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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내 아바타가 될 생각이 있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건우였다.
“…네?”
수현의 입에서 짧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평소 고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경우라면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매뉴얼대로 응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들은 말은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내 아바타가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같은 말이, 같은 톤으로 반복됐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팀장의 메신저를 받은 건 화장실에서 한참 울고 돌아온 직후였다.
[폭탄 통화 요청. 주의해서 응대할 것.]
깜박이는 메신저를 보며 수현은 생각했다.
오늘은 인생 최악의 날이다.
그래도 전화를 걸었다. 매뉴얼을 되새겼고, 이름을 또박또박 끊어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같은 실수는 다시 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런데 아바타라니.
술에 취한 건가?
“지금은 상담원 김수현 씨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박건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매뉴얼은 내려놓고, 인간 김수현으로 대답해도 됩니다.”
수현은 잠시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아바타가 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 스친 건 단 하나였다.
푸른 피부의 외계인.
하지만 남자가 그런 이야기를 할 리는 없었다.
잠깐의 침묵.
짧지만 이상하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김수현. 고졸. 콜센터 근무 중.”
수현의 손이 멈췄다.
“작년에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카드론 빚 3천만 원.”
“잠깐만요!”
수현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주변의 시선이 한꺼번에 꽂혔다. 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수현은 겨우 목소리를 낮췄다.
“…제 뒷조사를 하신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입술이 바짝 말랐다.
“장난이라면 이쯤에서 끝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삶에 싫증 난 부잣집 도련님의 장난감이 된 심정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박건우가 말을 이었다.
여전히 감정이 실리지 않은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진상 고객과 통화했고.”
수현의 숨이 멎었다.
“화장실에서 울면서 간절히 빌었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고.”
“…….”
“기회를 달라고.”
수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의 시선이 다시 쏠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박건우라는 남자가 지금 수현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고 있었으니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화장실에서 혼자 울면서 내뱉었던 말.
누구에게 들려줄 생각도 없었던, 가장 초라하고 간절했던 자신의 속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수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그때였다.
입구 쪽에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그 기회.”
박건우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바로 앞에서 들렸다.
“제가 드리겠다는 겁니다.”
수현의 시선이 그를 향해 멈췄다.
남자도 걸음을 멈췄다.
말은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아, 저 사람이구나.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처음으로 맞닿았다.
*
수현은 가만히 박건우를 바라봤다.
다행히 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더 문제였다.
지금 이 좁은 상담원 휴게실에서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사람.
세진그룹 이사 박건우.
그가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낡은 공간이 순간 회의실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인데 주변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
눈빛도 그랬다.
날카롭다. 그런데 함부로 찌르지는 않는다.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매끄럽게 떨어지는 턱선.
남자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묘하게 ‘아름답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수현은 시선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아직 이해가 안 됩니다.”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바타가 되라는 말도, 제 인생을 바꿔주겠다는 말도요.”
잠깐의 침묵.
박건우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하은빈.”
툭 떨어진 이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은빈.”
그가 한 번 더 말했다. 이번에는 확신을 담아서.
“당신의 쌍둥이 언니입니다.”
“네?”
쌍둥이?
언니?
수현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당신에게 하은빈의 삶을 살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조용한 목소리였다.
마치 이미 결정된 사실을 통보하듯.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잘못 찾으신 것 같습니다.”
갈증이 났다.
“저는…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없습니다.”
허탈했다.
잠시나마 이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워서.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건가.
수현은 시선을 피했다.
그때 남자가 사진 하나를 툭 던졌다.
수현은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을 내려다봤다.
박건우가 그의 별명처럼 던진 또 하나의 폭탄이었다.
그리고 멈췄다.
사진 속 여자가 웃고 있었다.
…나였다.
아니, 그의 말이 맞다면 사진 속 여자는 내 쌍둥이 언니였다.
하은빈.
절벽 끝에 매달려 있던 수현에게 떨어진 동아줄 같은 그 이름을 마음속에 새겼다.
*“야! 너 왜 대답이 없어? 내 말이 우스워?”알람이가 수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시비를 걸었다.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게 궁금해?”“뭐?”“당신이 우스운지, 그게 궁금하냐고?”그것은 수현이 고객에게 처음으로 하는 반말이었다.알람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너…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당신, 진주 브랜드 아파트 109동 701호 살지?”“뭐?”“남편은 세진그룹 마케팅부 부장이고.”알람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너 지금 무슨…….”“자식은 아들 하나. 지금 J그룹에 근무하고 있고.”수현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개인정보에 알람이의 얼굴이 붉어졌다.“당신이 세진생명에 온 가족 보험을 다 들어놨잖아. 그게 무슨 뜻이겠어?”수현이 웃었다.“당신 개인정보쯤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뜻이야.”“너……!”“그런데도 겁도 없이 나한테 함부로 굴었네.”콜센터에서 진상 고객을 만날 때마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말이었다.이걸 정말 입 밖으로 내뱉는 날이 올 줄이야.이런 패기가 내 안에도 있었을 줄이야.수현의 머릿속으로 온기를 담고 있지 않은 눈을 한 박건우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지금의 자신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난 박건우 때문에 만들어진 모습이었다.“너 이러고 무사할 줄 알아? 회사에 정식으로 민원 넣을 거야! 아니, 고소하고 언론사에도 제보할 거야. 고객의 개인정보로 협박한다고!”“당신은 아직도 내가 우습구나.”수현은 내려놓은 과일 바구니를 내려다봤다.그리고 가장 단단해 보이는 멜론 하나를 집어 들었다.잠깐의 정적.수현은 알람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창을 향해 있는 힘껏 멜론을 던졌다.쨍그랑!튀어 오른 유리 파편이 수현의 뺨을 스쳤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수현의 기세에 눌린 알람이가 한 걸음 물러섰다.“이거… 기물 파손이야. 알아?”말투는 여전히 공격적이었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그래.당신도 한 번쯤은 두려워해 봐야지.당신이 짓밟았던 사람이 언젠가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수현은 손에 들고 있는 과일 바구니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백화점 과일 코너에서 비상금 통장을 털어가며 산 것들이었다.이 정도 값어치를 들이밀어야 마지못해 민원을 취소한다는 건 오랜 상담원 생활 끝에 얻은 노하우였다.원래라면 손목이 저릴 만큼 무거워야 했다.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조금 전 박건우에게 들은 말 때문이었다.레스토랑 에플.‘알람이’가 사장으로 있는 가게였다.수현은 잠시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시간을 확인했다.약속 시간보다 20분이 지나 있었다.그런데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이상하게도.박건우를 만나고 나온 이후로 수현은 더 이상 예전의 수현이 아니었다.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는 세진유통의 사장이었고, 같은 날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한순간의 선택으로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 쌍둥이 언니까지.세진유통 외동딸 하은빈.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몸의 온도가 조용히 식는 것이 느껴졌다.“너니? 김수현?”고개를 들었다.알람이였다.과일 바구니를 힐끔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가져온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내가 묻잖아. 네가 김수현이냐고.”수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생각했다.내가 김수현인가.25년 동안 살아온 이름인데도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결국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어디서 건방지게 끄덕여?”알람이의 목소리가 곧장 높아졌다.“너 내가 누군지 몰라?”수현은 말없이 알람이를 바라봤다.눈썹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문신을 한 지 얼마 안 된 듯 유난히 짙고 어색했다.이상하게도 그게 먼저 보였다.“너 벙어리야? 왜 대답을 못 해?”알람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아까는 부당하다고 잘도 지껄이더니, 지금도 한번 지껄여 봐.”피식.짧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아까까지 전화 너머에 있던 김수현이 지금의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 건가.그 짧은 사이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들여다봤는데.알람이 따위가 뭐라고.알람이의 태도는 점점 거칠어졌다.하지만 그
*하은빈은 결혼식 날, 신부대기실에서 사라졌다.J그룹 장남 백도현과 세진유통 외동딸 하은빈의 결혼식.재계 순위로만 보면 세진유통이 한참 아래였지만, 이상할 만큼 잡음 없이 진행된 결혼이었다.그래서 더 이상했다.신부가 드레스를 입은 채 사라졌다는 게.남은 건 단 두 가지였다.벗어놓은 웨딩슈즈 한 짝.그리고 화장대 위에 놓인 짧은 메모.[도망칠게]그 네 글자를 본 순간, 건우는 결심했다.은빈의 선택이 도망이라면, 그 도망만큼은 완벽하게 만들어 주겠다고.세상이 그녀를 다시 끌고 오지 못하도록.백도현도, J그룹도, 그리고 그녀를 인형처럼 다루는 이희숙도.아무도 손대지 못하게.건우는 은빈의 흔적을 쫓았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됐다.하은빈이 혼외자였다는 것.그리고 그녀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는 것.동생의 존재를 알게 되자, 건우의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은빈의 빈자리에 쌍둥이 동생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세진유통 딸의 삶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삶이 아니었다.화려했고, 안정적이었고,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자리.물론 그 안에 숨은 함정은 철저히 가려져 있어야 했지만.며칠간의 조사 끝에 건우는 마침내 김수현을 찾아냈다.우습게도 그녀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세진생명 콜센터.심지어 한 달 전, 자신과 통화까지 한 상담원이었다.그녀의 이름은 김수현.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아니, 기회였다.건우는 곧장 그녀를 찾아갔다.중간 과정 없이 바로 만나도 됐다.그런데 상담원 휴게실로 향하던 복도에서 우연히 들려온 대화가 그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화장실에서 우는 애, 김수현 맞지?”“응, 맞아. 개진상한테 제대로 까였다잖아.”“근데 김수현 종교 있었나?”“왜?”“몰라. 기도를 하는지 계속 뭘 빌던데?”“뭘?”“뭐라고 했더라.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 기회를 달라고?”“에휴. 그게 쉽나. 팀장이 또 뭐라 하겠다. 빨리 들어가자.”상담원들이 멀어졌다.건우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인생을 바꾸고 싶다.기
*“오늘부터 내 아바타가 될 생각이 있습니까?”전화기 너머에서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박건우였다.“…네?”수현의 입에서 짧은 소리가 튀어나왔다.평소 고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경우라면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매뉴얼대로 응대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들은 말은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내 아바타가 되겠냐고 물었습니다.”같은 말이, 같은 톤으로 반복됐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팀장의 메신저를 받은 건 화장실에서 한참 울고 돌아온 직후였다.[폭탄 통화 요청. 주의해서 응대할 것.]깜박이는 메신저를 보며 수현은 생각했다.오늘은 인생 최악의 날이다.그래도 전화를 걸었다. 매뉴얼을 되새겼고, 이름을 또박또박 끊어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같은 실수는 다시 하지 않겠다는 듯이.그런데 아바타라니.술에 취한 건가?“지금은 상담원 김수현 씨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박건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매뉴얼은 내려놓고, 인간 김수현으로 대답해도 됩니다.”수현은 잠시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아바타가 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머릿속에 스친 건 단 하나였다.푸른 피부의 외계인.하지만 남자가 그런 이야기를 할 리는 없었다.잠깐의 침묵.짧지만 이상하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그리고.“김수현. 고졸. 콜센터 근무 중.”수현의 손이 멈췄다.“작년에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카드론 빚 3천만 원.”“잠깐만요!”수현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주변의 시선이 한꺼번에 꽂혔다. 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수현은 겨우 목소리를 낮췄다.“…제 뒷조사를 하신 이유는 모르겠지만요.”입술이 바짝 말랐다.“장난이라면 이쯤에서 끝내셨으면 좋겠습니다.”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삶에 싫증 난 부잣집 도련님의 장난감이 된 심정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그리고 오늘.”박건우가 말을 이었다.여전히 감정이 실리지 않은 사무적인 목소리였다.“진상 고객과 통화했고.”수
*“감사합니다. 상담원 김. 수. 현이었습니다.”수현은 통화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하루 100콜이 넘는 전화 중 일부는 무작위로 선정되어 통화 품질 평가에 반영된다.이름을 흐리듯 말하는 것 하나로도 감점이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특히 지난달은 운이 더럽게 없었다.정상적인 평가에 걸려 점수가 깎였다면 억울해도 인정했을 것이다.문제는 ‘폭탄’을 받은 거였다.100명의 상담원 중 하필 자신이.‘폭탄.’간단히 말하면 이런 사람이다.이름 : 박건우나이 : 32세직업 : 세진그룹 이사취미 : 계열사인 세진생명 콜센터에 전화하기그의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그달 통화 품질 점수 최하점을 각오해야 했다.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폭탄’이었다.수현은 처음 그 전화를 받았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객 정보란에 떠 있던 문구.[★ 비상 비상! 폭탄 폭탄! 무조건 친절 상담 ★]그리고 이어진 낮고 차분한 목소리.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지만 대답하기 까다로운 보험 지식 질문들.그 부분까지는 어떻게든 잘 넘겼다.문제는 마지막이었다.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름을 한 자씩 끊어 말하는 걸 잊었다.“김수현 씨?”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이름을 한 자 한 자 끊어 말하는 건 기본 교육에서 배우는 내용 아닙니까?”“네. 맞습니다. 죄송합니다.”“아니면 이름을 흐리는 걸 보니 오늘 상담에 자신이 없었던 겁니까?”“아닙니다. 그렇지만…….”통화는 거기서 끝났다.그리고 돌아온 결과는 QA 점수 최하점.지난달 기준, 30만 원이 그대로 날아갔다.덕분에 이번 달 점심은…….간장. 계란. 밥.수현은 젓가락으로 밥을 비볐다.아무리 간장계란밥이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지만,점심마다 그것만 먹는 건 다른 문제였다.밥을 씹을 때마다 가난이 같이 씹혔다.그리고 이상하게도 박건우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납치해서 방에 가둬두고 세 끼를 전부 간장계란밥으로 먹이는 상상.물론 먹기 전에는 꼭!“
한 여자가 있었다.한 여자는 한 남자를 사랑했다,하지만 그는 이미 가정을 가진 남자였다.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여자의 뱃속에는, 쌍둥이 자매가 자라고 있었으니까.여자는 떠나기로 했다.남자를 위해서였다.그러나 남자는 여자를 잊지 못했다.그리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다.남자의 부인은 그런 남편의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아이를 데려오기로.*아이를 내놓으라는 말 앞에서, 여자는 흔들렸다.미혼모로 두 아이를 키우는 삶.그 길이 얼마나 버거운지, 이미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아무리 애를 써도,이 아이들의 삶에는 가난이 따라붙을 것이다.반면, 다른 선택도 있었다.친엄마와 사는 삶.혹은 J그룹의 딸로 살아가는 삶.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까.여자는 끝내 결심했다.쌍둥이 두 딸을, 남자의 부인에게 보내기로.그때였다아이를 데려가려는 순간,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세차게 울음을 터트렸다.여자는 본능처럼 그 아이를 끌어안았다.작은 손이, 여자의 옷자락을 꼭 붙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겠다는 둣.아이의 따듯한 체온과,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여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그 순간,여자는 깨달았다. 품 안의 아이는 여자가 거두기로.**그렇게, 한 아이는 떠났고한 아이는 남았다.그리고…나는…남겨진 쪽이었다....“…라고 하더군요.”남자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마치 남 이야기를 하듯.“그래서 결론은 간단합니다.”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이제부터 내 아바타가 되는 겁니다.”“아바타요?”출생의 비밀만으로 벅찼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