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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Author: 월야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10-02 22:27:54

회의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그러니까 이 수량이 왜 안 맞는 겁니까?”

서류를 탁 내려놓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거래처 담당자가 급히 노트북 화면을 넘기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전산 반영 과정에서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약간?”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다.

“내일 오전 납품 물량이 이 숫자로 잡혀 있는데요.”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맞은편 직원의 얼굴은 이미 흙빛으로 굳어 있었다.

오후 네 시에 시작한 회의가 일곱 시를 넘겼다. 전산에 잡힌 발주 수량과 실제 출고 예정 수량이 터무니없이 어긋나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일 오전 대형 납품 건에 차질이 생길 상황이었다.

문제는 눈앞에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물류팀에서 마지막으로 확인했어야죠.”

“저희가 받은 자료 자체가 달랐습니다.”

“그 자료는 영업 쪽에서 수정한 거 아닙니까?”

한심한 책임 공방을 들으며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회의실 맨 끝에 앉은 여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긴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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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다시 물었다.“함께 확인한 건 알겠고, 처음 발견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는데도 회의실이 금세 조용해졌다. 몇 사람의 시선이 오간 끝에 물류팀장이 대신 입을 열었다.“전략기획팀 한지아 과장이 찾았습니다.”그 이름이 나오자 책상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멎었다.“그 직원은 오늘 회의에 없습니까?”“한 과장이요?”전략기획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번 납품 건 담당자가 아니라서요.”또 같은 말이었다.담당자가 아니라면서 사고가 터졌을 때는 남아 문제를 해결했고, 보고서에는 이름조차 없었다. 정작 일이 끝난 뒤 열린 회의에도 들어오지 않았다.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잠시 팀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알겠습니다. 계속하시죠.”회의가 끝난 뒤 복도를 지나는데 열린 사무실 안쪽으로 익숙한 옆얼굴이 보였다.걸음이 느려졌다.한지아였다.어제와 달리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채 옆자리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한 과장님, 어제 진짜 고마웠어요. 한 과장님 아니었으면 우리 다 죽었어.”물류팀 직원이 캔커피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자 지아가 웃으며 도로 밀어냈다.“됐어요. 나중에 우리 팀 야근할 때나 좀 살려줘요.”처음 보는 웃는 얼굴이었다.시선이 오래 머물렀다.“그래도 보고서에 이름은 넣지 그랬어요.”“내 일도 아닌데 뭘 넣어요.”“파일 찾은 건 한 과장님이잖아요.”“찾은 사람이 뭐가 중요해요. 납품 제대로 나갔으면 됐지.”지아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봤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 어젯밤 내가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왜 혼자 남아 있습니까.그 여자에게는 설명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문제가 있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 남았을 뿐이었다.“대표님?”앞서 가던 비서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그제야 내가 완전히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갑시다.”다시 걸음을 옮겼다.몇 걸음쯤 갔을 때 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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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는 예상보다 길어졌다.“그러니까 이 수량이 왜 안 맞는 겁니까?”서류를 탁 내려놓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거래처 담당자가 급히 노트북 화면을 넘기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전산 반영 과정에서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약간?”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다.“내일 오전 납품 물량이 이 숫자로 잡혀 있는데요.”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맞은편 직원의 얼굴은 이미 흙빛으로 굳어 있었다.오후 네 시에 시작한 회의가 일곱 시를 넘겼다. 전산에 잡힌 발주 수량과 실제 출고 예정 수량이 터무니없이 어긋나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일 오전 대형 납품 건에 차질이 생길 상황이었다.문제는 눈앞에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물류팀에서 마지막으로 확인했어야죠.”“저희가 받은 자료 자체가 달랐습니다.”“그 자료는 영업 쪽에서 수정한 거 아닙니까?”한심한 책임 공방을 들으며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회의실 맨 끝에 앉은 여자에게 시선이 멈췄다.처음 보는 얼굴이었다.긴 머리를 낮게 묶은 여자는 화장기 옅은 얼굴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흰 블라우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채 빠르게 펜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변명에도 남 탓에도 끼어들지 않았다.특별히 화려하게 꾸민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고개를 숙일 때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 옆으로 흘러내렸고, 그때마다 귀찮다는 듯 손등으로 밀어냈다.별것 아닌 손짓인데 묘하게 눈에 남았다.잠시 후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시선이 마주쳤다.크고 맑은 눈이었다.당황하거나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한 번 바라본 뒤 아무렇지 않게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나도 시선을 거뒀다.그런데 방금 마주친 눈이 이상하게 머릿속에 남았다.한참 동안 책임을 미루던 사람들이 하나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손목시계를 확인했다.“내일 아침까지 정리해서 보내십시오.”회의실을 나오자 비서가 뒤따라왔다.“대표님, 차량 준비되어 있습니다.”“가죠.”복도를 걷던 발걸음이 문득 멈췄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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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과장님, 이걸 언제 다 가져와요?”직원의 한마디에 잠깐 들떴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물건은 찾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각 매장의 재고를 물류센터로 회수한 뒤 다시 행사장으로 보내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이틀은 걸렸다.나는 지역별 재고표를 빠르게 훑었다.“센터를 안 거치면 돼요.”“네?”“매장에서 행사장으로 바로 보내는 거예요. 가까운 점포끼리 묶어서 차량을 잡고, 매장에 남길 물량만 빼두면 돼요. 이동 가능한 수량은 이미 계산해뒀고요.”물류팀장이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하면 가능하겠습니다.”그때 현우가 끼어들었다.“괜히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외부에서 사오라니까.”“우리 매장에 있는 물건을 놔두고 비싼 돈 주고 다시 살 이유는 없어요.”“그러다 문제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현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익숙한 말투였다. 화를 참을 때면 늘 저런 목소리를 냈다.손끝이 굳었지만 피하지 않았다.“네. 제가 끝까지 확인할게요.”현우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사무실 입구가 술렁였다.고개를 돌리자 진이건이 들어오고 있었다.어젯밤 병원 앞에서 헤어진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보는 순간 괜히 심장이 먼저 뛰었다.“현장 운영 점검이 있어서 왔습니다.”현우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진 대표님, 오셨습니까. 물류 쪽에 작은 문제가 생겼는데 곧 정리될 겁니다.”이건의 시선이 내 모니터로 향했다.“한 과장이 정리하고 있는 겁니까?”“직원들이 다 같이 처리 중입니다.”“그런 것치고는 다들 한 과장 지시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요.”현우의 입가가 굳었다.이건은 재고표를 훑어본 뒤 나를 바라봤다.“할 수 있겠습니까?”조금 전 현우가 했던 말과는 묘하게 달랐다.한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지부터 물었고, 다른 사람은 내가 해낼 수 있는지를 물었다.“할 수 있습니다.”이건이 짧게 웃었다.“그럼 해요.”나는 곧바로 직원들에게 매장별 수량을 다시 확인하고 직송 차량을 잡아달라고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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