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군, 아무래도 오라버니한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어찌 됐든 소우연은 의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용강한이 고생을 좀 하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그를 치료해 줘야 한다.“알겠다. 나도 너랑 같이 가겠다.”그렇게 이육진 일행은 다시 배나무 별채로 향했다.한편, 찬물로 목욕을 마친 용강한은 정신이 훨씬 맑아졌다. 소우연은 재빨리 그를 위해 침술을 놓았고 이 의원까지 불러 용강한에게 맞는 약을 달이기도 했다.밤새 치료를 받은 용강한은 날이 밝아지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본채로 돌아온 소우연은 너무 졸려서 이육진이 궁으로 출발한다는 말에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그렇게 오후까지 푹 잔 소우연은 정연이 시중을 들려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를 곁에 앉히며 말했다.“정연아,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너에게 혹시 마음에 드는 사내가 생기면 반드시 나한테 얘기해야 한다. 내가 책임지고 네 행복을 꼭 찾아주마.”얼굴이 살짝 빨개진 정연은 머릿속에 진우가 떠올랐다. 하지만 어제 그녀가 했던 말로 진우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 이상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이런 생각에 정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정연아, 앞으로 넌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어.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얘기하거라. 네 소원은 그게 무엇이든 다 들어줄 수 있다.”“마마, 혹시 소인에게 미안하셔서 보상해 주려는 겁니까?”소우연은 정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리고 정연이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면서까지 그녀를 돕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소인은 마마께서 용 대감님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서 대감님 시중을 들겠다고 한 겁니다. 더군다나 대감님은 너무 좋은 분이시지 않습니까? 만약 정말 대감님의 시중을 들었다고 해도 나중에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시면 그분은 반드시 소인을 책임질 분입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소인도 손해를 보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정연아, 넌 참 좋은 사람이야.”정연은 심지어 소씨 가문
“뭐가 지나갔다는 거야?”정연이 입을 삐죽 내밀며 묻자 진우가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그러니까, 너와 용 대감님 말이야. 어차피 서로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잖아. 용 대감님은 너를 부인으로 들일 리가 없으니까 너 차라리 나한테 시집오는 게 어때?”진우의 말에 정연은 충격을 받은 듯 자리에 멍하니 서서 물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헛, 헛소리가 아니야!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난 네가 다른 남자의 시중을 들었다고 해도 상관없어. 너만 좋다면 좋아. 그러니까 나한테 시집올래? 정연아, 나 사실 오래전부터 널 좋아하고 있었어.”진우의 고백을 들은 순간, 정연은 조금 전까지 서럽고 슬펐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정연은 지금까지 경문을 좋은 오라버니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의 고백에 심지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설렘이 느껴지기도 했다.그런 상황에서 경문이 그녀에게 용 대감의 시중을 들어달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조금 씁쓸하고 슬펐던 것이다.정연은 자신이 보잘것없는 시녀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고 이렇게 쉽게 넘겨질 수 있는 물건 취급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이런저런 생각에 정연이 피식 웃었고 그 모습에 진우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정연아, 너 괜찮아?”“당연히 괜찮지. 우리와 같은 노비들은 언제 어디에 팔려가도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어느 날 갑자기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말이야. 하지만 난 너무 운이 좋게 태자빈마마를 만나 마마 곁을 지킬 수 있게 됐는데 당연히 감사하면서 살아야지.”정연이 감개무량한 듯 숨을 길게 내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태자빈마마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 난 마마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기 싫었어. 더군다나 천한 내 신분으로 어떤 대단한 어르신에게 시집가겠어? 그건 말도 안 되지. 하지만 오늘 밤 용 대감님의 시중을 든다면 이 또한 신분 상승 아닐까?”“너… 너 정말 진심으로 용 대감님의 시중을 들고 싶은 거야? 너 이런 사람 아니잖아?”진
”우연아, 가지 마…”용강한은 정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 화들짝 놀란 정연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소우연의 이름을 부르는 용강한을 멍하니 쳐다보았다.‘대감님은 역시 마마를 연모하고 계셔.’소우연의 곁을 지금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지켜온 정연은 소우연이 용강한의 이런 마음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이런 어마어마한 비밀을 알게 된 정연은 너무 놀라서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이때, 경문이 얼음을 들고 방에 들어왔다.이에 정연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용강한의 손을 힘껏 뿌리쳤지만 용강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 광경을 목격한 경문은 갑자기 바닥에 한쪽 다리를 털썩 꿇더니 애원하듯 말했다.“정연아, 제발 우리 대감님 좀 살려줘. 네 은혜를 내 평생 잊지 않을게. 언젠가 이 은혜를 꼭 갚을게.”정연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에게 고백했던 경문이 용강한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솔직히 정연은 태자빈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용강한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경문에게서 이런 부탁을 들으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용 대감께서 날 받아준다면 나도 대감님을 도와줄 마음이 있습니다.”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정연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경문에게 말했다.고개를 끄덕인 경문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방 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 나갔다.“대감님, 소인 정연입니다.”용강한에게 손이 잡힌 채, 정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이때, 겨우 눈을 뜬 용강한이 자신에게 잡힌 정연을 쳐다보더니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미, 미안하오. 내가,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같소. 혹시 얼음은 가져온 것이오?”“여기 있습니다.”정연은 조금 전에 경문이 챙겨온 얼음을 보여주었다.“목욕을 해야겠소.”“알겠습니다.”정연은 한참 전에 떠놓은 목욕물을 힐끔 쳐다보았다. 용 대감은 얼음을 목욕물 안에 넣으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그녀는 이내 얼음을 목욕물 안에 전부 쏟아부은 뒤, 돌아와서 용강한을 부축했다.“소인 대감
그 모습에 진우는 씩씩거리면서 발로 바닥을 힘껏 내리꽂았다.그는 경문을 힐끗 흘겨보고는 바로 돌아서서 떠났고 경문은 시종일관 미안한 표정으로 이육진과 소우연에게 사죄를 했다.“태자 저하, 태자빈마마, 소인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소인 정말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소우연은 손을 뻗어 경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에게 그만 얘기하라고 했다.용강한의 성격에 그는 반드시 정연을 책임질 것이다. 더군다나 나머지 시녀들은 확실히 그의 시중을 들기엔 많이 부족했다.최소한 정연은 글도 읽을 줄 알고 거문고와 서예까지 배운 적이 있다.소우연은 생각하면 할수록 용강한과 정연에게 미안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만약 그녀가 용강한을 따라 외출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연아, 자책할 것 없다.”이육진이 다정한 목소리로 소우연을 달래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이내 주위에 서있는 하인들에게 이만 물러가라고 명했다.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떠난 뒤, 경문은 문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마음속에는 정연에 대한 죄책감으로 미칠 것만 같았다.시간이 한참 지난 그때, 방 안에서 용강한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무엄하다! 당장 나가거라!”“용 대감님, 소인이 대감님께 한참 부족한 상대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소인은 대감님의 해독제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난! 난 해독제 따위 필요 없다! 당장 나가거라! 당장!”경문은 문 앞에 서서 방 안의 대화에 마음이 초조했다. 조금 뒤, 정연이 한 치의 헝클어짐도 없이 울며 밖으로 뛰어나와 경문에게 말했다.“용 대감께서 싫다고 하셨습니다.”흠칫하던 경문은 이내 방 안으로 달려갔고 정연도 그를 뒤따라 방으로 돌아갔다.“대감님, 체내에 있는 독을 빼지 않으면 대감님께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죽는다고?”용강한의 입가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가 차오르는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스스로 입술을 깨문 것이다.“그 여인이 아니라면 난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용강한이 씁쓸하게 웃으며
”아닙니다! 부군이 아닙니다! 당신은 오라버니입니다. 무엄합니다! 당장 이 손 놓으십시오!”소우연의 처절한 외침에 이육진은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그가 소우연을 안아들고 오두막을 나서던 그때, 진우가 헐레벌떡 달려왔고 옷이 잔뜩 벗겨진 용강한을 보자 미간을 확 찌푸렸다.‘태자빈마마와 용 대감께서… 설마…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니겠지? 이민수 그놈이 저번에도 마마를 이곳에 납치해온 거잖아!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겁도 없이!’진우는 부하를 시켜 용강한을 부축하여 마차에 태웠다.이때, 이 광경을 목격한 정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마마와 대감께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두 분은…”“왜 말을 못 해?”진우는 이런 말을 정연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하지만 정연도 아무것도 모르는 마냥 순진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용강한 몸에서 더 이상 한기가 뿜어 나오지 않고 열이 펄펄 나는 모습에 바로 눈치채게 되었다.“두 분께서 최음제에 중독된 거야?”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연은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렸지만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었다.그렇게 이육진 일행은 바로 경성으로 출발했다.가는 길에 이육진은 소우연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있다가 소우연의 집착과 고집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마차 안에서 그녀를 도와주게 되었다.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이육진은 혹시라도 소우연을 다치게 할까 봐 평소보다 더욱 조심스러웠기에 어느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하지만 소우연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이육진은 그런 소우연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들이 경성에 도착했을 때, 밤은 이미 깊었다.이육진 덕분에 이성을 거의 회복한 소우연은 황급히 배나무 별채로 달려갔다. 이와 동시에 이 의원이 용강한을 위해 진맥을 해주면서 그에게 해독제를 먹였다.“오라버니께서는 좀 어떻습니까?”소우연의 물음에 이 의원이 대답했다.“약효가 너무 세서 체내에 타오르는 불을 끄지 못하면 위험합니다. 특히 용 대감은 몸이 많이 약해서 시간이
”이제 저를 묶으십시오.”용강한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심지어 소우연이 자신을 꼬시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용강한뿐만 아니라 소우연도 점점 이성을 잃어가면서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오라버니, 저희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런 변태적인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면서 섬뜩하게 웃으시는 겁니까? 저에게서 멀리 떨어지세요!”용강한은 어안이 벙벙했다.평소에 몸에 한기가 도는 용강한은 그나마 지금까지 이성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지만 소우연은 이제 한계가 온 듯하다.“마마, 저를 묶으십시오.”용강한을 빤히 쳐다보던 소우연은 그의 얼굴이 점점 이육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부군…”조심스럽게 한 마디 꺼낸 소우연은 용강한을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갔고 그 모습에 용강한은 너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마마, 정신 차리십시오. 전 용강한입니다. 얼른 저를 묶어야 합니다.”소우연 몸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기분 좋은 향기에 안 그래도 버티기 힘들었던 용강한은 하마터면 그녀를 품에 와락 껴안을 뻔했다.그러다가 결국 이성으로 욕망을 가까스로 억누른 용강한이 다급하게 말했다.“마마, 얼른 저를 묶어야 합니다.”“오라버니?”‘그래, 맞아. 난 지금 오라버니와 함께 있는 거야.’겨우 정신을 번쩍 차린 소우연은 용강한을 빤히 쳐다보다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놓아준 뒤, 용강한의 허리 끈을 풀어 그의 두 손을 꽁꽁 묶었다.그러고는 용강한의 다리를 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의 허리 끈을 풀더니 그의 두 다리까지 묶어버렸다.겨우 다 묶은 소우연은 피폐한 정신으로 곁에 축 늘어졌다. 그녀는 지금 온몸 여기저기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뜨거웠다.그러다가 소우연을 부르는 용강한의 목소리가 또다시 이육진의 목소리로 들렸다.눈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이육진이다. 소우연이 아무리 고개를 힘껏 저어도 계속 이육진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녀 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이육진이라면 그는 왜 그녀를 안아주지 않는 걸까?‘
“저도 가루를 뿌려 흔적을 남겼습니다.”말을 하던 소우연은 주변을 쓱 살피며 물었다.“그럼 이따가 무슨 물건으로 오라버니를 묶어야 할까요?”용강한이 미소를 지으며 허리에 차고 있던 허리끈을 풀었다.“이걸로 묶으십시오.”이곳에 다른 물건이 없었기에 허리끈으로 묶을 수밖에 없다.대화를 하면서도 두 사람의 몸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이때,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우연은 이육진이 찾아온 줄 알고 살짝 들떴는데 결국 밖에서 이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우연, 너 똑바로 들어! 내가 이번에는 절대 저번처럼 그렇게 멍청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바닥에 가루를 뿌려 이육진 그 놈을 이리로 유인할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그러다가 잠시 머뭇거리던 이민수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걱정할 건 없다. 내가 부하를 시켜 너희 두 사람이 이곳에 있다고 경성에 알리라고 했으니 안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이육진이 곧 찾아올 것이야!”“이민수, 너 이 파렴치한 놈!”“내가 파렴치해? 네가 예전에 날 어떻게 모욕하고 괴롭혔는지 벌써 잊은 것이냐? 이 천박한 계집애!”이때, 용강한이 소우연의 옷소매를 살짝 잡으며 제지했다.“저런 놈과 쓸데없는 얘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하지만 저희가 남긴 흔적이 파괴됐는데 이제 어떡해야 하죠?”만약 이육진이 제때에 이곳에 찾아오지 못한다면…용강한의 얼굴이 점점 빨개지고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끈거렸다. 이는 하늘의 뜻을 어기어 벌을 받고 난 뒤로 몸이 처음 뜨거워지는 것이다.차가움과 뜨거움이 끝없이 충돌하다가 결국 최음제의 약효가 최고치에 달하자 용강한은 제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만약 이육진이 빨리 찾아오지 못한다면…“전 태자 저하께서 반드시 찾아오실 거라고 믿습니다.”용강한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지만 소우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한 시간 정도 지나자 타오르는 몸과 마음을 견디지 못한 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백하기 시작했다.“마마, 전 사실 오래 전부터 마
그때가 되면 용강한은 살아남기 위해 이민수에게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민수도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바로 부하를 시켜 약효가 확실한 최음제를 가져오라고 했다.검은 복장을 입은 부하를 시켜 소우연에게 먹인 뒤, 남은 한 알을 용강한에게 건네며 말했다.“용 대감께서 이 최음제를 마시면 저 또한 대감을 믿어드리지요.”“알겠습니다.”고개를 살짝 숙인 용강한은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지더니 최음제를 받아 한입에 꿀꺽 마셨다.“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용 대감께서 그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게 확실한 것 같군요. 그럼 대감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말을 하던 이민수가 손뼉을 쳤다.“여봐라, 당장 이자들을 방에 가두어라!”이민수의 명령이 내려지자 용강한과 소우연은 바로 오두막 안에 갇히게 되었다.한편, 밖에서 오두막 문을 굳게 잠그던 검은 복장의 부하 소범준이 말했다.“세자 저하, 이육진 그자가 소문을 듣고 곧 이리로 찾아올 겁니다. 그자가 오면…”이민수는 소범준을 힐끗 쳐다보며 대꾸했다.“범준아, 네가 보기엔 내가 이곳에 겁을 먹은 것 같으냐?”흠칫하던 소범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물론 세자가 이곳에서 남자의 존엄을 잃긴 했지만 소범준이 걱정하는 건 이육진이 만약 정말 이곳에 찾아오면 그들이 이곳을 살아서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이때, 이민수가 말했다.“이육진 그 놈은 내가 저자들을 납치했다는 걸 절대 예상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을 이 오두막에 가둬뒀을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지도 못하겠지. 오늘밤이 지나고 저 안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일이 벌어지면 넌 그때 이육진한테 가서 태자빈이 이곳에 있다고 전하는 거야.”재미난 구경을 할 생각만 하면 이민수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하지만 이육진 그자가 이곳에 와서 이성을 잃으면 그땐 아무도 이곳을 살아서 떠나지 못할 겁니다.”소범준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하자 이민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를 갈았다.
“아무도 빠져나가려 하지 마라.”앞장선 자가 살벌한 눈빛으로 외쳤다.용강한은 조용히 응했다.“따르겠습니다.”소우연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딱히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문제는 이들과 함께 간다면, 어디로 끌려가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어떻게 해야 할까?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말없이 마차에 태워졌다.용강한은 소우연의 귀에 바싹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보았는데, 정연이는 단지 기절한 것 같았습니다. 분명 태자부로 돌아가 상황을 알릴 겁니다.”소우연은 살짝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마차 안에는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검은 옷 사내도 함께 타고 있었다.그는 두 사람이 속삭이는 모습을 보더니 소리쳤다.“딴소리 하지 마라! 얌전히 있어!”용강한은 조용히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고, 소우연 옆에 조용히 나란히 앉았다.그 후로, 아무 말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한 시진쯤 지났을 무렵, 마차는 멈춰섰다.소우연은 창밖을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익숙한 산세와 작은 대나무집.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그때, 말에서 내린 검은 옷의 사내가 면사를 벗으며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용 대인, 소우연. 오래간만이군.”바로 이민수였다.예전엔 이 대나무 집이 그에게 있어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가장 깊은 치욕이 서린 장소였다.그날 소우연은 그의 생식 능력을 파괴했고, 그는 더는 '남자'일 수 없게 되었다.“이민수, 이게 무슨 짓이야! 부군께서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소우연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그래?”이민수는 이를 갈듯 웃으며, 용강한과 소우연을 번갈아 훑어보았다.“생각해 봐라. 이육진이 가장 아끼는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침상에 있는 걸 보면… 그게 얼마나 참혹한 고통일까?”“입 닥쳐!”“입을 닥치라고? 그동안 내가 조용히 입을 닫았던 적이 있었나? 소우연, 널 그렇게 쉽게 죽게 두진 않을 거야. 너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거야. 내가 권력의 정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