“이쪽 잡아주실래요?”태주는 잠깐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위로 돌려 테이블 위에 놓았다. 서경이 그 위에 손을 얹었다.크고 따뜻했다. 손가락을 펴보라고 하지 않는 손이었다.잠시 뒤 그녀가 힘을 풀었다. 태주도 쥔 손을 조금 느슨하게 했다. 그 작은 변화에 눈물이 났다.“내려가야 하는 줄 알았어
오후에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병원비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예전 진료 자료를 누가 정리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기억나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을 나누어 말했다. 시우가 가져다준 봉투가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일로 받았던 서류도 비슷한 종이봉투에 있었다는 말이 뒤따랐다.“엄마, 그건 다 버렸어?”“집에 있던 건 네가 가져갔을 텐데.”서경은 작은 상자를 보았다.“응. 찾아볼게. 모르면 나중에 같이 보자.”통화를 마치고 재단 전달지를 다시 펼쳤다. 위쪽에 인계 분류가 적혀 있었다.HD-16.태산이 보낸 관리계정 표지에서 보았던 번호였다. 한도진 관련 유족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지금도 이어지는 지출을 묶고 있던 분류.그녀는 두 자료를 나란히 놓고 정 변호사에게 알렸다.“병원 연락 자료에 아버지 쪽 관리번호가 있어요.”“두 자료가 연결되는지 작성자를 확인하겠습니다.”은행 빚은 아니었다. 아버지 사후 지원을 맡던 사람들이 서경의 부상 때도 등장했다. 서경은 HD-16 아래에 박 실장의 이름을 적었다.해가 기울 무렵 태주에게 날짜와 담당자 부분을 공유했다. 파일을 보낸 뒤에도 서경은 전화를 끊지 못했다.“제가 다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오래전 일입니다.”“그런데 그 사람은 너무 잘 기억하는 것처럼 말해요. 제가 뭐 때문에 울었고, 왜 그만뒀고,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했는지까지.”서경은 창밖을 보았다.“제가 자꾸 거기다 제 기억을 맞췄나 봐요.”태주가 잠깐 침묵했다.&ld
회의가 끝나자 채린이 문 앞에서 따라왔다.정 변호사가 두 사람 곁에 멈췄다. 채린은 서경의 손을 보다가 눈을 돌렸다.“그날…… 그냥 겁만 주면 될 줄 알았어.”서경은 가방끈을 잡은 손을 바꾸었다.“겁만 줬는데 내 손은 왜 이래?”서경이 오른손을 조금 들어 보였다. 채린의 시선이 내려갔다.“그 말로 내가 뭘 해주면 좋겠어?”채린이 대답하지 못했다.“오늘은 그 얘기 더 못 듣겠어.”서경은 먼저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려다가 손잡이를 잡고 멈췄다. 다리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변호사가 옆에서 엘리베이터로 가자고 했다.괜찮다고 대답하려다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늘은 그럴게요.”밖에 나와 태주에게 녹음 앞뒤를 들었다고 알렸다. 그가 만나겠느냐고 물었다.“오늘은 먼저 좀 쉴게요. 나중에 제가 전화해도 돼요?”“네. 전화 올 때까지 일하고 있겠습니다.”서경은 전화를 마쳤다. 태주의 하루까지 멈추게 한 것은 아니어서, 조금 편해졌다.숙소에 돌아와서는 음악을 틀지 않았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씻는다고 그 목소리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물을 끄고 수건을 고르는 동작은 할 수 있었다.책상 위에 가져온 진료 봉투를 놓았다. 그날 자신이 직접 보았던 것과, 시우가 나중에 설명한 것이 자꾸 뒤섞이고 있었다.그녀는 두 줄로 나누어 적었다.병원에서 시우를 보았다.시우는 늦게 알았다고 말했다.같은 기억으로 묶어두었던 두 문장 사이에 처음으로 빈 줄이 생겼다.서경은 그 빈 줄
채린은 종이 한 장을 구겨서 가져왔다.“여기 사인하래.”서경은 테이블 건너의 여자를 보았다. 지난번 카페에서 보았을 때보다 얼굴이 말라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을 안쓰러워할 여유는 없었다.채린이 펼친 종이에는 지원 종료에 따른 사실 확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2016년 학교에서 발생한 개인 간 다툼에 시우가 사후 지원을 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서경의 눈이 개인 간 다툼이라는 말에 멎었다.종이에는 손도, 자퇴도 없었다. 서경은 테이블 위에 펴지지 않는 약지를 올려놓았다.“이걸 쓰려고 했어?”“그러니까 안 쓰고 왔잖아.”채린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곁에는 그녀가 따로 상담받은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정 변호사와 연락해 마련한 자리였다. 서경의 대리인과 채린의 대리인은 서로 다른 쪽에 앉았다.채린이 가방을 쥐었다.“내일이 돈 들어오는 날이야. 이거 정리 안 하면 더는 안 준대.”“그래서 녹음을 주겠다는 거야?”“나도 방법이 없으니까.”채린이 입술을 씹었다.“너한테 다 넘기면, 넌 그걸로 강시우 잡고 나는 혼자 남잖아. 먼저 약속해. 나한테 불리한 건 빼.”서경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채린은 서경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날 문 앞을 막고 웃던 여자가 오늘은 자기에게 유리한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뭘 빼달라는 건데.”서경이 물었다.채린은 시선을 피했다.“내가 한 말. 쓸데없이 흥분해서 한 말도 있고.”“그럼 내가 들은 파일에서 네 말을 자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