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고씨 그룹의 경호원 리더가 경호원 1팀을 데리고 나와 꽃을 부수려 했다.전호영 쪽의 사람들도 자연스레 막아 나섰다.현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전호영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유 있게 자신의 ‘노동' 성과를 휴대전화로 찍고 있었다.사진을 찍고 난 뒤 전호영은 무심코 사람들 속의 고빈을 보았고 고빈에게로 걸어갔다.고빈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꽃밭에서 꽃 한 송이를 꺾었다. 전호영이 가까이 오자 고빈은 멋진 얼굴로 웃음꽃을 흩날리며 그 꽃을 전호영 앞으로 건네줬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전 대표가 남자를 좋아하신다면 저를 고려해 보시는건 어떠세요?”“제가 전 대표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우리 형은 전 대표에게 안 어울려요. 정상적인 남자라면 보통 우리 형을 좋아하지 않거든요.”전호영은 두 손가락으로 그 꽃을 집었고 몸은 기울여 꽃 냄새를 맡더니 계속해서 말했다.“향긋한 냄새가 나네요.”그러자 전호영은 손으로 고빈의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살짝 들어어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고빈 도련님은 멋있지만 당신 형에 비하면 좀 못해요.”“빈은 싱글벙글 웃으며 전호영의 손을 잡더니 다시 물었다.“제 몸에서 어떤 부분이 못한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해결할 수 있는지 한번 들어볼게요. 우리 형은 매우 진지하세요. 이런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해요.”“만약 전 대표가 이런 스캔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저를 찾으세요. 제가 끝까지 협조해 드릴 테니 우리 형을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고빈도 전호영 앞으로 다가와 속삭였다.“저는 전 대표가 고의로 이렇게 행동하시는 이유를 알고 있어요. 당신 가문의 어른들 결혼 재촉을 피하려고 우리 형을 끌어들인 거잖아요.”“전 대표가 게이라는 스캔들을 퍼뜨리기 위해서요. 이렇게 되면 당신이 전씨 할머니께서 골라주신 아내감에게 구애하지 않아도 당신 할머니께서 당신을 용서해 주실 테니까.”“좋은 방법이긴 해요. 하지만 남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동이잖아요. 자신의 명성을 훼손시키는 것은
고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전호영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할 줄 알았다면 애초에 그 꽃다발을 받는 것이 더 나을 듯했다. 전호영이 떠난 후에 쓰레기통에 던지면 그만이었다.이렇게까지 큰 소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대표, 퇴근하셨죠?”전호영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올려다보더니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숙이면서 고현에게 물었다.“고 대표, 제가 밥 사드릴게요. 같이 저녁 식사하실래요?“죄송합니다만, 점심 약속이 있어서 안 될 것 같네요.”고현은 바로 거절했다.전호영은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했다.“괜찮아요. 고 대표가 오늘 시간이 없으시면 앞으로 언젠가 시간 있으시겠죠. 고 대표가 저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동의할 때까지 매일 매일 고 대표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하고 매일 매일 고 대표 회사 앞에서 이런 꽃바다를 만들 거예요.”고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이가 갈렸다.고현의 품격이 우수했기 때문에 전호영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고현은 전호영과 이제는 말하기 귀찮았다. 전호영이 기필코 자신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생각했다.고현은 손을 흔들어 자신의 회사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이 꽃들을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그리고 고개를 돌려 비서에게 지시했다.“강성 꽃집 주인들에게 연락하세요. 앞으로 아무도 전호영에게 꽃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요. 누가 전 대표께 꽃을 판다면 저를 건드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전해주세요.”전호영은 고현을 꾸지람했다.“고 대표, 꽃집들도 1년에 얼마 벌지도 못할 텐데 너무 하시네요. 저처럼 큰 고객을 만나기도 어려운데 돈 좀 벌게 해주시지 그러세요. 저에게 꽃을 못 판다면 꽃집들의 돈줄을 끊어 놓는 거나 다름없잖아요.”“이렇게 돈줄을 끊어 놓는 것은 그들의 목숨을 끊는 것과 다름없어요. 뒤에서 몰래 고 대표를 향해 평생 아내를 얻지 못하게 하려고 저주하면 어쩌려고요.”고현은 평생 아내를 얻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었다.고현도 여자의 몸이라 장가를 가는 것이 아닌
고현은 말도 없이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고빈은 비서에게 따라올 필요 없다고 말했고 고빈은 누나 뒤를 따라 고현의 차로 향했다.곧 고현은 차에 올랐고 고빈도 누나 따라 차에 올라탔다. 운전기사는 전호영을 힐끗 보더니 묵묵히 차의 시동을 걸고 앞으로 몰았다.“형, 제가 아까 전호영한테 물어봤어. 전 대표가 인정했어. 전씨 집안 어른들의 결혼 재촉을 피하려고 이슈를 만드는 거라고.”고현은 동생을 차갑게 바라보며 물었다.“그 말을 믿어?”고빈은 멈칫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조사해 봤어. 내가 접한 정보에 따른다면 난 전호영의 말을 믿어. 아니면 전 대표가 정말 게이라는 사실을 믿는 건 아니지? 게이라고 해도 형과 몇 번밖에 접촉 못 했을 텐데 이렇게 빨리 형의 관심을 끌려고 하지는 않을걸.”이번에 고현이 말문이 막혔다.고현은 전호영이 고작 화제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전호영이 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만약 전호영이 남자를 좋아한다면 관성에도 우수한 청년들을 많고 많을 텐데 진작 남자 친구를 사귀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굳이 이렇게 멀리 강성으로 와서 고현에게 치근덕거리지 않았을 것이다.만약 둘 다 아니라면 전호영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고현의 차가 회사를 빠져나왔다.그 넓은 꽃바다는 이미 깨끗이 정리되었다.구경하던 사람들도 점점 흩어지기 시작했다.그러나 전호영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전호영은 그의 차 앞에 기대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고현의 전용차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심지어 고현의 전용차 방향으로 손까지 흔들었다.입으로 무엇 가를 말했지만 고현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아무런 표정 없이 앞만 바라보았다. 전호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운전기사는 고현이 지금 전호영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빠른 속도로 전호영을 지나쳤다.반나절 후, 고현은 고빈이게 부탁했다.“고빈아, 관성에 가서 전호영의 약혼녀가 누구인지 한번 알아봐 줘.”고빈은
“전 대표의 부모님도 모르신다고 들었어.”고현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전씨 큰 도련님은 아실 거야. 전씨 형제들은 큰형을 가장 존경하거든. 매사에 전태윤의 의견을 존중했고 모든 일을 다 전태윤에게 알려준다고 했어. 부모님은 모르실 수도 있지만 전씨 큰 도련님은 꼭 알고 있을 거야.”“전태윤은 입이 엄청 무거워서 알아내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전씨 사모님에게 한번 접근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 전태윤은 하예정을 무척 사랑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분명 하예정에게 알려줄 거야.”고빈은 이내 입을 열었다.“전씨 할머니와 사모님 모두 여행 갔다고 들었어. 지금 아마 찾기가 어려울걸.”고현은 또 침묵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입을 열었다.“하루 이틀에 조사하라는 뜻 아니야. 이 일을 머릿속에 일단 남겨두고 있어. 물론 빨리 알아내면 더 좋고.”“못 알아내면 어떡해?”고현의 잘생긴 얼굴이 굳어지더니 눈빛마저도 어두워졌다. 그리고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그럼 상황을 봐가면서 모든 수를 써서 이 일에 대처할 거야.”전호영이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을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꼬리를 밟힐 것이다.“형, 전태윤을 찾아가서 전호영에 관해 말해보는 건 어때? 내 생각엔 전태윤도 분명 초조할 거야. 형으로서 자신의 동생이 남자에게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내가 남자에게 빠져있다면 형은 분명 나에게로 찾아와서 여자를 좋아해야 한다고 타이를 거잖아.”고현은 동생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고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만약 네가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해가 서쪽에서 떠오를걸. 나 오늘 저녁에 연회에 참석해야 해. 너도 따라와. 오늘 이윤미도 참석할 거야.”고빈은 바로 누나에게 용서를 비는 시늉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형, 살려 줘. 난 이윤미에 정말 관심이 없어. 그런 순한 척하고 속셈이 많은 여자를 내가 이길 수 없어. 형도 알잖아. 난 잔꾀가 많은 사람이 가장 싫어.”전호영도 같이 잔꾀를 부리겠지만 그래도 이윤미가 싫었다.고
십여 분 후.“큰 도련님.”운전기사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고현에게 말했다.“큰 도련님, 전 대표가 꽃다발을 안아 들고 호텔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전호영은 하루 호텔이 아닌 길 건너편의 고씨 호텔 앞에서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고현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현은 자신이 점심 약속이 있다고 했다.고현은 손님들과 식사를 할 때 보편적으로 고씨 호텔에서 식사했다.전호영은 끈질기게 쫓아왔다. 그것도 고현의 차를 따라잡아 먼저 호텔 입구에서 고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현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고빈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우리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전 대표가 회사 앞에 있었는데 어떻게 우리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지?”운전기사가 대답했다.“아마도 전 대표가 지름길로 온 것으로 보입니다.”고빈이 꾸지람했다.“왜 우리도 지름길로 가지 않았어요?”기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고현은 전 대표가 고현보다 먼저 도착할 줄 몰랐다.고현은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동생에게 부탁했다.“강 대표가 호텔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전 대표와 낭비할 시간이 없어. 도와줘.”“형, 걱정하지 마. 내가 형을 도와 전 대표를 귀찮게 하면 되니까.”고빈은 흥미를 느끼며 승낙했다.몇 분 후.고씨 남매가 함께 차에서 내렸다.고현의 경호원들이 빠르게 달려와 고현을 도와 길을 터주었다.이때 전호영도 걸어왔다. 고씨 가문의 경호원들은 고현을 바라보면서 전 대표를 막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때 고빈은 양복 외투를 벗더니 빠른 걸음으로 전 대표를 향해 다가갔다.“전호영 씨.”고빈은 전호영 이름을 부르며 걸어갔다.“저에게 선물하려는 꽃인가요? 너무 예쁘네요.”고빈이가 손을 뻗어 전호영의 손에서 그 꽃다발을 빼앗으려 하였으나 전호영은 몸을 한켠으로 기울이면서 고빈의 손을 피했다. 고빈은 결국 그 꽃다발을 빼앗지 못했다.고빈은 단념하지 않고 두 손을 벌리면서 전호영을 껴안으려고 했으나 전호영 역시 재빨리 피했다. 그리고 교묘하게 고현의 앞으로 다가갔다.고씨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망나니짓을 하니 너무 아쉬웠다.고현은 바로 그 꽃다발을 힘껏 낚아채 전호영의 앞에서 꽃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발로 몇 번 짓밟았다. 그리고는 전호영의 곁을 지나갔다.“꽃을 받았으니 전 대표도 어서 돌아가세요.”고현은 차가운 말투로 몇 마디 내뱉었다.전호영은 바닥에 짓밟힌 꽃다발을 보고 또 고현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재미있는걸. 은근 신경 쓰이네.”전호영은 고현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할머니가 주신 시간이 거의 끝나가자 어쩔 수 없이 움직인 것뿐이었다.고현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 고현에게 구애하면서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제야 전호영은 조금이나마 호감이 생겼다.고빈은 바닥에 버려진 꽃다발을 보면서 걸어왔다.전호영은 바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전 대표.”고빈은 허리를 굽혀 누나에게 밟혔던 꽃다발을 주우며 입을 열었다.“전 대표, 슬퍼하지 마세요. 전 대표가 만약 진심으로 우리 고씨 가문의 남자를 좋아한다면 저를 고려해 보라니까요. 저는 기꺼이 전 대표와 함께 연기해 드릴 수 있어요.”“이렇게 예쁜 꽃다발이 망가진 것을 보니 너무 아쉽네요. 저는 평소에 이런 꽃들을 여성 지인들에게 선물하거든요. 물론 다들 감동하고 무척 좋아하죠.”고빈은 말하면서 그 꽃다발을 들고 근처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고빈은 다시 전호영에게로 다가갔지만 전호영은 실망한 모습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전 대표.”“고빈은 앞으로 다가가 전호영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위로했다.“전 대표, 실망한 척할 필요 없어요. 연기하려면 저를 찾으셔도 돼요. 전 대표가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저는 전 대표가 연기하는 건지 진짜 우리 형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건지 헷갈려요.”“저는 정말 당신 형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요. 고빈 씨도 정말 멋지지만 당신 형보다 매력이 없어요. 당신 형이 도도하잖아요. 저는 고현 씨의 도도함이 좋아요.”말을 마친 전호영은 고빈의 어깨에 걸쳤던 손을 떼어냈다.“고빈 씨, 저는 고현 씨를 진심으로 좋아해
고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목소리를 낮춰서 입을 열었다.“전호영 씨가 지금 공개적으로 저한테 구애하고 있어요. 자꾸 따라다녀요. 하지만 저는 남자예요! 전 대표도 동생이 게이로 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실 겁니다. 전 대표, 이 일을 잘 처리해주세요.”“호영이가 공개적으로 당신에게 구애하겠다고 말했어요? 실행으로 옮겼어요? 아니면 말로만 한 거예요?”전태윤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고현에게 물어봤다.“그분은 오늘 저에게 꽃도 주었어요. 회사 입구에 꽃바다를 만들고 그 꽃들로 글씨도 새겨놓았어요. 수많은 사람의 관심도 끌었고요. 지금 강성의 모든 사람은 저와 전호영의 관계에 대해 의논하고 있어요.”“태윤 씨, 전호영 씨는 관성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게이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였다고 들었어요. 지금 막 이런 성향을 보일 때 빨리 전호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계속 이대로 놔두면 안 돼요.”“저는 전호영 씨를 받아주지 못해요. 우린 결과가 없을 겁니다. 전호영 씨가 저를 따른다 해도 저는 감정적으로 그분을 속상하게 할 수밖에 없어요.”전태윤의 사촌 동생들에 대한 사랑을 믿었기에 고현은 전태윤이 전호영을 꾸지람할 줄 알았다.그러나 그 말을 들은 전태윤은 잠시 침묵했고 아내 다시 입을 열었다.“고 대표, 다른 일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텐데 이 일은 제가 도와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감정은 사적인 일이라서 제가 전호영의 형이라 할지라도 동생의 감정을 좌우할 수 없어요.”“호영이가 정말 고 대표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우리도 호영의 선택을 존중할 거예요.”고현은 놀라워했다.“태윤 씨, 정호영이 게이일 수도 있는 데 관여하지 않으신다고요?”“감정상의 일은 제가 관여할 수 없어요. 세상 속에 그렇게 많은 게이가 존재하는데 그분들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어떻게 관여해요? 호영이가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우리가 좌우지 할 수 없어요.”전태윤은 사상이 진보적인 것처럼 말했다.“우리는 호영이가 여자를 찾든 남
고현이 전화를 끊자 전태윤은 전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호영은 이내 전화를 받았다.“형.”“너 이 자식, 행동이 참 빠르구먼. 어제까지만 해도 전화로 조언을 구하더니 오늘 바로 열정적으로 구애하고 있었던 거야? 고현이 깜짝 놀란 눈치더라고.”전호영은 이미 고씨 호텔에서 빠져나와 하루 호텔로 돌아왔다. 어쨌든 전호영은 자신의 목적에 달성했다.고현이 적응할 수 있도록 반나절의 시간을 주었다.저녁에 고현은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전호영도 저녁에 그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 그때 가서 다시 고현에게 구애할 작정이었다.전호영은 고현이가 남자 신분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는지 지켜보았다.“둘째 형님과 형수님 모두 그렇게 조언해 주셨고 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 할머니가 주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몇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더 움직이지 않는다면 할머니께서 이번 설에 나를 집에서 쫓아낼 수도 있어.”전호영 바보처럼 웃으며 말했다.“형, 이 방법이 아주 좋았어. 내가 고현에게 꽃을 줬는데 고현의 그 무표정하던 얼굴이 확 변하는 것을 봤거든.”“나보다 더 남자다웠어. 나보다 더 남자다운 것 외에 나보다 더 멋있잖아. 내가 반드시 그녀의 가면을 벗겨버리고 말 거야.”전태윤은 또 입을 열었다.“고현 씨를 아내로 받아들이려고 구애하는 거야? 아니면 너보다 더 남자다워서 이겨보려고 구애하는 거야?”“물론 아내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전태윤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고 대표가 방금 나한테 전화 왔어.”“고 대표가 형에게 전화했다고? 뭐라고 고자질했어?”“너에게 신경 쓰라고 그러지. 네가 게이 성향이 있다고 빨리 바로 잡으라고 했어. 네가 고 대표를 쫓아다녀도 고 대표가 게이가 아니기에 소용없대. 계속 이렇게 지속하면 너만 다칠 거라고 말하더라고.”“게다가 네가 결혼 재촉을 피하려고 고현을 이용해 게이에 관한 화제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어.”전호영은 한바탕 웃었다.“형, 나도 알고 있어. 고빈 씨도 나에게 그렇게 물어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