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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hor: 스프링 가든
신나경에 대한 양주원의 사랑을 두 눈으로 본 이후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양주원에 대한 감정은 지난 몇 년간의 반복된 갈등 속에서 소진되어 버렸고 이젠 그녀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아니야!”

한진숙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이번에도 또다시 예전처럼 널 실망하게 한다면 그땐 나도 더 이상 널 설득하지 않을게. 내가 목숨 구해준 은혜로 주원이 대신 부탁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서유정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러면 단순히 그녀와 양주원의 이별 시기를 뒤로 미루는 것일 뿐 결과는 다를 게 없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두 사람이 어떻게 끝까지 함께할 수 있겠나.

한진숙의 간절한 눈빛 속에 서유정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머님, 약속할게요. 한 달 안에 양주원이 신나경과 관계를 정리하면 용서할게요.”

양주원이 그녀를 위해 신나경을 포기할 일은 없었기에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동의하자 한진숙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방에서 자신이 가져온 팔찌를 꺼냈다.

“이건 주원이 외할머니가 내게 남겨준 거야. 별로 비싼 물건은 없고 신혼 선물로 주는 거니까 거절하지 말고 받아.”

불빛 아래에서 영롱한 빛을 반짝이는 옥팔찌는 한눈에 봐도 값비싼 것이었다.

서유정은 팔찌를 밀어내며 말했다.

“어머님, 이건 너무 비싼 거라 받을 수 없어요.”

“안 비싸. 그냥 팔찌일 뿐이야.”

서유정이 고개를 저으며 한사코 거절하니 한진숙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진숙을 택시에 태워 보낸 후 서유정은 집으로 돌아갔다.

한진숙이 뭐라고 했는지 며칠 동안 양주원은 꼬박꼬박 집에 돌아왔지만 서유정을 마주할 때면 싸늘한 표정으로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다.

신나경도 줄곧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웬일인지 양주원은 한 통도 받지 않았다.

서유정은 그가 왜 갑자기 변했는지도 모른 채 관심도 주지 않고 매일 그를 투명 인간처럼 대했다.

한 달을 버티면 한진숙의 생명을 구해준 은혜를 갚고 해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양주원의 곁을 떠나는 걸 해방으로 생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서류에 몰두했다.

주말에 한진숙이 와서 결혼에 대해 논의했다.

양주원과 서유정 모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녀는 이 일을 직접 맡아 처리했다.

서유정과 양주원은 각기 소파 양쪽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보다는 오히려 관계가 파탄 나 이혼을 앞둔 부부처럼 보였다.

한진숙은 그들 맞은편에 앉아 자신이 고른 몇 가지 청첩장을 보여주며 선택하게 했다. 양주원은 단번에 가장 촌스러운 디자인을 고르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왼쪽 위에 있는 거로 하죠.”

서유정이 슬쩍 보니 다소 촌스러운 디자인의 그 청첩장은 ‘축’ 글자 하나만 있을 뿐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보통은 이전 세대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그중 제일 별로였다.

한진숙은 그를 노려보고는 서유정을 돌아보았다.

“유정아, 마음에 드는 걸 골라봐. 네 취향대로 해.”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서유정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와 양주원의 사이가 이 지경인데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결혼하겠나.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못했다. 어쨌든 한진숙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이제야 억지로 강요당하는 기분이 어떤 건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님, 이 사람이 고른 걸로 해요.”

한진숙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거로 하자.”

그렇게 두 사람과 선물 상자까지 논의한 후 한진숙은 웃으며 떠났다.

그녀가 떠나자 거실은 조용해지고 서유정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내일 아침에 재판이 있는데 자료를 이미 준비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일어나서 침실로 가려는데 양주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거실에서 울려 퍼졌다.

“서유정, 널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면 평생 혼자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게 정말로 네가 원하는 삶이야?”

서유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양주원, 결혼하기 싫으면 직접 어머님께 말씀드려도 돼.”

양주원의 얼굴이 퍼렇게 변하더니 그녀를 노려보며 차갑게 웃었다.

“그래, 후회하지나 마.”

서유정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바로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동안 양주원이 집에 돌아오긴 했어도 그녀는 안방에서, 양주원은 거실 소파에서 따로 잤다.

재판에 쓸 자료를 점검하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 서유정은 자료를 정리해 가방에 넣고 잠옷을 챙겨 샤워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서유정이 세수를 마치고 가방을 든 채 집을 나설 때 거실 소파에는 양주원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전의 재판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서유정이 제출한 자료와 증거가 완벽해서 1심은 빠르게 종료되었다.

판결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승소할 게 분명했다.

법원을 나서며 떠나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튀어나왔고, 놀란 서유정은 두 걸음 뒤로 물러서서야 신나경임을 알아보았다.

신나경의 눈은 붉게 부어 있었고 얼굴은 초췌해 보였으며 서유정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서유정 씨,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대표님이 요즘 내 전화도 안 받고 회사에서도 차갑게 대하는 거죠?”

그녀의 다그치는 말투에 서유정은 불쾌감을 느끼며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양주원에게 물어봐.”

“당신이 뒤에서 수작을 부린 거예요. 대표님이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저예요. 당신이 아무리 수작을 부려서 잠깐은 날 무시하게 해도 당신을 다시 사랑할 리는 없다고요!”

서유정은 서류 가방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루빨리 네 곁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해 봐.”

신나경은 서유정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아 표정이 일그러졌다.

“언제까지 잘난척하는지 두고 볼 거예요!”

말을 마친 신나경은 씩씩거리며 떠났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서유정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양주원이 정말로 저 여자를 아끼긴 하는가 보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대놓고 찾아와 도발하진 못할 거다.

서유정은 시선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저녁에 양주원은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왔다.

서유정은 거실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그의 몸에서 나는 술 냄새를 맡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컴퓨터를 닫고 침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양주원이 그런 그녀를 붙잡았다.

“오늘 신나경이 널 찾아갔어?”

말하는 그에게서 풍기는 술 냄새가 서유정을 둘러쌌다.

서유정은 몇 걸음 물러나 두 사람 사이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그래, 왜?”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는 양주원의 눈동자에 조롱이 가득했다.

“요즘 많이 너그러워졌네. 진작 이랬으면 그렇게 많이 싸우지도 않았을 텐데.”

서유정이 지금처럼만 너그럽게 굴었으면 신나경과의 관계를 뒤로 하고 그녀와 결혼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비록 서유정에게 아무 감정이 없었지만 밖에 데리고 다니기엔 충분한 미모였으니까.

양주원의 무심한 눈동자와 몇 초간 눈을 마주치던 서유정이 담담하게 시선을 돌렸다.

너그러워진 게 아니라 이젠 신경 쓰지 않는 거다.

“걱정하지 마. 앞으론 안 그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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