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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Auteur: 순순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11-03 18:18:43

윤서하 시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갑자기 내 앞에 들이밀면 어떡해!”

“갑자기라니요! 우리가 결혼 서약을 나눈 순간부터 이미 이렇게 될 운명이었어요. 당신은 진작에 그 서약을 저버렸고요. 우리 둘 다 알고 있잖아요. 애초에 이 결혼은 이루어지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러니까 더는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가게 해 줘요!”

나는 분노에 몸까지 떨릴 지경이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럼 할아버지는?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이 결혼을 성사시킨 분과 상의조차 하지 않겠다는 거야? 할아버지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

나는 다시 몸을 돌려 강태준을 마주 보았다. 죄책감을 자극해 나를 붙잡으려는 그의 태도가 몹시 불쾌했다.

잠시 그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나를 그토록 아껴 주셨던 분이 내가 이혼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마음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들이 내가 자유를 찾는 데 걸림돌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내 행복을 희생할 생각은 없었다.

“할아버지와는 제가 직접 이야기할게요. 그러니까 당신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말을 마치고 다시 떠나려 했다.

하지만 강태준은 당연히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서하야, 난 서명 안 해! 그 빌어먹을 이혼 서류에 절대로 서명하지 않을 거야!”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속에 쌓인 분노를 터뜨렸다.

“왜 나를 놔주지 못하는 건데요?”

그는 고집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혼 서류에도 서명하지 않을 거고, 네 사직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회사에는 회사의 규정이 있어. 너도 그걸 따라야 해. 특히 회사에는 네가 처리해야 할 일이 아직 산더미처럼 남아 있어. 내가 너한테 월급을 주는 건 네가 마음대로 그만두라고 주는 게 아니야! 사전 통보도 없이 네 마음대로 사직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았다.

그의 이기적인 태도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모습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서연 씨가 있잖아요?”

나는 곧장 반문했다.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뜻이야?”

“모두가 한서연 씨를 좋아하잖아요. 똑똑하고 예쁜 데다 당신 일까지 대신 처리해 줄 수 있죠. 아, 맞다. 그 여자는 당신 아이까지 임신했잖아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겠어요?”

서미경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곧 손주가 생긴다는 사실을 그녀도 방금 알게 된 모양이었다.

“태준아, 정말이니? 네게 아이가 생긴 거야?”

강유진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강태준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줄곧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하야, 나와 한서연 사이에 있었던 일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그저……”

“그 여자 변명은 할 생각도 하지 마! 그 여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누가 신경 쓴다고? 한서연이야말로 네가 진작에 만났어야 할 여자야. 진짜 내 며느리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애라고!”

강태준의 어머니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는 그런 시선에도 익숙했다.

나는 그저 강태준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모두가 한서연을 원했다. 강태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사실조차 부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서하야,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사고나 다름없었다고.”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마치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그때 당신은 나와 관계를 맺은 게 실수였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내가 당신과 자려고 약까지 먹였다고 확신했어요. 태준 씨, 대체 뭐가 달라진 거예요? 지금 내가 보는 건 위선자이자 비겁자일 뿐이에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만 하잖아요.”

이번에는 몸을 돌려 그에게 등을 보인 뒤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서하야! 서하야, 내가 좋게 말할 때 당장 돌아와! 서하야, 신께 맹세하는데 네가 저 문을 나서는 순간, 무릎 꿇고 빌어도 다시는 받아 주지 않을 거야! 넌 내가 필요해, 서하야.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고 살아갈 수도 없잖아!”

강태준이 내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오만한 말들은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만 더 굳혀 주었다.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말을 전부 외면한 채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평온과 자유를 향해 걸어 나갔다.

다시는 그런 비참한 삶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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