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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면 손끝에 감각이 남는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 밤까지는.
윤제니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따뜻했다.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손에 들린 과도의 끝에서도 피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툭.
툭.
새하얀 거실 바닥에 붉은 점이 번졌다.
그리고 제니의 바로 앞에는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강수혁.
오늘 처음 본 남자였다.
“하…….”
제니가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토해냈다.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제니는 거실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현관문은 분명 잠겨 있었다.
창문도 닫혀 있었다.
그런데 낯선 남자가 너무도 태연하게 소파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셔츠.
유난히 창백한 얼굴.
그리고 자신에게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던 시선.
제니가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
그 말과 함께 다가오는 남자가 무서워 제니는 주방으로 도망쳤다.
손에 잡힌 것이 과도였다.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제니가 휘두른 칼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정확히 심장이 있는 자리였다.
“……죽었어?”
제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수혁의 눈은 감겨 있었다.
제니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가락을 그의 코 아래에 가져갔다.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목에 손을 댔다.
맥박도 없었다.
“미쳤어…….”
제니가 뒤로 주저앉았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경찰.
신고해야 한다.
정당방위였다고 말하면 된다.
이 남자가 먼저 집에 침입했다고.
제니는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수혁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제니의 몸이 굳었다.
“……뭐야?”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제니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결국 다시 수혁의 목에 손을 댔다.
차갑다.
아까보다 훨씬 차가웠다.
맥박은 여전히 없었다.
제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그때 집 안의 불이 꺼졌다.
“아!”
순식간에 거실이 어둠에 잠겼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만 바닥을 비추었다.
제니는 휴대전화 손전등을 켰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없어.”
강수혁이 사라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 사람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는 피만 남아 있었다.
제니가 다급하게 거실을 비췄다.
소파 뒤.
주방.
현관.
어디에도 없었다.
현관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말도 안 돼.”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사라져.
제니는 급히 방문을 모두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결국 경찰에 전화를 걸었지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침입자는 사라졌다.
시체도 없었다.
남아 있는 건 거실에 흥건한 피와 피 묻은 칼뿐이었다.
제니는 신고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바닥을 다시 내려다봤다.
이상했다.
피가—
사라지고 있었다.
닦이는 것이 아니었다.
검붉은 핏자국이 바닥으로 스며들듯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제니가 한 걸음 물러났다.
몇 분 뒤.
마지막 붉은 흔적마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은 것은 제니의 손에 묻은 피뿐이었다.
그날 밤 제니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보조 잠금장치까지 걸었다.
창문도 전부 잠갔다.
새벽이 가까워졌을 무렵에야 침대에 몸을 누였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계속 수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칼이 들어가던 순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의 수혁은 고통스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웃었던 것 같다.
제니가 눈을 떴다.
“미쳤나 봐.”
그때.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제니는 숨을 멈췄다.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오전 12시 03분.
딩동.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제니는 침대에서 내려와 천천히 현관으로 향했다.
손에는 아까 그 과도를 들었다.
도어록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제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검은 셔츠.
창백한 얼굴.
강수혁이었다.
몇 시간 전 자신의 손으로 심장을 찔러 죽인 남자.
그가 멀쩡하게 문밖에 서 있었다.
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치 화면 너머의 제니를 정확히 바라보는 것처럼.
그리고 웃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짝 드러났다.
“윤제니.”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제니는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수혁이 문에 손을 올렸다.
똑.
똑.
두 번의 노크.
“문 열어.”
“…….”
“나 확인해야 하잖아.”
제니가 떨리는 손으로 과도를 움켜쥐었다.
“뭘…… 확인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수혁이 아주 낮게 웃었다.
“이번에도 네가 날 죽일 수 있는지.”
제니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 순간 수혁의 붉은 눈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나는 네가 죽인다고 죽는 인간이 아니거든.”
잠시 후.
현관문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니는 숨을 죽인 채 화면을 바라봤다.
수혁이 사라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문 같은 건 잠가 봐야 소용없어.”
제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 현관 밖에 있던 강수혁이—
어느새 그녀의 거실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붉은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곳.
제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재희의 편지를 읽는 순간, 두 번째 단계는 되돌릴 수 없게 된다.]제니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또 알고 있어.”수혁의 표정이 싸늘해졌다.“편지까지.”도겸도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이건 이상한데.”“뭐가?”“재희가 편지를 남겼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수혁이 즉시 물었다.“누가 아는데.”“나.”“그리고.”도겸이 잠시 침묵했다.“재희.”“죽은 사람 빼고.”“그게 전부야.”제니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당신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그래서 나도 기분이 더러운 거야.”도겸이 휴대전화를 바라봤다.“누군가 내가 가진 기억까지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수혁이 손을 내밀었다.“주소.”“뭐?”“편지 있는 곳.”“문자 못 봤어?”“봤어.”“읽으면 되돌릴 수 없다잖아.”수혁이 차갑게 웃었다.“누군지도 모르는 놈이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거야?”도겸이 입을 다물었다.제니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가자.”“제니.”수혁이 그녀를 돌아봤다.“괜찮겠어?”“여기까지 와서 안 읽는 게 더 이상해.”“두 번째 단계가 뭔지도 몰라.”“그래서 읽어야지.”제니가 수혁의 가슴을 바라봤다.조금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었다.“재희는 당신 심장이 다시 뛰는 날 편지를 주라고 했어.”“그래.”“그럼 지금 벌어지는 일을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제니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내 심장까지 이상해진 이유도 적혀 있을 수 있어.”수혁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대신 도겸을 바라봤다.“안내해.”도겸이 데려간 곳은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다.수혁이 건물을 보자 걸음을 멈췄다.“여기 아직 있었어?”“아는 곳이야?”제니가 물었다.수혁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재희가 살았던 집이야.”제니의 시선이 집으로 향했다.백이십 년 전의 집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는 없었다.여러 번 수리한 흔적이 보였다.그런데 이상했다.처음 보는 곳인데.낯설지가 않았다.“나 여기
[다음에는 윤제니의 심장이 멈춘다.]제니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이건 또 무슨 소리야.”수혁이 휴대전화를 가져갔다.메시지를 읽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누가 보내는 거든 찾아내야겠어.”“아까 도겸이 보낸 건 아니라며.”“그래서 더 문제야.”수혁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우리가 여기서 뭘 했는지 실시간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제니가 멈칫했다.심장이 뛰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분 전이었다.그 사실을 아는 건 이 방에 있던 사람들뿐이었다.제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도겸에게 향했다.도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왜. 또 나야?”“당신 아니라고 어떻게 믿어?”“내가 보냈으면 굳이 부정할 이유가 없지.”“그건 당신 생각이고.”“둘 다 그만해.”수혁이 끼어들었다.그리고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사진.벽의 문양.깨진 창문.그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천장 구석.수혁이 순식간에 손을 뻗었다.우두둑.벽 일부가 뜯겨 나갔다.그 안에서 작은 검은 물체가 떨어졌다.제니의 눈이 커졌다.“카메라?”도겸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송신 장치까지 붙어 있어.”제니의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럼 계속 보고 있었던 거야?”“아마도.”수혁이 카메라를 빼앗아 손안에서 부숴버렸다.“미친 새끼.”“그렇게 부수면 추적 못 하는데.”도겸이 말했다.“내가 알아서 찾아.”“성질은 백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서도겸.”“알았어.”제니는 다시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두 번째 단계.자신의 심장이 멈춘다.“수혁.”“왜.”“당신 심장이 뛰기 시작한 거랑 내 심장이 멈춘다는 게 연결된 걸까?”수혁의 표정이 굳었다.“아니야.”“왜 그렇게 확신해?”“확신하는 게 아니라.”수혁이 제니를 똑바로 바라봤다.“그렇게 안 되게 할 거야.”“방법도 모르잖아.”“찾으면 돼.”“그전에 멈추면?”“윤제니.”목소리가 낮아졌다.제니는 입을 다물었다.수혁의 얼굴이 생각보다 심각했다.“그
“모든 뱀파이어를 바꿀 수 있는 피였으니까.”제니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내 피가?”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웃었다.“그래.”수혁이 그의 목을 더 세게 눌렀다.“입 닥쳐.”“왜? 이제는 알아야지.”남자의 붉은 눈이 제니를 향했다.“백이십 년 전에 윤재희의 피를 노린 게 누군지.”“우리 모두라고 했지.”제니가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남자가 웃었다.“인간이 되고 싶은 놈도 있었고.”그의 시선이 수혁의 뛰는 가슴으로 향했다.“죽은 몸을 되살리고 싶은 놈도 있었지.”“그만하라고 했다.”수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우두둑.“윽…….”“수혁.”제니가 불렀다.수혁이 멈췄다.죽이지 마.이번에는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다.그런데—수혁이 천천히 제니를 돌아봤다.“……방금 너였어?”제니도 놀랐다.“들렸어?”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표식이 연결된 뒤로 서로의 목소리가 머릿속까지 들리고 있었다.도겸이 미간을 찌푸렸다.“그것까지 연결됐다고?”제니는 다시 남자를 바라봤다.“윤재희는 어떻게 죽었어?”남자의 웃음이 사라졌다.“그건 나도 몰라.”“거짓말.”“난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어.”제니가 멈칫했다.“그럼 어떻게 알아?”“남아 있는 기록이 있으니까.”수혁의 표정이 변했다.“무슨 기록?”“모르는 척하지 마.”남자가 수혁을 올려다봤다.“윤재희가 죽던 날, 그 피를 마신 뱀파이어들이 있었다는 기록.”제니의 얼굴이 굳었다.“한 명이 아니었어?”“아니.”남자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재희의 몸에서 피가 거의 남지 않았다고 했어.”순간.수혁의 손이 멈췄다.제니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분노보다 먼저 스친 감정.충격이었다.“당신도 몰랐어?”“재희를 발견했을 때는…….”수혁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이미 늦었어.”도겸이 낮게 말했다.“그건 사실이야.”제니가 그를 돌아봤다.“당신도 있었어?”“수혁과 같이 재희를 찾고 있었어.”“그럼 누가 죽였는지는?”“찾지 못
“살아 있는 뱀파이어야.”낯선 남자의 말이 떨어진 순간.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제니는 수혁의 등을 바 라봤다.심장이 뛰고 있다.체온도 생겼다.그런데 붉은 눈도, 송곳니도 그대로였다.“그게 뭔데?”제니가 물었다.서도겸이 낮게 대답했다.“나도 처음 봐.”“처음?”“뱀파이어는 죽은 몸이야. 심장은 뛰지 않아.”도겸의 시선이 수혁에게 향했다.“그런데 저놈은 지금 살아 있어.”앞에 서 있던 뱀파이어가 웃었다.“그래서 소문이 사실이었던 거군.”수혁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무슨 소문.”“백이십 년 전부터 있었어.”남자가 제니를 바라봤다.“특별한 피를 가진 인간이 있다고.”수혁이 즉시 시야를 가렸다.“보지 마.”“그 피를 마시면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난다고 했지.”“닥쳐.”“다들 전설이라고 생각했는데.”남자의 송곳니가 드러났다.“진짜였네.”그가 움직였다.순간 수혁도 사라졌다.쾅!두 사람이 벽에 처박혔다.제니가 숨을 삼켰다.수혁이 남자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하지만—“……뭐야.”수혁의 표정이 굳었다.남자가 웃었다.“느려졌네?”수혁의 팔을 잡아 그대로 던졌다.쾅!“수혁!”제니가 달려가려 하자 도겸이 막았다.“가지 마.”“놔!”“지금 네가 움직이면 셋 다 너한테 붙어.”나머지 두 뱀파이어의 시선은 이미 제니에게 고정돼 있었다.수혁이 천천히 일어났다.입가에 피가 맺혔다.제니의 얼굴이 굳었다.수혁이 피를 흘리는 모습.처음이었다.“인간에 가까워진 만큼 약해진 건가?”남자가 비웃었다.수혁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한 번 이겼다고 신났네.”“강수혁.”“왜.”수혁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한 번 더 해봐.”남자가 달려들었다.수혁이 피하려 했다.그런데 이전만큼 빠르지 않았다.남자의 손이 수혁의 목을 움켜쥐었다.“수혁!”그 순간.제니의 손목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붉은 표식이 빛났다.동시에 수혁의 가슴도 붉게 빛났다.쿵!수혁의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제니의 심장도 같은
쿵.쿵.제니의 손바닥 아래에서 분명한 박동이 느껴졌다.“진짜 뛰어.”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낯설 정도로 굳어 있었다.“이게 어떻게…….”서도겸이 빠르게 다가왔다.수혁의 손목을 잡으려는 순간.탁.수혁이 그의 손을 쳐냈다.“건드리지 마.”도겸의 눈이 가늘어졌다.“힘은 남아 있네.”“뭐?”“심장이 뛰기 시작했다고 바로 인간이 된 건 아닌 것 같다고.”제니가 조금 전 본 기억을 떠올렸다.네 피는 강수혁을 인간으로 만드는 피야.“아니야.”두 남자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내가 본 기억에서는 분명히 그랬어.”“뭐라고?”“재희한테 어떤 여자가 말했어.”제니가 수혁을 바라봤다.“내 피가 당신을 인간으로 만든다고.”침묵이 흘렀다.수혁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여전히 창백한 피부.송곳니도 그대로였다.붉은 눈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별로 인간 같지는 않은데.”“시간이 필요한 거 아닐까?”제니가 말하자 도겸이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왜?”“뱀파이어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피 같은 건 들어본 적 없어.”“그럼 방금 이건 뭔데?”“그러니까 문제지.”도겸이 제니를 바라봤다.“네 피가 정확히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니까.”그 순간 수혁의 몸이 휘청거렸다.“수혁!”제니가 급히 붙잡았다.수혁의 체온이 이상했다.차갑지 않았다.“당신 몸…….”제니가 그의 목에 손을 댔다.미약하지만 분명한 온기가 느껴졌다.수혁의 표정도 변했다.“따뜻해?”“조금.”수혁이 자신의 목을 짚었다.그러다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왜 그래?”“시끄러워.”“뭐가?”“네 심장 소리.”제니가 굳었다.“내 거?”“너무 크게 들려.”수혁의 눈이 다시 붉어졌다.제니의 목.손목.그리고 손가락의 상처로 시선이 차례로 움직였다.“피 냄새도.”수혁이 이를 악물었다.“아까보다 더 심해.”제니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수혁도 동시에 뒤로 물러났
“내가 네 피를 마시는 순간.”수혁의 송곳니가 선명하게 드러났다.“이번에는 정말 멈추지 못할 수도 있어.”제니는 휴대전화 화면을 다시 봤다.[피를 나누면 기억이 열린다.]“그럼 안 하면?”“뭐?”“기억을 못 보는 거잖아.”“그게 낫지.”수혁은 단호했다.“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충분해.”“나는 아닌데.”“윤제니.”“백이십 년 전에 내가 왜 당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누가 재희를 죽였는지, 왜 내 피 때문에 뱀파이어들이 찾아오는지.”제니가 손목의 표식을 들어 보였다.“이것도 아직 제대로 모르잖아.”“그래도 네 피를 마시는 건 안 돼.”“조금만 마시면?”“양의 문제가 아니야.”수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네 피 앞에서는 내가 어디까지 망가질지 나도 몰라.”서도겸이 두 사람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수혁의 시선이 날카롭게 돌아갔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한 방울이면 될 수도 있어.”“닥쳐.”제니가 도겸을 바라봤다.“한 방울?”“메시지가 사실이라면 중요한 건 흡혈이 아니라 피를 나누는 행위야.”“확실해?”“확실한 건 없어.”도겸이 벽의 문양을 바라봤다.“하지만 표식이 반응하는 걸 보면 가능성은 있지.”제니는 잠시 고민하다 손가락의 밴드를 바라봤다.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해보자.”“안 돼.”“수혁.”“다른 방법 찾아.”“언제?”제니가 수혁을 똑바로 바라봤다.“또 누가 내 집에 들어오고, 또 뱀파이어가 찾아올 때까지?”수혁은 대답하지 못했다.“난 계속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하고 싶지 않아.”제니가 밴드를 천천히 떼었다.희미하게 아물었던 상처가 벌어지며 작은 핏방울이 맺혔다.순간.수혁의 눈이 새빨갛게 변했다.“제니.”“한 방울만.”“치워.”그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당장.”제니는 물러서지 않았다.“나 믿어.”수혁이 헛웃음을 흘렸다.“지금 제일 믿으면 안 되는 게 나야.”“그래도.”제니가 손을 내밀었다.“당신은 지금까지 참았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