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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作者: 찹쌀떡꼬치
수술실에서 나온 뒤 주찬휘는 내 병상 곁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았다.

늘 흐트러짐이 없던 그의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었고 하얀 셔츠에 핏자국이 배어 있었다.

언제나 덤덤했던 그의 눈에도 지울 수 없는 고통이 가득했다.

주찬휘가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슬아, 미안해. 너인 줄 몰랐어.”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처음으로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 동안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주찬휘가 원망스럽냐고? 원망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내 아이를 잃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더 원망스러운 건 나 자신이었다. 임신한 걸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주찬휘를 말리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주찬휘 역시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남자가 매일같이 병원에 와서 내 곁을 지켰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 내내 침묵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깊은 밤, 꿈속에서 양 갈래 머리를 한 여자애가 아장아장 달려와 내 다리를 껴안았다.

“엄마, 슬퍼하지 마세요. 내가 다시 올게요.”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베개가 이미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다음 날 주찬휘가 병원에 왔을 때 나는 일주일 만에 입을 열었다.

“집에 가고 싶어.”

그날 이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 또한 주찬휘와 허지안의 관계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는 척 굴었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찬휘가 바쁜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고 다음을 기약하는 횟수도 적어졌다는 것이었다.

다만 주찬휘가 가끔 업무가 바빠 다음으로 미루자고 할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허지안의 SNS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하곤 했다.

나는 청춘을 다 바쳐 그를 사랑했던 마음과 꿈속에서 만난 그 아이에 대한 기다림 하나로 한 해 한 해를 버텼다.

그리고 오늘,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그 한 번의 약속 어김이 내 안에 남은 마지막 애정마저 남김없이 사라지게 했다.

내 아이도 이런 아빠는 원치 않아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 믿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의 얘기를 모두 들은 안하람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언니, 저...”

안하람이 나를 위로하려다가 목이 멘 나머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인터뷰 제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정리할게요. 그 쓰레기 같은 전남편이 보고 뼈저리게 후회하도록요.”

나를 대신해 분노하는 안하람의 모습에 나는 웃으면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래요. 기다릴게요.”

주찬휘가 후회하든 말든 사실 이제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음 역은 소양역입니다. 내리실 승객분들은...”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도 이제 내릴 때가 되었다. 안하람과 연락처를 교환한 뒤 캐리어를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가장 먼저 택시를 타고 근처 법률 사무소를 찾았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혼 합의서를 작성했고 아내 서명란에 내 이름을 한 자 한 자 정성껏 눌러 썼다.

그다음 내 것이 아니었던 반지와 이혼 합의서를 서류 봉투에 담아 회사로 보내 달라고 했다. 수신인은 주찬휘였다.

모든 절차를 마친 뒤에야 집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차로 고작 30분이면 닿을 거리를 돌아오는 데 꼬박 4년이 걸렸다.

내가 캐리어를 끌고 어머니 김희수 앞에 섰을 때 김희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틀어막더니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눈을 비비며 꿈이 아닌 걸 확인하고는 곧장 나를 품에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온다고 미리 말이라도 했어야지...”

입으로는 타박하면서도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김희수가 내 뒤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 서방은... 같이 안 왔니?”

“네.”

내가 시선을 늘어뜨리고 짧게 대답하자 김희수도 더 묻지 않고 내 캐리어를 건네받아 서둘러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당장 네 아빠한테 전화해야겠다. 공원에 바둑 두러 갔는데 너 온 거 알면 좋아서 오늘 밥 두 그릇은 뚝딱하겠어. 아니지, 시장 가서 갈비랑 생선부터 좀 사 오라고 해야겠어. 네가 좋아하는...”

김희수의 수다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머물렀다.

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이 이토록 평온했다. 밖을 떠돌던 작은 조각배가 드디어 제 항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한참 동안 내 손을 잡고 얘기를 나누던 김희수가 아차 싶었는지 나를 침실로 밀어 넣었다.

“너무 기뻐서 깜빡했네.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한숨 자고 있어. 밥 다 되면 깨울게.”

닫힌 방 문 너머로 김희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음에도 먼지 하나 없이 햇살 냄새가 포근하게 배어 있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제야 나는 꺼두었던 휴대폰을 켰다.

전원을 켜자마자 주찬휘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걸 보고는 바로 받았다.

“집엔 잘 도착했어?”

“응.”

“어젯밤에 이혼하자고 한 거 무슨 뜻이야? 제대로 물어보고 싶었는데 계속 전화기가 꺼져 있더라.”

나의 착각일까, 주찬휘의 목소리에서 서운함이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털어내려고 고개를 저었다.

‘이혼 합의서를 보면 다 알게 되겠지.’

“물건 하나 보냈어. 그거 받아보면 알 거야.”

말을 마친 뒤 전화를 끊고 주찬휘의 번호를 차단했다.

...

아내가 먼저 전화를 끊은 게 이번이 두 번째였다.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이번에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차단당한 게 분명했다.

주찬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젯밤에 늦게 들어갔다고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 예전에는 이런 일로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피곤한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어젯밤 그는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래도 심이슬이 뭔가 보낸 걸 보면 화는 어느 정도 풀린 모양이었다.

며칠 뒤 업무를 끝내고 시간을 내서 소양시로 내려가 심이슬을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다음 날 비서 임재형이 서류 봉투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소양시에서 온 서류입니다.”

서류에 서명하던 주찬휘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열어서 확인해봐.”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기쁨이 배어 있었다.

그런데 사각거리며 봉투를 뜯던 비서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주찬휘가 눈살을 찌푸리며 임재형을 올려다보았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임재형이 입술을 씹으면서 떨리는 손으로 이혼 합의서를 꺼내 주찬휘의 앞에 내려놓았다.

“대표님, 이혼 합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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