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지하 2층에서 기다리던 남자는 내 이름이 아니라,
내 몸에 붙었던 번호부터 확인했다.
“0817-4439.”
그가 여덟 자리 숫자를 읽었다.
“그 번호가 맞습니까?”
나는 방화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세요?”
“박도율. 의료분쟁 변호사입니다.”
“변호사가 왜 병원 지하에서 사람을 불러요?”
“위층에서는 질문보다 보안요원이 먼저 옵니다.”
“송지혜 씨가 보냈어요?”
“그 이름은 여기서 꺼내지 마십시오.”
그는 문을 더 열고 옆으로 비켰다.
“들어오라고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원무팀이 팔찌 회수 요청을 넣었습니다.
위로 올라가면 가방부터 확인할 겁니다.”
“병원은 기록이 없다던데요.”
“없는 기록을 찾는 데 저렇게 사람이 많이 필요하진 않죠.”
나는 가방 끈을 당겨 쥐었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거예요?”
“아니요.”
도율은 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문은 제가 잡겠습니다. 들어올지는 이연희 씨가 정하십시오.”
그는 내 손목도, 가방도 붙잡지 않았다.
나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를 급히 사무실로 바꾼 공간이었다.
벽에는 번호가 적힌 서류상자가 쌓여 있었고,
책상 위 노트북에는 병원 도면이 떠 있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오래전부터 찾았습니다.”
“왜요?”
“기록에서 사라진 환자니까요.”
“피해자라고는 안 하네요.”
“그건 증거를 본 뒤에 말하겠습니다.”
“내 몸에 다른 여자 이름이 붙었는데도?”
“이상한 일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과 입증된 범죄는 다릅니다.”
“그럼 나를 안 믿는다는 뜻이에요?”
“이연희 씨가 기억하는 것과 병원이 남긴 것을 따로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위로는 없었다.
대신 내가 어디서부터 공격받을 수 있는지 정확하게 짚었다.
“팔찌를 보여 주세요.”
나는 가방을 열지 않았다.
“빼앗으면요?”
“소리치십시오. 위층 보안요원이 저부터 잡아갈 겁니다.”
나는 비닐봉지째 팔찌를 꺼냈다.
그의 손이 닿지 않을 거리에서 바코드만 보였다.
도율이 번호를 노트북에 입력했다.
붉은 문장이 떴다.
폐기 번호.
“무겸도 이 번호를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확신합니까?”
“번호를 보여 준 적도 없는데 여덟 자리를 전부 말했어요.”
“통화나 메시지는 남아 있습니까?”
“저장했어요.”
“원본은 지우지 마십시오. 화면 캡처만 따로 복사해 두고요.”
“그게 증거가 돼요?”
“최무겸이 이 번호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은 됩니다.
왜 알고 있었는지는 따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는 쉽게 결론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믿기 어려웠고, 조금은 믿을 만했다.
“당신은 번호를 어디서 찾았어요?”
도율이 서류봉투를 열었다.
“다른 의료분쟁 사건에서 병원이 제출했다가 정정한 전산 목록입니다.”
“병원은 뭐라고 했는데요?”
“단순한 중복 발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말 실수였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출력물 한 장이 내 앞으로 밀려왔다.
번호 아래에 날짜가 세 줄 적혀 있었다.
첫 번째는 내 수술 사흘 전.
두 번째는 내가 아이를 잃은 날.
세 번째는 내가 퇴원한 다음 날.
날짜 옆에는 서로 다른 수술실 번호가 표시돼 있었다.
“이게 뭐예요?”
“0817-4439가 사용된 시각입니다.”
“검사나 접수일 수도 있잖아요.”
“전부 수술실 입실 기록입니다.”
나는 가운데 날짜를 짚었다.
“이게 나예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가능성?”
“팔찌만으로는 어느 수술이 이연희 씨 것인지 입증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 두 개는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세아가 두 번 더 수술받았을 수도 있잖아요.”
도율은 다음 장을 내놓았다.
세 수술의 진료과가 달랐다.
담당 의사도 달랐다.
마취 방식도 달랐다.
“사흘 동안 한 사람이 세 번 수술받았다는 거예요?”
“병원 기록대로라면 그렇습니다.”
“가능해요?”
“한 사람이라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배 아래쪽이 다시 아파 왔다.
“나한테 뭘 원하는데요?”
“그 번호가 실제로 이연희 씨 몸에 붙어 있었다는 증언입니다.”
“증언하면 내 수술 기록을 찾을 수 있어요?”
“찾을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왜 여기까지 불렀어요?”
도율이 마지막 출력물을 내 앞에 놓았다.
세 줄의 수술 기록이 한 화면에 정리돼 있었다.
수술실도, 진료과도, 시간도 달랐다.
단 하나만 같았다.
환자번호.
0817-4439.
“이연희 씨는 한 번 수술받았다고 했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당신 몸에 붙었던 번호는 세 번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가운데 날짜에서 손가락을 떼지 못했다.
내 아이가 사라진 날 위아래로, 내가 모르는 수술 두 건이 붙어 있었다.
나는 한 번만 수술받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번은 누구의 몸이었을까.
“한서윤이다.”스피커에서 최도현의 목소리가 사라졌다.연희는 세아를 바라봤다.세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윤?”연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세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미안해.”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왜 미안해?”“나도 몰랐어.”“뭘?”“내 이름이 뭔지.”도윤이 끼어들었다.“연희야, 지금은 여기서 나가야 해.”“잠깐.”연희가 도윤을 막아섰다.“당신은 알고 있었잖아요.”“…….”“세아가 누구인지.”도윤은 시선을 피했다.“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정확히는 몰랐어.”“그럼 뭘 알고 있었는데요?”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네 엄마가 죽기 직전에 아이 한 명을 내게 맡겼다는 것.”“그게 세아였어요?”“그래.”“왜 숨겼어요?”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세아가 대신 말했다.“내가 죽은 아이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야.”연희가 그녀를 바라봤다.“죽은 아이?”“그래.”“그럼 서윤은?”세아의 얼굴이 굳었다.“그 이름도 내 이름이 아니야.”연희는 숨을 삼켰다.“그럼 우리가 알고 있던 서윤은…….”“내 이름을 빌린 사람이야.”순간 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도율이 서류를 꺼냈다.“잠깐.”그는 출생기록을 펼쳤다.“여기 서윤 씨의 기록이 있습니다.”연희가 다가갔다.출생아 이름.한서윤.하지만 산모 이름은 달랐다.혜경.연희가 굳었다.“혜경이 엄마라고 되어 있어요.”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출생시간이 없습니다.”“왜요?”“출생기록이 사후에 작성됐기 때문입니다.”세아가 조용히 말했다.“그러니까 나는 한 번 죽었고…….”그녀가 서류를 바라봤다.“다른 아이가 내 이름으로 살아온 거야.”연희는 혼란스러웠다.“그럼 서윤은 누구야?”세아가 대답하지 않았다.그때 도윤의 휴대폰이 울렸다.최도현이었다.“받지 마.”도율이 말했지만 도윤은 전화를 받았다.“뭡니까.”“내 딸을 데리고 있군.”도윤의 얼굴이 굳었다.“당신 딸은 연희입니다.”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이 들
“내가 네 아버지다.”화면 속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도윤은 움직이지 못했다.“……최도현.”무겸이 다급하게 물었다.“저 사람이 진짜 최도현입니까?”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화면만 바라봤다.연희는 낡은 의자에 묶인 채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당신이 진짜 내 아버라면 왜 지금까지 숨어 있었어요?”남자는 씁쓸하게 웃었다.“숨어 있었던 게 아니야.”“그럼요?”“갇혀 있었어.”“누구한테?”남자의 표정이 굳었다.“내 아버지에게.”연희의 눈빛이 흔들렸다.“할아버지?”“그래.”“왜요?”“내가 너희를 데리고 도망가려고 했으니까.”연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그런데 기록에는 당신이 죽었다고 되어 있어요.”“죽은 사람으로 만들어진 거야.”“누가?”최도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네가 믿고 있는 모든 사람이 조금씩 관여했어.”연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또 그 말이네요.”“하지만 한 사람만은 끝까지 나를 도왔다.”“누구요?”최도현이 말했다.“혜경.”연희가 굳었다.“혜경이 당신을 도왔다고요?”“그래.”“그런데 왜 엄마를 죽인 사람처럼 행동했어요?”최도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 여자는 네 엄마를 죽이지 않았어.”“그럼?”“네 엄마가 죽은 건 사고였어.”연희가 눈을 크게 떴다.“사고?”“내 아버지가 네 엄마를 죽이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사고가 났어.”“그런데 왜 혜경이 시체를 옮겼어요?”“내 아버지가 시켰으니까.”연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럼 엄마는…….”최도현이 고개를 숙였다.“마지막 순간까지 너를 살리려고 했어.”연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나를?”“그래.”“뭐라고 했는데요?”“너를 다른 아이로 바꾸라고 했어.”연희가 굳었다.“왜요?”“네가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할 아이였으니까.”“왜 내가?”“네가 내 딸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어.”그때 화면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최도현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시간이 없어.”연희가 물었다.“
“네 엄마를 죽인 사람도 나야.”연희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당신이?”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도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이 개자식!”쾅!두 사람이 바닥으로 넘어졌다.도율과 무겸이 동시에 달려들어 도윤을 붙잡았다.“놔!”“아버지!”도윤은 이를 악물고 남자를 노려봤다.“네가…… 그날…….”남자는 피 묻은 입술을 닦으며 웃었다.“이제 기억나?”도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네가 칼을 들고 있었어.”“그래.”“그런데 왜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지?”남자는 천천히 일어났다.“네가 기억하지 못했으니까.”연희가 끼어들었다.“당신 이름이 뭐예요?”남자는 그녀를 바라봤다.“최도현.”연희의 얼굴이 굳었다.“그 이름은 내 아버지 이름이잖아요.”“그래.”“그럼 왜 당신이 그 이름을 써요?”남자는 웃었다.“그게 바로 내가 네 아버지를 죽인 이유야.”연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무슨 말이에요?”“네 아버지의 이름이 필요했거든.”“왜?”“회사를 물려받으려고.”도율이 차갑게 물었다.“그럼 네 친할아버지와 한패였습니까?”남자의 표정이 굳었다.“한패?”그가 웃었다.“내가 그놈보다 먼저 시작했어.”“무슨 뜻이죠?”“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이용했어.”그가 연희를 바라봤다.“나는 그 아이들을 만들었고.”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연희가 물었다.“아이들을…… 만들었다고?”“그래.”도윤이 소리쳤다.“닥쳐!”남자는 도윤을 바라봤다.“너도 알고 있었잖아.”“아니야.”“네 기억 속에 전부 남아 있어.”도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만…….”세강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연희야.”연희가 돌아봤다.“저 사람 말을 전부 믿으면 안 돼.”“왜?”“저 사람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어.”남자가 비웃었다.“그래?”세강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우리를 만든 게 아니라…….”그가 남자를 노려봤다.“우리 아버지가 만들었잖아.”연희가 굳었다.“아버지?”세강이 말했다.“이 남자는
“네가 나를 죽였잖아.”연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내가……?”침대 위 남자는 연희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래.”“난 당신을 처음 봐요.”“지금의 너는 그렇겠지.”그가 침대에서 내려왔다.도윤이 연희 앞을 막아섰다.“다가오지 마.”남자는 도윤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역시 기억을 지웠군.”도윤의 눈빛이 흔들렸다.“너는 누구야?”“강세강.”“거짓말.”“왜?”“세강은 내 아들이 아니야.”남자가 비웃었다.“그럼 나는 누구의 아들인데?”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연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 세강이라면…… 왜 나를 원망해요?”세강은 잠시 연희를 바라봤다.“열두 살 때 네가 나를 밀었어.”“무슨 말이에요?”“계단에서.”연희의 머릿속에 갑자기 한 장면이 스쳤다.낡은 계단.피 묻은 손.그리고 어린 남자아이의 울음소리.연희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아…….”도윤이 그녀를 붙잡았다.“연희야!”“기억나.”연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어떤 남자아이가…… 나한테 도망가라고 했어.”세강이 말했다.“그게 나야.”“왜?”“우리가 들켰으니까.”“뭘?”세강의 얼굴이 굳었다.“우리 출생의 비밀.”연희는 숨을 삼켰다.“그날 나는 네가 내 동생인 줄 알았어.”“아니.”세강이 고개를 저었다.“넌 내가 네 오빠라는 걸 알고 있었어.”“그럼 왜 기억이 없어요?”“네 할아버지가 지웠으니까.”연희가 굳었다.“내 기억까지?”“그래.”세강은 자신의 손목을 가리켰다.“A-19-1.”그리고 연희를 가리켰다.“A-19-2.”무겸과 서윤을 차례로 바라봤다.“A-19-3, A-19-4.”연희가 물었다.“그럼 세아는?”“가짜.”“무겸은?”“진짜.”“서윤은?”세강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반은 진짜.”서윤의 얼굴이 굳었다.“반이라니?”“네 몸에는 다른 사람의 기억이 들어갔어.”서윤은 뒷걸음질 쳤다.“말도 안 돼.”“그래서 어릴 때부터 네 기억이 자꾸 끊겼던 거야.”서윤은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강세강……?”연희는 휴대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문자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그 아이의 이름은 강세강.]“세강이…… 우리 오빠라고?”무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말이 안 돼.”도율이 사진을 확대했다.“출생기록이 있다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어디서요?”“세강병원.”연희가 즉시 고개를 들었다.“가요.”도윤이 막았다.“안 돼.”“왜요?”“누군가 일부러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어.”“그래서요?”연희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내가 평생 몰랐던 가족이 있다는데 가만히 있어요?”“함정일 수도 있어.”“이미 평생 함정 속에서 살았어요.”연희는 도윤을 똑바로 바라봤다.“이번엔 내가 직접 확인할 거예요.”도윤은 더 이상 막지 못했다.그날 밤, 연희 일행은 세강병원으로 향했다.하지만 지하 기록실에 도착하자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도율이 주변을 살폈다.“누군가 먼저 왔습니다.”연희가 안으로 들어갔다.서류함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그런데 한 칸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라벨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A-19.연희가 서랍을 열었다.낡은 출생기록 한 장이 나왔다.산모.한정애.출생아.남아.출생시간.오전 2시 48분.연희가 굳었다.“우리가 알고 있던 출생시간보다 빨라요.”도율이 기록을 확인했다.“무려 24분.”그리고 이름 칸.비어 있었다.연희가 물었다.“이름은 왜 없어요?”도율이 종이를 뒤집었다.뒷면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사망 처리.연희의 숨이 멎었다.“강세강은 죽은 아이였어요?”도윤이 말했다.“아니.”“왜요?”“내가 기억하는 그날…….”도윤의 표정이 굳었다.“아이 울음소리를 들었어.”“몇 명?”“한 명.”“남자아이였어요?”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무겸이 물었다.“그럼 그 아이가 세강?”“가능성이 있어.”그 순간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누군가 기록실 안으로 들어왔다.모두가 돌아봤다.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였다.그는 연희를 보자마자 멈췄
연희의 시선이 그 숫자에 꽂혔다.A-19-2.“손목 보여줘.”상대가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숨겼다.연희가 한 걸음 다가갔다.“보여달라고.”“연희야…….”“당신이 진짜 내 쌍둥이야?”그 순간 방 안의 모든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몰렸다.서윤이었다.서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나 아니야.”연희가 손목을 붙잡았다.“그럼 이 숫자는 뭔데?”서윤의 얼굴이 무너졌다.“나도 몰라.”“모른다고?”“어릴 때부터 있었어.”혜경이 갑자기 일어났다.“그만해!”연희가 그녀를 돌아봤다.“왜요?”“서윤에게 묻지 마.”“왜?”혜경은 대답하지 못했다.연희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당신은 알고 있죠.”“…….”“서윤이 누구인지.”혜경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그래.”서윤의 얼굴이 굳었다.“엄마…….”“미안해.”“나한테 뭘 숨겼어요?”혜경은 울면서 말했다.“네가 누구인지 알았어.”“그게 무슨 뜻이에요?”“너는…….”혜경이 입술을 떨었다.“연희의 쌍둥이가 아니야.”서윤의 눈이 커졌다.연희 역시 굳었다.“그럼?”“네가 연희보다 먼저 태어난 것도 아니고, 둘째도 아니야.”서윤이 숨을 삼켰다.“그럼 나는 누구예요?”혜경은 한참을 망설였다.그리고 말했다.“네 번째 아이야.”순간 연희의 표정이 굳었다.“네 번째?”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연희와 무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무겸이 벌떡 일어났다.“그게 무슨 말입니까?”“너희 둘 사이에서 태어난 게 아니야.”혜경이 고개를 저었다.“출생 순서가 그렇게 기록돼 있었다는 뜻이야.”도율이 서류를 다시 확인했다.“잠깐.”그가 기록을 펼쳤다.“여기에는 아이가 네 명이 아니라 다섯 명으로 되어 있습니다.”모두가 굳었다.연희가 물었다.“다섯?”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연희, 무겸, 서윤…… 그리고 이름이 삭제된 아이 두 명.”혜경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그럴 리 없어.”“왜요?”“아이들은 네 명뿐이었어.”도율이 말했다.“그렇다면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