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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Author: 알리사 제이
집에 돌아온 뒤, 결국 내 허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 맞았던 하반신 무통주사의 후유증이었다. 오래 전부터 남아 있던 합병증이었지만, 이번 발작은 유독 심했다.

눈앞이 하얗게 번질 정도의 통증이 척추를 따라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허리 근육은 돌처럼 굳어 버렸고,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진은 소파에 앉아 ‘월 스트리트 저널’을 읽고 있었다.

내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오자 그는 벌떡 일어나 달려왔고, 내가 바닥으로 쓰러지기 직전에 몸을 받아냈다.

그의 눈에는 당황과 걱정이 선명하게 어려 있었다.

“경은아! 무슨 일이야? 또 허리야?”

그 눈에 담긴 진심 어린 걱정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 20년 동안 우진의 다정함은 언제나 완벽해 보였다.

흠잡을 데 하나 없이.

“응... 상태가 안 좋아... 움직일 수가 없어...”

나는 이를 악문 채 겨우 말을 짜내듯 내뱉었다.

“당황하지 마. 지금 바로 응급실로 데려갈게.”

그는 마치 조금만 힘을 줘도 깨질 것 같은 도자기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나를 안아 올리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아에게만 지정해 둔 특별한 벨소리였다.

우진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거의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꺼낸 그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온 것은 울먹임이 잔뜩 섞인, 지나치게 나약한 목소리였다.

“오빠... 서류철에 손가락을 베였어. 피가 너무 많이 나...”

“아… 너무 아파... 나 이러다 과다출혈로 죽는 거 아니야?”

우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불과 몇 분 전, 내가 걷지도 못하는 모습을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창백한 얼굴이었다.

“지아야, 울지 마! 움직이지 말고 상처 부위를 눌러! 지금 바로 갈게!”

그는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그의 품에 기대어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 속에서 아주 잠깐 망설임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순식간에 결심으로 바뀌어 버렸다.

“지아가 다쳤어. 피도 많이 나고. 알잖아, 그 애가 아픈 걸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내가 가봐야 해.”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걷지도 못해. 고작 지아의 종이에 베인 상처 때문에 나를 두고 가겠다는 거야?”

우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말투는 마치 내가 괜한 억지를 부리는 사람인 것처럼 변해 있었다.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 네 허리는 만성질환이나 마찬가지잖아. 이런 일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수십 번은 겪었으면서.”

“방법 알지? 진통제 두 알 먹고 온열패드 올려놔.”

“근데 지아는 달라. 저쪽에는 혼자 있고, 지금쯤 패닉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근처 소파에 앉아 있던 아들 주원은 노이즈 캔슬링 게임용 헤드셋을 쓰고 있었는데도 언성이 높아진 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들은 헤드셋 한쪽을 들어 올리더니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제발 그렇게 유난 좀 떨지 마. 고모는 피를 흘리고 있다잖아. 그건 응급상황이라고. 엄마는 허리 때문에 죽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아프면 택시 불러서 응급실을 가. 아빠 시간 낭비 좀 그만하게 하고.”

딸 서윤 역시 휴대폰을 스크롤하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눈을 굴렸다.

“진짜 질린다. 엄마는 항상 고모랑 관심 경쟁하려고 하잖아. 솔직히 너무 한심해.”

남편의 선택.

아이들의 잔인함.

그들의 말은 무딘 칼날이 되어 내 심장을 천천히 긁어냈고, 마치 무뎌진 톱으로 살을 베어내듯 서서히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나는 우진의 소매를 붙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마음도 식어버렸다.

차갑고 단단한 돌처럼.

“그래. 가.”

우진은 내가 마침내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는 위로의 말 한마디조차 남기지 않고 곧바로 테슬라 키 카드를 집어 들고 현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결국 나는 혼자 고통을 견뎌야 했다. 문밖까지 기어 나가듯 몸을 끌고 나간 뒤, 스스로 호출한 택시를 기다리며 한참 동안 서 있어야 했다.

병원에서 진통제 주사를 맞고 처방약까지 수령한 뒤, 나는 VIP 진료실 입구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익숙한 뒷모습 하나를 발견했다.

우진이었다.

그는 마치 성물을 받들듯 경건한 손길로 지아의 손가락을 붙잡고 있었다.

그 손가락에는 조그마한 반창고 하나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상처 부위에 조심스럽게 입김을 불어주고 있었고, 그의 눈빛에서는 한없이 다정한 애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자... 이제 좀 괜찮아졌어? 내가 있잖아.”

복도 그림자 속에 서 있던 나는 눈시울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20년 전.

우리가 대학 시절 연인이었을 때, 나는 사과를 깎다가 손을 베인 적이 있었다.

그때 우진 역시 지금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눈가를 붉힌 채 내 손을 꼭 붙잡고 무려 10분 동안이나 상처에 바람을 불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었다.

“경은이의 손은 내가 잡아주기 위해 있는 거지, 다치라고 있는 게 아니야.”

그때 나를 향해 존재하던 그 모든 다정함, 그 하나의 우주와도 같았던 사랑이 이제는 다른 여자에게 완전히 옮겨가 버렸다.

진료실 안에서 지아는 우진의 가슴에 몸을 기대며 병약한 척하는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 때문에 이렇게 빨리 와줬네... 언니 화 안 낼까? 아까 허리 상태가 정말 안 좋아 보이던데...”

우진은 그녀의 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경은이 걱정은 하지 마. 그 사람은 18년 동안 전업주부였어. 능력도 없고, 현실과도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나 없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를 걸? 감히 화낼 생각도 못 할 거야. 나중에 선물 하나 사주면 금방 풀릴 거니까, 뭐.”

지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코트 안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역시 오빠가 최고야. 진심으로 날 생각해 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

나는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어 입안 가득 쇠 맛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아.

그래서였구나.

그의 눈에 비친 내 침묵과 인내는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존이었다.

그는 내가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존엄을 짓밟아도, 내 마음을 함부로 다뤄도, 나는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등을 돌려 그대로 걸어 나왔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지난 세월 동안 우진이 나에게 주었다는 ‘선물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가 내가 더 많은 빵을 구워주길 바라며 사준 최고급 키친에이드 믹서기.

설거지를 더 빨리 하라고 사준 산업용 식기세척기.

그리고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내밀었던 로봇청소기.

그것들은 선물이 아니었다.

나를 더 효율적인 가정부로 만들기 위한 도구들에 불과했다.

나는 두꺼운 검은색 공사장용 쓰레기봉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값싼 앞치마들, 할인점에서 사 온 주방용품들,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져주듯 건네던 약국 핸드크림들을 모조리 쓰레기봉투 안으로 쓸어 넣었다.

그 다음에는 안방으로 향했다.

옷장 깊숙한 곳을 뒤져 석사 학위증과 공인회계사 자격증, 그리고 이미 서명이 끝난 이혼 서류 사본을 꺼냈다.

나는 ‘이경은’이 단순한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라,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들을 정성스럽게 여행가방 안에 넣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진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들어온 그의 손에는 아이들을 위한 치킨과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서다가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현관에 놓인 거대한 검은색 쓰레기봉투와 여행가방을 든 채 서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뭐 하는 거야? 왜 주방 물건들을 다 버렸어?”

그는 다가오며 물었다. 목소리에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불안감이 스며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또 무슨 이상한 증상이라도 온 거야?”

나는 조용히 여행가방의 지퍼를 끝까지 잠갔다. 그리고 그것을 방 한구석으로 밀어 넣은 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집이 너무 어수선하더라고. 스트레스 받아서.”

내 목소리가 너무도 차분했기 때문일까.

우진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품고 있던 불안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내가 무엇을 버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신경 쓰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아직도 이 집 안에 있다는 사실.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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