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소우연 일행도 그를 바라보았다.용강한은 살짝 난처한 기색이었다. 화폭 속에서 이육진은 소우연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무척이나 금슬이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그의 시선이 소우연에게서 이육진 일행 쪽으로 옮겨가자, 마음 한구석에서 억누를 수 없는 씁쓸함이 밀려왔다.소우연이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내 모습은 가장 마지막에 그려 넣을까 해서.”“예, 알겠습니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 소우연과 이육진, 용강한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용강한은 조용히 앉아 낮에 그리던 그림에 세세하게 선을 덧그리고 색을 칠했다.소우연과 이육진이 숯을 담은 화로를 그의 곁으로 가져갔다. 숯을 제법 많이 넣은 터라, 두 사람은 이미 열기에 땀을 송글송글 흘리고 있었다.“강한 오라버니 곁에 있으면 좀 시원하겠어요.”소우연이 말하며 의자를 옮겨 용강한 곁에 앉았다.“당연하지.”이육진이 대답하며, 역시 의자를 옮겨 용강한의 반대편에 앉았다.용강한은 붓을 든 손을 멈칫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화폭 속의 가족 초상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비록 그림 솜씨는 용 대인만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렸으니 이제 대인 자리도 붓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이육진이 화폭 위, 소우연의 오른편 자리를 가리키며 물었다.용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그럼 얼른 그려 보세요. 저도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고 있답니다.”용강한은 입을 달싹였으나, 무언가 말하기 어려워하는 눈치였다.“왜 그러시는데요?”용강한이 말했다. “그림 속 우연이 네가 품에 소유를 안고 있는데…”소우연은 그림 속의 자신을 보았다. 자신이 소유를 안고 있었고, 이육진은 소록을 안은 채 한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소우연과 이육진이 동시에 용강한을 바라보았다.용강한이 이육진을 보며 말했다. “문제는 없다만, 제 손을 우연이의 팔에 닿게 그려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멍멍멍!”누렁이는 용강한을 향해 두어 번 짖더니, 소유를 안고 있는 소우연 앞에 가만히 앉았다.용강한이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너도 그림에 들어가고 싶은 게냐?”“멍멍!”소우연이 손을 뻗어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누렁이도 같이 그려 넣어 주세요.”용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마.”누렁이는 신이 나서 몸을 흔들더니 소우연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녀석은 소우연 앞에 앉아 세상 사람들을 연민하는 듯한 우수에 찬 눈빛을 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는데, 그 모습이 평소보다 훨씬 늠름하고 당당해 보였다.두 시진 후.용강한은 기진맥진한 듯 탁자를 짚고 섰고,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는 좀처럼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누렁이가 가장 먼저 용강한 곁으로 달려가 낑낑거리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소우연도 단숨에 용강한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더 버틸 수 있으시겠어요? 아무래도 내일 다시 그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붓을 맡기는 게 좋을 듯 해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등을 두드려 숨을 고르게 해주었다.용강한이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다.”이육진 일행이 다가가려 하자, 용강한이 다급히 손을 들어 제지했다. “오지 마십시오. 조금밖에 안 남았으니, 지금 움직이면 도로묵이 되고 말 겁니다.”“알겠습니다.”이육진이 대답한 후, 나머지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움직이지 말거라.”사람들은 일제히 대답하며 앞다투어 용강한을 바라보았다.소우연은 용강한의 두꺼운 겉옷을 여며주었다. 그의 몸은 여느 때처럼 차가워서, 그녀는 곁에 다가가기만 해도 얼음덩어리에 닿은 듯한 한기를 느꼈다.“외삼촌, 정말 더 버티실 수 있으시겠어요?”이영이 걱정스레 물었다.이천과 이진 등도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용강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소우연이 그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었고, 용강한이 그것을 마시자 상태가 한결 나아졌다.그제야 그녀가 그의 그림을 보니, 그 안에는 모든 사
이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정전 안. 경장명, 방 대인, 조신철, 왕 대인 등 일행은 속내를 꿰뚫어 보면서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상운국과 남국은 모두 이씨 가문의 나라가 아니던가! 그들 모두 한 가족이나 다름없으니, 상운국의 식량과 은전이 남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남국의 백성들도 상운국의 백성들처럼 좋은 시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조회가 끝난 후. 소우연 일행은 곧장 침전 쪽으로 향했다.침전 밖은 햇살이 눈부시게 밝았지만, 따갑지는 않았다. 주익선, 정연, 문형우, 령이 등은 이미 탁자와 의자를 모두 마당으로 옮겨 놓았다. 마당에 심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벌과 나비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대왕 일행이 모두 왔으니, 수라를 내오거라.”이육진이 령이에게 분부하자, 령이는 가볍게 몸을 굽혀 예를 표하고는 수라를 내오러 갔다.화가 앞에 앉은 용강한은 붓과 먹을 진작에 준비해 두고, 모든 사람이 모이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참이었다.“할마마마…”소유와 소록이 소우연을 향해 날아갈 듯 달려왔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앞으로 할마마마와 할바마마, 그리고 용 대인에게 아주아주 잘해드려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기 때문이다. 만약 잘해드리지 않으면, 나중에 뵙고 싶어도 만에 하나 뵙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어쨌든 아이들은 그저 할마마마 품에 파고들고만 싶었다. 그러면 어머니가 아주 많고 예쁜 옷들을 지어줄 테니까.소우연은 몸을 숙여 두 꼬마 녀석에게 각각 입을 맞추고는,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자리에 앉았다.“어마마마, 어마마마와 아바마마께서 가운데에 앉으시지요.”이천이 말했다.“오른쪽 자리는 네 외삼촌을 위해 남겨두마.”소우연이 그렇게 말하며 용강한을 바라보았다. “이따가 그림을 그릴 때 오라버니 자리도 꼭 남겨두어야 해요.”용강한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윽고 령이가 궁인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식사를
“아바마마.”이육진이 관저로 돌아왔을 때였다.아직 본채에 들어서기도 전, 이천이 그를 불러 세웠다.이육진이 고개를 돌리자, 뜰 안 정자에 이천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짙은 현색의 옷자락은 어느새 짙은 밤빛과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밤바람에 이천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렸다.이천은 이육진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이육진은 그 자리에 선 채 아들을 바라보았다.가슴 한구석이 저릿하게 아파 왔다.연이의 말대로였다.돌이켜보면 그들은 이천과 제대로 함께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이천뿐만이 아니었다. 영이와 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자신이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용강한보다도 적었다.그 시절 그의 마음은 온통 국사와 그녀에게 쏠려 있었다.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내어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아바마마, 아들이 문안드립니다.”이육진은 순간 눈시울이 시큰해졌다.이천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아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들어가서 이야기하자.”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전 아바마마의 표정이 조금 슬퍼 보였던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이천은 지금까지 아바마마에게서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그렇게 부자는 함께 본채 안으로 들어갔다.촛대에 하나둘 불이 밝혀지고, 두 사람은 한쪽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어찌 쉬지 않고 있었느냐?”이육진이 찻주전자를 바라보았다.안에는 아침에 우려둔 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이제는 마실 수조차 없을 만큼 식어 있었다.이천이 얼른 말했다.“아바마마, 저는 목마르지 않습니다.”이육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래.”그는 이천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그러자 아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이천의 모습은 연이를 더욱 빼닮아 있었다.세 남매 중에서도 그녀를 가장 많이 닮은 것은 이천이었다.반면 영이는 자신을 닮았고, 진이 역시 자신을 더 많이 닮았지만 연이를 닮은 부분도 있었다.세 아이 모두 하나같이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천아, 일부러 나를 기다린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다만 누구도 감히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다.“이제 다들 그만 쉬도록 하자. 내일은 초상화도 그려야 하니, 모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지. 아무래도 외삼촌의 그림 실력이 워낙 뛰어나고 실제와 똑같으니까.”이천이 말했다.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그러다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떴다.이천과 심연희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다.두 사람은 달빛 아래 손을 맞잡은 채, 이천의 처소가 있는 뒤뜰로 이어지는 돌길을 천천히 걸었다.“부군, 용 대인께서도 정말 더는 붙잡아 둘 방법이 없는 걸까요?”심연희가 고개를 돌려 이천을 바라보았다.평소에도 무뚝뚝한 이천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차갑게 굳어 보였다.이천이 걸음을 멈췄다.그는 곁에 선 심연희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래서 영이와 진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심연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저도 알아요. 폐하와 월왕 전하도 분명 알고 있을 거예요.”그랬다.모두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이천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가슴 한구석이 자꾸만 저려 왔다.심연희는 이천의 손을 놓더니 그대로 그를 끌어안았다.생로병사는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자연스러운 이치였다.하지만 용 대인처럼 좋은 사람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졌다.이천은 품에 안긴 심연희를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어쩌면 이것이 하늘이 내린 벌인지도 몰랐다.그가 하늘의 뜻을 거슬러 운명을 바꾸었기에 소우연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고, 이육진 또한 하늘의 운명을 거슬러 한 나라의 군주가 될 수 있었으니…*한편.이영과 심초운 역시 처소로 돌아왔다.심초운은 이영의 세수를 도와주며 그녀를 달랬다.“태후마마 말씀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 남아서 그분들을 지켜드리는 것이죠. 어차피 황제의 자리는 윤이가 지키고 있으니, 큰일이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그랬다.이영은 애초에 황제의 자리를 중요
밤이 깊어 갈수록 달빛은 더욱 밝아졌다.소유와 소록은 온몸이 땀에 젖도록 신나게 놀다가 소우연과 정연의 품으로 달려들었다.두 아이는 할머니에게 안아 달라며 애교를 부리더니, 말랑말랑한 몸을 품에 꼭 파고들었다.소우연과 정연은 번갈아 두 아이를 안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밤은 더욱 깊어졌다.“소유야, 소록아. 이제 늦었으니 어서 쉬어야지.”소우연은 아이들을 데리러 다가오는 이진을 얼른 손짓으로 막았다. 그리고 이진을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둘 다 벌써 졸린 듯 하구나.’이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옆에서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아이는 정말로 소우연과 정연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그럼 저희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이진은 말하며 소우연의 품에서 소록이를 받아 안으려 했다. 하지만 미처 자세를 잡기도 전에 주익선이 소록이를 받아 들었다.소우연은 소록의 작은 뺨을 살며시 쓰다듬은 뒤, 정연의 품에 안긴 소유를 바라보았다.“그래.”이천과 이영, 심연희와 심초운도 함께 작별을 고했다.모두가 떠나고 나자 소우연과 이육진, 용강한 세 사람만이 남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그러나 아무것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결국 세 사람은 바둑판을 가져와 바둑을 두며 한담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이영과 이천, 이진 일행은 용부를 나선 뒤 두 아이를 진우와 정연에게 맡기기로 하였다.그리고 남매끼리 별채에 모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오라버니, 아무래도 이상해요.”이영은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영남에서 상운국까지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 무공을 익혔으니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만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마마마와 아바마마, 그리고 외삼촌까지… 정말 이상해요.”“그래. 어마마마께서도 초상화를 그리자고 하셨지.”“아바마마와 외삼촌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어마마마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묵묵히 따르기만 하셨고요.”“오라버니, 외삼촌과 아바마
이육진을 떠올리자, 소우연의 가슴 한켠이 은근히 저려왔다. 그가 두 사람의 인연을 받아들이겠노라 말하긴 했지만, 그 말이 모든 것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미안함은 여전히 얇은 그림자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용강한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보따리를 풀어 수통과 몇 가지 다과를 꺼내 가지런히 늘어놓았다.“이 야명주는 마계를 떠날 때 챙겨온 것이긴 하나, 폐하의 물건은 아니다.”담담한 설명에 소우연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어디서 난 건가요?”“혼돈에게서 얻은 것이란다.”순간 소우연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혼돈이라
“그렇지. 이 모든 것은 공적에 따른 보상이다. 인간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내 직접 그자를 멸하리라.”이육진의 음성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기 장로가 숨을 고르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마계를 나갈 수만 있다면… 마존께서 품행이 단정한 자들을 인간 세상에 정착하게 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마계는 줄곧….”“인간과 마족은 본래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다.”이육진이 단호히 말을 끊었다.“마족은 타고난 힘이 강하고 수련 또한 용이하다. 인간 세상에 나가면,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억누르고자 하는 자가 반드시 생겨
이영도 심초운과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얼마나 많이 흔들렸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가끔 이런 짓까지 한 우리가 너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이영의 말에 심초운이 대답했다.“너무한 건 없습니다. 연희와 경장명 그자의 혼약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연희의 참 인연이 형님이 아니라고 해도 절대 경장명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심초운의 부모님, 그리고 황태후와 태상황에 이어 주익선의 부모님까지, 그들은 전부 일부일처를 고집하여 왔으며 평생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부
이튿날, 경문과 이천은 말을 달려 운불사에 당도하였다.달리는 내내, 이천의 가슴 속엔 설명할 길 없는 불길한 예감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큰일이 아니고서야, 사부님께서 경문을 보내어 자신을 부를 리 없었다.“사부님.”이천은 용강한의 얼굴을 보자 안절부절못한 채 입을 열었다.“이영 누님은 사부님께서 누님 때문에 경성을 떠나셨다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용강한은 조용히 응하였다.“그 일은 이미 심초운에게 부탁하였다. 그 아이가 영이를 잘 달랠 것이다.”“경성을 떠나신 것이 누님 때문이 아니라면…”이천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