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설연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무강의 손등이 닿아 있던 자리였다.“그 말도 적어.”정문익의 붓이 멈췄다.“원본을 열람해 달라는 청으로 남겨 줘. 당신 혐의를 없애 주는 말로는 쓰지 말고.”한치수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문답은 오전까지 이어졌다. 문상은 은패를 받은 날짜와 필사한 문안을 따로 확인했고, 수레 안 사내는 자신이 받은 지시를 진술했다. 두 죄인이 궁문을 벗어나면 입을 막으라는 말이었다. 지시자를 문상이라 지목했지만 그 위의 이름은 모른다고 했다.정문익은 모른다는 대답을 지우지 않았다.설연도 재촉하지 않았다. 아는 만큼만 이어도 길은 생겼다. 없는 부분을 채우는 순간, 그들은 강옥에게 거짓말을 받아 적게 한 자들과 같아졌다.정오, 황제는 편전에서 보고를 받았다.무강은 증인으로 따로 불려왔다. 강옥의 신병은 그동안 시위청 당직장에게 맡긴다는 명이 먼저 내려졌다. 아란은 진료실에 남았다. 설연은 그가 의자에 앉는 것까지 본 뒤 황제에게 시선을 돌렸다.탁자에는 문서 세 묶음이 놓였다.사건 전 필사한 처형 문안. 위조 은패 인계장. 살아 있는 두 피의자의 사망 경위서.황제는 마지막 문서부터 집었다.“짐의 궁에서 데려가는 사람을 죽은 것으로 만들려고 했더냐.”한치수가 바닥에 머리를 댔다.“아랫것이 과잉 충성한 것입니다.”“무엇에 충성했지?”부드러운 물음이었다. 한치수의 목덜미에 땀이 맺혔다.“소신은 시연 문구만 고쳤을 뿐…….”정문익이 인계장을 펼쳤다. 대군부 뒷문으로 보낼 패 두 점 옆에 한치수의 결재가 있었다. 압수에 입회한 감찰 관원이 봉인 경위를 읽었다. 문상도 그 앞에서 수령 사실을 다시 인정했다.황제가 종이를 내려놓았다.“시연에 출입패가 필요했구나.”그 말에 귀비가 부채를 멈췄다. 참관을 명받아 앉아 있던 그녀는 자신의 은패 두 개와 추가 열 개가 구분되어 읽히자 허리를 폈다. 그러나 정문익은 귀비전의 관리 책임도 별도 조사 대상이라 덧붙였다.부채가 다시 느리게 움직였다.백현은 뒤쪽
“출문패를 아직 내주지 마시오.”정문익이 시위에게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이름과 사유를 적어 건넸다. 구두로 붙잡아 두었다가 책임을 문지기에게 미룰 생각은 없었다.설연은 종이에 적힌 시간을 보았다. 밤은 길었지만, 저마다 빌린 시간은 짧았다.황제에게 올라간 보고의 답이 올 때까지 문상과 수레 안 사내는 서로 다른 방에 갇혔다. 조복승은 살아서 이송을 면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했다. 물그릇을 받쳐 든 손이 계속 떨렸다.“살려 주셨으니 다 말하겠습니다.”그가 설연에게 매달리듯 말했다.“기억하는 것만 해.”설연은 팔을 빼냈다.“살려고 만든 말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왔어.”새벽 전에 황제의 허락이 왔다. 한치수를 궁 밖으로 내보내지 말고 집무실을 조사하라는 명이었다. 다른 관청의 관리도 함께 가야 했다. 정문익은 관리와 시위를 보내고, 설연과 백현은 궁에서 결과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직접 달려가고 싶은 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서랍을 뒤졌다는 말이 먼저 퍼지면, 안에 무엇이 나와도 꾸며 넣었다는 공격을 받을 터였다.설연은 진료실로 돌아왔다.무강은 잠들지 않고 있었다. 강옥의 침상에는 발이 내려져 있었고 아란은 옆 의자에서 약그릇을 씻고 있었다.“칼은 여기 있다.”무강이 침상 옆을 가리켰다.설연은 칼보다 그를 먼저 보았다.“당신이 죽었다는 글을 쓴 사람을 찾았어.”그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살아 있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농담하지 마.”예상보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왔다. 설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죽었다는 문장이 이렇게 싫어진 때가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었다.무강은 웃음을 거두었다.“알겠다.”아란이 깨끗한 천을 설연에게 내밀었다.“싸울 체력은 남았네. 그럼 어깨 보여 줘.”백현이 손바닥을 내밀자 그녀는 곁눈질했다.“너도?”“빈손으로 오기 민망해서 가시를 챙겼지.”“다음에는 돈을 챙겨.”짧은 웃음이 방 안을 스쳤다. 설연은 웃다가 어깨가 당겨 얼굴을 찡그렸다. 무강이 천천히 의자를 돌려 그녀가 등을
“예비 문안입니다.”서리의 대답은 빨랐다. 백현의 웃음이 걷히기도 전이었다.“호송 중 사고에 대비해 여러 문안을 가져옵니다.”정문익이 종이를 탁자에 눌러 놓았다.“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안도 내놓으시오.”서리는 입을 다물었다.설연은 그의 신발을 보았다. 문서방에 드나드는 사람인데 짚신 끈에 흰 돌가루가 박혀 있었다. 궁에서 형조로 가는 큰길은 흙길이었다. 서문 밖 석재 창고를 지나는 길에는 밤마다 수레가 다녔다.“오늘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지?”“형조로.”“어느 문으로.”서리의 눈이 문밖을 향했다. 설연이 의자를 끌어 그 길목에 세웠다. 어깨에 통증이 와 이를 살짝 물었다. 백현이 의자 등받이를 대신 잡았다.정문익은 시위에게 호송패와 공문의 인장을 대조하게 했다. 이름은 문상. 형조 문서방 소속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호송 요청서의 인장도 정식이었다. 사망 경위서에는 아직 관인이 없었으나 결재를 받으려는 빈칸이 그려져 있었다.“가짜 관리가 아니라서 더 나쁘군.”백현이 말했다.문상은 입술을 핥았다.“글만 썼습니다. 명을 받은 사람이 문구를 고를 권한은 없습니다.”“누구의 명인가.”그는 대답 대신 몸을 틀었다. 잡힌 팔이 꺾이는데도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출발해!”설연은 의자를 밀었다. 문상이 걸려 넘어지는 동안 백현이 복도로 뛰어나갔다. 마당 끝에서 호송 수레가 움직였다. 죄인도 태우지 않은 수레였다.“멈춰라!”시위가 외쳤으나 마부는 채찍을 들었다.백현은 달리는 말 앞으로 몸을 던지지 않았다. 옆에 세워 둔 빈 손수레를 밀어 바퀴 앞에 비스듬히 걸었다.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호송 수레가 옆으로 꺾였다. 말이 울었다.마부가 뛰어내려 달아났다. 백현은 쫓으려다 수레 안에서 난 신음에 멈췄다.덮개 아래 사람이 있었다.설연과 시위가 도착했을 때 백현은 이미 빗장을 뜯고 있었다. 안쪽에는 제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급히 허리로 손을 가져갔지만, 시위의 창끝이 먼저 목 아래에 닿았다.바닥에는 짧은 밧줄
“같은 사람이라고, 같은 죄까지 증명되진 않소.”정문익은 한치수의 이름 옆에 붙은 직함을 짚었다. 칠 년 전에는 형조의 하급 서리였다. 지금은 죄인의 목숨을 결재하는 자리에 있었다.설연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그러니까 물어보자는 거야. 칠 년 동안 무슨 일을 해서 올라갔는지.”아란이 침상에 드리운 발을 내렸다. 강옥은 잠들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에서 거친 소리가 났다. 유예가 이미 손상된 몸까지 고쳐 주지는 않았다.“문답은 내일. 지금 더 말하면 술법이 아니라 몸이 못 버텨.”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도 질문을 삼켰다. 정문익은 원본을 환자와 떨어진 벽장에 넣고 봉인관과 함께 봉했다. 유예 중 원본을 옮기려면 두 사람에게 알리도록 인계서에 적었다.무강은 그 절차를 지켜본 뒤 설연을 불렀다.“약차의 운반자를 먼저 보자.”“조복승?”“물건을 받았다는 종이가 두 장이었어. 약 말고 다른 것도 옮겼는지 묻자.”설연은 그를 일으켜 세우려다 손을 거뒀다.“당신은 여기 있어야 하지.”무강이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오늘은 내 말을 네가 기억해 주는군.”“쓰러지면 들고 올 자신이 없어서.”“나도 네가 다치는 것은 이제 자신이 없다.”설연은 잠깐 그를 보았다. 농담으로 돌릴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허리의 칼을 풀어 침상 옆에 놓았다. 죄인을 보러 가는 조사자가 시위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백현이 문에서 기다렸다.“저런 말을 듣고 칼부터 푸는 여자는 너뿐일 거다.”“네 것도 풀어.”“내 감동이 왜 늘 압수로 끝나는지 모르겠네.”정문익이 동행한 두 사람을 데리고 시위청 부속 방으로 갔다. 궁 안에서 붙잡힌 조복승은 아직 형조로 넘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약차 사건 조사 명령과 정문익의 입회가 있어야 문이 열렸다.조복승은 손이 묶인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설연이 들어서자 깨진 코를 소매로 가렸다.“또 때리러 왔나.”“때리면 네 말값이 올라가. 억울하게 맞았다는 말까지 팔 수 있으니까
최명석의 이름 위로 설연의 그림자가 떨어졌다. 손을 뻗으면 그의 목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봉인관은 원본을 접으며 먼저 돌아섰다.“환자에게 가야 합니다.”설연은 손을 내렸다.정문익이 시위 두 명에게 함을 호송하게 했다. 최명석이 출고에 입회했던 내관들을 데려가려 하자 그중 한 시위가 막아섰다. 반출표의 빈칸과 운반 사고를 확인할 때까지 남으라는 정문익의 요구였다.“내가 달아나기라도 한답니까.”“그러면 여기서 기다리시면 되겠소.”백현이 짧게 웃고 설연을 따라 뛰었다.동측 진료실에서는 아란이 침상 위로 올라가 있었다. 두 번째 벌이 시작되자 강옥의 몸이 비틀렸다. 무강은 환자의 어깨를 받쳤고, 아란은 입가의 피를 닦아 가며 호흡이 돌아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문이 열렸다.설연은 유모의 가슴부터 보았다.움직였다. 아주 조금, 그러나 움직였다.“원본.”아란의 한마디에 봉인관이 침상 옆 탁자를 비웠다. 노란 종이 두 장을 잇자 붉은 실처럼 보이는 글자들이 서로 붙었다. 문서 가장자리의 혈인은 강옥의 목에 남은 고리와 같은 모양이었다.봉인관은 황명을 펼쳐 원본의 번호와 맞췄다. 정문익이 어깨 너머에서 읽었다.설연은 그들의 손 사이를 들여다보았다.밀서를 보았다는 말을 뒤집으면 벌을 받는다. 말로 해도, 글로 써도 같다. 한 번 어기면 반 각마다 벌이 이어지고, 세 번째에는 죽는다.“거짓 증언이라는 생각을 하면 죽는 게 아니었어.”아란이 이를 악물었다.“생각까지 읽는다는 소문은 거짓이었어.”봉인관은 가느다란 은침으로 원본 귀퉁이를 고정했다.“계약을 읽고 피로 받아들인 사람만 묶입니다. 마음은 읽지 못합니다. 저희도 집례 때 그 한계를 고지하도록 돼 있습니다.”강옥의 손끝이 이불을 긁었다.무강이 물었다.“고지를 받았는지는 나중에 확인해. 지금 필요한 것은?”“이 원본에 벌을 멈춘다는 인장을 찍고, 저와 정문익이 확인하면 됩니다. 황제께서 저희 둘에게 그 권한을 주셨습니다.”원래는 최명석이 해야 할 일이었다. 황제가 다른 두
설연은 출고부를 잡으려다 손을 멈췄다. 정문익이 먼저 종이를 눌렀다. 붉은 수결 옆의 먹이 아직 번들거렸다.“출고 시각과 목적.”“방금 전입니다. 서약 위반에 따른 폐계 절차를 밟는다고…….”봉인관의 눈이 왕명과 장부 사이를 오갔다.“폐계면 풀어 준다는 뜻이야?”설연의 질문에 그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집행을 끝내고 원본을 소각합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요.”백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아직 살아 있는 사람 이름을 벌써 태우러 갔다고?”관리는 서류를 태우는 곳, 화계원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원본이 타면 강옥의 벌을 멈출 수 없다. 설연이 뛰려 하자 정문익이 황제의 허가서를 챙겼다.“나보다 먼저 가더라도 문을 부수진 마시오. 왕명을 보일 때까지만 붙잡아 두오.”설연은 대답할 숨을 아꼈다.비좁은 회랑에는 연회에서 걷어 온 장막이 쌓여 있었다. 달리는 발끝에 비단이 감겼다. 그녀는 벽을 짚고 뛰어넘었다. 왼손에 통증이 박혔다. 붕대에 새로 밴 피가 돌벽에 가늘게 찍혔다.백현은 뒤에서 장막을 걷어차 길을 냈다. 정문익이 넘어지면 원본까지 닿아도 소용없었다.화계원 바깥문에서 재 냄새가 흘러나왔다.안쪽 마당에는 최명석이 서 있었다. 하급 내관 둘이 붉은 함을 화로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설연이 문턱을 넘자 시위가 창대를 가로 뉘었다.“출입 명부에 없는 자다.”“강옥의 원본을 멈춰. 집행 유예 명령이 왔다.”최명석이 천천히 돌아섰다.“네 입이 왕명을 대신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