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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스프링 가든
분노로 인해 한진숙의 가슴이 계속 들썩거렸고 양주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실망감이 가득 찼다.

양주원은 붉은 손바닥 자국이 선명한 얼굴을 들고서 한진숙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그러니 가난할 때 만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저랑 같이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서유정은 주먹을 불끈 쥐며 심장에서 사지 끝까지 퍼지는 고통에 휩싸였다.

여태껏 했던 그 어떤 말보다 지금 뱉은 말이 가장 상처였다.

신나경이 자신과 함께 고생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럼 내가 함께 버텨줬던 그 시간은? 서유정, 이렇게까지 상처를 주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한진숙은 서유정을 바라보며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눈동자에 아픔이 스치는 것을 알아차렸다.

“유정아, 홧김에 하는 말이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 내가 대신 혼내줄게...”

“어머님.”

서유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최대한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신 해명할 필요 없어요. 진심으로 하는 말인 거 알아요. 줄곧 어머님 며느리가 되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을 것 같네요. 결혼식은... 취소해요. 다 먹었으니까 이만 일어날게요. 오늘 저녁 식사 대접 감사드려요.”

그녀는 일어나 양주원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가방을 들고 바로 돌아서서 떠났다.

한진숙은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양주원을 노려보았다.

“얼른 안 쫓아가고 뭐 해? 미리 말하는데 난 유정이 아닌 다른 며느리는 인정 못 해. 유정이 데려오지 못하면 앞으로 너도 내 아들 아니야!”

문을 닫는 순간 서유정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양주원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어머니, 전 이제 쟤를 사랑하지 않는데 왜 강제로 결혼하라는 거예요? 결혼해도 나경이와의 관계를 정리하진 않아요. 나랑 나경이가 3년을 만났어도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 없이 결혼만 원하던 여자인데 정말로 결혼식을 취소하겠어요? 방금 그 말은 그냥 협박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껌딱지처럼 아무리 떼어내도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는 경멸과 조롱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가 영원히 그를 떠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처럼 무자비하고도 거리낌 없이 상처를 줄 수 있었다.

서유정은 눈물을 머금은 눈을 깜빡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이번에는 정말로 그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상처투성이의 사랑을 지키려고 수없이 노력했으니 떠나기로 결심한 지금 아무런 후회도 남지 않았다.

부엌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진숙은 양주원에게 삿대질하며 분노로 온몸을 떨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유정이가 아니었으면 네가 지금 그 자리에 있었을까? 유정이 진심을 이런 식으로 짓밟으면 언젠가 걔가 정말로 마음먹고 널 떠났을 때 후회해도 소용없어!”

양주원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정말로 날 떠난다면 드디어 날 놓아줘서 고맙다고 인사할 거예요. 게다가 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건 온전히 내 노력이고 쟤가 없어도 난 똑같이 성공했을 거예요.”

서유정이 그가 가장 보잘것없을 때 곁에 있어 주긴 했어도 창업에 성공한 이후 그녀를 소홀히 대한 적이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주는 선물도 전부 수천만, 수억짜리가 아니던가.

그녀 혼자선 그런 명품은 살 수도 없을 것이다.

양주원은 서유정에게 빚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네가 이젠 회사 대표가 됐다고 기어오르면서 내 말도 안 듣는구나. 그렇다면 나도 너 같은 아들 둔 적 없다!”

한진숙이 서슬 퍼런 기색을 보이자 양주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지금 많이 흥분하셨어요. 저도 더 싸우기 싫으니까 진정되면 그때 다시 찾아뵐게요.”

“넌 오늘 이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내 아들이 아니야!”

양주원은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문을 열고 떠났다.

한진숙의 집을 나서자마자 그는 신나경을 찾아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신나경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치더니 여자는 그대로 남자의 품에 뛰어들었다.

“주원 씨, 어쩐 일이야?”

양주원이 그녀를 안으며 허리를 낚아채 키스를 퍼부었다.

키스가 끝나고 그는 여자의 허리 주변 말랑한 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보고 싶어서 왔지.”

신나경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들어 그를 때리는 척하려다가 그의 얼굴에 난 손자국을 보고는 표정이 확 바뀌며 서둘러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주원 씨, 얼굴 누가 때렸어? 서유정 씨야?”

말하며 그녀의 예쁘장한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더니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양주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신나경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고 싶었지만 그를 아프게 할까 봐 두려웠다.

“안 아파? 내가 약 발라줄게.”

그녀가 약상자를 찾으려고 돌아서는데 남자가 한 손으로 단숨에 그녀를 끌어안았다.

“약 바를 필요 없어. 네가 키스 한 번만 해주면 안 아플 거야.”

“미워!”

그녀의 애교 섞인 모습에 본능이 동한 양주원은 곧장 그녀를 안은 채 소파로 데려갔고, 거실에는 곧 낯 뜨거운 교성이 울려 퍼졌다.

...

다음 날 저녁, 서유정은 로펌을 나서자마자 한진숙이 대문 근처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얇게 입은 그녀는 찬 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이미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서유정은 본 그녀의 핏기 없는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왔다.

“유정아, 나랑 얘기 좀 하자.”

늘 그녀에게 잘해줬던 한진숙이기에 하얗게 질려있는 상대의 얼굴을 보자 서유정은 마음이 약해져서 이렇게 말했다.

“근처에 카페가 있는데 거기로 가요.”

그녀가 거절하지 않자 한진숙은 안도하며 서둘러 말했다.

“그래, 좋아.”

두 사람은 카페로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서유정은 커피 한 잔과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주문한 후 우유를 한진숙 앞에 내밀었다.

“어머님, 따뜻한 우유 드세요.”

“그래.”

우유를 들어 한 모금 마시는 한진숙의 표정이 어색했다.

서유정은 그녀가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었다. 결국 양주원을 용서하라고 설득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양주원은 정말로 끝이 났고 되돌릴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여 컵에 든 커피만 홀짝였다.

얌전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진숙은 다시 한번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들었다.

“유정아, 내가 왜 찾아왔는지는 너도 잘 알 거야.”

서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저랑 양주원은 이미 끝났고 저도 더 억지로 밀어붙이고 싶지 않아요.”

평온한 그녀의 모습에 한진숙은 마음이 급해져서 서둘러 그녀의 손을 잡았다.

“주원이랑 만나는 동안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다 알아. 나도 널 이미 내 딸처럼 여기고 있어. 내 체면을 봐서라도 주원이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서유정은 무기력하게 말했다.

“어머님, 이건 억지로 강요할 순 없어요.”

지금 그녀와 양주원은 서로 결혼하기 싫어하는 상태인데 억지로 이어 붙인 인연은 앙숙으로만 남을 뿐이었다.

한진숙이 고개를 저었다.

“주원이가 잠깐 정신이 나가서 그러는 거야. 정신 차리면 분명 네가 진짜 인연이라는 걸 깨달을 거야. 유정아, 내가 네 목숨 구해줬던 걸 생각해서 다시 한번 주원이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면 안 될까? 그 비서는 내가 결혼 전에 정리하라고 할게.”

한진숙은 자신이 언젠가 생명을 구해준 은혜를 빌미로 서유정이 아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도록 강요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이런 행동이 다소 비열하다는 건 알지만 양주원이 서유정같이 좋은 여자를 놓치는 게 싫었다.

서유정은 고개를 떨구었다. 4년 전 한진숙은 그녀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이제 막 로펌에 입사한 그녀는 매일 자정까지 야근했다. 어느 날 퇴근할 때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신호등을 잘못 보고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가다가 대형 트럭이 그녀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위기의 순간 그녀에게 국을 가져다주러 왔던 한진숙이 그녀를 힘껏 끌어당겨 구해냈다.

두 사람은 함께 바닥에 넘어졌고 대형 트럭은 그들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녀를 구하느라 한진숙은 골절상을 입고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 그녀는 서유정이 혼자 출퇴근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양주원에게 매일 그녀를 태워주도록 했다.

신나경이 등장하기 전까지 양주원은 정말로 매일 그녀의 출퇴근을 함께 했다.

양주원이 처음으로 약속을 어기고 그녀를 데리러 오지 않은 날엔 비가 왔다. 회의가 있어서 오지 못하니 알아서 택시를 타고 돌아가라고 했다.

나중에야 그날 신나경이 발목을 삐었고 그런 신나경이 대중교통을 타는 게 싫어서 그녀에게 거짓말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수많은 반복이 거듭되었다.

그들 사이의 균열은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 결국 넘을 수 없는 깊은 골짜기가 되어 서로 저만치 떨어졌다.

그들은 이제 제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서유정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진숙을 마주 보았다.

“어머님, 제가 다시 한번 기회를 줘도 소용없어요. 저희는 결국 헤어질 운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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