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남편의 소꿉친구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가족의 사랑 한번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게 마음에 걸린다며, 남편 차태경은 내 목걸이도, 내 생일도 임서아에게 양보했다. 심지어 아들마저 몰래 임서아를 엄마라고 불렀다. “은성아, 서아는 이제 얼마 못 살아. 네가 좀 양보해 줘.” 남편에게 임서아에게 쏟는 관심을 조금만이라도 나한테 달라고 할 때마다, 아들 차이안은 언제나 아빠와 임서아 편을 들었다. “엄마가 맨날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서아 아주머니는 이제 곧 죽는다는데, 엄마는 왜 자꾸 서아 아주머니한테 뭐라고 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게 됐다. 어느 날 밤, 병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아빠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듣고 말았다. “서아 아주머니는 진짜 상냥하고 예뻐요! 엄마도 서아 아주머니 같았으면 좋겠어요!” 차태경은 웃으며 다정하게 아들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엄마가 조금 엄하긴 해도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이안이 서아 아주머니를 그렇게 좋아하면, 아빠가 서아 아주머니를 엄마로 만들어 줄까?” 내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조차 나보다 임서아를 더 좋아한 거였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침실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원한다면 내가 조용히 사라져 줄게.
Ver mais차태경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차이안은 곧바로 흥분해서 딸아이에게 다가갔다.딸아이의 팔을 잡더니 내게서 떼어 놓으려고 하면서 소리쳤다.“너 누구야! 왜 마음대로 엄마라고 해? 이 분은 내 엄마야!”딸아이는 곧장 내 품으로 뛰어들며 목을 꼭 끌어안았다.“엄마! 이 사람들 누구예요?”나는 놀란 아이를 달래며 차이안의 손을 떼어 냈다.그 과정에서 차이안이 뒤로 밀려서 넘어졌지만 미처 보지 못했다.“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아는 사람들이야.”딸아이는 내 말을 듣더니 앳된 목소리로 인사했다.“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빠도 안녕하세요.”바닥에 주저앉은 차이안은 내가 딸을 달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금세 눈이 벌게졌다.“엄마가 다른 애 때문에 나를 밀었어! 예전에는 엄마한테 나밖에 없었는데!”그러면서 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온몸이 떨리고 있었다.“다 너 때문이야! 너 도둑이잖아! 내 엄마 훔쳐 갔잖아!”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딸을 품 안에 감쌌다.경계하는 눈으로 이안이를 바라봤다.“네가 아픈 건 알아. 그래도 이 아이는 내 딸이고 네 동생이야.”차이안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러내리더니 힘없이 중얼거렸다.“아니야...”“엄마는 내 엄마인데...”차태경은 충격에 빠진 아들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았다.“은성아,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지?”“네 성격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네가 나를 그렇게 사랑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랑 아이를 낳아?”헛웃음이 나왔다.차태경은 억지로 진정하려는 듯 숨을 골랐다.떨리는 손으로 딸아이의 볼을 만지려고 했다.“귀엽네. 근데 너랑 하나도 안 닮았어.”“입양한 아이 맞지?”차태경은 딸아이에게 다정한 척 말했다.“아까 오빠가 오해해서 그런 거야. 엄마랑 같이 우리 집에 가자. 아저씨도 친딸처럼 잘해 줄게.”딸아이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예의 바르게 차태경의 손을 피했다.“저 엄마가 낳은 딸 맞아요.”“이 아저씨 이상해요. 저는 아빠가 따로 있는데 왜 아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차태경이 성큼 다가와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은성아, 돌아왔구나!”“네가 나랑 이안이를 두고 못 살 줄 알았어. 돌아왔으면 됐어. 이제 우리 셋이 다시...”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차갑게 그를 밀어냈다.“오해하고 있나 본데, 난 당신 아들 상담을 맡으러 온 심리상담가야. 지금 우리는 상담사와 보호자일 뿐이야.”“내 아들?”차태경의 눈에 이안이와 똑같은 절망이 번졌다.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은성아, 이제 이안도 네 아들이 아닌 거야? 난 계속 이안이한테 말했어. 네가 화만 풀리면 돌아올 거라고.”“네가 돌아오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나는 잠시 멈칫했다.그리고 차이안을 바라봤다.차태경이 나타난 뒤로 아이의 불안 증상은 눈에 띄게 심해져 있었다.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차태경을 데리고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그러자 그의 눈에 희망이 번졌다.“봐. 너 아직도 나랑 이안을 신경 쓰잖아. 이안이 낫게 해 주려고 온 거잖아. 아직 우리 걱정하는 거 맞지?”나는 낯선 사람을 보듯 차갑게 바라봤다.“내가 이 아이의 상담을 맡았기 때문에 그런 거야.”“아이 상태가 많이 심각해. 그리고 우리가 과거에 가족이었던 걸 생각하면, 내가 직접 상담을 계속 맡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나는 차태경에게 명함을 건넸다.“내 교수님 연락처야. 지금은 아이 상태부터 제대로 인정하고, 더 전문적인 도움을 받게 해 줘.”“싫어! 난 누구한테도 안 맡겨!”차태경이 내 손을 붙잡았다.그러더니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은성아, 제발 나랑 돌아가자. 사랑해. 나랑 이안은 네가 없으면 정말 못 살아.”“이제 제발 화를 풀어줘. 난 임서아 그 여자한테 속아서 너한테 소홀했던 거야. 걔는 애초에 시한부도 아니었어!”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금세 표정을 가다듬었다.차태경을 차분히 바라봤다.“우리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이미 벌어진 일은 인정하고 아이 상태부터 제대로 봐.”“계속 현실을 피하면
그 시각 나는 이미 낯선 나라에 도착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아이를 갖기 전, 나는 심리학을 공부했다.새로운 곳에 정착한 뒤에는 가족 때문에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학교에 있을 때면 정말 5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그때의 나는 아직 차태경을 만나기 전이었다.아이를 낳기 전이기도 했다.그 시절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성적도 좋았고,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자유롭고 평온한 새로운 환경에서 나는 조금씩 과거를 잊어 갔다.그리고 현지에서 아동 심리학자가 되었다.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과 세 살 난 딸도 생겼다.이제 과거는 완전히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5년 뒤, 차태경과 차이안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동료의 부탁으로 까다로운 사례를 맡게 되면서, 한때 너무나 익숙했던 도시를 다시 찾게 되었다.나는 곧장 진료실로 향했다.중증 우울증으로 몇 년째 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 아이도 그대로 굳어졌다.아빠를 닮은 무심한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엄마?”열 살이 된 차이안은 울음을 참으며 온몸을 떨었다.몇 년 만에 처음으로 입 밖에 낸 말이었다.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차이안이 바로 그 중증 우울증 환자였다.몇 년째 말을 하지 않는 증상까지 있었고, 너무 말라서 크게 소리를 낼 힘조차 없어 보였다.나 역시 이렇게 증상이 심한 아동 우울증 환자는 처음이었다.아이의 우울증은 대부분 가정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차태경이 어디 있냐고 묻기 전에, 문득 내가 어떤 입장인지 떠올랐다.이혼 합의서에 서명하고 떠나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나는 이미 두 사람과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그때 진료실 밖에서 발소리와 목소리가 들렸다.밖으로 나가서 확인하려고 하는데, 줄곧 앉아 있던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내 팔을 붙잡았다.“가지 마요! 엄마, 제발 가지 마요!”아이는 있는 힘껏 내
하지만 아직 어린 이안은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갔다는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졌다.“싫어요! 엄마는요? 엄마 어디 있어요!”아이는 겁에 질린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아이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자 차태경은 어쩔 줄 몰랐다.평소 아이와 놀아 주기만 했을 뿐, 자신이 직접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결국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한참을 울다 지친 아이는 차태경의 품에서 잠들었다.하지만 한밤중이 되자 다시 놀라 깨더니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차태경은 아이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돌아올 거야. 엄마가 우리 둘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분명 돌아올 거야.”하지만 아이는 아빠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채 계속 울부짖었다.“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평소 얌전하고 말도 잘 듣던 아이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저 울기만 했다.차태경은 완전히 지쳐 버렸다.결국 임서아에게 도움을 청했다.전화를 받은 임서아는 아픈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금세 집으로 달려왔다.텅 비어 버린 집을 둘러보면서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하지만 곧 표정을 감추고 안타까운 얼굴로 우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이안아, 울지 마. 엄마가 이안이 버려도 아주머니는 안 버려.”하지만 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오히려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엄마가... 이안이 버린 거예요?”“괜찮아. 아주머니가 계속 돌봐 줄게. 엄마랑 아빠가 이혼해도...”그 말을 듣는 순간 차태경이 날카롭게 소리쳤다.“무슨 헛소리야! 은성은 돌아올 거야. 우린 이혼 안 해!”차태경이 이렇게 화내는 걸 처음 본 듯 임서아가 움찔했다.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식탁 위 서류를 가리켰다.“근데... 이미 이혼합의서에 사인했잖아.”“아까 들어오면서 봤어...”차태경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그제야 식탁 위에 놓인 이혼합의서가 눈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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