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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빵모자가 남긴 단서

Author: 박쏭쏭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5 19:36:24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젖은 구두도 신경 쓰지 못하고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심장이 오랫동안 뛰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여자만을 찾았다.

채령을 닮은 여자.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채령을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 그 자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맑은 눈동자, 발그레한 뺨, 물속에서 혼자 환하게 웃던 그 순간.

수소문해봤지만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탐정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명함을 내미는 청년을 보는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남자가 저렇게 곱고 예쁠 수 있을까.

빵모자 아래로 드러난 이목구비가, 그 눈동자가— 너무나도 그 여자를 닮아 있었다.

아니, 닮은 게 아니라 그 자체였다. 시냇가에서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채령이 이번에는 남자로 환생을 한 건가.

미쳤나 보다, 나. 정말로.

그런데도 눈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사무적으로 명함을 내밀고, 낮게 깐 목소리로 "실력은 됩니다"라고 말하는 그 얼굴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탐정이 필요해서 그 사무실에 간 게 맞다.

그런데—솔직히,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이유가 의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속이 쓰렸다.

어젯밤 마신 술이 아직 위장을 긁어대고 있었다.

나는 비틀비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물 한 잔을 따르려다 창밖을 봤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참. 뭐야. 기분 싱숭생숭하게.

그때였다.

띠리릭—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매니저 한동호였다.

노크도 없이 제집 드나들듯 들어오는 게 오늘도 여전하다.

"야! 너 제발 그냥 막 들어오지 마!"

"왜요, 왜요?"

동호가 능청스럽게 눈을 깜빡였다.

"혹시 여자라도 숨겨 놓으셨어요?"

나는 소파 쿠션을 집어 휙 던졌다.

동호가 날렵하게 피하더니— 소파 옆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형, 이건 뭐예요?"

빵모자였다.

나는 물잔을 든 채로 굳었다.

빵모자.

설마… 어젯밤 유혁이 여기에 있었다는 말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뒤집혔다.

어젯밤 기억이 안갯속처럼 흐릿했다.

채령의 환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고, 유 탐정님이 형 데려다 주느라 흘리고 가셨나 보네."

동호가 모자를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나는 멋쩍음을 감추려 짐짓 태연하게 주방으로 돌아가 물잔을 채웠다.

"어제… 유 탐정이 나를 데려다 준 거야?"

"네, 형. 완전 기억이 없나 보네. 어제 난리도 아니었는데."

"뭐?"

"제가 혼자 형 데려다 줘도 됐는데, 형이 굳이 유 탐정님 붙들고 늘어졌잖아요. 혼자 집에 가기 싫다나 뭐라나."

"야, 거짓말하지 마. 내가 그랬겠어?"

"그랬다니까요."

동호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주차장 다 와서 대표님한테 연락이 와서 저 급하게 가는 바람에… 유 탐정님 혼자 형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덩치가 두 배는 되는데."

동호가 유혁이 참 안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소파에 가 앉았다.

팔을 쭉 펼쳐 등받이에 기대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만들었다.

"그래? 내가 많이 취했나 보군."

그런데 머릿속은 전혀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내가 그 앞에서 채령이라고 불렀단 말인가.

그리고 손을 들어 유혁의 뺨을—

윽.

목덜미부터 얼굴까지 열기가 치솟았다.

나는 물을 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지만 열은 가시지 않았다.

"형, 아직도 술기운이 올라오나 보네. 그런데 형, 언제 일할 거예요?"

동호가 다행히 화제를 돌렸다.

나는 짧게 내뱉었다.

"대표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갑갑하던 차였다.

배역을 맡지 못한 지 벌써 6개월.

소속사 박 대표는 내 몸값을 낮출 생각이 없고, 그러니 영화도 드라마도 부르는 곳이 없다.

간간이 광고나 찍으며 지내는 것에 나도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나는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었다.

"이러다 형 아무도 안 찾으면 어떡해요."

동호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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