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준하가 들었다면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이봐요, 태윤 씨. 나 당신 섭섭하게 한 적 없잖아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그 말에 전태윤이 또다시 맞받아칠 것이다.“경쟁을 해야 압력도 받고 우리 처형도 더 잘 보살펴줄 거 아니에요. 저는 지금 소현 씨 친정 쪽 신분으로 당신 시험하는 거예요.”“요즘 세월에 장가가기 참 힘드네요!”예준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소지훈 씨 어디 아파?”장연준은 빅이슈라도 캐낸 듯 흥미진진하게 물었다.“형, 소지훈 씨 어디 아프냐고? 그 방면으로 잘 안 되는 거야? 어쩐지 동명 형이랑 비슷한 나이대에 아직도 싱글이라더니. 난 또 좋아하는 사람 못 만나서 그런 줄 알았는데 몸이 아픈 거였네.”늘 제일 먼저 가십 정보를 얻었던 소지훈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그도 드디어 누군가의 입에 오르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그 방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감정이 없는 병에 걸렸어. 본인과 인연이 닿는 여자를 만나야 진짜 남자가 될 수 있대. 만약 못 만난다면 평생 환관이나 다름없어. 소씨 집안에서 소지훈 씨 결혼을 다그칠 때 본인이 일부러 우리 앞에서 얘기한 거야. 진짜인지는 나도 잘 몰라.”전태윤이 다 말한 후 장연준은 머리만 끄덕일 뿐 감흥을 잃은 눈치였다.“분명 가짜일 거야. 소지훈 씨 나이도 있으니 집안에서 결혼 다그치는 건 너무 정상이야. 결혼하기 싫으니까 마땅한 이유를 둘러대서 부모님 마음 접게 하는 거지.”“그런데 소지훈 씨 우리 할머니 찾아왔을 때 할머니가 대단한 역술인 한 분 알고 계시잖아. 바로 그분이 나랑 네 형수가 부부의 연이 있다고 해서 할머니가 나더러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며 네 형수랑 결혼을 강요한 거야. 그 역술인이 소지훈 씨한테 뭐라고 말했는지 그 뒤로 소씨 집안에서 더는 소지훈 씨한테 결혼을 다그치지 않았어.”장영준이 두 눈을 깜빡였다.“설마 소지훈 씨가 한 말이 진짜라고? 그건 대체 무슨 병인데? 왜 난 들어본 적이 없지?”“나도 의사가 아니라서 잘 몰라. 소지훈
“지금 바로 소지훈 씨 찾아가서 얘기해봐야겠어.”전태윤이 바쁜 걸 알고 장연준도 하소연을 마치고는 자리를 떠났다.“뭐가 이렇게 급해? 소지훈 씨 집에 없으면 어떡하려고? 일단 정남이한테 여쭤보고 찾아가. 괜히 헛걸음하지 말고.”소지훈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스타일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장연준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서두르고 싶지 않은데 이경혜 씨가 부추기는 게 정말 너무 두렵단 말이야. 그분은 누군가를 모험할 때 늘 소리 없이 진행해서 다 파놓은 함정에 뛰어든 후에야 알아채게 된다고. 그땐 이미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전태윤이 가볍게 웃었다.“이모의 계략을 당했다는 건 네가 그만큼 훌륭하단 뜻이야. 이모네 가족들이 소현 씨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관성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아주 완벽한 남자가 아니고서야 그분들 성에 안 차.”“형, 이거 칭찬이야 깨고소하게 놀리는 거야?”“둘 다.”장연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정남 형 좀 찾아가야겠어. 이경혜 사모님 일로 나 요즘 일도 손에 안 잡혀. 이 손해는 반드시 성기현 씨한테 돌려받아야 해. 요즘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성기현 씨한테 맡겨서 돈을 좀 벌어볼 생각이야!”“좋은 아이템 있으면 나도 꼭 불러. 적극적으로 투자해줄게. 서로 협력하고 이익 창출하는 거지, 아니야?”“당연한 소릴.”장연준은 웃으며 계속 밖으로 걸어 나갔다.전태윤도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를 배웅한 게 아니라 사무실 안을 서성이다가 창가 앞에 서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문득 휴대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깼어 여보?”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아직이요. 꿈에서 당신 전화 받고 있어요.”전태윤도 가볍게 웃었다.“밥은 먹었어?”그는 관심 조로 아내에게 물었다.“그 국 꼭 마셔야 해. 몸보신해야지.”“마셨어요. 여보, 나 어젯밤에 누구한테 당했죠? 술 마신 뒤로 아무 기억이 안 나요. 아침에 깨나니 허리가 또 뻐근하고요. 밤새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태윤 씨랑
하예정은 전태윤이 이 사건에서 이득을 봤기에 손을 쓰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또한 상대가 그녀를 겨냥한 게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전태윤 성격에 앞에서 손을 안 써도 뒤에서 무조건 그 자식을 반쯤 죽여놨을 것이다.전태윤은 그녀의 생각을 바로 캐치한 듯 한마디 더 보탰다.“그 자식이 당신을 겨냥한 건 아니지만 그런 파렴치한 놈은 나 절대 쉽게 안 봐줘. 걱정 마, 당신 남편이 대신 화풀이해줄게.”“난 또 도차연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줄 알았어요. 방금 전화 와서 대놓고 태윤 씨를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태윤 씨한테 첫눈에 반했대요. 당신 여복이 차 넘쳐요 아주. 결혼 전이나 후나 대시하는 여자가 끊이질 않잖아요. 게다가 죄다 젊고 예쁜 여자들이네요.”하예정은 결국 질투가 차올랐다.이를 눈치챈 전태윤이 그녀에게 되물었다.“질투 났어?”“아니거든요. 내가 뭣 하러 질투해요?”전태윤은 가볍게 웃었다.“여보, 항상 보면 이렇게 시치미 떼는 사람들이 현실에선 그 반대더라고. 내가 바로 그 당사자야.”하예정이 피식 웃었다.“질투 난 거 맞아요. 하지만 내가 충분히 대적할 수 있어요. 라이벌이 많다는 건 내 남자가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고 나도 그만큼 행운스럽단 뜻이잖아요. 내 남편이 모두가 원하는 남자이니 진정한 행운아는 바로 나예요.”하예정이 행운아인 건 사실이다. 전태윤 같은 훌륭한 남자와 결혼했으니까. 다만 그가 그만 좀 삐지고 아내한테 자꾸 소홀히 한다고 원망만 안 했으면 더 나을 듯싶었다.하예정은 원래 오늘 출장 갈 예정인데 현재 컨디션을 보아 내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태윤 씨 바쁘죠? 가서 일 봐요. 나도 이만 사적인 일을 처리해야 해서요.”“뭔데 그게?”전태윤이 곧바로 되물었다.“김진우 만나고 싶은 거지? 오랜만에 봐서 서로 할 얘기가 많은 거지?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지금 갈게. 네가 누굴 만나든 전부 따라갈 수 있어.”‘또, 또 시작이야!’어젯밤에 김진우를 딱 한 번 마주친 일로 전태윤은 의심병이 도졌다.김진우와
“당신이 고생이 많아.”전태윤이 미안함 가득한 마음으로 사과했다. 그는 처신을 잘하고 있지만 여자들이 자꾸 들러붙으니 어쩔 수가 없다.하예정이 진지하게 말했다.“태윤 씨 마음이 아직 내게 있으니 이렇게 지켜주는 거예요. 무릇 한눈팔 의향이 조금만 있어도 나 절대 안 봐줘. 태윤 씨랑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 있으면 바로 물러날 거예요. 여자가 끊기지도 않는 자석 같은 남편을 나라고 보호해주고 싶은 줄 알아요?”“여보, 사랑해. 평생 오직 당신만 사랑해. 이번 생에 내 아내는 오직 당신뿐이야! 절대 날 밀쳐내면 안 돼.”“칫, 표현 봐서요. 나 끊어요, 볼일 봐요.”하예정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이어서 그녀는 간만에 할머니께 전태윤의 단점을 일러바쳤다.“할머니 보배둥이 손자가 자꾸 저를 의심해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똑같아요. 앞으로도 쭉 이럴 거예요. 못 고쳐요 이건.”할머니가 말했다.“어젯밤에 이미 꾸지람했어. 나중에 또 네가 소홀히 한다고 원망하면 그땐 바로 나한테 얘기해. 이 할미가 진정한 소홀이 뭔지 철저히 느끼게 해줄 거야.”하예정이 흥미진진하게 물었다.“뭔데요 할머니? 방법 알려주세요.”“태윤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하고 나랑 함께 여행 가서 보름 동안 돌아오지 않는 거야. 그래야 태윤이도 진정한 소홀이 뭔지 깨닫게 돼 있어.”하예정이 말했다.“전에 태윤 씨가 나 차단하고 나중에 또다시 추가하려고 모진 애를 썼어요. 그때 분명 말해뒀거든요. 우리 사이에 한 번만 더 차단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땐 아예 끝장이라고요.”“그래? 그럼 휴대폰 새로 하나 사서 번호를 태윤이한테 알려주지 마. 지금 쓰는 휴대폰을 집에 두고 가면 걔 똑같이 연락 못 해.”“그렇지만 조사해낼 수 있죠.”“이 할미가 있는 한 내가 아니라고 하면 절대 조사해낼 수 없어. 그러니까 안심하고 나랑 여행 가자, 응? 예정아, 할머니랑 멀리 여행 가.”할머니는 손주며느리와 함께 여행 가려고 극구 설득했다.“저 내일 출장 가요. 며칠 걸릴 거예요.”“괜찮
“예씨 집안 어르신은 나보다 운이 좋아.”전씨 할머니가 부러운 듯 말했다.예씨 집안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시지만 남편이 살아계시고 늘 옆에 함께해주며 아들, 딸과 손자, 손녀가 지극히 효도하여 그야말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전씨 할머니도 자식이 넘실거리지만 남편이 돌아간 지 오래되어 마음속에 항상 적막함이 남아있다. 할머니를 제일 아껴주시고 헤아려주시던 그 남자가 없으니까.아무 일도 안 하면 더 외롭기만 할 뿐이니 어떻게든 일거리를 찾으시는 할머니였다.그래서 이토록 많은 일을 벌이시는 거고.“예정아,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얼른 가봐. 나도 정리 좀 하고 이따가 나가야겠어.”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와 외출하기 전, 그녀는 188호 별장 일을 잘 해결해야 한다.그와 동시에 언니에게 전화해 여름방학 끝자락에 우빈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전했다.하예진은 한창 아들과 함께 새로 맡은 가게에서 동생의 전화를 받고는 흔쾌히 허락했다. 하예정은 우빈이를 데리고 여행 갈 수 있게 됐다.여름방학이 다 끝나가는데 하예진은 아들을 데리고 나가서 놀아주지도 못했다.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시간이 없다.주우빈은 엄마와 이모의 대화를 듣다가 전화가 끊긴 후 고개를 들고 엄마에게 물었다.“이모가 나 데리고 어디 놀러 간대요?”“어딘지는 안 말했고 그냥 너 데리고 나가서 놀 거래. 9월1일이 개학이니까 그 전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우빈은 알겠다며 대답한 후 신나서 물었다.“그럼 언제 출발한대요?”“오후에. 우리 일단 집에 가서 엄마가 갈아입을 옷 몇 벌 챙겨줄게.”우빈은 환하게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는 말 그대로 행동파였다. 오후에 정말 하예정과 우빈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하예정은 강성에 가서 흥미진진한 구경을 하려고 사업차 출장 가는 일도 성소현에게 떠넘겼다.성소현도 마침 집을 떠나고 싶었다. 엄마가 줄곧 그녀와 예준하를 반대하고 어떻게든 장연준과 엮이게 하려고 애쓰다 보니 성소현도 짜증 나고 장연
“사모님은... 집에 안 계세요.”전태윤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려 박 집사를 쳐다봤다.“어디 갔어요?”“말씀하지 않았어요.”집에 돌아와서 아내를 못 보니 전태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연결음만 들릴 뿐 그녀는 도통 전화를 받지 않았다.전화를 끊은 후 그가 다시 박 집사에게 물었다.“누구랑 나갔어요? 할머니랑?”집안에 TV 소리가 안 나니 할머니도 안 계실 듯싶었다.“네, 우빈이도요.”전태윤은 고개만 끄덕이고 더 묻지 않았다. 그는 하예정에게 줄 선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할머니는 집에만 계시질 못하는 성격이니 아마 하예정을 데리고 야식 먹거나 바람 쐬러 나갔을 것이다.박 집사는 전태윤을 따라가며 하려던 말을 멈췄다.전태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집안에 들어온 후 선물을 탁자에 내려놓고 본인도 소파에 앉아서 다시 한번 하예정에게 전화했지만 여전히 받지를 않았다.“왜 안 받지?”전태윤은 이번에 문자를 보냈다.[여보, 뭐해? 왜 전화를 안 받아? 할머니랑 같이 ‘나쁜 일’ 하러 간 거야?]전에 아버지한테 들었는데 전태윤의 어머니와 금방 결혼했을 때에도 할머니는 자주 어머니를 데리고 나가서 ‘나쁜 일’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전태윤의 어머니랑 도저히 성격이 안 맞아서 할머니도 더는 며느리와 함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하예정은 그의 어머니와 성격이 다르다. 그녀는 할머니와 사이가 매우 돈독하니 할머니가 함께 나가시려고 하면 분명 신나게 따라갔을 것이다.하예정은 답장이 없었다.이에 전태윤이 혼잣말로 구시렁댔다.“설마 룸살롱 가서 호스트나 구경하는 건 아니겠지?”그의 할머니라면 충분히 이런 일을 하실 분이다. 할머니는 룸살롱 호스트들이 제일 멋있다고 했다. 전에 어떤 정보를 캐내려고 룸살롱에 몇 번 갔다가 넘실거리는 호스트를 구경했다고 하셨다. 전태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는 안색이 확 어두워지셨다.“아닐 거야. 우빈이도 있댔잖아.
전태윤은 믿을 수가 없었다.“할머니가 예정이랑 우빈이 데리고 여행을 떠나요? 왜 예정이는 아무 말도 없었죠? 전화해도 안 받고 문자 보내도 답장이 없어요. 남편 집에 버리고 혼자 놀러 간 거예요?!”“처형, 예정이가 날 점점 소홀히 해요. 이렇게 큰일도 미리 상의 없이 떠나가 버렸다고요. 평소에는 일 때문에 출장이 잦고 한 번 출장 가면 사흘에서 닷새가 걸려야 집에 돌아와요. 항상 저를 중시 안 하는 기분이라고요.”“평소에는 그렇다 쳐도 여행 가는 것까지 아무런 말이 없네요. 이런 큰일도 얘기 없다는 건 아예 날 집에 버려둔다는 뜻이에요. 조금이라도 말해줬다면 내가 매달려서라도 함께 갔을 텐데...”하예진이 말했다.“예정이도 요즘에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잠깐 바람 쐬러 나간 거예요. 제부를 소홀히 한 거 절대 아니라고요.”제부 전태윤은 처형 하예진에게 고자질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부부가 갈등만 빚으면 전태윤은 무조건 하예진에게 일러바치며 동생을 혼내라고 한다.하예정이 말하길 이젠 사소한 트러블만 생겨도 전태윤을 외출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전화도 못 하게 한다고 한다. 또 언니한테 일러바칠 게 뻔하니까.전태윤은 고자질뿐만 아니라 하예정이 자신을 소홀히 하고 자신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여 항상 불안감에 떤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작은 팬던트가 되어 하예정의 몸에 걸린 채 종일 함께하고 싶다고 한다.하예정은 그야말로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처지였다.“처형, 예정이는 저를 버렸어요.”전태윤이 잔뜩 서운해하며 말했다.“전화도 안 받고 문자 보내도 답장이 없어요.”“그래요? 제가 전화해서 얼른 제부한테 전화하라고 할게요. 예정이도 임시로 결정한 일이라 제부 업무에 방해될까 봐 미리 안 알려줬을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요. 제가 일단 전화해볼게요.”하예진은 전태윤과 통화를 마치고 동생에게 전화해보았는데 역시 받지 않았다. 할머니께 해봐도 전화가 꺼진 상태였다.하예진은 하는 수 없이 전태윤에게 전했다.“제부, 예정이 제 전화도 안 받아요
“태윤아, 날 웃겨서 죽이려고 작정했어? 내가 죽으면 우리 집 재산을 상속받으려는 속셈인 거지? 할머니의 손자로 산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할머니의 성격을 알면서 왜 그래. 이런 상황도 일찌감치 예견해놨어야지.”“할머니께서 너희들이 신혼생활 때 납치해 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 아니면 더 힘들었을걸.”막 사랑에 빠져있을 때 갈라져 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지금도 괴로워. 아침에 눈을 뜨면 예정이가 보이고 밤에 퇴근하면 예정이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게 습관 되어 버렸어. 예정이가 집에 있는 한 항상 나도 모르게 급하게 집으로 가고 싶어지거든.”“예정이를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 지금 나를 두고 놀러 가면서도 못 따라오게 하려고 휴대전화까지 새로 바꿨어. 너무 적응이 안 돼. 정남아, 나와서 한잔하자. 내가 쏠게.”전태윤은 사람을 시켜 할머니께서 어디에 가셨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할머니가 하예정을 데리고 간 이상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전태윤에게 절대 알리지 않을 것이다.하예정이가 스스로 전태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가 없었다.전태윤은 의아해했다.전태윤이 할머니에게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지 알 수 없었다.전태윤의 약점만 골라서 그에게 수를 쓴 것이다.“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지금 마신다고.? 나 안 마실래. 집에서 우리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해. 우리 아내가 임신한 뒤로 내가 담배와 술을 끊은 지 꽤 오래됐어.”소정남은 생각하지도 않고 전태윤을 거절했다.전태윤은 투덜댔다.“여자밖에 모르는 자식! 의리 없는 녀석!”“친구와 평생을 같이 살 것도 아니고 부인이랑 평생을 같이할 건데 당연히 우리 아내가 제일 중요하지.”“너무 늦었어요. 그만 끊어. 우리 마누라랑 꿈나라로 가야 해. 잘 자!”웃으며 전화를 끊는 소정남을 보며 심효진은 왠지 남편의 말투에 기쁨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소정남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자 심효진은 남편에게 물었다.“전 씨 할머니께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