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 사람 장례식은 누가 치르죠?”
윤서하의 질문이 떨어진 뒤 오민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를 한 장 넘긴 그는 침대 끝에 놓인 모니터를 확인했고, 수치가 안정된 것을 본 뒤에야 다시 서하를 바라봤다.
“기증자의 가족이 합니다.”
“수술 때문에 늦어지진 않아요?”
“기증 절차와 장례 절차는 따로 진행됩니다. 윤서하 씨가 책임질 일은 없습니다.”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말이 더 무거웠다. 누군가는 가족을 보내고, 자신은 그 사람이 남긴 장기로 내일을 얻는다.
서하는 수술 동의서 사본을 받아 들었다. 맨 아래 자기 이름이 선명했다.
윤서하.
몇 분 전까지도 쓰지 않으려 했던 세 글자였다.
“취소할 수도 있어요?”
미경의 얼굴이 굳었다.
민재는 서하가 아니라 서류를 보며 답했다.
“의료적으로 중단해야 할 이유가 생기면 절차가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환자분이 단순히 마음을 바꿔 시간을 미루는 건 위험합니다.”
“몇 시간 전까진 제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지금은요?”
서하는 대답 대신 동의서를 접었다. 접힌 선이 자신의 서명을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살고 싶다고 말하기엔 아직 겁이 났고, 죽어도 괜찮다고 말하기엔 어머니의 손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수술 전 준비를 시작했다. 귀걸이와 목걸이를 빼고, 손톱에 남은 투명한 코팅까지 지워야 했다. 서하는 손가락을 내밀면서도 자꾸 휴대폰 쪽을 봤다.
경찰의 번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봉투.
강이준의 필체. 자신의 이름.“전화 한 통만 더 하면 안 돼요?”
간호사가 시간을 확인했다.
“짧게 하세요. 곧 이동합니다.”
서하는 경찰 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는 처음 받았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윤서하 씨?”
“그 봉투요. 제가 받을 수 있어요?”
“지금 바로는 어렵습니다. 사고 관련 물품 확인이 끝나야 합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요?”
“개봉 여부부터 확인 중입니다.”
“강이준 씨 상태는요?”
상대가 잠시 말을 멈췄다.
서하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그것도 못 알려줘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전화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보호자 측과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보호자.
그 말이 귀에 걸렸다.
이준에게도 지금 병원 복도 어딘가를 오가는 가족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휴대폰을 받고, 누군가는 사고 소식을 듣고, 누군가는 아직 그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을지도 몰랐다.
통화를 끊자 미경이 휴대폰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이제 그 사람 생각 그만해.”
서하가 피식 웃었다.
“삼 년 동안 안 했어.”
“거짓말하지 마.”
그 한마디에 웃음이 사라졌다.
삼 년 전 이준이 현관 앞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나를 미워해도 살아.
그때 서하는 문을 닫아버렸고, 그 뒤로 한 번도 그 문장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배신한 사람이 남긴 마지막 친절쯤으로 치부하면 됐다.
그런데 수술대에 오르기 직전이 되자 이상하게 그 말만 남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고, 살아 있으라고만 했던 사람.
간호사가 개인 물품 보관 봉투를 내밀었다. 휴대폰과 반지, 지갑이 차례로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수술 동의서 사본이 남았다.
“이것도 보호자분께 드릴까요?”
서하는 한 번 더 펼쳐봤다.
서명 옆에 적힌 시간이 보였다. 새벽부터 몇 시간 만에 삶이 여기까지 밀려와 있었다.
“제가 갖고 있으면 안 돼요?”
“수술실에는 가져갈 수 없습니다.”
서하는 종이를 미경에게 건넸다.
“버리지 마.”
미경의 눈썹이 움직였다.
“왜 버려.”
“혹시 내가 못 깨어나면.”
“그 말 하지 마.”
“그냥 갖고 있어.”
미경은 동의서를 접지 않고 그대로 가방 안쪽에 넣었다. 종이가 구겨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몇 번 펴는 모습을 보며 서하는 시선을 내렸다.
“엄마.”
“응.”
“그때 이준 씨한테 무슨 말 했어?”
미경의 손이 가방 지퍼 위에서 멈췄다.
“갑자기 그건 왜.”
“그냥.”
“지금 할 얘기 아니야.”
서하는 더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침대 난간을 만지작거렸고, 손톱 끝이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을 주고 있었다.
수술실 이동 안내가 들어오면서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침대 바퀴가 움직이자 천장의 불빛이 하나씩 뒤로 밀렸다. 복도 끝 자동문 앞에서 미경이 더는 따라오지 못했고, 서하는 손을 뻗다가 말았다.
“엄마.”
“응, 여기 있어.”
“내가 깨어나면.”
말을 잇지 못하자 미경이 몸을 숙였다.
“깨어나서 말해.”
서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구역 안으로 들어간 뒤 간호사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다시 확인했다. 알레르기 여부, 마지막 복용 약, 수술 동의까지 같은 질문이 반복됐고 서하는 기계적으로 답했다.
마취과 의료진이 손등의 주삿줄을 확인하는 동안 천장을 바라봤다. 여기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몸 안에는 지금과 다른 심장이 있을 것이다. 오래 병들어 제 몫을 못 하던 심장은 사라지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마지막 확인이 끝날 무렵 복도 쪽 문이 열렸다.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 두 명이 빠르게 들어왔고, 그중 한 사람이 민재에게 다가갔다.
“기증 심장 도착했습니다.”
서하의 손가락이 시트 위에서 멎었다.
민재가 가까이 와 마지막으로 이름을 확인했다.
“윤서하 씨.”
서하는 그를 봤다.
“이제 시작합니다.”
마취제가 혈관을 타고 들어오면서 시야 가장자리부터 흐려졌다. 마지막까지 들린 것은 의료진의 발걸음과 자신의 힘겨운 박동이었다.
곧 그 소리는 멈출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심장이 윤서하의 가슴에서 뛰고 있을 터였다.
만남 날짜가 정해진 건 이틀 뒤였다.오후 3시.해온대학교병원 본관 7층 기증자 가족 중재실.윤서하는 안내 문자를 받은 뒤에도 한동안 날짜만 들여다봤다.장소가 생기고 시간이 정해지자 갑자기 모든 것이 현실이 됐다.이제 기다리는 문제가 아니었다.가야 했다.그 문을 열면 지금까지 익명으로 존재했던 사람이 맞은편에 앉는다.그리고 어쩌면.강이준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추측이 아니게 될 수도 있었다.서하는 강태경에게 날짜를 알렸다.[다음 주 수요일에 만나기로 했어요.]전화가 바로 걸려왔다.“같이 갈까요?”“아뇨.”“혼자 괜찮겠습니까?”“형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태경이 잠시 말이 없었다.“왜요?”“상대가 누군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그런데 형이 나타나면 처음부터 답을 정해놓고 가는 것 같아서.”“알겠습니다.”“하린 씨한테도 말하지 마세요.”“그럴게요.”서하는 통화를 끊고 정하린과의 대화창도 열었다가 닫았다.누구도 데려가지 않기로 했다.태경도.하린도.이번만큼은 다른 사람의 기억과 표정을 먼저 보고 싶지 않았다.자신이 직접 만나고, 직접 들어야 했다.약속 당일.서하는 예정 시각보다 40분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7층으로 올라가기 전 1층 카페에 앉아 물만 조금씩 마셨다.휴대폰 화면에는 메모가 열려 있었다.확인할 것.기증자의 이름.가족이 알고 있는 기증 과정.편지를 쓴 이유.심장이 누구에게 갔는지 가족이 알고 있는 범위.적어놓고 보니 전부 질문 같지 않았다.답을 얻기 위한 장치 같았다.서하는 마지막 줄을 지웠다.그리고 새로 적었다.상대가 말하고 싶은 것부터 듣기.시간이 가까워지자 7층으로 올라갔다.지원 창구 담당자가 먼저 나와 있었다.“윤서하 님 맞으시죠?”“네.”“상대 가족도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별도 대기실에 계세요.”심장이 세게 뛰었다.서하는 가슴께에 손을 올리려다가 멈췄다.“혹시 지금이라도 취소할 수 있어요?”“네.”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상대방이 이미 와 있어도요?”“
“상대 가족도 최종적으로 만남에 동의했습니다.”전화를 끊은 뒤에도 윤서하는 한동안 길가에 서 있었다.기뻐해야 하는지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상대가 동의했다.그 사실만 확인됐을 뿐인데 머릿속에서는 벌써 강이준의 이름이 떠올랐다.서하는 곧바로 병원에 다시 전화했다.“아까 연락받은 윤서하인데요.”“네.”“최종 동의했다는 게 정확히 어디까지예요?”담당자가 기록을 확인했다.“직접 만남 절차를 진행하는 데 동의하셨다는 의미입니다.”“신원 공개도요?”“그건 아닙니다.”서하의 손가락이 가방끈을 놓았다.“그럼 아직 누군지는 모르는 거네요.”“네. 만남 진행과 신원 공개 범위는 별도로 다뤄집니다.”“가족도 제 이름 모르고요?”“현재 단계에서는 그렇습니다.”서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또 앞질러 갔다.상대가 만나겠다고 했다는 사실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준의 가족이 자신을 만나겠다고 한 것처럼 바뀌어 있었다.“날짜는 정해졌어요?”“조율해서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장소는요?”“그것도 함께 안내드릴 예정입니다.”서하는 더 묻지 않았다.전화를 끊고 휴대폰 메모를 열었다.확인된 것 — 상대 가족이 만남 절차에 동의함.확인되지 않은 것 — 신원. 기증자와 강이준의 동일성.그 아래 한 줄을 추가했다.기대와 사실 분리.다음 날 아침, 서하는 평소 시간에 복원실로 출근했다.작업대에는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고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찢어진 부분을 보강한 종이는 밤새 안정돼 있었고, 눌러둔 자리를 풀자 형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재훈이 옆에서 확인했다.“괜찮네.”“응.”“오늘은 다음 장?”“그 전에 이쪽부터.”서하는 붓을 들었다.손상된 부분을 확대해 보고, 보강지를 얇게 잘랐다.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조각을 맞추고.풀을 바르고.눌렀다가 기다리고.마르면 다시 확인하는 것.몇 시간 동안 그 순서만 반복했다.휴대폰은 작업대에서 멀리 두었다.병원 연락을 기다리는 건 맞았지만, 5분마다 화면을 확인한다
동의서에 서명한 다음 날부터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상대 가족이 최종적으로 만남에 동의할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윤서하는 병원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휴대폰부터 확인했고, 모르는 번호가 뜨면 손끝이 먼저 굳었다.하지만 이틀 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다.셋째 날 아침, 서하는 복원실로 출근했다.오랜만에 앉은 작업대 위에는 자신이 비운 동안 밀린 자료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서재훈이 장갑 한 상자를 옆에 놓았다.“오늘부터 제대로 하는 거지?”“응.”“힘들면 바로 말하고.”“알았어.”재훈은 더 묻지 않았다.서하는 작업복을 갈아입고 손을 씻은 뒤 자리에 앉았다.첫 작업은 오래된 고서 한 권이었다.본문 가운데 몇 장이 찢어져 있었고, 종이 가장자리는 손만 잘못 대도 더 갈라질 만큼 약해져 있었다.서하는 확대경 아래에 책장을 펼쳤다.찢어진 단면을 맞추고, 결을 확인했다.조금 어긋난 두 조각을 다시 떼어 위치를 조정했다.억지로 맞추면 흔적만 더 커졌다.손상된 종이는 손상되기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할 수 있는 건 더 망가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일이었다.서하는 얇은 보강지를 잘라 찢어진 부분 아래에 받쳤다.집중해야 했다.손끝이 몇 밀리미터만 빗나가도 안 됐다.한 장.다음 장.또 한 장.점심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재훈이 옆에서 말했다.“밥 안 먹어?”서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벌써?”“1시 다 돼가.”휴대폰을 확인했다.부재중 전화는 없었다.병원 메시지도 없었다.서하는 약부터 챙겨 먹었다.예전 같으면 연락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머릿속이 온통 상대 가족에게 가 있었을 것이다.누굴까.정말 이준의 가족일까.만나면 무엇을 물어봐야 할까.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다시 작업대로 돌아오자 찢어진 책장이 먼저 보였다.오후에는 시간이 더 빨리 흘렀다.풀의 농도를 맞추고, 들뜬 부분을 눌렀다가 떼고, 수분이 빠지는 정도를 확인했다.재훈과는 작업 얘기만 했다.“여기 너무 당기지 않았어
윤서하는 병원에서 받은 안내문을 밤새 세 번 읽었다.기증자 가족·수혜자 상호 만남 요청 안내.제목은 단순했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문장이 많아졌다.익명 유지.개인정보 보호.신원 공개 범위 선택.쌍방 동의.한쪽이 중간에 철회하면 절차 종료.서하는 마지막 항목에서 오래 멈췄다.상대방에 대한 신원 확인 요청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진행되지 않음.자신은 몇 달 동안 기증자의 흔적을 쫓았다.편지의 문장 하나를 붙잡았고, 사진을 좋아했다는 말에 강이준을 떠올렸으며, 비가 오면 카메라부터 감쌌다는 습관까지 확인했다.그때는 진실을 아는 일이 자신의 권리처럼 느껴졌다.이 심장을 받아 살고 있으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상대에게도 숨길 권리가 있었다.누군가를 잃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이름과 얼굴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다음 날 윤서하는 다시 지원 창구를 찾아갔다.담당자가 서류를 꺼냈다.“결정하셨나요?”“아직요.”서하는 의자에 앉았다.“제가 만남을 신청하면 상대 가족 이름을 바로 알게 되는 건 아니죠?”“네. 먼저 양쪽 의사를 확인합니다.”“상대가 동의하면요?”“그다음에도 공개 범위는 따로 정합니다.”“이름만 알 수도 있고, 직접 만날 수도 있고?”“작품 내 절차상 그렇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각각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진행됩니다.”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 병원에서 정한 절차는 분명했다.한쪽이 알고 싶다고 다른 쪽의 삶을 열어볼 수 없었다.“제가 특정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상관없어요?”“추측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죠.”“그 이름을 적으면요?”“그 이름이 맞는지 확인해드리지 않습니다.”“상대 가족에게도 제가 추측하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고요?”“네.”서하는 손가락으로 안내문 모서리를 눌렀다.“그럼 만나는 날까지도 모를 수 있겠네요.”“그럴 수 있습니다.”“직접 만나고도요?”“양쪽이 신원 공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가능합니다.”이상한 일이었다.몇 달 전의 자신이라면 답답해
당신도 원한다면요.윤서하는 세 번째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었다.바로 답장을 쓰지는 않았다.기증자 가족이 직접 만나고 싶다는 뜻처럼 보였지만, 그것부터 확인해야 했다.서하는 다음 날 병원의 기증자 가족 지원 창구를 찾았다.담당자는 편지를 확인한 뒤 말했다.“가족 측에서 만남 가능성을 먼저 열어둔 건 맞습니다.”“그럼 만나겠다고 한 거예요?”“아직 그렇게 확정해서 보시면 안 됩니다.”서하가 편지를 내려다봤다.“직접 만나고 싶다면 절차를 밟겠다고 썼는데요.”“수혜자가 원할 경우 정식 절차를 검토하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바로 신원을 공개하거나 연락처를 전달하는 방식은 아닙니다.”“그럼 지금도 누군지는 못 알고요?”“네.”“저쪽은 제가 누군지 알아요?”“아닙니다.”서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또 선이 있었다.편지가 세 번 오갔다고 해서 상대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가족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문장조차 그 선을 없애지는 못했다.“하나만 더 물어볼게요.”“말씀하세요.”“이 편지를 쓴 가족이 누구의 가족인지 제가 추측하고 있어도, 병원에서는 확인 안 해주는 거죠?”“그렇습니다.”“제가 이름을 말해도?”“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습니다.”서하는 준비했던 이름을 삼켰다.강이준.입 밖으로 꺼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이름이었다.병원을 나온 뒤 서하는 복원실로 가지 않고 근처 카페에 앉았다.가방에는 세 번째 편지가 있었고, 휴대폰에는 그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가슴 위를 지나가던 빛.서하는 사진을 다시 열었다.처음 봤을 때는 운명 같았다.아주 오래전의 이준이 자신도 모르게 미래를 찍어둔 것처럼.하지만 같은 필름 전체를 확인한 뒤에는 알고 있었다.앞 사진의 빛은 어깨에 있었고, 뒤 사진에서는 가슴 아래로 내려갔다.단지 몇 초의 이동.그중 한 장이 지금의 흉터와 겹쳤을 뿐이었다.서하는 사진 아래 메모장에 적었다.사진은 과거의 기록이지 미래의 예언이 아니다.한 줄을 더 썼다.심장은 기
사진 한 장이 자꾸 사람을 속였다.윤서하는 책상 위에 올려둔 인화 사진을 몇 번이나 뒤집었다가 다시 펼쳤다.창가에 서 있는 과거의 자신.가슴 한쪽을 비껴 지나가는 빛.지금 수술 흉터가 남은 자리와 거의 겹치는 위치.그것만 떼어놓고 보면 지나치게 절묘했다.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것처럼.강이준이 그 자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언젠가 자신의 심장이 멈추고, 다른 심장을 받아 살아남을 사람이라는 걸 사진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처럼.서하는 손끝으로 사진 모서리를 눌렀다.“미쳤네.”입 밖으로 나온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사진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같은 필름의 콘택트시트까지 확인했다.바로 앞 사진에서는 빛이 어깨에 있었고, 다음 사진에서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그 몇 초 사이 단 한 장.그 사진에서만 빛이 가슴 위에 머물렀다.증거는 오히려 명확했다.우연이었다.그런데 사람은 우연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했다.서하는 사진을 보고 있으면 자꾸 한 문장을 만들고 싶어졌다.그때부터 이미 이어져 있었던 거야.그러고 나면 곧바로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이준의 심장이 정말 자신의 몸 안에 있다면, 이 사진도 무언가의 예고였던 건 아닐까.서하는 의자를 뒤로 밀었다.그 순간 문이 열렸다.서재훈이 종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이거 어디 둘까?”대답이 없자 재훈이 책상 쪽을 봤다.사진을 발견했지만 묻지 않았다.서하는 그 침묵이 오히려 거슬렸다.“왜 아무 말도 안 해.”“뭘.”“사진.”재훈이 가까이 와서 다시 봤다.“어제 보여준 거네.”“이상하지 않아?”“뭐가.”“여기.”서하는 사진 속 자신의 가슴 부분을 가리켰다.“내 흉터 자리랑 겹쳐.”재훈은 몇 초 보더니 말했다.“그러네.”그게 전부였다.서하가 헛웃음을 냈다.“너는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들어?”“무슨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운명 같다거나.”재훈이 서하를 바라봤다.“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보이겠지.”그 말에 가슴이 찔렸다.“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