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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바타에게(1) -폭탄을 만났다

Author: 제로슈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3 20:09:50

*

“감사합니다. 상담원 김. 수. 현이었습니다.”

수현은 통화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하루 100콜이 넘는 전화 중 일부는 무작위로 선정되어 통화 품질 평가에 반영된다.

이름을 흐리듯 말하는 것 하나로도 감점이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특히 지난달은 운이 더럽게 없었다.

정상적인 평가에 걸려 점수가 깎였다면 억울해도 인정했을 것이다.

문제는 ‘폭탄’을 받은 거였다.

100명의 상담원 중 하필 자신이.

‘폭탄.’

간단히 말하면 이런 사람이다.

이름 : 박건우

나이 : 32세

직업 : 세진그룹 이사

취미 : 계열사인 세진생명 콜센터에 전화하기

그의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그달 통화 품질 점수 최하점을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폭탄’이었다.

수현은 처음 그 전화를 받았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고객 정보란에 떠 있던 문구.

[★ 비상 비상! 폭탄 폭탄! 무조건 친절 상담 ★]

그리고 이어진 낮고 차분한 목소리.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지만 대답하기 까다로운 보험 지식 질문들.

그 부분까지는 어떻게든 잘 넘겼다.

문제는 마지막이었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는 순간,

이름을 한 자씩 끊어 말하는 걸 잊었다.

“김수현 씨?”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름을 한 자 한 자 끊어 말하는 건 기본 교육에서 배우는 내용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면 이름을 흐리는 걸 보니 오늘 상담에 자신이 없었던 겁니까?”

“아닙니다. 그렇지만…….”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돌아온 결과는 QA 점수 최하점.

지난달 기준, 30만 원이 그대로 날아갔다.

덕분에 이번 달 점심은…….

간장. 계란. 밥.

수현은 젓가락으로 밥을 비볐다.

아무리 간장계란밥이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지만,

점심마다 그것만 먹는 건 다른 문제였다.

밥을 씹을 때마다 가난이 같이 씹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박건우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납치해서 방에 가둬두고 세 끼를 전부 간장계란밥으로 먹이는 상상.

물론 먹기 전에는 꼭!

“박. 건. 우.”

이름을 또박또박 끊어 말하게 시킬 것이다.

……꽤 괜찮은 복수였다.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상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다음 달 도시락 반찬에 소시지 하나라도 추가하려면,

금요일마다 겨우 누리던 점심 외식을 지키려면 A등급을 사수해야 했다.

마이 프레셔스…….

아니, 나의 고퀄리티 런치박스.

수현은 심호흡을 하고 다음 콜을 받았다.

통화 품질도 중요했지만 콜 수를 챙기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핑계였을까.

오후 세 시.

‘알람이’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현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

‘알람이.’

수현이 붙인 별명이었다.

신입 시절, 단 한 번의 사소한 실수.

그걸 빌미로 고객은 매일 오후 세 시,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걸어달라고 요구했다.

벌써 석 달째였다.

그런데 오늘 그 전화를 잊어버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내가 너 같은 애 때문에 피해를 봐야겠어?

말이 끊겼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익숙해서 더 질렸다.

-고객이 우스워? 내가 세진생명에 한 달에 내는 돈이 얼마인 줄 알아?

-너 같은 애가…….

너 같은 애.

그 말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귀에 걸리는 게 아니라 안쪽으로 날카롭게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수현은 숨을 한 번 고르고 입을 열었다.

“저는…….”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목이 막힌 것처럼.

나 같은 애는…….

그 말 뒤에 따라붙을 문장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엄마 병원비 때문에 고등학교까지만 겨우 마치고,

결국 콜센터에 취직한 사람.

그래서 이 정도 모욕쯤은 참고 넘기는 게 당연한 사람.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의 정적.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뭐?

짧은 반응.

평소의 수현이라면 빠르게 사과하는 쪽을 선택했겠지만,

오늘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속에 쌓여 있던 말들이 걸러지지 않고 쏟아졌다.

“물론 제가 고객님께 실수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러나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저를 세 달 동안 알람처럼 사용하시는 건…….”

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상적인 요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 어떤 말이 헤드셋을 통해 쏟아졌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떨렸다.

고성.

욕설.

비웃음.

익숙한 조합이었다.

다만 오늘만큼은 누군가의 화풀이 상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수현은 조용히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회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객의 편을 들었다.

“김수현 씨. 고객 컴플레인이 들어왔어요. 왜인지는 알죠?”

팀장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직접 가서 사과하세요.”

그 한 문장으로 고객에게 반항한 상담원의 판결은 마무리되었다.

*

“억울해…….”

수현은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울음이 올라왔지만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다른 상담원들에게 자신의 슬픔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슬픔은 전파되는 법이니까.

“왜…….”

입술을 꽉 물었다.

“왜 나야…….”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런 삶 말고…….”

생각이라기보다는 기도에 가까운 바람.

“다른 삶을 살고 싶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발…….”

누구에게 비는 줄도 모른 채 수현은 빌고 또 빌었다.

“나한테도 기회를 주세요.”

진심을 다해, 그리고 간절하게.

그때까지만 해도 수현은 몰랐다.

자신의 기도를 누군가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기도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리라는 것도.

제로슈즈

분량 조절해서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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