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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로 지워진 이름 #1

مؤلف: 1727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7-10 14:36:12

[5년 전]

​저녁 식사 자리는 내내 위태로웠다. 툭 치면 깨질 것 같은 정적 속에서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만 날카롭게 울렸다. 

결국 소영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랑은 말이 안 통해. 정말 지긋지긋해, 강상수."

​소영은 짧은 비난을 남기고 먼저 식당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겨진 상수는 식어가는 음식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계산을 마치고 형 재현과 함께 사는 낡은 다세대 주택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희망퇴직 후 몇 달째 이어지는 재취업의 실패, 그리고 매일같이 이어지는 소영의 독촉. 

그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었던 조향 수업조차 소영은 '돈 안 되는 짓'이라며 혐오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에서 TV를 보던 재현이 고개를 돌렸다.

​"어, 왔냐? 왜 그래, 표정이 왜 이래? 또 소영이랑 싸웠냐?"

​"……아니, 별일 아니야."

​상수는 건조하게 대답하고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기어들어 갔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몇 번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는 문자를 보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조차 없었다. 

침대에 몸을 던진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8년이라는 시간이 마치 젖은 솜처럼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정적을 깨고 휴대폰이 진동했다. 소영이었다. 상수는 잠시 멈칫하다 전화를 받았다.

​[그만하자, 우리.]

​수화기 너머 소영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8년의 무게가 무색할 만큼 명료한 선언이었다. 

​[……듣고 있어? 우리 여기까지 하자고.]

​"……그래. 알겠어.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해."

​상수의 목소리는 평온하다 못해 무미건조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 같았다. 

소영은 그 짧은 긍정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상수는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멍한 시선이 허공을 헤맸다.

​'끝났다. 정말로.'

​심장 한구석이 뻥 뚫린 것 같다가도, 이내 기묘한 박동이 시작되었다. 

상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방문을 거칠게 열고 형이 있는 거실로 뛰어 나갔다. 

컵라면을 먹다 말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재현을 향해, 상수는 두 팔을 하늘 높이 번쩍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형! 나 해방이야! 진짜 해방이라고!" 💥

​"……뭐?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소영이가 나를 찼어! 방금 끝났다고! 세상에, 형, 이렇게 기쁠 수가 없어! 

나 이제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내 맘대로 자고, 내 맘대로 먹고, 내 맘대로 하고싶은 일할거야!"

​상수는 바닥을 구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이 너무 기괴하고 광기 어려서 재현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야, 야! 정신 차려! 너 진짜 헤어진 거 맞아? 

너 8년 동안 소영이 껌딱지로 살았잖아. 갑자기 왜 이래!"

​"껌딱지니까! 8년 동안 껌딱지라 그랬던 거야! 

이제 껌딱지 안 할래! 나 오늘부터 내 인생 살 거야!"

​상수는 형의 침대 위로 몸을 날려 대자로 뻗었다. 

8년 동안 소영의 스케줄과 그녀의 기분에 맞춰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던 몸이, 

이제야 비로소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며 온전한 자신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재현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지만,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동생이 그 관계 안에서 얼마나 지독하게 질식하며 버텨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 해방이다. 아주 잘했다, 이 자식아."

​상수의 연애는 소영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나뭇잎 같았다. 

데이트 코스는 항상 소영이 정했다. 

상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선택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상수야, 이번 주말엔 여기 가자. 인스타에서 봤는데 분위기 좋아."

"응, 좋아."

"여기 예쁜 카페 있는데, 너도 좋아할 거지?"

"응, 좋아."

​상수의 언어 사전에는 ‘좋아’라는 말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기념일이 되면 소영이 원하는 선물을 사야 했고, 대화의 주제 역시 소영이 결정했다. 

상수는 그저 소영이 원하는 반응을 적재적소에 내놓는 훌륭한 ‘거울’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에게 의견이란, 갈등을 만드는 불필요한 노이즈일 뿐이었으니까.

​대학 졸업 후, 취업 압박이 다가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영은 대기업의 안정적인 직장을 원했고, 상수는 소영이 ‘원하는 미래’를 향해 기계적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너는 안정적인 게 어울려. 내 남자친구는 대기업 다녔으면 좋겠어."

"…그럴까? 그러자."

​그렇게 상수라는 이름 위에는 ‘소영이 원하는 남자’라는 덧칠이 겹겹이 쌓여갔다. 

자신의 이름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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