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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빛나냥
전서준이 연희를 놀린 건 연희가 예뻐서였다.

"네가 나 용서해주면 앞으로 어린이집에서 내가 너 지켜줄게. 절대 아무도 너 건드리지 못할 거야."

전서준은 이번 일 때문에 연희 엄마가 연희를 전학 보낼까 봐 두려웠다.

사실 허설아도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른 어린이집에 가도 똑같은 일을 겪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허설아는 다정하게 연희의 의견을 물었다.

"연희야, 전학 가고 싶어? 아니면 계속 여기 있을래?"

잠시 생각하던 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랑 다른 친구들은 다 좋아요."

허설아도 약간의 사심이 있었다.

이번 일을 겪고 난 뒤, 권지헌이 미안한 마음에 어떻게든 단속할 테니 연희도 어린이집에서 전서준 같은 말썽꾸러기를 다시는 만날 일 없었다.

전서준도 사과할 줄 아는 걸 보면 답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집 근처 골목에 도착하자 허설아는 권지헌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허설아는 별다른 말 없이 연희를 데리고 떠났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권지헌은 뒷모습만 봐도 허설아가 지금 화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과 많이 달라진 허설아는 마치 단단한 갑옷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듯했지만 성격과 사소한 버릇들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화가 나면 늘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예전의 허설아는 권지헌에게 화내기 미안해서 항상 화를 억누르고 스스로 삭인 뒤 다시 권지헌을 찾아가곤 했다.

권지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름하고 오래된 재개발 지역의 낡은 아파트로 월세는 싸지만 회사까지 통근 시간이 적어도 한 시간이 걸렸다.

허설아가 지금 여기서 산다고?

남편이 정말 무능력한 모양이다.

권지헌은 속에서 미묘하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핸들을 틀며 전서준에게 물었다.

"너 연희 자주 괴롭혔어?"

전서준은 입만 삐죽거리다 몇 번이나 물어서야 겨우 답했다.

"아빠가 없다고, 아빠가 버린 아이라고 했어요. 진짜예요, 삼촌. 나 연희 아빠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그리고 평소에 나랑 놀아주지 않아서 디저트랑 과일 몇 번 빼앗았어요."

"몇 번 밀치기도 했어요. 그리고 연희 원피스가 있는데 만 원이래요. 삼촌, 만 원짜리 옷 본 적 있어요? 어찌나 싸구려인지 살짝 잡아당겼는데 바로 찢어졌어요."

"한 번은 연희가 한약 먹길래 내가 버려버렸어요."

……

권지헌은 미간을 꾹꾹 눌렀다.

이런 말을 허설아 앞에서 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아니면 아이를 아끼는 허설아 성격에 더 화가 폭발했을 것이다.

권지헌은 전서준을 사촌 누나집에 데려다준 뒤 사건 경과를 쭉 설명했다.

차가 떠나기도 전에 벌써 집 안에서 전서준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권지헌은 차에 앉아 떠나려는 기색이 없이 느긋하게 전서준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어 휴대폰을 꺼내 회사 내부 메신저를 열어 실명제로 된 계정에서 허설아를 찾았다.

프로필 사진은 일러스트로 된 강아지였다. 손에 꽃을 들고 바보처럼 환하게 웃는 몰티즈라고 하는 강아지 캐릭터였다.

과거의 허설아와 닮아 있었다.

권지헌이 메시지를 보내자 빨간색 느낌표가 나타났다.

그리고 밑에 작은 글씨로 회사 내부 제한으로 다른 부서 간 직접 소통 금지, 상급자를 건너뛰고 소통하는 것도 금지한다고 적혀 있었다.

권지헌은 말문이 막혔다.

회사 대표가 직원한테 연락하려는데 반드시 비서팀을 거쳐야 한다니.

권지헌은 조민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 아이디 허설아한테 추천 보내요."

조민규는 허설아의 기획안에 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기절초풍할 듯하며 휴대폰을 든 채 무릎까지 꿇을 기세였다.

추천을 보내자 허설아는 곧바로 물음표를 하나 보냈다.

"?"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세요."

하지만 허설아는 마지막 말을 지우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ok."

허설아는 조민규가 보낸 친구 추천 메시지를 확인했다.

권지헌의 sns 연락처는 권지헌 본인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프로필 사진에 이름은 H였고 계정 아이디는 권지헌의 영어 이름과 생일로 조합되어 있었다.

바로 친구 추가를 하자 권지헌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앞으로 딸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다 책임질게요."

"알겠습니다."

권지헌이 영상 하나를 전송했다.

전서준이 바닥을 뒹굴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아기돼지처럼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영상을 본 허설아는 단번에 권지헌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적당히 하고 그만 화 풀라는 뜻이었다.

권지헌이 아이를 많이 아낀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 아마 권지헌이 좋아하는 여자와 낳은 아이여서겠지.

허설아는 마음이 씁쓸했다. 오후에 권지헌이 전서준을 감싸는 모습을 허설아도 다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때리는 것조차 진짜로 때리지 못하고 시늉만 하다니.

하긴, 권지헌 같은 존재는 아이만 갖고 싶다고 하면 낳아줄 여자가 널렸을 것이다.

허설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영상을 태그하고 답장을 보냈다.

"확인했습니다."

답장을 끝으로 모든 감정을 다시 삼켰다.

-

그날 밤, 아니나 다를까 연희는 열이 났다.

감염을 막기 위해 허설아는 자신과 연희 모두 마스크를 쓰고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해 검사를 해보니 기존 병들이었다.

의사는 뒤에 있는 커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를 안고 저쪽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수액 준비해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허설아는 자그마한 딸을 안고 작은 칸막이 안에 앉아 다른 손으로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미대 출신인 허설아는 대학교 때부터 일러스트를 그렸다.

그때는 돈이 부족하지 않았기에 그냥 좋아서 게임이나 드라마 팬아트를 그렸는데 어쩌다 보니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지금 허설아는 팔로워 300만인 유명 일러스트 작가였다.

허설아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메시지들이 종종 있었고 시간이 되면 거의 다 받는 편이었다.

다만 그림 그리는 일은 시간과 정력이 소모되어 한 장 그리는 데 일주일씩 걸렸다.

게다가 연희가 아프면 효율도 많이 떨어졌다.

의뢰 가격 문의 메시지 몇 개를 확인한 허설아는 가격표만 보내고 바로 나왔다

권지헌이 SNS로 전화를 걸어왔다.

"딸 옷이 내 차에 있어요."

"내일 출근하면 차로 가서 받아 가겠습니다."

허설아가 목소리를 낮추어 얘기하는 걸 발견하고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은 거라 짐작한 권지헌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때, 칸막이 밖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의 불만 가득한 소리였다.

"권지헌도 정말 너무하네. 우리 서준이가 어린이집에서 친구 좀 사귀는 걸 어떻게 다른 애들 괴롭혔다고 말할 수 있어?"

"서준이가 얼마나 놀랐으면 열까지 나겠어!"

권지헌 사촌 누나인 유혜원이 지친 목소리로 답했다.

"어머니, 지헌이도 서준이를 위해서 혼낸 거예요. 그리고 서준이한테 오늘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한 번 말해보라 하세요. 그게 무슨 친구 사귀는 거예요? 그건 그냥 괴롭힌 거예요!"

김현숙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도 손찌검은 안 되지! 서준이가 지금까지 자라면서 언제 맞아본 적이 있어!"

"서준이 말로는 그 계집애가 옷도 겨우 만 원짜리에 애 아빠 얼굴도 본 적 없다며? 딱 봐도 계집애랑 엄마가 일부러 국제학교에 와서 돈 많은 남자 꼬시려는 거야."

"틀림없어. 아니면 권지헌 성격에 어떻게 두 사람 집에까지 데려다줘? 서준이도 계집애 엄마가 예쁘다고 하던데 남자나 노리는 천한 것이 분명해! 안 되겠어, 내일 내가 학교에 찾아가서 뻔뻔한 그 계집애 퇴학시키라고 해야지!"

유혜원이 끝내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런 말 지헌이 앞에 가서 똑같이 해보세요."

김현숙도 감히 권지헌 앞에서는 으스대지 못했다.

커튼 안, 허설아는 손발이 차갑게 식어갔고 모욕적인 말들이 귀에 때려 박혀 고막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이명이 끊이지 않았다.

허설아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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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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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다
더 보고싶네요 재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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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다음편이 궁금? 재미있어요.
goodnovel comment avatar
이경산
스토리가 뻔하지만 그래서 더 읽고 싶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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