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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죄인을 위한 초대

Author: STARGIL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7 14:23:21

설연은 명단에서 강옥의 이름을 뜯어 내듯 눈을 떼었다.

“무슨 죄로.”

무강이 초청장을 뒤집었다. 죄목은 없었다. 귀비의 인장 아래 연회의 시작 시각만 단정하게 적혀 있었다.

“시연이니 재판 기록은 필요 없다는 뜻이겠군.”

백현이 웃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사람도 소품으로 치나 봐. 돌려줄 때 깨져 있어도 배상 안 하려고.”

설연은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무강이 그녀를 불렀다.

“어디로 가려 하지.”

“살아 있는지 확인하러.”

그는 막으려던 말을 삼켰다.

아란이 먼저 약상자를 들었다.

“내가 다녀올게. 진료를 마친 환자에게 약을 전하는 건 내 일이야.”

“같이 가.&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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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기록이야?”설연은 자수방이라는 세 글자를 손끝으로 짚었다.“칠 년 전 관노청에서 나간 기록.”백현이 답했다.“거기까지 갔다는 뜻이지, 지금도 살아 있다는 뜻은 아니야. 확인은 넣었어.”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 번, 살아 돌아온 사람을 끌어안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가 다쳤다. 이번에는 이름부터 확인할 생각이었다.정문익이 귀비전에 사실 조회를 보냈다. 답은 점심 무렵 도착했다. 옥분은 현재 자수방의 침선 궁녀로 일하며, 귀비는 옛 집안사람을 확인하려면 직접 오라고 했다.장소는 귀비전 바깥 바느질방. 시각은 신시.백현이 초청장을 탁자 위로 밀었다.“날짜는 맞고 장소는 싫군.”설연이 일어났다.“기록관 동행을 조건으로 답해.”“네 손으로 칼 안 쓰는 조건도 붙이고 싶다.”그녀가 붕대를 보았다.“오늘은 바늘도 못 써.”백현은 웃다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웃을 수 있다고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허가된 동행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길드에는 두 사람이 돌아올 시간을 남겼다.신시의 바느질방에는 비단 냄새가 났다. 창밖에 시녀 둘이 섰고 안에는 정문익이 먼저 앉아 있었다. 귀비는 높은 의자에 기대어 손톱 끝을 보고 있었다.“대군을 두고 왔구나.”“사람을 확인하러 왔습니다.”설연의 짧은 답에 귀비가 입술을 올렸다.“오늘은 서로 필요한 이야기만 하자꾸나.”병풍 뒤에서 여자가 나왔다. 스물넷쯤의 얼굴이었다. 한쪽 눈썹이 옅었고, 손톱 아래로 남색 실물이 배어 있었다. 설연은 얼굴보다 오른손 검지를 먼저 보았다. 어릴 때 말에게 물려 손톱이 둘로 갈라졌던 자리였다.“옥분?”여자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우물가에서 제 머리를 땋다가 매듭을 못 풀어 가위로 자르셨지요.”설연의 숨이 멈췄다.“네가 울까 봐 내 머리도 잘랐어.”옥분의 턱이 떨렸다. 귀비가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에 여자는 다시 표정을 거뒀다. 기억과 신체 특징이 맞아도 현재의 신분 기록까지 대조해야 했다. 정문익은 자수방의 입역 장부를 확인했다.설연이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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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는.”설연은 다른 말부터 묻지 않았다.무강이 고개를 숙였다.“그날 데려오지 못했다.”“그다음 날에는?”붓끝에서 먹 한 방울이 떨어졌다. 정문익이 천으로 닦았다. 무강은 그 작은 움직임이 끝나기 전에 대답했다.“관노청에 넘겨졌다는 말만 듣고 이름을 찾았다. 명부가 바뀌었다고 했다. 더 따지면 네 생존을 다시 조사하겠다는 전갈을 받았다.”“그래서 멈췄어.”“그래.”설연은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탁자를 또 쥐면 아플 것을 이제 알았다.“그 사람 딸 이름은 기억해?”무강이 눈을 들었다.“옥분.”설연의 입술이 떨렸다. 마구간 뒤 우물가에서 머리 땋는 법을 가르쳐 달라던 아이였다. 가족의 얼굴에 가려 잊고 있던 이름이 살아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그 이름도 적어 줘.”그녀가 정문익에게 말했다.무강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도, 원망도 나오지 않았다. 설연은 자신의 죽음을 피한 다음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그는 계속 진술했다.일인용 반출패를 들고 문밖으로 나왔을 때 소녀는 기침조차 하지 않았다. 병사는 칼끝으로 패의 인장을 확인하고 길을 비켰다. 무강은 소녀를 겉옷으로 감싸 말에 태웠다. 담 안쪽에서 누군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그는 손을 떼어 냈다.무엇이라고 약속했는지는 기억하고 있었다.돌아오겠다.그 말을 하고 돌아가지 않았다.설연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나를 어디로 데려갔어?”“성 서쪽 구호소. 집사 임경에게 너를 맡겼다. 의원에게는 신원을 모르는 화상 환자라고 말했다.”“그 뒤에는?”“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네가 없어졌다. 임경이 사흘을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그 대목에서 설연의 기억이 이어졌다. 짚 냄새가 나는 방. 얼굴을 살피던 낯선 손. 문밖에서 설씨 여식을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창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던 밤.그녀는 기억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먼저 그의 진술을 끝까지 듣기로 했다.“그래도 살아 있다는 건 알았잖아.”“그랬다.”“왜 진실을 알릴 생각은 안 했

  • 내원수의 목숨은 내 것   41화. 불 밖에도 지옥은 있었다

    “돌려보낸다니.”설연의 목소리가 마른 종이에 긁혔다.“나는 그때 어디 있었는데.”무강은 탁자 건너 그녀를 보았다. 대답을 시작하기 전에 손을 뒤로 감췄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 버릇까지 숨기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웠다.“서쪽 담 밖. 내 품에서 시위에게 넘어간 뒤였다.”정문익이 붓을 들었다. 지금부터 적히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무강의 진술이었다.칠 년 전, 무강이 설가에 도착했을 때 대문은 이미 불에 잠겨 있었다.그는 담 아래 젖은 짚을 밟고 넘어갔다. 옆문에서 창을 겨누던 병사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무기를 내렸다. 그 틈으로 안채에 들었다. 어디선가 기침이 났다. 불 타는 소리에 묻혔다가, 다시 났다.“누가 있느냐!”무너진 장롱 옆에서 손 하나가 움직였다.무강은 들보를 밀었다. 타들어 간 나무가 옆구리를 눌렀다. 옷 안으로 불씨가 들어왔다.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자 틈이 벌어졌다. 소녀의 왼손이 달아오른 쇠장식을 쥔 채 굳어 있었다.“놓아. 손을 놓아야 나갈 수 있어.”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눈썹 끝에서 피가 흘렀다.“어머니가…….”그 뒤는 기침이었다.무강은 손가락을 하나씩 펴고 소녀를 끌어냈다. 문밖으로 나올 때 들보가 내려앉았다. 뜨거운 바람이 등을 떠밀었다. 그는 소녀의 얼굴을 가슴에 묻고 담의 무너진 곳으로 달렸다.밖에서는 창끝이 기다렸다.“폐하께서 확인하신답니다.”무강은 자신의 신분을 말했다. 병사는 물러나지 않았다. 담 건너 임시 지휘소 앞에 황제의 가마가 있었다. 호위병은 길을 막았고 소녀를 넘기라고 했다.

  • 내원수의 목숨은 내 것   40화. 그 손으로 쓴 이름

    종이 아래쪽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설연은 불에 닿은 자리를 먼저 보았다. 손바닥의 흉터가 욱신거렸다. 원본을 가져온 서고 관원이 문서가 보관된 함의 번호와 이관 내역을 읽었다. 정문익은 등본을 곁에 놓고 문장마다 짚었다.일치했다.설씨 일문에 대한 토벌. 자시의 발령. 군사를 통솔할 권한. 그리고 무강의 이름.설연은 이름 위에서 눈을 멈췄다.글씨가 급하지 않았다. 획을 중간에 고쳐 쓴 흔적도 없었다. 남의 손에 붙잡혀 겨우 그은 선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글씨 모양만으로 서명한 사람의 마음까지 알 수는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물었다.“당신 것이야?”“내가 썼다.”회랑에서 들은 말을 그가 다시 했다.정문익이 서고 관원을 보았다. 관원은 당시 군문에서 보관한 서명 대조첩을 펼쳤다. 같은 달의 군량 지급 명령과 병사 귀환 허가가 있었다. 다른 사람을 먹이고 돌려보내던 이름이, 이 종이에서도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설연은 웃을 뻔했다.어제 자신의 손에 붕대를 감아 주던 손이었다. 아무것도 빼앗지 않을 것처럼 천천히 다가오던 손.그 손으로 이런 글도 쓸 수 있었다.“왜 자시야.”그녀는 목소리를 눌렀다.“신시에 군사들이 서문을 막았어. 술시에는 화상 입은 사람들이 의원에게 왔고. 그런데 왜 명령은 자시에 나왔지?”무강의 시선이 문서에 내려앉았다.“내가 서명하러 갔을 때 이미 불이 났다.”정문익의 붓이 움직였다.설연이 그를 돌아보았다.“그럼 늦게 도착한 거야? 아무것도 못 해서 이름만 빌려준 거야?”자신이 그에게 도망갈 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가 났다. 그보다 먼저 무서웠다. 차라리 그가 고개를 끄덕였으면 하는 자신이.무강은 그 길로 가지 않았다.“그렇게 말하면 내가 한 일이 작아진다.”그가 문서 중간을 가리켰다.잔여 인원의 처분을 군문에 일임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뒤에 붙은 작은 별지는 당시에 넘겨받은 사람들을 기록한 목록이었다. 설연은 눈으로 수를 세다가 멈췄다. 이름 대신 남녀와 나이만 적힌 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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