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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그날에도 당신이 있었다

Autor: Doong_E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25 18:20:38

"내가 모르는 네 이름이, 또 있어?"

전화기 너머로 날아든 강유헌의 서늘한 질문.

그 한마디는 해림이 단단하게 감춰두었던 과거의 문 앞까지 조용히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해림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잠시 호흡을 고른 뒤,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걸 당신이 알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자신이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그것을 강유헌에게 설명해 줄 의무는 없었다.

질문의 권리 자체를 차갑게 되돌려주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유헌은 방금 전처럼 '부부'라는 낡은 소유권의 언어를 다시 꺼내들지 않았다.

대신 그가 새롭게 파고든 것은, 두 사람만이 공유하고 있던 과거의 구체적인 '기억'이었다.

"3년 전, 해외 공급망 협상."

유헌이 툭 던진 한마디에 해림의 귓가로 과거의 서늘한 밤공기가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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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장례식 날, 전남편의 숙적과 결혼했다   제58화. 너무 가까운 두 이름

    "이런 우연이 몇 번까지 겹쳐야, 우연이 아니게 되는 걸까."휴대전화 너머로 유헌의 짙은 의심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해림은 그 거대한 추론 앞에서도 섣불리 무너지거나 서둘러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직접 증명하세요."해림의 목소리는 한 치의 떨림 없이 단호했다."내 입을 통해 억지로 정답을 확인하려 들지 말고요."그녀는 아니라고 정체를 부정하지도, 맞다고 자백하지도 않았다.확인되지 않은 빈칸은 오직 객관적인 증거로만 채우라는 해림의 뼈대 굵은 원칙. 그녀는 그 원칙을 유헌에게도 똑같이 들이밀며 가차 없이 전화를 끊었다.통화가 끊어진 뒤, 에이온 측의 움직임은 한층 더 기민하고 예리해졌다. 제로파트너스 법무팀으로 공식적인 추가 사실 확인 요청서가 날아들었다.해림은 모니터 화면에 차례대로 띄워진 에이온 측의 구체적인 요청 항목들을 말없이, 그러나 아주 예리한 시선으로 훑어내렸다.* 과거 해외 공급망 협상안 관련, 제로파트너스 측 최종 외부 전달 승인권자 확인.* ZERO 피드백 반영본의 실무 관리 주체 및 직전 승인 흐름 대조.앞서 ZERO가 관여했던 과거 프로젝트들을 하나씩 골라 확인하던 것보다도, 이번 요청은 훨씬 더 좁고 구체적이었다. 적어도 이 추가 요청서만 놓고 보면, 확인 범위는 이전보다 더욱 예리하게 좁혀져 있었다. 요청 항목은 도해림과 ZERO, 두 이름이 같은 업무 흐름 안에서 얼마나 가까이 맞물려 있었는지를 핀포인트로 확인하는 쪽으로 정확하게 모이고 있었다."대표님. 에이온 쪽에서 요청한 이 과거 버전들 말입니다."자료를 정리하던 팀원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ZERO 님의 검토 반영본 직전과 직후에, 대표님이 최종 송부를 승인하셨던 결재 로그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는데&hel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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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모르는 네 이름이, 또 있어?"전화기 너머로 날아든 강유헌의 서늘한 질문. 그 한마디는 해림이 단단하게 감춰두었던 과거의 문 앞까지 조용히 다가와 있었다.하지만 해림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잠시 호흡을 고른 뒤,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되물었다."그걸 당신이 알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자신이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그것을 강유헌에게 설명해 줄 의무는 없었다. 질문의 권리 자체를 차갑게 되돌려주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유헌은 방금 전처럼 '부부'라는 낡은 소유권의 언어를 다시 꺼내들지 않았다. 대신 그가 새롭게 파고든 것은, 두 사람만이 공유하고 있던 과거의 구체적인 '기억'이었다."3년 전, 해외 공급망 협상."유헌이 툭 던진 한마디에 해림의 귓가로 과거의 서늘한 밤공기가 스쳐 지나갔다.당시 에이온은 무리한 해외 진출로 인해 막대한 페널티를 물어야 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해외 쪽 조건이 안 맞아서 계약을 완전히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내가 집에서 그 얘기를 꺼냈던 날이 있었어."해림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분명 그런 날이 있었다.늦은 밤, 거실 소파에 앉아 피곤한 얼굴로 넥타이를 풀어 헤치던 유헌은 무심코 회사 사업의 벼랑 끝 위기를 입 밖으로 흘렸었다. 그때 해림은 그저 말없이 따뜻한 차를 내어주며 그의 곁에 앉아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유헌은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해결책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혼잣말을 던지듯 뱉어낸 무거운 투정이었을 뿐이다."그날 밤, 내가 그 문제를 밖으로 꺼낸 사람 중 하나가 너였어."유헌의 목소리가 한층 묵직하게 가라앉았다."그리고 며칠 뒤, 거짓말처럼 ZERO 쪽에서 협상안의 구조를 완전히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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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ERO는 언제부터 제로파트너스와 일했지?]해림은 진동이 멈춘 휴대전화 화면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화면 위로 떠오른 문자는 단순한 정보 확인이 아니었다. 질문의 방향만 놓고 보면, 강유헌이 ZERO와 도해림 사이의 거리를 본격적으로 재기 시작했다는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해림은 당황해서 가짜 연도를 꾸며내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인물을 급조하여 비겁한 거짓말로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건조하게 자판을 두드렸다.[ZERO의 개인 이력과 협업 시점은 이번 자료 공방에서 증명해야 할 확인 범위가 아닙니다. 제가 당신에게 그 부분까지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어요.]전송 버튼을 누른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짧은 진동과 함께 다시 답장이 날아왔다.[넌 ZERO를 직접 알고 있어?]해림의 손이 잠시 멈췄다. 과거, 강유헌은 자신이 고용한 외부 전략가 ZERO의 얼굴조차 몰랐기에 해림을 향해 'ZERO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동일한 남자가 훨씬 뒤늦게 해림을 향해 ZERO와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그 질문에도 답할 생각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딱 우리 회사가 보내준 시간순서 기록까지예요. 그 빈칸 너머의 진실을, 섣불리 내 대답을 통해 채우려고 하지 마세요.]해림은 불필요한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차갑게 선을 그었다. 확인되지 않은 빈칸을 감정이나 억측으로 채우지 않고 오직 객관적인 증거로만 상대하겠다는 단호한 선언이었다. 해림의 그 뼈대 굵은 경계선이 전송되자마자, 휴대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강유헌이었다."왜 말하지 않았어?"전화를 받자마자 유헌의 낮고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무엇을요?""네가 ZERO에 대해 이렇게까지 많은 권한과 업무의 흔적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야."해림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수없이 많은 밤을 새워가며 이름도 없이 에이온의 위기를 넘겨주었을 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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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다?"전화기 너머 유헌의 그 짧은 질문에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깊은 이질감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해림은 그 질문의 무게를 덜어내듯 차분하게 대답했다."네. 반론 자료의 기획부터 배포까지, 제가 전부 직접 통제했습니다. 왜요?"해림이 질문의 의도를 건조하게 되묻자,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짧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당장 '너 ZERO지?' 하고 몰아세우는 식의 성급한 확정은 돌아오지 않았다."…아니야."유헌이 낮게 중얼거렸다."추가로 확인할 게 생겼어."그는 끝내 질문의 끝을 맺지 않은 채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통화는 짧게 끝났지만, 그 직후부터 제로파트너스 내부에는 기묘한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에이온 측에서 과거 프로젝트 관련 자료에 대한 추가 확인 요청이 연달아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대표님. 에이온에서 또 과거 자료 열람 요청이 왔습니다.""또요?"보고를 받은 해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처음 한두 번은 외부로 터진 불법 반출 의혹을 법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정상적인 검증 절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번째, 네 번째 요청으로 이어지면서 요청되는 자료들의 성격이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해림은 에이온 측에서 요청한 과거 프로젝트 목록을 화면에 띄웠다.과거 에이온 해외 진출 사업의 리스크 검토 이력.당시 최종 승인 직전, 구조가 완전히 뒤집혔던 전략안.그리고,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가 해결된 채 통과되었던 신규 사업안들까지.구체적인 사업의 명칭이나 시기는 모두 달랐지만, 해림의 눈에는 그 복잡한 목록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거대한 뼈대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그것은 전부 과거 에이온이 해결하지 못한 위기에 처했을 때, 익명의 전략가 'ZERO'가 관여하고 피

  • 내 장례식 날, 전남편의 숙적과 결혼했다   제54화. 증명할 차례

    "그 'ZERO'라는 분… 지금도 그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까?"화면 너머 국제 투자사 담당자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해림의 손이 마우스 위에서 완전히 멎었다. 과거 자신이 묻어두었던 익명의 이름이, 타인의 입을 통해 현재의 자신에게 직격으로 날아든 순간이었다.하지만 해림은 아주 미세한 동요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표정을 갈무리했다."ZERO의 현재 활동 여부는 이 자리에서 제가 대신 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그녀는 철저하게 사실만을 말하되, 상대가 원하는 대답은 주지 않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선을 그었다."ZERO와 관련된 개인적인 답변은 이번 자료 검증과 별개의 문제니까요. 지금 우리가 확인해야 할 건, 당신들의 서버에 남아 있는 '시간'뿐입니다."담당자 역시 그 이상의 무리한 호기심을 파고들지는 않았다. 곧바로 당시 수신 기록과 초기 버전 식별 정보를 정리한 공식 자료가 제로파트너스 측으로 넘어왔다.증거 확보는 끝났다.이제 반격할 차례였다.해림은 곧바로 법무팀과 전략팀을 회의실로 소집했다. 그녀의 지시는 간단하고 명확했다."우리가 확보한 자료를 통째로 언론에 뿌리거나 감정적인 기자회견을 열지 마세요."전략 문서 전체를 무작정 대중에게 공개해 버리면 오히려 제3자 정보 유출이나 비밀 유지 의무 위반이라는 새로운 덫에 걸릴 위험이 컸다. 해림은 그런 뻔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문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부 덜어내고, 오직 '시간순서'만 공개하세요."해림이 화면 위로 세 가지 데이터를 나란히 띄웠다."첫째, 제로파트너스 내부의 초기본 생성 시점. 둘째, 국제 투자사 측의 최초 수신 시점. 그리고 셋째, 에이온 측이 주장하는 후속 버전과의 시계열 비교."누가 어떤 내용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

  • 내 장례식 날, 전남편의 숙적과 결혼했다   제53화. 바깥에 남은 원본

    해림은 전 직원의 증언으로 좁혀진 식별 정보를 바탕으로, 과거 에이온과 제로파트너스 사이의 관련 사업에 관여했던 국제 투자사의 당시 거래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다.화상 회의 화면 위로 단정한 차림의 외국계 투자 담당자가 나타났다. 그의 표정에는 반가움보다는 철저하게 계산된 거리감이 묻어 있었다."도해림 대표님. 현재 제로파트너스가 에이온 측 자료를 불법으로 반출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기사들은 저희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희 투자사는 귀사들 간의 법적 분쟁에 어느 쪽으로도 개입할 의사가 없습니다."차가운 선 긋기였다. 하지만 해림은 그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도와달라거나, 억지로 우리 편을 들어달라고 연락한 게 아닙니다."해림의 이성적인 목소리가 화면 너머로 차갑게 꽂혔다."당시 에이온과 제로파트너스, 그리고 귀사가 공유했던 프로젝트 자료와 관련해서, 오직 귀사 쪽 서버에 최종 보관된 수신 기록과 해당 버전의 식별값만 확인해 달라는 요청입니다."상대 측의 굳어 있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해림은 상대방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감정적인 호소나 무리한 법적 증언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받았고', '언제 보관했는지'에 대한 건조한 객관적 팩트 체크만을 요구했다. 빈칸을 감정이 아니라 증거로 채우려는 해림의 차가운 협상 방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잠시 후, 담당자는 화면 밖에서 당시의 투자 프로젝트 로그를 확인했다."…대표님 말씀이 맞군요."그의 목소리에 미세한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저희 측에 최초로 수신된 전략 자료의 초기 버전은, 에이온의 완성본이 아니라 제로파트너스 실무진이 작성한 형태 그대로 보관되어 있습니다."그 한마디로, 해림을 향한 거대한 공격의 전제 하나가 무너졌다.'제로파트너스가 에이온의 완성본을 나중에 몰래 훔쳐서 무단 활용했다'는 단순한 절도 프레임. 현재 분쟁 당사자가 아닌 외부 수신자의 서버에 남은 시간순서 기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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