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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2년 전, 시냇가의 그 여자

Author: 박쏭쏭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5 19:36:17

"연예인들 뒷일 봐주면 꽤 짭짤해. 내 사무실 넘겨받아봐.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거야."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법복을 벗고 빵모자를 썼다.

그렇게 사설 탐정이 됐다.

남장을 한 건 그다음이었다.

채사장이 빚을 유예해주는 조건이었기도 했고, 여자 탐정이라고 하면 선뜻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금방 알게 됐으니까.

지금도 남동생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사무실 옆 옥탑방에서 지낸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보다 이번 달 이자가 얼마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삶.

이런 내가 대스타가 된 차우석에게 뭘 바랄 수 있겠어.

6년 전, 그 학교에서의 만남을 그가 기억해주리라 은근히 기대했던 내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차가운 밤 공기를 들이마셨다.

잊어야 했다.

그의 온도도, 그 목소리도, 그 애절한 키스도.

전부 다.

그런데 왜, 자꾸 심장이 이러는 거야.

#

 

 

 

 

덜컥.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비몽사몽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소파 위였다.

조명은 꺼져 있고, 거실엔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새벽빛만 희미하게 깔려 있었다.

채령이 보이지 않았다.

'아. 꿈이었구나.'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언제쯤 나는 채령을 잊을 수 있을까.

꿈에서조차 그녀는 늘 내 앞에서 사라졌다.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끝내 잡히지 않는 사람.

눈이 다시 감겼다.

의식이 흐릿하게 가라앉으며, 나는 그 날로 흘러 들어갔다.

2년 전, 봄날이었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는 오후.

야외 촬영지는 시끌벅적했다.

나는 촬영진들 사이에 파묻혀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음 씬, 그다음 씬. 대사를 머릿속에 새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시선이 멈췄다.

촬영진들 뒤편으로 누군가 지나쳤다.

찰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덜컥했다.

뭔가 잘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매니저에게 화장실 다녀오겠다 하고 사람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저만치 앞을 보는 순간, 발이 그대로 굳었다.

한복 차림의 여자였다.

단역 배우인지 사극 분장을 하고 있었다.

쪽머리에 은비녀, 옥색 치마폭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그런데.

옆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갸름한 턱선, 살짝 처진 눈매, 옅게 웃을 때 오른쪽으로만 들어가는 보조개.

채령이었다.

가슴이 조여들었다.

이채령.

내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이름.

늦은 밤, 면회를 오겠다며 혼자 차를 몰다가—사고가 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꿈에서 만날 때마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그런 채령이 살아서,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자의 뒤를 밟았다.

여자는 촬영지를 벗어나 사람이 없는 시냇가로 향했다.

주위를 살피더니 고무신을 벗었다.

이윽고 버선마저 벗어던지더니

맨발로 시냇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물에 닿았는지 잠깐 움찔하더니—그다음 순간,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숨을 참았다.

마치 채령이 살아 돌아와 내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 이렇게 잘 살아 있어. 봐, 이렇게.

봄볕이 여자의 얼굴 위에 쏟아지고, 물소리가 잔잔하게 흘렀다.

세상에 저 여자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시냇물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구두가 젖는 것도 몰랐다.

그때 여자가 시선을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채ー"

채령이라고 부르려던 순간, 여자의 발이 미끄러졌다.

균형을 잃고 기우는 몸.

나는 반사적으로 달려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죽은 채령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채령을 닮았는데, 채령보다 더 또렷하고 맑은

눈인데 어딘지 오래된 것 같은 느낌.

나는 그 눈동자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

"내… 내려 주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그녀를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넘어지시는 줄 알고…"

서둘러 손을 떼어냈다.

그러자 여자의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잠깐 나를 올려다보더니, 작게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그리고 서둘러 시냇가를 나갔다.

치마폭이 바람에 흔들리며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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