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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Author: 월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3 22:01:49

“그래서 먹었다고 한 겁니까?”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되물었다.

“대표님은 부모님한테 그런 거짓말 안 하세요?”

뜻밖의 질문에 이번에는 내가 말문이 막혔다.

잠시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안 하는 것 같군요.”

“그럼 좋은 아들이신가 봐요.”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나를 두고 좋은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여자는 내 반응에는 별 관심도 없는지 삼각김밥 포장을 뜯었다.

“이제 먹습니다.”

마치 이제 됐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또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입술 안쪽을 한번 눌렀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하세요.”

이번에는 순순히 돌아섰다.

사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는데, 문이 닫히기 직전 고개가 사무실 쪽으로 돌아갔다.

여자는 벌써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다시 일에 빠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옆에 있던 비서가 슬쩍 나를 바라봤다.

“아시는 직원이십니까?”

“아니. 오늘 처음 봤어.”

“그런데 꽤 오래 계시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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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를 짐작할 수도 있었지만 마음대로 단정하지 않았다.지아는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 뒤 몸을 돌렸다.“오늘 잘 먹었습니다, 대표님.”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비서가 우산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이대로 보내면 됐다.그런데 지아가 빗속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이건이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불렀다.“한 과장님.”지아가 다시 돌아봤다.이건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물었다.“오늘 샘플 건 정리되면 연락 주실 수 있습니까?”“네. 회사 메일로 드릴까요?”회사 메일로 받아도 아무 문제 없었다. 원래라면 그게 맞았다.이건의 시선이 지아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에 잠깐 머물렀다.“메일은 제가 늦게 볼 수도 있으니까 휴대전화로 주시죠.”“번호를 모르는데요.”이건이 번호를 불러주자 지아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저장했어요.”이번에는 이건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제 쪽에도 번호를 남겨주시죠.”지아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잠시 뒤 이건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화면에 낯선 번호가 떠 있었고, 지아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접니다.”이건은 통화를 종료한 뒤 연락처 저장 화면을 열었다.한지아 과장.그렇게 입력하려던 손가락이 멈췄다.잠시 화면을 바라보던 이건이 뒤의 두 글자를 지웠다.한지아.세 글자만 남았다.이건은 그대로 저장 버튼을 눌렀다.지아는 그가 무엇이라고 저장했는지도 모른 채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그럼 갈게요, 대표님.”“조심해서 가십시오.”우산도 없이 역 쪽으로 뛰어가려는 지아를 보자 이건의 미간이 좁아졌다.마침 비서가 우산을 들고 도착했고, 이건은 우산을 받아 지아에게 내밀었다.지아가 걸음을 멈추며 그를 바라봤다.“대표님은요?”이건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차를 턱짓으로 가리켰다.“저보다 한 과장님이 더 오래 걸어야 하잖아요.”지아는 우산과 이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손을 내밀었다.“다음에 돌려드릴게요.”다음에.별것 아닌 말인데 이건의 시선이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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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아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른 먹어보라는 눈빛으로 숟가락을 가리켰다.“한 과장님은 원래 남의 밥 먹는 것까지 관리합니까?”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건은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생각보다 괜찮았다.그의 표정을 살피던 지아의 눈이 금세 반짝였다.“맛있죠?”이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국물을 한 번 더 떠먹었다.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답이 된 모양이었다.“거봐요. 제가 맛있다고 했잖아요.”마치 자신이 만든 음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그 순간 이건의 시선이 멈췄다.물류장에서 보았던 웃음과는 또 달랐다. 일할 때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이었고, 별것 아닌 일에도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웃을 때 살짝 휘어지는 눈매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어왔다.이건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바라보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한 과장님은 원래 잘 웃습니까?”입으로 가져가던 지아의 숟가락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지아가 자신을 가리키듯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제가요?”“오늘은 많이 웃는 것 같아서요.”지아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오히려 이건을 빤히 바라봤다.“대표님도 오늘 많이 웃으셨는데요. 원래는 잘 안 웃으시죠?”생각해보니 그랬다.이건은 대답 대신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지아는 그 반응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었는지 입꼬리를 올렸다.“역시.”“뭐가 말입니까?”“그냥요. 평소에는 별로 재미없게 사실 것 같아서요.”이건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자신에게 재미없게 산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오히려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할지가 궁금해졌다.“한 과장님은 재미있게 삽니까?”물컵을 들던 지아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방금 전까지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도 조금 옅어졌다.“저도 별로예요.”가볍게 넘기려는 말투였다.이건은 더 묻지 않았다.마침 지아가 물컵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옷소매가 조금 밀려 올라갔고, 물류장에서 보았던 멍 자국이 다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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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뜻밖의 제안을 받은 사람처럼 이건을 바라보다가 괜히 어색한지 손목시계를 한번 만졌다.“저랑요?”이건이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넓은 물류장에는 어느새 두 사람만 남다시피 했다.“여기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그제야 지아도 주변을 둘러보다 다시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대표님하고 저하고 둘이 밥을 먹는다는 말씀이세요?”이건은 대답 대신 지아의 표정을 살폈다.“불편합니까?”싫다면 그걸로 끝이었고, 굳이 이유까지 물어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지아가 입을 열기까지 이어진 짧은 침묵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잠시 고민하던 지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냥 조금 의외라서요. 대표님은 직원이랑 따로 밥 안 드실 것 같아서요.”“한 과장님은 제 직원이 아닙니다.”그 말을 들은 지아가 그러네요, 하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쩍 웃었다.“그럼 다행이네요. 대표님 직원이었으면 밥 얻어먹기 더 어려웠을 것 같거든요.”또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이건의 입가에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번졌다. 그는 더 묻지 않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먹고 싶은 거 있습니까?”뒤따라오던 지아가 제법 진지한 얼굴로 고민했다.“제가 골라도 돼요?”이건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지아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그럼 국밥이요.”막 열린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려던 이건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그 반응을 놓치지 않은 지아가 먼저 웃었다.“왜요, 싫으세요?”“아닙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국밥은 예상하지 못해서요.”“오늘 박스까지 직접 옮기셨는데 이 정도면 대표님 체험 제대로 하시는 거죠.”지아가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닫힘 버튼을 누르며 웃는 얼굴을 바라보던 이건도 결국 낮게 웃었다.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유난히 많이 웃고 있었다.지아가 고른 곳은 도원 본사에서 차로 십 분쯤 떨어진 골목 안쪽의 작은 국밥집이었다.비서가 주소를 확인하며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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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박스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지아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셔츠 소매가 손목 위로 살짝 밀려 올라가면서 희미하게 남은 멍이 드러났다.거의 가라앉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였지만 이건은 놓치지 않았고, 그의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다.지아도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차렸는지 서둘러 소매를 끌어내렸다.며칠 전 병원에서 봤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건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아가 감추고 싶어 하는 걸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대신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지아가 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동안에도 이건은 재촉하지 않고 그대로 기다렸다.잠시 후 지아가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자 이건은 손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받쳐주었다.맞닿았던 손은 금세 떨어졌지만, 박스를 다시 들려던 이건의 손이 순간 멈췄다.손바닥에 남은 미약한 감촉이 생각보다 선명했다.이건은 자신의 손을 한번 내려다봤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박스를 고쳐 들었다.“감사합니다.”지아가 웃으며 소매 끝을 다시 한번 끌어내리자 이건의 눈매가 미세하게 굳었다.“무거운 건 두세요.”“저 이 정도는 들어요.”“압니다.”이건은 지아가 들려고 하던 나머지 박스까지 가져왔다.“그래도 제가 들겠습니다.”지아가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보다 입꼬리를 올렸다.“대표님, 생각보다 친절하시네요.”“생각보다?”“처음에는 좀 무서웠거든요.”이건의 굳었던 눈매가 그제야 느슨하게 풀렸다.“지금은 안 무섭습니까?”지아가 고민하는 척 고개를 갸웃했다.“박스 들어주는 동안은요.”결국 이건이 다시 웃었다.이 여자와 이야기하다 보면 대화가 늘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렀는데,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다행히 집회 구간을 피해 돌아갈 수 있는 길이 확인되면서 도원 차량에 샘플을 실어 백림유통까지 보내기로 했다.차량이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아가 벽에 살짝 기대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이건이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지하철 못 타서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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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가 끝났을 때는 오후 다섯 시가 넘어 있었다.백림유통 직원들이 하나둘 짐을 챙기기 시작했고, 지아도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그때 비서가 이건에게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대표님,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백림유통에서 가져온 샘플 일부가 지하 물류장에서 잘못 분류됐답니다. 회수 차량은 이미 출발했고요.”이야기를 들은 지아도 가방을 챙기다 말고 손을 멈췄다.전략기획팀장이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어느 정도입니까?”“박스 네 개라고 합니다.”“그럼 퀵으로 보내죠.”지아가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냈지만 화면을 확인하던 미간이 이내 좁아졌다.“오늘 집회 때문에 이쪽 도로가 막혔대요. 기사님이 들어오려면 한 시간 넘게 걸린다는데요.”팀장이 내일 보내면 안 되겠느냐고 묻자 지아가 고개를 저었다.“내일 오전에 MD 미팅 있잖아요. 그때 샘플 필요한 거 아니에요?”“그렇지.”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이건이 비서를 돌아봤다.“차는 준비됐습니까?”“네. 지하에 대기 중입니다.”“그럼 가는 길에 백림유통 본사에 들르죠.”지아가 뜻밖이라는 듯 그를 올려다봤다.“대표님이 직접 가시게요?”“제 차는 길이 안 막힙니까?”“막히죠.”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비서가 입술을 물며 웃음을 참았고, 이건도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누르며 물었다.“그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지하 물류장에서 박스만 받아서 지하철로 가져가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은데요. 제가 가져갈게요.”팀장이 황당한 얼굴로 끼어들었다.“한 과장 혼자 네 박스를 어떻게 가져가?”“카트 있지 않을까요?”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지아를 보며 이건은 피식 웃고 재킷 단추를 풀었다.“갑시다.”“어디를요?”“지하 물류장으로요.”지아가 눈을 깜빡였다.“설마 대표님도 같이 들고 가시려고요?”“박스가 네 개라면서요. 제가 들면 안 됩니까?”이건이 먼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뒤따라오던 지아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들 수는 있죠. 좀 비싸 보이는 사람이 박스 들고 다니는 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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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오후, 도원 본사 회의실에 들어선 이건은 자신도 모르게 가장 먼저 한지아를 찾았다.일부러 찾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회의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백림유통 전략기획팀장이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옆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차례로 보였다. 그러다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지아와 눈이 마주쳤다.지아도 그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 대표님.”특별할 것 없는 인사였는데도 이건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눈에 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앉으시죠.”자리에 앉은 뒤에도 시선이 한 번 더 그쪽으로 향했지만, 지아는 이미 노트북을 열어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건은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펼쳤다.회의는 예정대로 시작됐다.지난 물류 오류 이후 수정된 발주 기준과 재고 관리 절차를 점검하고, 다음 달부터 적용할 온라인 판매 확대안까지 검토하는 자리였다. 백림유통 전략기획팀장이 준비한 자료를 설명하는 동안 이건은 필요한 부분만 짚어 물었다.“온라인 물량을 이만큼 늘리면 물류센터 처리량은 감당됩니까?”“현재 기준으로는 가능합니다.”“현재 기준 말고 프로모션 기간까지 포함해서 말씀해 주십시오.”팀장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멈칫하자 자료를 넘기던 지아가 고개를 들었다.“프로모션 기간까지 포함하면 조금 빡빡합니다. 평균 물량으로 계산하면 가능한데, 첫 주에는 주문이 몰릴 가능성이 높아요. 작년 비슷한 행사 때도 첫 사흘 물량이 평소보다 두 배 넘게 들어왔고요.”이건의 시선이 지아에게 향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물량을 줄이든가, 사람을 늘리든가 둘 중 하나죠.”너무 명쾌한 대답에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고, 전략기획팀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지아를 돌아봤다.“한 과장, 대표님이 그걸 몰라서 물으신 게 아니잖아.”“아, 죄송합니다. 너무 당연하게 대답했네요.”뒤늦게 사과하면서도 지아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보다 정말 너무 당연한 말을 했나 싶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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