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 왔어요.”고빈은 전호영에게 귀띔해 주려 했으나 고개를 들어보니 전호영이 이미 배달 가방을 들고 고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눈썰미도 좋고 행동도 빨라.”어쩐지 감히 누나한테 대시한다 했고 누나도 잘 참고 견딘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고현이 전호영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두 사람이 좋은 결과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녀의 쌍둥이 남동생은 누나 고현이 전호영의 대시를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했다.누나가 어떤 존재인데 전호영을 해결 못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누나도 분명히 전호영에게 호감이 있으니 전호영이 끊임없이 귀찮게 해도 귀찮은 척하면서 전호영의 대시를 부추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이런 생각은 속으로만 해야지 입 밖에 꺼내면 누나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고현은 전호영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전호영은 고현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얼굴에 대리석을 붙이고 다니느라 힘들지 않아요?”고현이 바로 전호영을 째려보았다.“다른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을 장착하고 다니는데 고현 씨는 대리석을 장착했어요? 굳어서 딱딱해졌어요.”그러더니 이내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배고프죠? 방금 하루 호텔에서 가져온 조식이에요. 차에서 간단하게 먹어요. 아버님과 어머님이 함께 점심 먹으려고 기다리고 계세요.”전호영은 두 손으로 들었던 배달 가방을 한 손에 몰아들면서 한 손으로는 고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고현이 피해버렸다.고현은 아무 말 없이 전호영을 무시한 채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큰 걸음으로 호텔 밖을 향해 걸어갔다.“형.”고빈이 형을 부르며 고현의 발걸음을 쫓아갔다.“형, 난 형이 배고플 거란 생각을 아예 못 했는데 전 대표님이 하루 호텔에서 조식을 가져왔어. 내가 증명하는데 조식은 하루 호텔에서 방금 가져온 거야.”고현은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호텔 밖으로 걸어 나갔고 경호원들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연예기자들이 부근에 잠복해 있다가 두 오누이가 나오
그도 미래 처남을 꽤 좋아한다....관성.어젯밤, 하예진은 아들에게 오늘 아빠의 병문안을 하러 병원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우빈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겨우 일어났고, 아침을 먹고 밖에 나갔을 때는 이미 찌는 듯이 더웠다.우빈은 작은 가방을 메고 엄마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우빈의 가방에는 간식들이 들어 있었고, 아빠에게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엄마, 우리 꽃을 사야 하나요?”우빈은 걸으면서 엄마에게 물었다.하예진은 멈추어 우빈이를 기다려 손을 잡고 걸으며 물었다. "우빈이는 아빠에게 꽃을 사 주고 싶니?"“네, 저도 돈을 가지고 왔어요. TV에서 병문안 갈 때 항상 꽃을 가져가는 걸 봤어요.”우빈은 이제 유치원에 처음보다는 덜 적극적이지만, 유치원에 다니면서 예전보다 더 철이 들고 어른스러워졌다.병문안 갈 때 꽃을 사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얼마나 가지고 왔니?”하예진은 웃으며 물었다. “200원으로는 꽃을 살 수 없단다.”우빈은 대답했다. “꽃다발은 노란색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저 노란색 돈도 몇 장 가지고 왔으니까, 아빠에게 꽃다발을 사 드릴 수 있을 거예요.”이모의 껌딱지로서 늘 이모와 함께 꽃가게에서 꽃다발을 샀기 때문에, 우빈은 꽃다발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 있다.하예진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빠에게 꽃을 사 주고 싶으면 네 돈으로 사렴. 엄마는 과일을 살게.”“네.”우빈은 선뜻 대답했다.임대 아파트를 나서자 노동명이 보였다.노동명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뒤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따라왔다.“노 아저씨.”노동명을 보자마자 우빈은 엄마의 손을 놓고 노동명에게 달려갔다.노동명은 웃으며 두 팔을 벌려 그를 기다렸다가, 우빈이 휠체어 앞에 도착하자 허리를 굽혀 그를 안아 올렸다. 먼저 우빈이의 얼굴에 몇 번 입을 맞추고 나서야 다리에 앉혔다.“노 아저씨, 왜 오셨어요? 저와 엄마랑 같이 아빠를 방문하러 가실 건가요?”노동명은 하예진이 오늘 우빈을 데리고 주형인을 보러 병원에 갈 것을 알았기 때문
하예진이 다가왔다."노 대표." 노동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예진 씨, 오늘 저도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어요. 예진 씨가 우빈이를 아버지께 데리러 가실 거라는 걸 알았으니, 함께 가도록 하죠."사실 그는 아직 외래 진료가 필요한 시점은 아니었다. 그저 핑계를 대고 있을 뿐이다. 하예진과 우빈이를 병원에 따로 보내기 꺼렸던 것뿐이다. 주씨 가문의 사람들이 예진이를 세뇌하여 주형인과 다시 결혼하도록 유도할까 봐 걱정되었다. 주형인은 생사를 경험한 만큼,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을 알 것으로 생각하지만, 가족의 간섭을 받고 예진이와 재혼하려 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당시 주형인은 예진이가 살이 찌고 못생겼다며 싫어했고, 결국 주홍림에게 배신당하며 이혼했다. 그런 그가 무슨 염치로 예진이와 재혼을 원할까? 예진이도 주형인과 다시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노동명은 여전히 그녀를 걱정했다. 예진이가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진이와 결혼하지 않는 한, 노동명은 언제까지나 그녀를 걱정하며 그녀의 곁을 지키려고 했다."노 대표, 외래 진료일은 아직 아니지 않아?" 하예진이 말했다.노동명은 담담하게 거짓말을 했다. "어젯밤 발이 너무 아파서 의사에게 말했더니, 오늘 병원에 한 번 가야 한다고 했어요."하예진의 시선은 노동명의 다리를 향했다. "그럼 우빈이를 안고 있으면 어떻게 해? 우빈아, 내려와, 노 삼촌 다리가 아플 거야.""괜찮아요, 우빈이가 몇 킬로가 된다고 그래요."노동명은 손을 놓지 않고 우빈을 안고 경호원에게 차 안으로 자신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우빈에게 말했다. "우빈아, 너도 노 삼촌 차에 타고 병원에 가자.""근데, 노 삼촌, 저는 아줌마 가게에서 아빠께 꽃 한 송이 사러 가야 해요."노동명은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노 삼촌이랑 같이 꽃 사러 가자. 네가 아빠에게 줄 거니까, 돈은 네가 내는 거지?"세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지만, 우빈은 상당한 용돈을 가지고 있었다. 명절
며칠간 요양한 후, 주형인의 정신 상태는 처음 깨어났을 때보다 아주 좋아졌지만, 여전히 침대에서 일어나 걷지는 못했다. 주형인의 몸에는 수많은 칼자국이 있었다. 서현주에게 그렇게나 많이 찔리고도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었다. 의사는 주형인이 침대에서 일어나 걷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든 주형인은 이제 누가 좋은 사람인지, 누가 나쁜 사람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주형인은 서현주를 원망하지 않았다. 결국, 주형인은 자신이 서현주를 해쳤다고 생각했다. 서현주의 말에 따르면, 애초에 자신이 먼저 서현주를 유혹했다. 만약 주형인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서현주는 그냥 자기 비서로 성실히 일했을 것이고, 두 사람은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많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주형인은 최고의 아내를 포기했다. 서현주와 결혼했지만, 서현주가 원하는 생활을 줄 수 없었고, 두 사람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매일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서현주가 미쳐 날뛰며 주형인을 찔러 죽이고 같이 지옥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주형인은 생명의 위기를 넘겼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부모에게 자신이 회복되면 서현주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해 서현주의 변호사가 서현주의 감형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부모는 주형인을 꾸짖었지만, 주형인은 자신의 결정을 고집했다. 부모는 화가 나서 주형인을 내버려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어머니, 하예진이 오늘 우빈이를 데리고 형인이를 보러 온다고 하지 않았나요? 벌써 11시인데 왜 아직 안 오죠? 아니면 내일 다시 올까요?" 주서인은 시간을 확인하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저도 배고파요. 예진이가 오면 같이 나가서 밥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주서인은 하예진의 새 가게도 보고 싶어 했다. 가게 위치를 알면 하예진의 가게가 개점할 때마다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주서인은 자기 돈을 쓰는 데 꽤 인색한 편이었다. 부모님이 집을 떠나 더
주서인은 어머니와 함께 동생을 꾸짖었다. “형인아,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해야 해. 더 이상 그렇게 악한 여자와 함께할 수 없어. 네가 사고를 당한 후 우리 두 집안이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너와 그 악랄한 여자만 생각할 수 없어. 우리도 생각해야 해. 너를 구하려다가 나도 그 여자에게 다쳐 병원에 며칠 동안 입원했어. 우리는 친남매니까, 나는 너에게 치료비를 요구하지도 않았어.”“하지만 네가 우리 말을 들어야 해. 빨리 그 여자와 이혼하고, 탄원서도 써주면 안 돼. 널 거의 죽일 뻔했는데 네가 무슨 용서야! 처음에 네가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해도, 그 여자가 마음이 없었으면 일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야.”“네가 그 여자에게 다가갔을 때, 그 여자는 왜 사직하지 않았을까? 왜 너와 거리를 두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너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은근히 유혹하고, 네가 준 선물도 다 받았잖아. 이건 네가 강제로 시킨 게 아니야.”“그 여자는 애초에 천박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어. 너는 왜 그 여자를 용서하려고 하니? 부모님과 나를 왜 생각하지는 않는 거야? 부모님이 너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세는 걸 못 봤어?”“빨리 그 여자와 이혼하고, 그 여자를 감옥에 처넣어야 해야 해. 네가 죽지 않았으니 사형은 아니지만, 그 여자의 죄로는 무기징역도 가능해. 평생 감옥에 두어야 해. 빨리 이혼하고 네 아내와 아들을 다시 찾아가.”주서인은 동생 대신 하예진을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다.침묵하던 김은희가 말했다.“예진이는 아마 돌아오지 않을 거야. 하지만 반드시 이혼해. 서현주가 널 거의 죽일 뻔했으니 우리 가족은 절대 그 여자를 용서할 수 없어.”“형인아, 나와 네 엄마는 이제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이런 일을 겪을 수 없어.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둘 다 충격으로 세상을 떠날 거야. 네가 아직 우리를 부모로 여긴다면, 그 여자와 이혼하고 탄원서를 써주지 말아야 해. 그 여자는 용서받을 가
작은아이는 아직 철이 없었다. 막내라 나이가 어리고 집에서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예전에는 항상 우빈을 괴롭히고 우빈의 물건을 빼앗곤 했다. 나중에 외삼촌 집에 가도 우빈을 볼 수 없게 되자 작은아이는 괴롭힐 대상이 없어져 우빈의 물건을 빼앗을 수도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작은아이는 다시 못된 짓을 하려 했다. 우빈이가 입고 있는 옷이 멋지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갖고 싶어 했다.“아이들이 이모라고 부르는 게 습관이 되었나 보네.”주서인은 하예진의 손에서 사과 봉지를 받아서 들며 말했다. “올 때는 그냥 오지, 뭘 또 이런 걸 사오고. 정말 고마워.”다시 보니 사과밖에 없었다. 요즘 사과도 한 근에 몇천 원씩 하는데, 이 한 봉지 사과에도 만 원은 들었을 것이다. 주서인은 하예진이 지난번보다 인색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빈손으로 오지 않은 것에 만족하며 웃음을 지었다. 점심 식사에 하예진이 대접해 주길 바랐기 때문이었다.하예진은 주경진과 김은희, 그리고 처남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우빈에게 말했다. “우빈아, 네가 사 온 꽃을 아빠에게 드리렴.”주씨 집안 사람들은 하예진이 약속을 지켜 우빈을 데리고 주형인을 보러 온 것에 매우 기뻤다. 주형인과 이혼한 지 오래됐지만, 주형인이 큰 부상을 당해 입원 중일 때 와준 하예진은 정말 의리 있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주씨 집안 사람들이 경호원의 도움으로 들어오는 노동명을 보자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노동명의 경호원 한 명이 두 상자의 영양제를 들고 들어왔다. 노동명의 지시에 따라 그 경호원은 두 상자의 영양제를 병상의 테이블 위에 놓았다.노동명은 주씨 집안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며 인사하고 말했다. “주형인 씨를 보러 왔습니다.”주씨 집안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주경진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노동명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그들은 자기 아들이 하예진을 다시 찾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예진이 노동명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쓰라렸다. 그들은 참하던 며느
임정한이 걸어오더니 손을 뻗어 그 꽃들을 만져보려 했다.주형인이 보더니 급히 막으면서 말했다.“정한아, 함부로 만지면 안 돼. 이 꽃은 우빈이가 나에게 준 꽃이야.”“외삼촌, 이 꽃들 너무 예뻐. 나도 갖고 싶어. 한 송이 꺾어 주면 안 돼?”주형인은 아쉬워하면서 꽃을 조카가 꺾지 못하게 한쪽으로 숨겼다.“이 꽃을 꺾으면 꽃다발이 안 예뻐 보여. 누나, 예진이한테 사과 몇 개 좀 씻어줘. 노 대표와 우빈이도 줄 겸.”주서인은 알았다고 대답했고 작은아들에게 말을 건넸다.“정한아, 말 잘 들어야 해. 저 꽃은 우빈이가 정한이 외삼촌께 드리는 꽃이야. 장난감 아니니까 절대로 뜯으면 안 돼. 우리 가서 손 씻자. 엄마가 너희들에게 사과 씻어줄게.”사과 먹는다는 말에 임정한은 더 이상 꽃을 꺾겠다고 아우성치지 않았다.임정한은 우빈이가 입은 옷을 훑어보더니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잡아당겨도 보며 우빈에게 물었다.“우빈아, 이 옷은 외숙모가 너에게 사준 옷이야? 정말 멋지다. 나도 이런 새 옷을 입고 싶어.”임정한은 고개를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면서 졸랐다.“외숙모, 나도 우빈이처럼 새 옷 몇 벌 사줘.”예전에는 외숙모가 물건을 살 때 우빈이와 자신의 옷을 함께 사 오곤 했다.외숙모가 자신에게 사주지 않으면 엄마와 외할머니가 함께 외숙모를 혼냈다.그 뒤로 외숙모가 우빈에게 새 옷을 사줄 때마다 임정한에게도 몇 벌 사주었다.임정한은 나이가 어리지만 우빈이 보다 겨우 한 살 위였다. 그러나 주서인과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란 임정한은 엄마 따라서 작은 이익들을 챙기기 좋아했다.“정한아, 아주머니라고 불러야지. 난 이제 네 외숙모가 아니야. 새 옷 입고 싶으면 너의 엄마한테 말해.”하예진은 임정한의 외숙모로 지내지 않은 지 1년이나 되였다. 하예진은 어린아이와 따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임정한에게 예전처럼 대하지도 않았다.임정한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의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하면 그뿐이었다.하예진은 더 이상 임정한이에게 물건을 사줄 수 없었다. 주서
노동명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주형인은 겸연쩍어했고 이내 걱정하는 눈빛으로 노동명의 건강을 관심해 주었다.“노 대표 발은 잘 회복되고 있어요?”주형인은 마음속으로 노동명의 발이 정상적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지 않았다.주형인은 자신과 하예진이 재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예진의 마음은 이미 떠났지만 그렇다고 하예진이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도 싫었다.특히 노동명과 함께 하는 것이 더욱 싫었다.만약 하예진이 평범한 남자와 함께 있다면 주형인의 마음은 조금 더 편할 것이다.하필이면 하예진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노동명이였다. 노동명은 나이가 좀 더 많았을 뿐 모든 면에서 주형인보다 우수했다.게다가 노동명은 결혼해 본 적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하예진이 아이를 데리고 노동 명과 결혼하는 것이야말로 하예진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지금 노동명의 다리는 불구가 되였지만 노동명이 마음만 먹는다면, 장가를 갈 의향만 있다면 많은 여자가 줄을 서서 시집가겠다고 자원할 것이다.“신경 써줘서 고마워. 다리 부상은 잘 회복되고 있어. 지금 재활 치료하고 있거든. 꾸준히 재활하면 내년에는 정상인처럼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노동명은 주형인의 속마음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노동명의 성격은 거칠지만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경험으로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노동명은 주형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씨 집안 모두가 자신이 평생 휠체어를 타길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동명은 일부러 내년에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다는 말을 꺼내 주씨 집안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고 싶었다.노동명이 불구가 되면 그들이 주형인을 도와 하예진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어림도 없을 것이다.하예진과 노동명은 조금 전 병실 입구에서 주씨 집안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주형인은 어색한 표정으로 억지로 웃음을 짜내면서 말했다.“그럼 됐어요. 잘됐네요. 노 대표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거예요.”김은희는 의자를 가져다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