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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Author: 루바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8 20:15:19

다음 날 아침, 고씨 저택은 이른 새벽부터 떠들썩했다.

하인들은 마당을 오가며 붉은 비단을 나르고, 처마 밑에는 혼례에 쓸 장식들이 하나둘 걸리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분주한 모습이었다.

신지완은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황후의 생신 연회가 아직 열릴지도 않았다. 조정에서 정식으로 교지를 내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벌써 혼례 준비라니.

‘이렇게까지 서두를 일이야?’

신지완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때 문밖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 소저, 안에 계시오?”

문을 열자 허리가 굽은 노파 하나가 서 있었다. 고씨 집안에서 오래 일한 하녀인 듯했지만, 신지완은 얼굴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감의 분부로 모시러 왔소. 따라오시오.”

신지완은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노파에게 이끌려 별채로 향했다.

방 안에는 붉은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장식들이 널려 있었다. 한쪽 탁자 위에는 자와 가위, 바느질 도구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노파는 그녀를 방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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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을 팔자, 장원랑은 미쳐 버렸다   26화

    혼례복이 완성되었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신지완은 하루 종일 노파의 곁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도왔다. 고명주와 체형이 비슷한 덕분에 치수를 새로 잴 필요는 없었다. 남은 비단을 적당히 자르고 서둘러 꿰매니, 해가 지기도 전에 옷 한 벌이 겨우 완성되었다.물론 제대로 된 혼례복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금실로 수놓은 장식은 거의 없었고, 옷자락의 마감도 거칠었다. 붉은 비단을 입은 여인은 분명 혼례를 앞둔 신부의 모습이었지만, 신지완은 자신의 얼굴에서 기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등불이 희미해진 복도를 지나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밤바람이 제법 차가웠다.정원을 가로지르던 신지완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뜰 한구석, 오래된 석탁 앞에 붉은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달빛 아래로 술병 몇 개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사내는 한 손에 술잔을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붉은 옷자락이 밤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김경란이었다.신지완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그 역시 혼례복을 입고 있었다.붉은 비단에 금실이 수놓인 옷은 고명주의 혼례를 위해 준비한 것일 터였다. 그러나 달빛 아래 드러난 그 옷의 빛깔은 신지완이 입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같은 붉은 비단.같은 혼례를 앞둔 밤.다만 그는 고명주의 신랑이 될 사람이었고, 그녀는 고재상의 첩이 될 사람이었다.신지완은 입술을 깨물었다.세상에 이렇게 잔인한 우연도 있을까.김경란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잔이 비자 곧바로 술병을 기울였다. 술이 넘칠 듯 찰랑거렸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신지완은 문득 오래전의 일을 떠올렸다.가난한 서생이던 시절, 김경란은 술을 입에 대는 법이 없었다. 술 한 잔 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책을 사겠다고 하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장난삼아 술을 권해도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웃기만 했다.그런데 장원 급제 후에는 달라졌다.신지완은 그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연회에서 억지로 잔을 비우는 모습도, 늦은 밤 홀로 술을 마시는 모습도

  • 몸을 팔자, 장원랑은 미쳐 버렸다   25화

    다음 날 아침, 고씨 저택은 이른 새벽부터 떠들썩했다.하인들은 마당을 오가며 붉은 비단을 나르고, 처마 밑에는 혼례에 쓸 장식들이 하나둘 걸리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분주한 모습이었다.신지완은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황후의 생신 연회가 아직 열릴지도 않았다. 조정에서 정식으로 교지를 내린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벌써 혼례 준비라니.‘이렇게까지 서두를 일이야?’신지완은 입술을 비틀었다.그때 문밖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신 소저, 안에 계시오?”문을 열자 허리가 굽은 노파 하나가 서 있었다. 고씨 집안에서 오래 일한 하녀인 듯했지만, 신지완은 얼굴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대감의 분부로 모시러 왔소. 따라오시오.”신지완은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노파에게 이끌려 별채로 향했다.방 안에는 붉은 비단과 금실로 수놓은 장식들이 널려 있었다. 한쪽 탁자 위에는 자와 가위, 바느질 도구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노파는 그녀를 방 한가운데 세우더니 다짜고짜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자, 옷부터 벗으시오.”신지완은 황급히 노파의 손을 쳐냈다.“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무슨 짓이라니? 혼례복을 맞추려면 치수를 재야 할 것 아니오.”노파는 오히려 당연한 일을 왜 묻느냐는 듯 눈을 흘겼다.“곧 대감의 첩이 되실 분이니, 혼례복 한 벌쯤은 있어야지. 소저도 이제 신분이 달라지는 셈이잖소. 기루에서 몸을 팔던 여인이 대감의 첩이 된다니, 그야말로 팔자가 핀 거지.”말끝마다 비웃음이 묻어났다.신지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면사 아래로 드러난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노파는 그런 그녀의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붉은 비단을 집어 들었다.“사실 이런 좋은 비단은 기루 출신이 입기엔 과분하지. 하지만 명주 아가씨께서 특별히 베푸신 은혜니 고맙게 여기시오.”“……고명주 아가씨가요?”“그렇소. 아가씨께서 장원랑과 혼례를 올리실 예정이라 혼례복을 준비하고 계시거든. 신랑 신부의 옷을 만들고도 비단이 조금 남았는데

  • 몸을 팔자, 장원랑은 미쳐 버렸다   24화

    병풍 너머로 맑은 피리 소리가 흘러나왔다.곧이어 거문고의 선율이 그 뒤를 따랐다.처음에는 서로 다른 두 악기의 소리였다. 그러나 몇 마디가 지나자 피리와 거문고는 마치 서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피리가 높이 오르면 거문고가 부드럽게 받쳐 주었고, 거문고의 선율이 잦아들면 피리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말 한마디 없이도 서로의 뜻을 알아듣는 연주였다.고명주는 병풍 뒤에서 눈을 크게 떴다.거문고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평소 음악에는 영 소질이 없던 그녀조차 넋을 놓고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연주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잊을 만큼 훌륭한 선율이었다.반면 병풍 밖에 서 있던 김경란은 거문고를 연주하는 신지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그녀는 여전히 같았다.거문고를 잡으면 온몸에서 빛이 나는 듯했다. 현을 짚는 손끝은 망설임이 없었고, 고개를 살짝 숙인 옆모습에는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고요함이 깃들어 있었다.오래전에도 그랬다.그는 한때 그녀의 연주를 듣기 위해 일부러 서재에서 나오곤 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거문고를 가르쳐 주던 시간도, 연주를 마친 뒤 자랑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도 여전히 생생했다.김경란의 입가에서 희미한 웃음이 사라졌다.그는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낮게 중얼거렸다.“……여전하군.”마침내 마지막 선율이 잦아들었다.정원에는 한동안 여운만이 남았다.최수아는 피리를 내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을 쏟아 냈다.“수아 언니?”병풍 뒤에서 고명주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최수아는 눈가를 훔치며 고명주에게 다가왔다.“명주 아가씨, 미안해요. 제가 그동안 아가씨를 잘못 알고 있었어요.”“네?”고명주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밖에서 들은 말만 믿고 아가씨를 편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봤어요. 그런데 오늘 연주를 듣고 나니 알겠어요. 아가씨가 얼마나 깊은 마음을 지닌 분인지…….”고명주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그녀는 거문고를 제대로

  • 몸을 팔자, 장원랑은 미쳐 버렸다   23화

    “나는…… 아직도 당신을 미워할 수가 없는데…….”신지완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김경란은 무언가를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그날 왜 자신을 떠났느냐고.그토록 사랑한다던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혼인서를 찢고 사라질 수 있었느냐고.수년 동안 가슴에 묻어 둔 질문이었다. 지금이라도 그녀를 붙잡고 답을 듣고 싶었다.그러나 이곳은 고재상의 집이었다.정원에서 나눈 대화가 누구의 귀에 들어갈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는 아직 밝혀야 할 의문이 남아 있었고, 고씨 가문 안에는 경계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무엇보다 신지완은 이제 고재상의 첩이 될 사람이었다.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를 따져 묻는 것은 그녀에게도, 자신에게도 위험했다.김경란은 끝내 질문을 삼켰다.대신 굳어 있던 팔을 조금 풀고, 그녀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그만 울어.”평소와 달리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신지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김경란은 잠시 망설이다가 소매로 그녀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손길은 놀랄 만큼 조심스러웠다. 마치 조금이라도 세게 건드리면 그녀가 다시 부서질까 두려운 사람처럼.그는 면사 아래로 드러난 젖은 눈가에 입술을 가볍게 가져다 댔다.너무나 짧고 가벼운 입맞춤이었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신지완의 숨이 멎었다.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모질게 몰아붙이던 사람이 맞는지 믿기 어려웠다.김경란은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네가 그때 무슨 이유로 나를 떠났든,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그의 목소리가 다시 차분해졌다.“기억해라. 네가 선택한 길이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때 네 입으로 좋은 날들을 보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신지완의 손끝이 움찔했다.오래전, 그녀가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김경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그렇다면 잘 살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서…… 네가 말한 그 좋은 날들을 내게 보여 줘.”그 말이 끝이었다.그는

  • 몸을 팔자, 장원랑은 미쳐 버렸다   22화

    “어서 병풍을 준비해! 가장 두껍고 틈이 없는 것으로 가져오너라. 밖에서 안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해!”고명주는 신이 나서 하인들에게 지시했다.“이번 합주만 무사히 끝나면 최수아도 더는 나를 무시하지 못하겠지.”그녀는 흥얼거리며 정원을 떠났다. 병풍을 고르는 일마저 직접 확인하겠다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잠시 후, 정원에는 신지완과 김경란만 남았다.신지완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예를 갖추었다.“장원랑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공손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김경란은 피식 웃었다.“신 소저, 아니…… 이제는 고 부인이라고 불러야겠군요.”신지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짝!날카로운 뺨 때리는 소리가 정원에 울려 퍼졌다.김경란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입술 끝이 터지며 붉은 피가 맺혔다.신지완은 떨리는 손을 내렸다.“이제 저를 고 부인이라 부르실 거라면…… 작은어머니라고 부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김경란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등으로 입술을 훔치자 손끝에 피가 묻어났다. 그는 붉게 물든 손가락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눈빛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좋습니다. 그렇게 부르길 원하십니까?”그가 성큼 다가왔다.신지완이 물러서기도 전에 김경란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그의 품 안에 거칠게 갇혔다.“최수아 앞에서 직접 말씀하시겠습니까? 청우루의 기녀가 되어 꽃처럼 이름을 팔았고, 이제는 아버지뻘도 넘는 사내의 첩이 되겠다고.”신지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최 아가씨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으시다면, 제가 마련한 방법을 따르십시오.”신지완은 그를 노려보았다.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날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면서도, 그는 이렇게까지 모질게 굴었다. 마치 그녀가 제 발로 타락을 선택하기라도 한 것처럼.“김경란……!”목소리가 떨렸다.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왜 자신을 이렇게까지 모욕하느냐고,

  • 몸을 팔자, 장원랑은 미쳐 버렸다   21화

    “혹시…… 우리가 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최수아의 물음에 신지완은 손끝을 움켜쥐었다.그녀가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정원 입구에서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명주 아가씨, 연습은 잘되고 있습니까?”김경란이었다.최수아는 그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반가운 기색은커녕 노골적인 불쾌함이 얼굴에 드러났다.“여기는 여인들이 연회에 올릴 악곡을 익히는 곳입니다. 외남이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어도 되는 곳인 줄 아셨나요? 참으로 염치도 없으시군요.”고명주의 얼굴이 굳었다.“수아 언니, 말씀이 조금 지나치신 것 같은데…….”“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최수아는 김경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가난한 서생이 장원급제했다고 하루아침에 예법까지 익히는 건 아닌 모양이네요.”김경란은 조금도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최수아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하긴, 예법을 모르는 것도 놀랍지 않네요. 옛날 신 선생의 따님이 그토록 진심을 다해 마음을 주었는데, 결국 그 마음을 헛되이 만들었으니까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다지요. 그분이 살아 계셨다면, 옛 정인을 이 꼴로 다시 만나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정원에 순간적인 침묵이 내려앉았다.신지완은 고개를 숙인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자신을 대신해 화를 내 주는 벗이 고마웠다. 그러나 그 입에서 자신의 옛이야기가 흘러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김경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면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인 자세와 굳게 움켜쥔 손끝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었다.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졌다.“최 아가씨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예를 갖추지 못했군요.”뜻밖에도 순순히 물러서는 대답이었다.“두 분의 연습을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명주 아가씨와 잠시 상의할 일이 있어 왔을 뿐이니, 최 아가씨께서는 먼저 쉬고 계시지요. 합주를 준비하시려면 기운도 아끼셔야 하지 않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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