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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eur: 지리지
심현호, 심주혁의 친형이자 심성 그룹의 진짜 실세, 그가 바로 사고 당시 그 차에 동승했던 인물이었다.

만약 그가 의식을 되찾는다면, 그는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 목격자가 될 터였다.

강정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비록 병원에서는 심현호가 깨어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판정했지만 기막히게도 그녀의 은사인 이도훈 교수는 해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신경외과 권위자였다.

그녀는 이도훈의 과거 수술 성공 사례 중, 심현호와 매우 흡사한 케이스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 지난주 관련 학술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이도훈 교수는 현재 주경시에 머물고 있었다.

교수님이 직접 나서준다면 심현호가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오늘 그녀가 산후조리원을 찾은 것은 국을 챙겨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본래는 이 희소식을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기막힌 상황을 마주하니 저들에게 굳이 사실을 알릴 이유가 사라졌다.

생각을 정리한 강정연은 곧바로 이도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교수님, 머리를 다쳐 1년 가까이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가 있습니다. 혹시 시간을 내어 한 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문자를 보낸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흔쾌히 수락하는 답장이 돌아왔다.

휴대폰에서 시선을 뗀 강정연의 눈매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방 안에서는 여전히 심주혁이 침대 곁을 지키고 있었고 허수정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면서도 곁눈질로 강정연을 힐끔거리며 도발적인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저들의 구역질 나는 치정극을 더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강정연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심현호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주경시를 주름잡는 최고 명문가, 심성 그룹의 현세대 실세인 심현호는 국제 병동 1인 중환자실에 머물고 있었고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해 전담 의료진 및 간호 팀이 24시간 내내 대기 중이었다.

강정연은 신분을 밝히고 면회를 요청했다. 그러고 나서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소독을 마치고 무균복을 입은 뒤에야 비로소 병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병실 안은 적막했다. 오직 의료기기가 내뱉는 기계적인 파열음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 적막 속에 심현호가 고요히 누워 있었다.

수려한 골격을 자랑하는 그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깊고 뚜렷했다.

하지만 안색이 지나치게 창백해, 가슴의 미세한 움직임이 아니었다면 영락없는 시신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강정연은 침대 곁으로 다가가 시선을 내리깔고 그를 응시했다.

그녀가 심현호를 실제로 대면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만남은 1년 전 그의 생일 연회에서였는데, 당시 심주혁의 손에 이끌려 그에게 술을 따르러 갔었다.

그때의 심현호는 그저 잔을 들어 입술만 가볍게 축인 뒤 옅게 고개를 끄덕일 뿐, 단 한마디의 말도 섞지 않은 채 타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서늘한 기운만을 내뿜었다.

그 때문에 강정연에게 그는 이렇다 할 인상조차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심주혁에게 간간이 전해 들은 단편적인 정보들이 전부였다.

심씨 가문은 거대한 권력을 쥔 가문이지만 튀어나온 돌이 정을 맞듯 늘 누군가의 표적이 되기 일쑤였다.

조부 심종수 대부터 시작된 외부의 견제는 결국 5년 전 부친 심태준 대에 이르러 임계점을 넘고 말았다.

심성 그룹이 파산 직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던 그때, 유학 중이던 스물두 살의 심현호가 귀국했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가업을 의연하게 받쳐 들었다.

그의 수단은 전격적이었고 판단은 잔혹할 만큼 과감했다.

심현호는 껍데기만 남은 그룹에 끝까지 자리를 지킨 십여 명의 직원만을 데리고 연달아 시 프로젝트를 따내며 반전의 서막을 썼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활로를 개척해 해외 기업과의 파트너십까지 성사시키며 몰락해가던 심성 그룹을 기적처럼 회생시켰다.

현재 심성 그룹의 모든 핵심 인재들은 심현호가 직접 발굴하고 키워낸 이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심씨 가문이 오늘날과 같은 위상을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젊은 나이임에도 치밀한 계략과 원대한 야망을 갖춘 심현호의 존재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가문 내에서 그의 말은 심태준이나 심지어 심종수보다도 훨씬 압도적인 무게감을 지녔다.

그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후 경영권을 임시로 넘겨받은 심주혁이 1년이 넘도록 여전히 ‘부대표’ 직함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심현호라는 인물의 절대적인 존재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안타깝네요.”

강정연은 묘한 빛이 감도는 눈으로 서늘하게 읊조렸다.

“아주버님은 모든 것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치밀하게 계산하셨으면서 정작 등잔 밑 아내의 외도는 예상하지 못하셨나 보죠.”

그녀의 시선이 그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내렸다.

두 눈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살짝 위로 뻗어 올라간 날렵한 눈매는 여전히 선명했다.

확실히 심현호와 심주혁은 형제라지만 심현호의 생김새가 심주혁에 비해 비할 바 없이 빼어나다는 점은 부정할 길이 없었다.

홀로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강정연은 밖으로 나가 심현호의 주치의를 찾아가 상태를 파악한 후, 확보한 모든 진찰 기록을 스승인 이도훈에게 남김없이 전송했다.

반나절을 정신없이 보내고 날이 저물어서야 강정연은 도심 속 단독 별장으로 돌아왔다. 그녀와 심주혁의 신혼집이었다.

가정부 김미선은 늘 그렇듯 몸에 좋은 보양식들로 정갈한 한 상을 차려내었다.

수개월째 단 한 번도 메뉴가 겹치지 않은 이 식단은 심주혁이 그녀의 몸 상태를 세심히 고려해 영양 전문가에게 특별히 의뢰한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을 터였다.

그러나 오늘은 전혀 식욕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낮에 겪은 일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으며 복잡한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딩...

적막을 깨고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기다리던 교수님의 메시지였다.

[환자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치료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야.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혼수상태가 길어진 거지?]

강정연의 마음속에 찰나의 의문이 스쳤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신경외과 최고의 명의답게, 국내의 평범한 의사들을 아득히 앞지르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남들에게는 절망적인 케이스조차 교수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은 당연했다.

강정연이 막 답장을 보내려던 찰나, 김미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오셨어요. 사모님이요? 방에 계십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문이 열렸다.

심주혁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곧장 소파 뒤로 다가오더니 몸을 살짝 숙여 긴 팔로 그녀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감미로운 입맞춤을 남기고 꽉 쥐고 있던 손을 펴자, 피전 블러드 루비 목걸이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떨어져 내렸다.

“예뻐? 내가 채워줄게.”

낮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는 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

강정연의 침묵에도 심주혁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값비싼 목걸이를 옆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두며 말을 이었다.

“며칠 뒤에 네가 좋아하는 거로 다시 사러 가자.”

그녀에게 구애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돈을 쓰는 데 있어 결코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도 그녀의 눈길이 머물기만 하면, 다음 날 어김없이 그녀의 손에 쥐여 주던 그였다.

그는 그녀를 끔찍이도 아꼈고 그녀 또한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강정연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변호사 쪽에서는 소식 있어?”

심주혁의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지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려 다가오자 강정연은 밀려드는 혐오감에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심주혁은 그런 그녀의 반응조차 그저 가벼운 투정이라 생각할 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미소 지었다.

“증거 불충분이라 범인 추적이 쉽지 않아. 그래도 벌써 실마리가 잡혔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는 다시 강정연의 곁으로 바짝 다가붙으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얘긴 나중에 하고. 나 네가 너무 그리웠어, 정연아. 이제 몸도 많이 회복됐는데, 우리 다시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짝...

강정연은 그의 손을 매몰차게 쳐내고는 시선을 돌려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교통사고만 아니었어도, 우리 아기는 벌써 태어났을 거야.”

사고 직후 뚜렷한 외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주혁은 그녀를 강압적으로 침대에 머물게 했다.

그녀는 그 과도한 보호가 그저 자신을 향한 지극한 사랑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평온한 환상은 병문안을 온 허수정의 말실수 하나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강정연은 그제야 진실을 마주했다. 당시 뱃속에 이미 두 달 된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심주혁은 태아에게 미칠 약물 영향과 할머니를 잃은 그녀의 심신 안정을 핑계 삼아 독단적으로 아이를 지워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석연치 않았다.

늘 그녀의 말을 경청하며 어떤 사소한 의견까지 존중해주던 심주혁이었다. 그런 그가 유독 이 일만큼은 당사자인 그녀에게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아이를 지우고 사실을 은폐했다는 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심주혁은 대체 왜 그랬을까? 혹시 그 이면에 내가 아직 모르는 내막이라도 숨겨져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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