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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Author: 스프링 가든
그녀의 평온한 표정에 흥미를 잃은 양주원은 비웃음을 터뜨리며 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했다.

지금은 너그럽게 행동하는 척하지만 단지 그와 결혼하기 위해서 하는 연기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정말 결혼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침실로 돌아온 서유정은 컴퓨터를 켜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일을 계속했다.

이어지는 며칠 동안 그녀는 줄곧 일에 몰두했고 매번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그때마다 양주원은 거실에서 서류를 보거나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 살지만 며칠 동안 나눈 말은 다섯 마디도 안 됐다.

예전 같았으면 서유정이 양주원에게 먼저 화해를 요청했을 테지만 지금은 편안하게 지내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양주원도 당연히 자신이 돌아왔지만 서유정이 전보다 차갑게 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밥은 자기 몫만 하고 밤에는 그를 위해 불을 켜두지 않았으며 그가 술자리에서 돌아와도 해장국을 끓여주지 않고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아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들은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함께 사는 룸메이트처럼 서로 간섭하지 않고 교류도 거의 없었다.

양주원은 오히려 편했다. 그는 이제 서유정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그녀를 달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눈 깜박할 사이 주말이 되고 한진숙이 찾아와 그들을 데리고 웨딩촬영하러 갔다.

첫 번째 촬영을 마치고 서유정이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는데 양주원은 그녀의 뒤에 있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메이크업을 막 마친 순간 양주원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진은 나중에 다시 찍어. 급한 일이 생겼어.”

서유정이 말을 꺼내기 전에 한진숙이 그의 휴대폰을 빼앗으며 화를 냈다.

“결혼사진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가 있어? 회사가 망한대?”

조금 전 옆에 앉아 얼핏 신나경이 계속 양주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았다. 양주원은 답장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눈에 띄게 초조해졌다.

“어머니, 휴대폰 돌려주세요. 나경이가 옥상에서 뛰어내린대요. 사진 몇 장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해요?”

한진숙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뛰어내려? 그러라고 해. 관계 파탄 내는 내연녀 따위 살아있으면 역겹기만 하지!”

“어머니, 그만하세요! 오늘 저 보내지 않으면 이 결혼 안 할 거예요!”

양주원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주변의 기운도 덩달아 살벌해졌다.

“양주원, 너 다시 한번 말해봐!”

그를 노려보는 한진숙의 눈에는 실망과 분노가 가득했고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모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드레스룸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고 주변의 직원들도 무의식적으로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며 매 순간이 극도로 길게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서유정이 한진숙 옆으로 걸어가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가져갔다.

“유정아, 너...”

한진숙은 그녀가 뭘 하려는 건지 몰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서유정은 한진숙을 쳐다보지 않고 휴대폰을 양주원에게 건넸다.

“가봐.”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고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으며 실망이나 슬픈 기색도 없이 그저 덤덤한 눈동자로 양주원을 바라보았다.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것처럼.

양주원은 언뜻 숨이 멎었지만 이윽고 서유정의 손에서 휴대폰을 받아 들고 주저 없이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유정은 흐릿하게 떠올렸다. 그녀가 추운 날 서씨 가문에서 쫓겨났을 때 마르고도 따뜻한 손으로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가던 그를.

그때도 지금처럼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만이 자신의 유일한 기댈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다른 여자에게로 가는 것을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막을 수 없었고 막고 싶지도 않았다.

한진숙은 서유정을 바라보며 얼굴에 죄책감과 슬픔이 가득했다.

“유정아...”

서유정은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다.

“어머님, 무슨 말씀 하려는지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돼요. 괜찮아요. 게다가 결혼사진은 이미 한 세트 찍었으니까 충분해요.”

“네가 너무 불쌍해서 그래.”

“안 불쌍해요.”

그녀는 양주원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없었기 때문에 서러운 것도 없었다.

한진숙은 한숨을 쉬며 서유정에게 생명의 은혜를 이용해 양주원에게 기회를 주라고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지경이 되어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한진숙을 보내고 서유정은 옆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결혼사진은 몇 세트 남았나요?”

“총 네 벌의 의상을 예약하셨고 저희 쪽에서 한 벌을 선물로 드렸으니 아직 네 세트가 남았어요. 나중에 다시 하실 건가요, 아니면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중에 다시 할 것 없어요. 오늘 다 찍죠.”

그 말을 듣고 직원들은 조금 난처해졌다.

“서유정 씨, 혼자서 촬영한다고요?”

“네, 이미 촬영한 사진은 포토샵으로 사람을 지우고 저 혼자만의 사진으로 부탁드릴게요.”

“네? 아... 알겠어요. 그럼 곧 촬영할 사진도 개인 사진으로 찍어드릴까요?”

서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스튜디오는 그녀가 여러 곳을 비교하고 오래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이었기에 이대로 기회를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니 이미 저녁 6시가 넘었다.

서유정은 스튜디오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갔는데 문을 열자 예상대로 방 안은 어두웠다.

하루 종일 사진을 찍느라 피곤했던 서유정은 바로 침실로 들어가 샤워하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서유정이 씻고 외출하려는데 양주원이 그녀를 불렀다.

“서유정, 우리 이야기 좀 해.”

서유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시간을 확인한 후 그를 돌아보았다.

“나 5분밖에 시간 없어. 할 말이 뭔데?”

“너랑 결혼할 수는 있어. 단 넌 신나경과 내 사이를 간섭하면 안 돼.”

자신이 양보하는 것처럼 구는 양주원의 표정을 보며 서유정은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얼마나 비굴하게 굴었으면 상대가 아무리 상처를 줘도 그녀가 떠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이런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할까.

“양주원, 어머님 집에서 밥 먹은 다음 날 어머님께서 로펌으로 찾아오셨어. 내 목숨 구해준 은혜를 생각해서 너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라고.”

양주원의 표정이 바뀌어도 서유정은 못 본 척 말을 이어갔다.

“그때 내가 그랬어. 한 달 안에 네가 신나경과 완전히 관계를 정리하면 널 용서하겠다고. 나랑 결혼하기 싫은 거 알아. 나도 너랑 신나경 사이 갈라놓는 악역이 되고 싶진 않아. 이젠 한 달까지 20일 남았어. 신나경과 계속 만나고 싶으면 그렇게 해. 한 달이 지나고 우린 헤어지면 그만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양주원은 차갑게 웃었다.

“서유정, 가식 그만 떨어. 결국엔 나경이랑 헤어지라고 강요하는 거잖아. 너랑 결혼하겠다는데 뭐가 불만이야? 너한테 양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준다니까?”

그는 서유정의 말을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그녀가 어떻게 헤어지겠나. 단지 그와 신나경이 헤어지도록 강요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다.

양주원의 짜증 가득한 표정을 보며 서유정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양주원, 난 양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원하는 게 아니야.”

그녀가 원하는 건 언제나 대학 시절 그가 보여줬던 진심이었지만 불행히도 지금의 양주원은 영원히 그걸 깨닫지 못할 것이다.

알게 된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양주원은 조롱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모님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나한테 결혼을 강요해?”

“말했잖아. 한 달이 지나면 우린 헤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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