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02: 죽지 않는 남자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7 18:45:38

“그러니까 문 같은 건 잠가 봐야 소용없어.”

윤제니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현관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도어록도, 보조 잠금장치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강수혁은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몇 시간 전 제니가 심장을 찔러 죽인 모습 그대로.

아니.

정확히는 그때보다 훨씬 멀쩡했다.

검은 셔츠에는 핏자국 하나 없었다.

가슴에도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단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눈이었다.

붉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만큼.

“오지 마.”

제니가 과도를 앞으로 내밀었다.

수혁의 시선이 칼끝으로 내려갔다.

“그거 또 쓰려고?”

“오지 말라고 했어.”

“알아.”

“알면 나가.”

수혁이 웃었다.

“싫은데.”

제니는 칼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수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

“오지 마!”

이번에는 정말로 칼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제니가 결국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 수혁이 사라졌다.

“……!”

눈앞에 있던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

제니의 손목이 뒤에서 붙잡혔다.

“너무 느려.”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제니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차가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놔.”

“싫어.”

“경찰 부를 거야.”

“불러.”

수혁은 아무렇지 않았다.

“경찰이 오면 당신부터 잡혀가.”

“왜?”

“내가 당신을 죽였으니까.”

그 말에 수혁이 낮게 웃었다.

“시체도 없는데?”

제니의 입이 다물렸다.

“피도 없어졌고.”

“…….”

“칼에 묻었던 내 피도 지금쯤 없어졌을 거야.”

제니의 시선이 손에 들린 과도로 향했다.

분명 붉은 피가 묻어 있었던 칼날이 깨끗했다.

제니의 얼굴이 굳었다.

수혁이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제니는 곧바로 몸을 돌려 그에게서 떨어졌다.

“당신 뭐야?”

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 아니지?”

그제야 수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알아?”

“대답해.”

수혁이 천천히 제니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제니가 물러나지 않았다.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알아야 했다.

수혁은 제니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하나.

둘.

가슴이 드러났다.

제니가 숨을 삼켰다.

칼로 찔렀던 자리였다.

그런데 상처가 없었다.

흉터조차 없었다.

“분명히…….”

제니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차가웠다.

살아 있는 사람의 체온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 박동이 없었다.

제니가 황급히 손을 거뒀다.

“심장이…….”

“안 뛰어.”

수혁이 대신 말했다.

“그럼 어떻게 살아 있어?”

“살아 있다는 표현이 맞을까?”

수혁이 고개를 숙였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제니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수혁이 그녀를 따라왔다.

“영화에서 본 적 없어?”

“뭐를.”

수혁이 입술을 살짝 벌렸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제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 하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이미 두 번이나 상식을 무너뜨렸다.

“뱀파이어……?”

“정답.”

수혁은 너무도 태연했다.

제니는 허탈하게 웃었다.

“미쳤어.”

“반응이 그것뿐이야?”

“세상에 뱀파이어가 어디 있어.”

“네 앞에.”

“장난하지 마.”

“심장도 안 뛰고, 죽지도 않고, 문을 열지 않고 들어왔는데도?”

제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혁의 붉은 눈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 순간 제니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수혁의 시선이 조금 전부터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목.

정확히는 목덜미였다.

제니가 반사적으로 목을 가렸다.

수혁의 표정이 굳었다.

“왜 그렇게 봐?”

대답이 없었다.

“내 피 마시려고 온 거야?”

수혁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나 제니는 보았다.

그의 눈에 떠오른 강렬한 갈망을.

수혁이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

“거짓말.”

“네 피를 마실 생각 없어.”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서?”

수혁의 턱이 단단해졌다.

그가 갑자기 창가로 걸어갔다.

제니와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하네.”

수혁이 중얼거렸다.

“뭐가?”

대답하지 않았다.

“뭐가 이상하냐고.”

수혁이 천천히 돌아봤다.

붉은 눈이 더욱 짙어져 있었다.

“네 냄새.”

제니의 표정이 굳었다.

“내 냄새가 왜?”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어.”

수혁이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래서 확인하려고 찾아왔고.”

“그래서 남의 집에 침입했어?”

“그래.”

“미친놈이네.”

“그건 인정.”

제니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수혁은 다시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가까이 오지 마.”

수혁이 멈췄다.

하지만 시선은 제니의 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윤제니.”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너 대체 뭐야?”

제니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건 내가 물어볼 말 아니야?”

“평범한 인간이면 이럴 리가 없어.”

“뭐가.”

“네 피 냄새를 맡는 순간부터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느껴져.”

제니의 등이 서늘해졌다.

수혁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괴로운 것을 참는 사람처럼.

“수백 년 동안 이런 적 없었어.”

“……수백 년?”

“그런데 널 처음 본 순간.”

수혁이 말을 멈췄다.

붉은 눈이 제니를 향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마시고 싶었어.”

제니가 뒤로 물러났다.

수혁이 곧바로 덧붙였다.

“그래서 안 마시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한 번 마시면.”

그가 웃었다.

하지만 이번 웃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멈출 자신이 없거든.”

제니의 손이 다시 칼을 찾았다.

수혁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또 죽이려고?”

“필요하면.”

“좋아.”

뜻밖의 대답이었다.

수혁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번에도 여기 찔러.”

“뭐?”

“확인해 봐.”

그가 제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과도를 자신의 가슴에 가져갔다.

제니가 놀라 손을 빼려 했지만 수혁이 놓아주지 않았다.

칼끝이 그의 셔츠에 닿았다.

“당신 미쳤어?”

“찔러.”

“싫어.”

“아까는 잘했잖아.”

“그때는 당신이 누군지도 몰랐으니까!”

수혁의 표정이 순간 멈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웃었다.

“그럼 지금은 내가 누군지 알아?”

제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수혁이 손을 놓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가 현관 쪽으로 향했다.

제니가 황당해서 물었다.

“그냥 간다고?”

“응.”

“다시는 오지 마.”

수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가 고개만 돌렸다.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건 안 돼.”

“왜?”

“나도 아직 모르겠어.”

수혁은 잠시 제니를 바라봤다.

“왜 내가 너한테서 떨어질 수 없는지.”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사라졌다.

이번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제니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수혁에게 붙잡혔던 손목.

그곳에 붉은 자국이 하나 남아 있었다.

제니가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얇은 실이 피부 아래에 들어간 것처럼 붉은 선이 손목을 한 바퀴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꺼져 있던 휴대전화 화면이 저절로 켜졌다.

발신자 표시 제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그 남자에게 피를 주지 마.]

제니의 표정이 굳었다.

곧이어 두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

[강수혁은 네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가 아니야.]

그리고 마지막 한 통.

[다음에는 심장이 아니라 목을 노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내가 죽인 남자가 매일 밤 찾아온다.   23: 이번에는 나처럼 선택하지 마

    제니야.제니의 숨이 멎었다.분명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린 목소리였다.하지만 수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이번에는 나처럼 선택하지 마.“재희……?”제니가 중얼거리자 수혁이 곧바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뭐가 들려?”“윤재희 목소리.”그 말을 끝내는 순간 주변의 소리가 멀어졌다.수혁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도.도겸과 유라의 숨소리도.모든 것이 물속으로 가라앉듯 희미해졌다.눈앞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제니는 낯선 방 안에 서 있었다.아니.자신이 아니었다.윤재희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그리고 그 칼끝은 자신의 가슴을 향하고 있었다.“이렇게 하면 되는 거죠?”재희의 목소리가 떨렸다.맞은편에는 붉은 눈의 여자가 서 있었다.한유라였다.지금과 달리 눈도, 피부도 완벽한 뱀파이어의 것이었다.“아니.”유라가 재희의 손목을 붙잡았다.“죽는다고 해결되지 않아.”“제가 살아 있으면 계속 수혁 씨를 찾아갈 거예요.”“그들이 원하는 건 네 피야.”“그러니까요.”재희가 힘없이 웃었다.“제가 없어지면 끝나잖아요.”“재희야.”“수혁 씨를 인간으로 만들면 제가 죽고.”재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제가 뱀파이어가 되면 평생 제 피를 노리는 것들에게 쫓기겠죠.”유라는 부정하지 못했다.“수혁 씨를 죽이면 저는 살 수 있고요.”“그래.”“그런데 못 하겠어요.”재희의 손에서 칼이 떨렸다.“그 사람은 제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자기 목도 내줄 사람이니까.”제니의 가슴이 저릿했다.이미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칼을 들고 울던 재희.그리고 피하지 않았던 수혁.나 죽여.네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그래서 다른 방법을 만들 거예요.”재희가 말했다.유라가 굳었다.“무슨 방법?”“이번 생에서 답이 없다면.”재희가 자신의 손목을 바라봤다.“다음으로 넘길 거예요.”“설마 표식을?”“기억을 남겨주세요.”“안 돼.”유라가 즉시 거절했다.“다음의 네가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어.”“전부 기억하게 할

  • 내가 죽인 남자가 매일 밤 찾아온다.   22: 일곱 번째 뱀파이어

    “재희를 죽인 일곱 번째.”한유라의 붉은 눈이 흔들렸다.“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놈이야.”수혁은 맞은편 건물 옥상을 바라봤다.검은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자신들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이름.”수혁이 물었다.유라가 입술을 깨물었다.“진경태.”그 이름이 떨어지는 순간 도겸의 표정이 변했다.“잠깐.”제니가 그를 돌아봤다.“당신도 알아?”“죽은 줄 알았어.”“누군데?”도겸의 시선이 옥상으로 향했다.“우리보다 오래된 뱀파이어.”수혁이 차갑게 물었다.“얼마나.”“정확한 나이는 몰라. 내가 처음 봤을 때도 이미 오래 살아 있었으니까.”그 순간.옥상에 서 있던 경태가 사라졌다.“없어졌어.”제니가 중얼거렸다.수혁이 곧바로 그녀를 자신의 뒤로 당겼다.“아니.”그의 시선이 현관으로 향했다.“왔어.”똑.똑.똑.노크 소리가 들렸다.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문 열어.”낮은 남자의 목소리.“백이십 년 만에 찾아왔는데 너무하잖아.”수혁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뒤에 있어.”“같이 갈게.”“제니야.”“나 때문에 온 거잖아.”수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윤제니.”제니의 표정이 굳었다.“이름까지 아네.”“저놈은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다렸을 거야.”유라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절대로 피 보여주지 마.”제니가 그녀를 돌아봤다.“왜?”“경태는 재희의 피를 직접 마셨던 놈이니까.”수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뭐?”“그날 봤어.”유라의 목소리가 떨렸다.“재희가 죽어갈 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게 진경태였어.”쾅!수혁이 현관문을 걷어찼다.문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복도 끝에 남자가 서 있었다.검은 코트.창백한 얼굴.그리고 웃고 있는 붉은 눈.진경태.“성질 여전하네.”경태가 말했다.수혁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쾅!벽이 흔들렸다.수혁의 손이 경태의 목을 잡았다.“네가 재희 죽였어?”“죽였다기보다는.”경태는 목이 잡힌 채 웃었다.“

  • 내가 죽인 남자가 매일 밤 찾아온다.   21: 네 곁에 있던 마지막 한 명

    “강수혁을 한 번도 떠난 적 없어.”그 말을 끝으로 한유라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유라?”제니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반응이 없었다.수혁이 곧바로 옆에 앉아 유라의 목에 손을 댔다.“살아 있어.”“정말?”“맥박은 약하지만 있어.”도겸이 유라의 가슴에 박힌 검은 칼날을 살폈다.“빼지 마.”수혁이 말했다.“알아.”“이거 평범한 칼 아니야.”도겸이 손잡이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했다.그 순간 그의 표정이 굳었다.“이 문양…….”“알아?”“본 적 있어.”“어디서.”도겸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수혁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서도겸.”“백이십 년 전.”도겸이 낮게 말했다.“재희가 죽었던 곳.”수혁의 손이 멈췄다.“그 방 바닥에 같은 문양이 있었어.”제니가 둘을 바라봤다.“그럼 재희를 죽인 놈이 유라까지 공격했다는 거야?”“가능성은 있어.”“그리고 그 사람이 아직 수혁 옆에 있고?”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제니는 이상함을 느꼈다.“잠깐.”두 남자가 그녀를 바라봤다.“백이십 년 동안 수혁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라면.”제니의 시선이 도겸에게 향했다.“당신 아니야?”공기가 얼어붙었다.도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수혁도 천천히 그를 바라봤다.“……서도겸.”“나 아니야.”“유라는 마지막 한 명이 내 곁에 있다고 했어.”“그래서?”“백이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에 남아 있는 뱀파이어가 몇이나 될 것 같아?”도겸이 수혁을 똑바로 바라봤다.“적어도 나는 재희가 죽던 날 너랑 같이 있었어.”“그게 알리바이가 돼?”“네가 봤잖아.”“중간에 사라졌던 시간이 있었지.”도겸의 얼굴이 굳었다.제니가 수혁을 바라봤다.“진짜야?”“잠깐이었어.”“얼마나?”“십 분 정도.”“그 십 분 동안 어디 있었는데?”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수혁의 붉은 눈이 짙어졌다.“말해.”“재희를 찾으러 갔어.”“어디로?”“그날 재희가 마지막으로 갔던 곳.”“왜 그걸 지금까지 말 안 했어?”도겸이 이를

  • 내가 죽인 남자가 매일 밤 찾아온다.   20: 백이십 년 전의 목격자

    “이제 진실을 들을 때도 됐잖아, 강수혁.”문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수혁의 얼굴이 굳었다.제니는 그를 바라봤다.“저 여자 알아?”“모른다고 했잖아.”“그런데 저쪽은 당신을 아는데?”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딩동.초인종이 다시 울렸다.도겸이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직접 확인하면 되겠네.”“열지 마.”수혁이 막아섰다.“왜?”“재희가 죽었던 곳에 남아 있던 냄새야.”“그러니까 더 만나야지.”“함정일 수도 있어.”그 순간 문밖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서도겸.”도겸의 표정까지 굳었다.“너도 거기 있지?”제니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둘 다 아네.”“나는 저 목소리 처음 들어.”“나도.”“그런데 저 사람은 다 알고 있잖아.”제니가 현관으로 향했다.수혁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내 뒤에 있어.”“또?”“이번에는 말 들어.”수혁이 문 앞에 섰다.철컥.문이 열렸다.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창백한 얼굴.긴 검은 머리.겉보기에는 평범한 인간이었다.하지만 여자가 수혁을 보는 순간 입꼬리를 올렸다.“정말 심장이 뛰네.”수혁의 눈빛이 싸늘해졌다.“누구야.”“기억 못 하겠지.”“이름.”여자가 대답했다.“한유라.”도겸이 그녀를 살폈다.“인간인데.”“지금은.”짧은 대답이었다.제니가 미간을 찌푸렸다.“지금은?”유라의 시선이 제니에게 향했다.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정말 닮았네.”“윤재희?”“얼굴은.”유라가 제니를 천천히 살폈다.“하지만 눈은 다르네.”수혁이 제니의 앞을 막았다.“용건만 말해.”“여전하네.”“뭐가.”“그렇게 앞을 막고 서는 거.”유라가 씁쓸하게 웃었다.“백이십 년 전에도 그랬어.”제니가 물었다.“당신, 윤재희를 알았어?”“알았지.”“얼마나?”유라는 잠시 침묵했다.“죽는 순간까지.”수혁이 순식간에 그녀의 목을 붙잡았다.“다시 말해.”“수혁!”제니가 그의 팔을 잡았다.유라는 목이 잡힌 상태에서도 웃었다.“이래서

  • 내가 죽인 남자가 매일 밤 찾아온다.   19: 인간을 선택하면 죽는다

    [그 선택 때문에 죽은 거야.]제니는 한동안 메시지를 바라봤다.“인간을 선택해서 죽었다고?”수혁이 휴대전화를 가져갔다.그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믿지 마.”“왜?”“누가 보내는지도 모르잖아.”“그런데 지금까지 틀린 말만 한 건 아니잖아.”수혁은 대답하지 못했다.사진도.윤재희가 죽었던 장소도.편지도.보낸 사람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실제 존재하는 것들이었다.제니가 도겸을 바라봤다.“재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아?”“몰라.”“정말?”“그때는 선택이라는 게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어.”도겸이 편지를 내려다봤다.“내가 재희한테 만들어준 건 표식이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그럼 그 붉은 눈 여자는?”“누군지 몰라.”“백이십 년 전에 재희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인데?”“모든 뱀파이어가 서로 아는 건 아니야.”도겸의 표정이 굳었다.“오히려 재희가 나 몰래 다른 뱀파이어를 만났다는 게 더 이상해.”수혁이 낮게 말했다.“나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제니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둘 다 모른다는 거네.”“그래.”제니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직접 물어보자.”“누구한테?”제니는 휴대전화를 들었다.익명의 번호로 답장을 입력했다.[인간을 선택하면 왜 죽는데?]수혁이 손목을 잡았다.“보내지 마.”“왜?”“저쪽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거니까.”“이미 저쪽은 우리가 어디서 뭘 하는지도 알아.”제니가 그의 손을 떼어냈다.“계속 끌려다니느니 질문이라도 할래.”전송.몇 초가 지나도 답은 없었다.제니가 화면을 내려놓으려는 순간.진동이 울렸다.[인간이 되는 대가가 필요하니까.]곧바로 다음 메시지.[죽은 자를 인간으로 되돌리려면 살아 있는 자의 생명이 필요해.]제니의 표정이 굳었다.수혁은 메시지를 읽자마자 말했다.“안 해.”“아직 뭔지도 모르잖아.”“알 만큼 알았어.”“수혁.”“내가 인간이 되는 대신 네가 죽는다는 소리잖아.”그의 목소리가 단호했다.“그런 선택이면 필요 없어.”도

  • 내가 죽인 남자가 매일 밤 찾아온다.   18: 생명 연결

    생명 연결을 시작합니다.붉은 문장이 떠오른 순간.제니의 심장이 세게 뛰었다.쿵!“윽…….”가슴을 움켜쥐자 수혁도 동시에 몸을 굽혔다.“수혁?”“괜찮아.”말과 달리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쿵.다시 한 번.이번에는 두 사람의 심장이 정확히 같은 순간에 뛰었다.제니가 숨을 죽였다.“같아.”“뭐가?”“심장 뛰는 시간.”수혁도 알아차린 듯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쿵.제니의 심장.쿵.수혁의 심장.완전히 같은 박자였다.도겸이 편지를 낚아채듯 가져갔다.“이건 재희가 처음 말했던 조건에 없었어.”“당신도 몰랐다고?”“두 번째 피 자체를 몰랐어.”도겸은 붉게 떠오른 문장을 살폈다.“재희가 나한테 부탁한 건 표식을 남기는 것까지였어. 그 뒤에 뭘 더 했는지는…….”“당신 몰래 했다는 거야?”제니가 물었다.“그래.”수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재희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도겸도 반박하지 못했다.누군가 있었다.백이십 년 전.재희에게 표식 이상의 무언가를 알려준 존재가.그 순간 제니가 휘청거렸다.“제니!”수혁이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그런데 이상했다.아픈 곳은 제니가 아니었다.옆구리가 찢어지는 듯 뜨거웠다.“아…… 아파.”“어디가?”“옆구리.”수혁의 표정이 굳었다.그가 자신의 옷을 걷었다.조금 전 싸움에서 생긴 상처가 있었다.제니의 눈이 커졌다.“설마.”도겸이 수혁의 상처를 확인했다.“제니 몸에는 상처 없어?”없었다.그런데 통증은 똑같았다.수혁이 상처를 눌렀다.“윽!”이번에는 제니가 신음을 터뜨렸다.수혁이 즉시 손을 뗐다.“미친…….”“하지 마!”“확인한 거야.”“확인한다고 왜 세게 눌러!”“미안.”도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통증까지 연결됐어.”제니가 수혁을 노려봤다.“앞으로 다치지 마.”“그건 내가 할 말 같은데.”“나는 인간이야. 원래 다치면 아파.”“나는?”“당신은 뱀파이어잖아.”“이제 나도 아픈 것 같은데.”수혁이 자신의 심장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