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빈 씨가 너무 한가해 보이는데 그에게 일을 많이 시키세요.”“맡길 수 있으면 진작에 맡겼어요. 고빈에게 못 맡기고 있는 건 그의 능력이 안 된다는 의미죠. 아직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에 회사를 넘기지 못하는 거예요.”고빈의 능력은 꽤 좋았다.그러나 고현에 비하면 그래도 좀 못했다.게다가 몇 년 동안 고씨 그룹을 고현에게 맡겼기 때문에 고현은 고빈보다 경험이 더 많았다.고현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호영 씨가 고빈에게 일을 더 많이 주라고 한 사실을 고빈이가 알면 아마 미치고 팔짝 뛸걸요.”“제가 고빈 씨를 걱정할 때에요? 현이 씨가 매일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너무 가슴이 아파요. 반면 고빈 씨는 매일 여성 지인들과 쇼핑하고 회식하면서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데요.”고현이 말을 건넸다.“저는 이미 익숙해졌어요. 언젠가 정말 제가 멈춰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면 습관이 안 될걸요. 저는 아마도 고생하는 팔자를 타고났나 봐요.”“예진 언니는 어디 있어요?”고현이 물었다.“하루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가 누나를 찾아갈까요? 아니면 누나를 먼저 이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까요? 우리가 여기에서 이씨 가문으로 떠날까요?”고현이 물었다.“언니와 약속된 거 아니었어요?”“약속했죠.”“그럼 약속한 대로 해요. 예진 언니가 호텔에서 괜히 기다리게 하지 말고요. 호영 씨가 진작에 갈라져서 떠나자고 했으면 언니도 그토록 오래 기다릴 필요 없었잖아요.”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우리가 함께 가면 예진 누나가 더 안전할 거로 생각했거든요.”“예진 언니가 감히 여기까지 오신 것으로 보면 아마도 마음의 준비를 다 했을 거예요. 언니를 구속할 필요는 없어요.”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구속하지 않았거든요. 이곳으로 처음 발을 들여놓으셨기에 저는 누나의 버팀목으로 되어주고 싶을 뿐이에요. 누나가 걱정하시지 않도록 말이죠. 그 늙은 여자는 마음이 모질고 손끝이 매서워서 누나가 그 늙은 여자를 건드리게 될까봐
그와 동시에 이씨 가문에서 이은화는 하예진에게 음식을 대접하려고 가족 연회를 준비하고 있었다.이씨 가문 댁 사람들은 점심부터 바삐 돌아쳤다.이씨 가문의 친척들도 도와주러 왔다.이은화가 집에서 연회를 마련할 거라고 했기 때문에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다.이씨 가문에서 약간의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 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평범한 친척이거나 이은화와의 관계가 멀어진 사람은 참석할 수 없다.이 때문에 많은 이씨 가문 친척들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이씨 가문의 가족 연회라고 했으면 평범한 친척들도 참석하도록 허락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설령 그들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다.왜 그들이 가족 연회에 참석할 수 없단 말인가!그들은 이은화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그러나 마음속에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이은화가 알면 보복할까 봐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이은화는 평범한 친척들에게 낯선 사람보다 더 푸대접했기에 그들은 이은숙을 더 그리워했다.이은숙은 돌아가기 전에 누구에게나 등급을 매기지 않고 평등하게 대했다.가족 연회를 거행할 때면 이은숙은 이씨 가문의 모든 사람이 전부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이은숙과 이은화는 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일 처리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났다.이은숙의 두 딸을 찾았다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사적으로 이씨 가문에 큰 이변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화려한 집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물론 전부 이씨 가문의 신분 있는 사람들이다.그들은 이은화의 곁을 맴돌며 그녀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어 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대표님, 군호 아저씨는 어디 가셨어요?”이때 이씨 가문의 친척 이연호가 무심결에 물어보았다.그는 들어와서 지금까지 한참 동안 앉아 있었는데도 정군호를 보지 못해 이은화에게 물었다.이연호의 물음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모든 사람이 자신
이은숙의 남편은 그녀를 일편단심으로 대했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정군호는 늘 사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은화에 대한 감정이 순수하지 않았다.역시 너무 잘생긴 남자는 믿을 수 없다.“그래요? 편찮으시다고요? 그럼 푹 쉬어야죠.”이연호는 이은화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은화의 말을 이어가면서 더는 정군호에 관해 묻지 않았다.다른 사람들도 재빨리 다른 화제를 찾아서 이은화에게 말을 걸었다.이때 집사는 황급히 들어와 이은화 곁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말했다.“가주님, 하예진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집안은 또다시 조용해졌다.이은화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이윤정과 세 아들을 향해 말했다.“너희들이 예진이를 마중하러 나가. 너희들이 예진의 선배지만 멀리서 오신 손님이기 때문에 우리도 예의를 갖추어 손님을 대접해야 해.”따져보면 하예진은 정일범 형제들을 외삼촌이라고 불러야 했다.“알았어요.”정일범은 대답하면서 동생들을 데리고 화려한 집안을 나서서 별장 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들이 별장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윤미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그녀의 뒤에는 검은색 승용차 몇 대가 따라 들어왔다.이윤미는 차를 세우고 바로 차에서 내려 그 승용차들이 잘 주차하도록 도와주었다.그리고 그녀는 곧장 벤츠 차로 향했다.차에서 내린 사람은 하예진이었다.이윤미는 미소를 지으며 하예진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예진 씨.”하예진도 그녀와 악수하면서 인사했다.“귀찮게 했는지 모르겠네요.”“귀찮긴요. 우리 엄마가 오늘 저녁에 가족 연회에 초대한 것은 예진 씨를 한 가족으로 생각하시기 때문이에요. 어색해할 필요 없이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편히 계시면 돼요.”하예진은 웃고 있었을 뿐 말을 잇지 못했다.정일범은 동생들을 데리고 다가갔다.하예진은 이윤미 앞에 서 있었고 그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이윤미도 고개를 돌려 정일범 형제와 이윤정을 보더니 그들을 하예진에게 소개해 주었다.“가장 앞에서 걷고 있는 회색 양복
정일범은 동생들을 데리고 하예진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예진 씨, 저는 이씨 가문의 맏이, 정일범이라고 합니다. 촌수로 따지면 제가 큰외삼촌이 된다고 저희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그리고 여기는 둘째, 셋째 동생들이에요. 윤정아, 너와는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일 거야.”정일범은 자기 동생들을 한 명씩 소개해 줬다.하지만 하예진은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 그를 큰외삼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이은화와 만났을 때도 제대로 예의를 갖춰 부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여태껏 단 한 번도 이경혜와 하예진의 어머니가 그녀의 조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또한 지난번에 이은화가 성씨 가문에 가서 이경혜를 만났을 때도 너무 티가 나게 불쾌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애가 생길 리 있나.지금 그들 사이에는 오직 원한만 남아있다. 이때, 이윤정이 더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어른을 보고도 인사 한마디 안 하다니. 이래서 가정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티 나는가 봅니다.”그녀의 말에 하예진이 되물었다.“무슨 근거로 그쪽이 어른이에요? 이모도 제 앞에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는데 당신이 뭐라고 제가 예의를 갖춰야 하죠? 더구나 진짜 이씨 가문의 사람도 아닌 주제에 왜 끼어들어요?”몇 마디의 독설로 단번에 이윤정의 입을 닫게 했다.하예진에게 어른 대접을 받고 싶었으나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다. “예진 씨, 이만 들어가서 이야기 나눕시다. 엄마가 아까부터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이윤미는 그런 이윤정을 못 본 척하더니 하예진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이씨 가문 저택에 대해 하나하나 친절하게 안내했다.정일범과 같이 온 동생들은 그들을 곧바로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그러다가 두 사람이 어느새 멀어진 걸 확인한 뒤에야 이윤정은 불같이 화를 내며 정일범에게 말했다.“오빠, 언니는 날이 지날수록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그리고 저 하예진, 저 계집애는 고아에 이혼까지 당한 주
하여 하예진이 이 가주 자리를 탐내든 말든, 그들의 차례는 멀었다고 볼 수 있다.반드시 이씨 가문에 여자 씨가 말랐다고 해야만 그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윤미가 하예진 씨를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던데? 마치 친자매처럼 말이야.”비록 두 사람 사이에 촌수가 많이 차이 나지만 이윤미는 마치 친자매처럼 그녀를 살갑게 대해줬다.하예진도 이윤미의 체면을 고려해 똑같이 친절하게 맞이했다. 이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있던 이윤정은 또다시 이윤미에 대한 질투심이 마구 피어올랐다. 지금 그녀가 누리고 있는 권력, 지위, 신분 모든 게 원래 자기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이윤미만 아니었다면 아마 이윤정이 이씨 가문에서 이은화 다음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지금처럼 밖에서 무시당하는 게 아닌, 모두가 그녀를 우러러보고 깍듯이 대해줬을 텐데.예전에 친했던 친구들도 그녀의 신분 변화로 인해 점점 연락이 뜸해지면서 그제야 그 사람들도 전부 자신의 신분적 지위를 노리고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이은화의 양딸이 된 후, 아무리 이씨 성으로 바뀌어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굴러들어 온 가짜 딸로 보였다.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부 괜찮은 가문의 딸들이었기에 이윤정이 수준도 안 맞고 지위도 다르다고 생각해 그녀와 거리를 점점 두게 되었다.또한 그녀를 그리워하던 2세 조상도 이제는 이윤미한테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솔직히 외모는 이윤정이 더욱 뛰어났지만 이 사회는 아주 냉정했다.“윤미는 예전부터 연기력이 뛰어나 우리도 자주 속았잖아. 그만 들어가자. 엄마 말대로 일찍부터 손님을 맞이했고 이제 도착했으니 우리도 들어가야지. 우리가 자리에 없다고 엄마 앞에서 우리에 대해 함부로 말할지 누가 알아?”“아버지는 보이지도 않네. 이따 설득하러 가야겠다.”정일범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어차피 요즘 다 몸을 사려야 하니 더 이상 실수하면 안 돼. 아니면 엄마가 우리를 바로 집에서 쫓아낼 거야.”정일군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 말에 정일호는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들은 사람이 없겠지?”문득 자기 집인데도 큰 소리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정일호는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점점 이씨 가문의 규칙들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다른 가문의 후계자라면 보통 다 남자인데 이씨 가문만 여자였다.또한 이씨 가문에서 남자보다 여자의 지위가 더 높았다. 아무리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주 자리는 꿈도 못 꾸는 신세였다.“이미 우리랑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마 듣지는 못했을 거야. 근데 오늘 이렇게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건데 아무리 지금 밖에 묶어둔 여자들이 그리워도 혹시나 새언니들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해. 아무리 엄마가 오빠들 편을 든다고 해도 새언니네 집에서 찾아오면 혼나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러다가 혹시나 이혼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정일범이 답했다.“그 여자들은 그저 심심풀이로 데리고 노는 거지, 미쳤다고 집까지 데리고 오겠어? 그리고 하나같이 집안 형편이나 신분을 봐도 우리 가문이랑 수준이 안 맞아.”그가 지금 데리고 있는 내연녀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매달 몇십만 원씩 용돈을 줘도 엄청 고마워했다.또한 정일범의 아내는 명문가 딸은 아니었지만 작은 사업을 하는 집안이라 어느 정도 그에게 도움 주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정일범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 진작에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돈을 벌려고 했다. 이씨 그룹에서 자신은 그래도 꽤 높은 자리에 있고 거기에 처가의 도움을 빌려 밖에서 공동 사업을 하게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그 돈은 전부 정일범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하지만 처가 쪽에서 그의 불법행위에 대한 증거들을 아직 손에 쥐고 있어서 만약 아내와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들은 곧바로 그 증거들을 이은화한테 넘겨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일범의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지금은 아이까지
정일군이 다시 재촉했다.네 사람은 이윤미가 혹시나 이은화 앞에서 자기 험담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이윤미가 하예진을 데리고 오는 모습에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리게 되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하예진의 얼굴이 낯익은 것 같았다.이은화는 이미 상석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주위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는데 모두 이씨 가문에서는 꽤 높은 지위와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예진아, 어서 와.”이은화는 하예진을 반갑게 맞이한 뒤 집사에게 당부했다.“예진이한테 의자 하나만 갖다줘.”이때, 하예진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집사가 서둘러 작은 의자 하나를 갖고 오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이은화에게 말했다.“저를 초대할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면 이렇게 가식 떨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멀리서 온 것도 알고 특별히 하루 호텔까지 와서 저를 여기에 데려왔으면서 제가 앉을 자리조차 마련하지 않았네요. 오늘 이 대표님의 접대 방식에 다시 한번 놀라고 갑니다.”말을 마친 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만 가자!”“예진아.”이은화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세웠다.“이 중에 너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있는지 어디 한번 봐봐. 너한테는 모두 어르신들인데 저 분들더러 자리를 양보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이 자리에 앉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네 체면은 세워준 거야.”순간 모든 사람은 분위기에 얼어버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사실 눈앞에 저 여자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만 듣고도 그녀가 가문의 후계자란걸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촌수로 따지면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하예진한테는 어른뻘이지만 그녀는 전임 가주의 후계자이고 또 이씨 가문의 규칙대로라면 하예진 이야말로 진짜 대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아무리 촌수가 높다고 해도 하예진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이은화도 사실 이걸 이용해서 하예진의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의도는 당연히 하예진이 돌아옴으로써 이윤미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다.그녀의 말에
“예진 씨.”이윤미는 하예진한테 다가가 정중히 사과했다.“저희 엄마가 연세가 있어서 노망났나 봅니다. 방금 말이 좀 지나친 것 같은데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이때 하예진이 답했다.“이건 이 대표님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왕 이 대표님께서 저를 손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가 가는 게 맞습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자기 경호원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이은화는 자기 친딸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 하예진까지 자신을 무시하니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예전에 관성에 가서 이경혜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은화에게 만약 하예진과 이윤미가 신분 자리를 놓고 싸워도 상관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또한 하예진을 이씨 가문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그게 걸맞은 대우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하지만 이은화는 이 부탁을 들어주기 싫었다. 이미 하예진이 자기 큰조카 딸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오늘 특별히 이런 자리에 초대해 어르신들의 기개를 빌려 그녀의 기를 죽이려 했다.하지만 하예진은 그들을 진짜 가족 어르신들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이씨 가문에서 특별히 자신을 초대해서 왔는데 이런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이건 분명 손님 대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자신을 달가워하지도 않는 자리에 굳이 남아 있을 필요가 있을까?하예진은 두말없이 바로 자리를 떴다.오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은화가 사람까지 보내서 초대한 자리였다.“예진아.”하예진이 집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이은화가 그녀를 부르면서 이윤미와 함께 다가왔다.그리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뒤 차분하게 말했다.“예진아, 네 외할머니는 내 친언니야. 나도 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그러면 내가 네 이모할머니가 되는 것이고 지금 전체 이씨 가문을 관리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는 내 아랫사람이 맞아.”“또한 이 집안에 거의 모든 사람이 다 네 어르신일거야... 아마 언니가 죽지 않았다면 네가 언니 뒤를 이어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겠지. 우리 이씨 가문에서 후계자의 지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