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장례식장을 빠져나온 해림은 곧장 인근 호텔의 라운지로 향했다.
신원을 증명하기 전까지 머물 임시 거처와, 당장 움직일 최소한의 자금이 필요했다. 그녀는 지갑에서 익숙하게 플래티넘 카드를 꺼내 프론트 데스크 직원에게 건넸다.잠시 후, 단말기에 카드를 긁던 직원의 손이 멈칫했다.
"손님, 이 카드는 현재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한도 문제는 아닐 텐데요." 직원이 모니터를 힐끗 살피더니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했다. "그게…… '사망 고객'으로 분류되어 결제가 거절되었습니다."사망 고객.
해림의 입술 끝이 비틀렸다. 그녀는 카드를 돌려받고 휴대폰을 꺼내 주거래 은행 앱을 열었다. [접근 제한. 해당 계좌는 예금주 사망으로 인해 동결되었습니다.]신용카드뿐만이 아니었다.
개인 주식 계좌와 부동산 신탁, 심지어 강유헌 몰래 운영하던 비상금 계좌까지 모조리 막혀 있었다. 법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모든 재산은 즉시 권리 이동의 대상이 된다. 해림이 5년간 에이온모빌리티를 키워내며 쌓았던 막대한 지분과 자산이 이제는 '고인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강유헌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이었다.단순한 개인 자산의 동결이라면 예상했던 일이다.
그러나 해림의 시선이 휴대폰의 가장 깊은 곳, 철저하게 암호화된 특수 계좌 연동망으로 향했을 때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제로파트너스.' 강유헌조차 그 실체를 완벽히 모르는 해림의 가장 강력 무기였다.그런데 제로파트너스의 관리자 화면에 기이한 경고창이 떠 있었다.
[관리권 접근 이상. 권한 이관 절차 대기 중.]단순한 사망 처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해림이 죽었다는 사실을 기정사실화한 뒤, 제로파트너스의 법적 관리권까지 집어삼키려 들고 있었다. 빈칸을 감정으로 채우지 않는다. 해림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로그를 내려다보며 빠르게 계산을 시작했다. 당장의 현금 흐름이 막혔다. 자신의 이름을 온전히 되찾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손발이 묶인 셈이었다. 혼자 버티기 위한 구원자는 필요 없지만, 강유헌의 빈틈을 파고들 이해관계가 맞는 상대와의 거래는 필요했다.해림은 망설임 없이 휴대폰 화면을 전환해 한 사람에게 연락을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운지 입구에 서늘하고 묵직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남자가 나타났다.
해림의 부름을 받고 온 차서록이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걸음걸이로 다가온 그가 해림의 맞은편 소파에 자연스럽게 앉았다."먼저 연락할 줄은 몰랐습니다."
서록의 짙은 눈동자가 테이블 위에 놓인 해림의 정지된 카드를 힐끗 훑었다. "법적으로 사망한 사람의 재산은 하루아침에 주인을 잃기 마련이죠. 당장 묵을 곳도, 움직일 현금도 없을 텐데. 내 쪽에 안전한 거처가 있습니다. 필요한 법률팀과 자금도 모두 지원하죠."그것은 명백한 보호의 제안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잃은 여자에게 내미는, 거절하기 힘든 동아줄. 하지만 해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거절하겠습니다."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군요." "과거의 도해림은 누군가에게 의존했고, 그 대가로 모든 걸 빼앗긴 채 죽을 뻔했으니까요. 두 번 다시 내 생존을 남의 손에 맡길 생각 없습니다."지금의 해림에게 누군가의 조건 없는 도움은 여전히 종속과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경계를 다시는 남의 손에 맡길 생각이 없었다. 해림은 서록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자신의 제안을 거절당했음에도 서록의 표정에는 불쾌감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깊은 눈매에 묘한 흥미가 스쳤다."그럼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해림이 테이블 위로 상체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그녀는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기어코 상대와 동등한 테이블에 앉아 판을 쥐고 흔들려는 당사자였다."보호 말고요."
"그럼?" "거래."해림의 단호한 선언에 서록의 시선이 길게 머물렀다.
그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럼 구원이 아니라 거래를 하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강유헌의 고집스러운 목소리가 해림의 귓가에 맴돌았다.해림에게 그의 억지는 부부라는 관계를 지키려는 애원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소유물로서의 도해림을 놓지 않으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발버둥일 뿐이었다.해림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태성 측이 준비해 준 차를 타고 익숙한 고급 주택가로 향했다.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곳. 에이온모빌리티 대표의 사택이자, 5년 동안 해림과 유헌이 비밀스럽게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진짜 신혼집이었다. 법원이나 언론에는 철저히 숨겨진, 오직 두 사람과 극소수의 측근만이 아는 공간.도해림이 법적으로 죽었다 한들, 이 집의 보안 시스템과 비밀번호는 그녀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현관문 앞.익숙하게 도어록의 덮개를 올리고 비밀번호를 눌렀다.띠리릭, 찰칵.가벼운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해림이 천천히 거실로 들어섰다.자신이 직접 고른 거실의 샹들리에와 벽지의 질감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찰나에 불과했다. 해림의 발걸음이 거실 한가운데서 우뚝 멈췄다.공간의 분위기가 기묘하게 틀어져 있었다.벽에 걸려 있던 두 사람의 흑백 결혼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해림이 주로 앉던 소파 자리 옆, 늘 놓여 있던 찻잔 세트와 읽다 만 책들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시선은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향했다.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낯설고 이질적인 흔적들이 해림의 눈을 찔렀다.화장대 위.자신이 쓰던 스킨케어 병들이 있던 자리를, 낯선 브랜드의 화려한 화장품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의자에는 자신이 결코 입지 않는, 레이스가 달린 연분홍색 실크 가운이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다.그리고 방 한구석, 아직 다 치우지 못한 듯 쌓여 있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들.상자 겉면에는 굵은 매직으로 무심하게 적힌 글씨가 보였다.[도해림 개인 물품]해림은 그 상자들 앞에 섰다.자신이 쓰던 다이어리, 아끼던 만년필, 계절이 지나면 입으려고 잘 다려두었
"사망자는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태성 측 변호사의 무미건조한 대답이 법정 복도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묵직하게 떨어졌다.해림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방금 전까지 법정 안에서 문제의 유언장 효력을 박살 내고 집행을 정지시키며 끌어올렸던 승리의 감각이, 보이지 않는 법과 제도의 거대한 벽에 부딪혀 막혀버린 기분이었다.해림이 미간을 좁히며 곁을 걷던 변호사를 돌아보았다."불가능하다니요? 내가 이렇게 두 발로 멀쩡히 서서 숨을 쉬고,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도요? 방금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목격했을 텐데요.""물리적인 생존 여부와 법적인 소송 당사자 능력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변호사가 침착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짚었다. "현재 가족관계등록부상 도해림 씨의 기록은 일주일 전 제1연구소 화재 사고로 인해 '사망'으로 폐쇄된 상태입니다. 법원은 철저히 서류와 증거로만 판단합니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원고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상태로 이혼 소장을 제출해 봐야 당사자 적격 부존재로 즉각 각하될 겁니다.""그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합니까?""먼저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을 통해 본인의 생존부터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그 신원 회복 절차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죠?""상당히 복잡한 사안입니다.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이 도해림 씨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객관적 검사 자료가 필요하고, 추가적인 재조사 과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최소 수 주에서, 꼬이게 되면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몇 달.해림의 입술이 굳어졌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꼼짝없이 강유헌의 법적인 아내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자신을 맹렬한 불구덩이에 버려두고 다른 여자를 구하러 달려간 남자. 그리고 지나치게 빠른 사
법원 심문기일."신청인은 현재 법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은 고인과 동일인이라는 최소한의 신원 증명조차 마치지 못했습니다. 이는 당사자 적격이 없는 신원 미상자의 억지 주장에 불과합니다!"에이온 측 변호사의 날 선 목소리가 법정을 울렸다.강유헌은 변호인단 중앙에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세상이 도해림의 죽음을 확정 지었다는 사실을 앞세워, 에이온 측은 그녀의 당사자 자격부터 완전히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해림은 맞은편에서 그들을 무감하게 응시했다.그녀의 곁에는 차서록이 지원한 태성그룹의 최정예 법무팀이 포진해 있었다.해림 측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신청인의 신원 회복 절차는 별도로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본 심리의 핵심은 피신청인 측이 집행하려는 유언장 자체가 그 효력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없는 흠결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효력이라니요! 이미 필적 감정까지 완벽하게 마친 문서입니다!"에이온 측의 즉각적인 반발을 예상했다는 듯, 해림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녀가 단상 쪽을 향해 가볍게 고갯짓을 하자, 대형 스크린에 준비된 영상이 재생되었다.화면 속에는 과거의 도해림이 에이온 법무팀과 변호사 입회하에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본인 도해림은 향후 제로파트너스 지분 및 에이온 관련 핵심 특허 등, 중대한 권리 변경을 수반하는 모든 문서에 한하여 고유의 인증 규칙을 적용합니다.]영상 속 해림의 건조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법정 안을 채웠다.[단순한 서면 서명뿐만 아니라, 사전에 지정된 별도의 '음성 코드 파일'이 동시에 제출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권리 이전이나 유언장도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영상이 멈추자 법정은 찬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해림은 꼿꼿하게 등받이에 기댄 채 강유헌을 직시했다."피신청인 측이 제출한 유언장에는 제 서명만 있을 뿐, 이 필수 인증 규칙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습니다. 재판장님, 현재 유언장에 첨부된 음성 코드 파일이 존재합니까?"재판장이 굳은 표정으로 서류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해림은 미리 잡아둔 조용한 호텔 비즈니스 라운지로 향했다.수십 명의 눈앞에서 자신의 생존을 드러내고, 유언장 집행정지와 증거 보존을 요구한 직후였다. 턱끝까지 차올랐던 긴장감과 피로가 몰려왔지만, 해림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라운지의 묵직한 문이 열리고, 차서록이 들어왔다.두 사람은 앞서 이미 구원이 아닌 거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이제는 그 모호했던 구두 합의를 구체적이고 확실한 형태의 공동대응 계약으로 묶어낼 차례였다.서록은 맞은편에 앉자마자 곧바로 잘 정돈된 서류철 하나를 테이블 위로 밀어주었다."가장 시급했던 법무팀 구성이 끝났습니다. 유언장 집행정지 신청은 이미 들어갔고, 심리에 대비한 보완 자료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증거 보존 신청이 들어간 CCTV와 유품 자료들도 우리 쪽 보안팀이 확실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강유헌 측에서 함부로 손대지 못할 겁니다."건조하고 철저히 업무적인 말투였다. 해림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내민 계약 초안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자신이 법적으로 '살아있음'을 우선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행정적 절차, 위조 의혹이 제기된 서류들을 무효화할 법적 대응 시나리오, 그리고 당장 움직일 수 없는 해림을 대신할 막대한 자금과 인력 지원까지 완벽하게 짜인 판이었다."필요한 법률과 보안, 자료 추적까지 흠잡을 데 없군요."해림이 서류에서 눈을 떼고 서록을 똑바로 응시했다."하지만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죠. 당신이 원하는 조건부터 명확히 하죠."서록은 빙빙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해림의 직설적인 태도가 마음에 든다는 듯,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나에게는 태성그룹 관련 의결권이 필요합니다.""의결권이요?""태성 내부에 곧 치열한 표 대결이 벌어질 겁니다. 에이온모빌리티 쪽에 복잡하게
`故 도해림`TV 화면 아래로 무심히 흘러가는 붉은 자막을 보며, 해림은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화면이 까맣게 죽고 병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병원 침대에 기대앉은 해림의 눈동자는 어둠이 깔린 창밖을 향해 있었지만, 초점은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세상에서 완벽하게 지워졌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이렇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류상 도해림은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화재가 발생한 지 불과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 바깥세상은 그녀의 죽음을 너무도 빠르고 철저하게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그 기막힌 사실이 주는 충격은 이미 서늘한 이성 아래로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오직 지독한 의문뿐이었다.똑똑.규칙적인 노크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흐트러짐 없는 회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화재 현장 뒤편에서 쓰러진 해림을 수습해 이 완벽히 통제된 VIP 병실로 옮겼던, 그 정체 모를 검은 차량의 무리 중 한 명이었다.그는 해림에게 어떤 위로나 불필요한 질문도 건네지 않았다. 소리조차 내지 않고 다가온 그는 묵직한 서류 봉투 하나를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조용히 올려놓을 뿐이었다."지시받은 자료입니다. 본인의 사망 처리에 관한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남자는 고개를 가볍게 숙인 뒤,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세 걸음 뒤로 물러나 대기했다.해림은 테이블 위의 서류 봉투로 시선을 옮겼다. 겉면에 아무런 로고도 찍혀 있지 않은 매끄러운 황봉투.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누군가'가, 지금 해림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제공한 자료였다. 그들의 정보력과 행동력은 분명 보통의 수준이 아니었지만, 지금 해림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정체가 아니었다.
손이 떨어져 나간 허공을, 해림은 멍하니 바라보았다.강유헌의 다급한 뒷모습은 짙은 연기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매섭게 타오르는 붉은 화마와, 고막을 찢어대는 폭발음만이 남았다.버려졌다.5년을 남편으로 맹신했던 남자에게, 가장 절박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철저하게 버림받았다."하, 하아……."매캐한 연기가 폐부를 깊숙이 찌르자, 그제야 멈춰 있던 숨이 쿨럭이며 터져 나왔다. 배신감에 젖어 슬퍼하거나 절망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피부를 직접 핥아대는 듯한 뜨거운 열기가 해림의 생존 본능을 강제로 일깨웠다.무너진 잔해에 깔린 다리에서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이대로 강유헌과 민채령의 비극적인 사랑을 장식하는 불쌍한 희생양 따위로 남을 수는 없었다.해림은 이를 악물었다. 불길은 이미 복도 양쪽을 완전히 틀어막았고, 메인 방화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강유헌이 달아났던 중앙 계단 쪽도 불기둥이 솟구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밀폐된 지옥에서 질식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도해림이었다.그녀의 머릿속에 과거 자신이 직접 검토하고 추가를 지시했던 연구소의 도면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3층 C구역. 배기창과 연결된 외부 유지보수용 비상 통로.'일반 동선에는 없는, 오직 외벽 관리자들만이 사용하는 숨겨진 해치였다. 지금 위치에서 불과 십여 미터 떨어진 장비실 벽면 뒤에 그 통로가 있었다.해림은 불길 사이로 바닥에 뒹구는 굵은 철제 파이프 조각을 움켜쥐었다. 그것을 지렛대 삼아 자신의 다리를 짓누르는 잔해 틈새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으윽……!"온 체중을 실어 파이프를 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