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임도준은 그 간호사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내보내지도 않았다.그는 그녀를 진료소에 그대로 두었고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아마 그녀를 일종의 어장 속 여자 친구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그 여자 간호사는 진소아보다 두 살 아래로, 얼굴은 맑고 단아했으며, 성품도 온화하고 인내심이 있었다.임싸 진료소를 찾은 환자들은 그녀에 대해 모두 좋은 평가를 내렸다.그녀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임씨 진료소로 들어와 몇 년째 일하고 있어 임도준의 가정 형편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여전히 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안고 있는 가족 환경까지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하여 진소아는 바로 그 간호사야말로 임도준과 가장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진소아는 임도준을 사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환경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평생 가족 뒷바라지에 휘둘리며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만약 그녀가 마음을 억지로 눌러 임도준을 받아들여 함께하게 된다 해도 그가 여기저기 퍼 주고 구제하느라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언젠가는 반드시 다투게 될 것이었다.부부 싸움은 곧 마음에 못을 박는 일.그녀는 형제끼리 서로 돕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끝없이 퍼 주기만 하고 남을 도와주기만 하는 생활을 못 받아들일 뿐이었다.임도준은 매달 부모님의 생활비를 드리는 것 외에도 그의 형제들에게도 일정한 돈을 보낸다고 했다.얼마를 주는지는 진소아도 알지 못했다.임도준 본인이 말하길, 자신은 일가친척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며 부모님의 노후도 자신이 도맡아야 하고 형제들에게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그뿐만 아니라 매달 형제들에게도 돈을 준다고 했다.그리고 그들의 생활고가 너무 심하고 또 그가 예전에 공부할 때 형제자매들이 조금이나마 도와주었으니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그는 매달 꼬박꼬박 그렇게 행동해 왔고 이제는 그의 형제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진소아는 바쁘게 출근하겠지만 임도준은 아이를 돌볼 수 있었다.그러나 아쉽게도 임도준의 가족이 그를 발목 잡을 것이다.부모와 형제, 심지어 조카들까지 모두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저 많은 친척을 도와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들려오는 말에 따르면 임도준 집안의 친척들은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조금만 나도 바로 임도준에게 약을 지어 달라고 하지만 약값은 주지 않는다고 했다.만약 임도준이 해결하지 못하면 인맥을 동원해 큰 병원에 입원시켜 달라고까지 한다고 했다.큰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오히려 작은 일이었다. 문제는 상대방이 병원비가 없어서 임도준이 대신 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진소아는 지금 관성에서 가장 좋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임도준이 진소아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소아의 직장도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앞으로 임도준 집안 친척들이 입원하거나 진료받을 일이 있을 때 편리하게 부탁하려는 뜻도 담겨 있지 않은가.진씨 가문은 위로 여섯 대째 의술을 업으로 삼아 왔다.직접 개인 진료소를 운영하는 이들도 있고 진소아처럼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있으며 사립 병원에 몸담은 이들도 있다.하여 의학 분야만큼은 그들의 인맥이 매우 넓었다.임도준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지금의 성과를 이루어 낸 점에서 분명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임씨 집안에서 유일하게 의대를 나와 출세한 사람이다.그가 진소아에게 마음을 두었으면서도 진씨 가문이 의학계에서 쌓아 올린 인맥과 위세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었을 터이다.“아, 저분은 소아 선생님의 환자분이셨군요. 나는 임 선생님의 경쟁자인 줄 알았어요.”이정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연적이라면 임 선생님한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세요?”그 아주머니가 다시 한번 전유림을 바라보았다.전유림은 진료를 볼 줄 몰랐고 약도 지을 줄 몰랐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기는 싫어 대신 돈을 받아 주는 일을 거들었다.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전
진소아는 그 꽃다발을 다시 한번 밀어내며 미안한 듯 말했다.“선배, 이 꽃은 받지 않을게요. 앞으로도 저를 위해서 꽃 사지 마세요.”전유림은 자연스럽고도 무심한 듯 진소아 곁에 서서 말없이 임도준을 바라보았다.임도준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자 묘하게도 참 잘 어울려 보였다.“소아야, 이쪽 분은?”임도준은 더 이상 전유림을 단순한 환자로 보지 않았다.두 사람이 함께 돌아왔는지 아니면 따로 들어왔는지는 몰랐다. 한 명이 앞서고 한 명이 뒤따라 들어왔고 지금은 전유림이 진소아 곁에 서서 자신을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마치 진소아를 감싸는 흑기사처럼.진소아가 고개를 돌려 전유림을 가볍게 바라보며 대답했다.“제 환자분이세요. 잠시만 앉아 계세요. 사적인 일 좀 정리하고 이따가 민심 아파트로 가요. 제 집 인테리어 구경도 시켜 드릴요.”전유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렇게 말하고는 걸어가 진국림 부부에게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진료를 기다리며 줄 서 있던 환자 중, 이 풍경을 알아본 사람들은 다들 무슨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이곳을 자주 찾는 단골 중 한 아주머니가 이정자를 잠시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소아 씨 남자 친구예요? 저는 그동안 임 선생님인 줄 알았어요. 매일 와서 도와드리는데 그 정도면 친척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부지런할 수 없잖아요.”아주머니는 임도준의 귀에 들어갈까 봐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진소아가 임도준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이 든 환자들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진소아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마다 임도준을 보면 진료소에 급한 일이 없는 한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그런데 만약 그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피했을까.임도준도 참 집요했다. 2년 동안 의술을 배운다는 핑계로 날마다 와서 진료소 일을 도와주었지만 헛수고로 끝날지도 몰랐다.아, 완전히 헛된 수고는 아니었다. 그가 올 때마다 진국림은 흔쾌히 의술을 가르쳐 주
진소아는 관성 종합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곳은 이 도시에서 가장 명망 높은 병원이었다.비록 병원에서 버는 수입이 자기 진료소를 차렸을 때보다는 적을지 몰라도 그녀는 아직 젊었다.큰 병원에서 몇 년, 아니 십수 년을 일하며 경험을 쌓은 뒤 훗날 진료소를 열었을 때 환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법이 아닌가.“임 선생님 안목도 참 좋으시네요. 소아 선생님 좋죠.”그가 임도준의 안목을 칭찬하며 이내 진국림에게 농을 던졌다.“진 선생님, 제자가 조카사위가 되면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그동안 임도준이 줄곧 진국림을 찾아 의술을 배워 온 터라 엄밀히 말해 정식으로 스승과 제자로 관계를 맺은 건 아니었지만 스승과 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자주 진씨 진료소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두 사람의 그런 인연을 대부분 알고 있다.진국림은 임도준을 두어 번 흘겨보았다. 그러고는 환자의 맥을 짚고 목과 폐를 살핀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우리 소아는 아직 도준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두 사람이 꼭 함께하게 될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우리 앞에서 농담하는 건 괜찮지만 소아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애가 워낙 수줍음도 많고 이미 도준과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 남녀 감정은 없다고 말했어요. 그냥 선후배 사이라고 하면서요.”임도준이 더욱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아저씨,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예전부터 소아를 쭉 좋아해 왔어요. 끝까지 버티겠습니다. 소아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는 한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바로 그때, 진소아가 전유림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임도준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처음에는 눈이 번쩍 뜨이며 얼굴에 미소가 번지면서 몸을 일으켜 자신이 사 온 꽃다발을 들고 반갑게 맞으려 다가갔다.그러나 진소아 뒤를 따라 들어오는 전유림을 보는 순간 임도준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내 날카로운 경계심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이 남자는 누구지?’너무나 위협적이었다.나이 차이는 거의 없어 보였지만 저
진소아가 덧붙였다.“어떤 자재가 필요한지, 양은 얼마나 필요한지, 당 기사님께서 다 알려주실 거예요. 그걸 보고 사러 가기만 하면 돼요.”전유림은 정말 고마운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요즘 상처 회복 중이라 시간이 좀 남아서 마침 인테리어 일을 직접 챙겨보려고 했어요. 내가 살 집을 내 손으로 꾸민다니 그 의미가 남다르잖아요.”두 사람은 병원으로 돌아왔다.진소아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병원을 벗어난 뒤에야 전유림을 태웠다.병원 주차장은 워낙 사람이 많아서 불편했기 때문이다.전유림은 자전거 뒤에 올라타며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제 몸무게가 많이 나갈 텐데 괜찮으시겠어요?”“유림 씨는 우리 오빠랑 비슷해서 충분히 태울 수 있어요. 유림 씨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돼요.”전유림이 웃으며 대답했다.“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어요. 사람들이 제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데 이마에 ‘전씨 가문 여덟째 도련님’이라고 써 붙인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전기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창피한 일도 아니고 교통 규칙만 잘 지키면 되죠. 차는 그냥 이동 수단일 뿐이에요. 비싼 차든 싼 차든, 하는 일은 똑같잖아요?.”진소아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차 자체에는 큰 욕심이 없었고 쓸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병원에서 진씨 진료소까지는 차로 십여 분 거리였다.가는 내내 두 사람은 헬멧을 쓰고 있어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전유림은 그녀가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부러 말을 아꼈다.평소에도 기사에게 운전을 맡길 때면 기사가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거의 대화하지 않는 편이었다.어릴 적부터 전씨 할머니께서 무엇을 하든 온 마음을 쏟아부으라고, 하지 않을 거면 아예 손을 대지 말라고, 한 가지 일에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해야지 여러 일을 동시에 하지 말라고 하셨다.진씨 진료소에 도착했을 때 임도준이 벌써 진료소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진소빈은 자리에 없었다.휴가가 예정보다 일찍 끝나는
“제가 산 자재는 모두 좋은 것들이었어요. 환경에도 해가 없는 재료였고요. 인테리어해주시는 분들도 매우 뛰어나서 일도 꼼꼼하게 잘해 주셨거든요. 그분들은 워낙 일을 잘해서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예약해야 할 정도예요. 그런데 그분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일하러 올라오시려면 숙소를 마련해 드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매일 시골과 도시를 오가느라 제대로 일할 수도 없고 기름값만 낭비하게 되니까요. 제 집을 실내장식 할 때는 근처에 있는 오래된 주택을 빌려서 기사분들 숙소로 쓰다가 공사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한 달에 내는 임대료도 그리 비싸지 않았거든요.”전유림이 말을 이었다.“저도 직접 자재를 사고 인테리어 기사분들을 직접 구할 생각이에요. 진 선생님 집을 공사하신 분들이 괜찮으시다면 저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숙소는 제가 마련해 드릴 수 있고 결제 문제도 충분히 협의 가능합니다.”사실 전씨 그룹은 과거 부동산 사업에도 손을 댔던 터라 자체적으로 보유한 공사팀이 적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인테리어 기사가 부족할 일도 없었고 자재를 직접 사들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집사에게 한마디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었다.그러나 그는 진소아와 대화의 끈을 이어 가기 위해 자재는 직접 사기로 마음먹었다.그러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녀와 수시로 연락하며 물을 수 있지 않은가.그리고 진소아가 휴식 할 때는 그녀와 함께 자재를 사러 다니자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자연스레 늘어날 터였다.연락이 잦아지고 서로를 알아 가면 그때 고백을 하고 그녀의 마음을 훔치면 완벽했다.진소아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유림 씨, 집을 이번이 처음 사시는 건 아니죠? 그동안 집을 사셨을 때는 인테리어를 업체에 맡기셨어요? 아시는 기사분들이 따로 계시지 않았어요? 이런 일은 직접 하실 필요 없는 것 같은데...”부유한 재벌가 도련님이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닌가.집을 샀으면 한마디만 하면
여운별은 이미지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 탁자 위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다.정현숙은 얼마 먹지 않았다.정현숙은 미소를 지으며 여운별이 허겁지겁 음식을 삼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여운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만족한 듯 휴지를 꺼내 입을 닦았다.정현숙이 물었다.“혼자 돌아가시겠어요? 제가 사람 시켜 모셔다드릴까요?”“택시 타고 갈 테니 택시 요금 좀 내주세요.”“네, 그럼 택시 타고 가세요.”정현숙은 대답하면서 현금 20만 원을 꺼내 여운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 돈으로 택시 타세요.”여운별은 그 돈을 건네받았고 잠시 후 일어
“고마워.”성소현은 꽃다발을 받고 감사를 표하고 나서 말했다.“내가 예정이랑 같이 있는 걸 알면서 꽃다발을 사왔어? 안고 들어가기가 민망하잖아.”“민망하긴. 예정 씨는 우리 사랑의 증인이잖아. 우리가 잘 지내는 걸 보면 비웃기는커녕 대신 기뻐해 줄 거야. “예준하는 성소현의 손을 잡고 어깨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당연하지. 내가 행복하기를 가장 원하는 사람이 예정이니까. 예정이는 늘 자기 때문에 나와 태윤 씨가 헤어졌고 나의 행복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거든. 걔가 말하지 않아도 난 알고 있어. 하지만 난 종래로 예정이를 원망한 적
“봉투를 몇 개 받으면 돼요?”우빈은 신이 나서 물었다. 자고로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네가 무거울 정도로 받으면 돼.”“돈봉투가 아무리 많아도 무겁지 않은데요?”성소현이 웃으면서 말했다.“우빈아, 계속 문을 막고 있어. 무슨 일 있으면 이모 불러.”성소현이 문을 닫자 우빈이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돈봉투가 무거워서 들고 있지 못할 정도로 받아야 문을 열 수 있대요.”전태윤은 우빈한테 봉투를 두 개 더 건넸고 우빈이 봉투에 정신을 판 사이 한 번에 안아 들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예정된 시간 안에 네
고현과 임 대표가 사업상의 일을 다 이야기했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임 대표님, 수고하셨어요.”고현은 일어나서 임 대표와 악수했다.임 대표는 웃으면서 악수했다.“수고하셨어요.”“임 대표님, 함께 식사해요. 제가 한턱 낼게요.”고현은 시간을 보더니 임 대표님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하려고 했으나 임 대표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임 대표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고마워요, 전 대표. 다음에 약속 잡죠. 오늘은 저와 저의 아내의 15주년 기념일이라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어야 하거든요.”“암요.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셔서 아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