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설연은 출고부를 잡으려다 손을 멈췄다. 정문익이 먼저 종이를 눌렀다. 붉은 수결 옆의 먹이 아직 번들거렸다.
“출고 시각과 목적.”
“방금 전입니다. 서약 위반에 따른 폐계 절차를 밟는다고…….”
봉인관의 눈이 왕명과 장부 사이를 오갔다.
“폐계면 풀어 준다는 뜻이야?”
설연의 질문에 그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집행을 끝내고 원본을 소각합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요.”
백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 이름을 벌써 태우러 갔다고?”
관리는 서류를 태우는 곳, 화계원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원본이 타면 강옥의 벌을 멈출 수 없다. 설연이 뛰려 하자 정문익이 황제의 허가서를 챙겼다.
“나보다
“예비 문안입니다.”서리의 대답은 빨랐다. 백현의 웃음이 걷히기도 전이었다.“호송 중 사고에 대비해 여러 문안을 가져옵니다.”정문익이 종이를 탁자에 눌러 놓았다.“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안도 내놓으시오.”서리는 입을 다물었다.설연은 그의 신발을 보았다. 문서방에 드나드는 사람인데 짚신 끈에 흰 돌가루가 박혀 있었다. 궁에서 형조로 가는 큰길은 흙길이었다. 서문 밖 석재 창고를 지나는 길에는 밤마다 수레가 다녔다.“오늘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지?”“형조로.”“어느 문으로.”서리의 눈이 문밖을 향했다. 설연이 의자를 끌어 그 길목에 세웠다. 어깨에 통증이 와 이를 살짝 물었다. 백현이 의자 등받이를 대신 잡았다.정문익은 시위에게 호송패와 공문의 인장을 대조하게 했다. 이름은 문상. 형조 문서방 소속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호송 요청서의 인장도 정식이었다. 사망 경위서에는 아직 관인이 없었으나 결재를 받으려는 빈칸이 그려져 있었다.“가짜 관리가 아니라서 더 나쁘군.”백현이 말했다.문상은 입술을 핥았다.“글만 썼습니다. 명을 받은 사람이 문구를 고를 권한은 없습니다.”“누구의 명인가.”그는 대답 대신 몸을 틀었다. 잡힌 팔이 꺾이는데도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출발해!”설연은 의자를 밀었다. 문상이 걸려 넘어지는 동안 백현이 복도로 뛰어나갔다. 마당 끝에서 호송 수레가 움직였다. 죄인도 태우지 않은 수레였다.“멈춰라!”시위가 외쳤으나 마부는 채찍을 들었다.백현은 달리는 말 앞으로 몸을 던지지 않았다. 옆에 세워 둔 빈 손수레를 밀어 바퀴 앞에 비스듬히 걸었다.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호송 수레가 옆으로 꺾였다. 말이 울었다.마부가 뛰어내려 달아났다. 백현은 쫓으려다 수레 안에서 난 신음에 멈췄다.덮개 아래 사람이 있었다.설연과 시위가 도착했을 때 백현은 이미 빗장을 뜯고 있었다. 안쪽에는 제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급히 허리로 손을 가져갔지만, 시위의 창끝이 먼저 목 아래에 닿았다.바닥에는 짧은 밧줄
“같은 사람이라고, 같은 죄까지 증명되진 않소.”정문익은 한치수의 이름 옆에 붙은 직함을 짚었다. 칠 년 전에는 형조의 하급 서리였다. 지금은 죄인의 목숨을 결재하는 자리에 있었다.설연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그러니까 물어보자는 거야. 칠 년 동안 무슨 일을 해서 올라갔는지.”아란이 침상에 드리운 발을 내렸다. 강옥은 잠들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에서 거친 소리가 났다. 유예가 이미 손상된 몸까지 고쳐 주지는 않았다.“문답은 내일. 지금 더 말하면 술법이 아니라 몸이 못 버텨.”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도 질문을 삼켰다. 정문익은 원본을 환자와 떨어진 벽장에 넣고 봉인관과 함께 봉했다. 유예 중 원본을 옮기려면 두 사람에게 알리도록 인계서에 적었다.무강은 그 절차를 지켜본 뒤 설연을 불렀다.“약차의 운반자를 먼저 보자.”“조복승?”“물건을 받았다는 종이가 두 장이었어. 약 말고 다른 것도 옮겼는지 묻자.”설연은 그를 일으켜 세우려다 손을 거뒀다.“당신은 여기 있어야 하지.”무강이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오늘은 내 말을 네가 기억해 주는군.”“쓰러지면 들고 올 자신이 없어서.”“나도 네가 다치는 것은 이제 자신이 없다.”설연은 잠깐 그를 보았다. 농담으로 돌릴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허리의 칼을 풀어 침상 옆에 놓았다. 죄인을 보러 가는 조사자가 시위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백현이 문에서 기다렸다.“저런 말을 듣고 칼부터 푸는 여자는 너뿐일 거다.”“네 것도 풀어.”“내 감동이 왜 늘 압수로 끝나는지 모르겠네.”정문익이 동행한 두 사람을 데리고 시위청 부속 방으로 갔다. 궁 안에서 붙잡힌 조복승은 아직 형조로 넘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약차 사건 조사 명령과 정문익의 입회가 있어야 문이 열렸다.조복승은 손이 묶인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설연이 들어서자 깨진 코를 소매로 가렸다.“또 때리러 왔나.”“때리면 네 말값이 올라가. 억울하게 맞았다는 말까지 팔 수 있으니까
최명석의 이름 위로 설연의 그림자가 떨어졌다. 손을 뻗으면 그의 목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봉인관은 원본을 접으며 먼저 돌아섰다.“환자에게 가야 합니다.”설연은 손을 내렸다.정문익이 시위 두 명에게 함을 호송하게 했다. 최명석이 출고에 입회했던 내관들을 데려가려 하자 그중 한 시위가 막아섰다. 반출표의 빈칸과 운반 사고를 확인할 때까지 남으라는 정문익의 요구였다.“내가 달아나기라도 한답니까.”“그러면 여기서 기다리시면 되겠소.”백현이 짧게 웃고 설연을 따라 뛰었다.동측 진료실에서는 아란이 침상 위로 올라가 있었다. 두 번째 벌이 시작되자 강옥의 몸이 비틀렸다. 무강은 환자의 어깨를 받쳤고, 아란은 입가의 피를 닦아 가며 호흡이 돌아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문이 열렸다.설연은 유모의 가슴부터 보았다.움직였다. 아주 조금, 그러나 움직였다.“원본.”아란의 한마디에 봉인관이 침상 옆 탁자를 비웠다. 노란 종이 두 장을 잇자 붉은 실처럼 보이는 글자들이 서로 붙었다. 문서 가장자리의 혈인은 강옥의 목에 남은 고리와 같은 모양이었다.봉인관은 황명을 펼쳐 원본의 번호와 맞췄다. 정문익이 어깨 너머에서 읽었다.설연은 그들의 손 사이를 들여다보았다.밀서를 보았다는 말을 뒤집으면 벌을 받는다. 말로 해도, 글로 써도 같다. 한 번 어기면 반 각마다 벌이 이어지고, 세 번째에는 죽는다.“거짓 증언이라는 생각을 하면 죽는 게 아니었어.”아란이 이를 악물었다.“생각까지 읽는다는 소문은 거짓이었어.”봉인관은 가느다란 은침으로 원본 귀퉁이를 고정했다.“계약을 읽고 피로 받아들인 사람만 묶입니다. 마음은 읽지 못합니다. 저희도 집례 때 그 한계를 고지하도록 돼 있습니다.”강옥의 손끝이 이불을 긁었다.무강이 물었다.“고지를 받았는지는 나중에 확인해. 지금 필요한 것은?”“이 원본에 벌을 멈춘다는 인장을 찍고, 저와 정문익이 확인하면 됩니다. 황제께서 저희 둘에게 그 권한을 주셨습니다.”원래는 최명석이 해야 할 일이었다. 황제가 다른 두
설연은 출고부를 잡으려다 손을 멈췄다. 정문익이 먼저 종이를 눌렀다. 붉은 수결 옆의 먹이 아직 번들거렸다.“출고 시각과 목적.”“방금 전입니다. 서약 위반에 따른 폐계 절차를 밟는다고…….”봉인관의 눈이 왕명과 장부 사이를 오갔다.“폐계면 풀어 준다는 뜻이야?”설연의 질문에 그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집행을 끝내고 원본을 소각합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요.”백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아직 살아 있는 사람 이름을 벌써 태우러 갔다고?”관리는 서류를 태우는 곳, 화계원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원본이 타면 강옥의 벌을 멈출 수 없다. 설연이 뛰려 하자 정문익이 황제의 허가서를 챙겼다.“나보다 먼저 가더라도 문을 부수진 마시오. 왕명을 보일 때까지만 붙잡아 두오.”설연은 대답할 숨을 아꼈다.비좁은 회랑에는 연회에서 걷어 온 장막이 쌓여 있었다. 달리는 발끝에 비단이 감겼다. 그녀는 벽을 짚고 뛰어넘었다. 왼손에 통증이 박혔다. 붕대에 새로 밴 피가 돌벽에 가늘게 찍혔다.백현은 뒤에서 장막을 걷어차 길을 냈다. 정문익이 넘어지면 원본까지 닿아도 소용없었다.화계원 바깥문에서 재 냄새가 흘러나왔다.안쪽 마당에는 최명석이 서 있었다. 하급 내관 둘이 붉은 함을 화로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설연이 문턱을 넘자 시위가 창대를 가로 뉘었다.“출입 명부에 없는 자다.”“강옥의 원본을 멈춰. 집행 유예 명령이 왔다.”최명석이 천천히 돌아섰다.“네 입이 왕명을 대신하느냐?”
아란은 검게 변한 끝에 붓으로 점을 찍었다. 어디까지 번지는지 보려는 표시였다. 설연이 몸을 숙이자 그녀가 낮게 말했다.“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했어. 한 번 어기면 벌이 이어지는 모양이야.”“얼마나 남았는데.”“모르니까 원본이 필요해.”설연은 문으로 시선을 던졌다.같은 시각, 무강은 황제 앞의 의자를 거절하지 못하고 앉았다. 황제가 빈 잔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연회의 술 냄새가 아직 소매 끝에 남아 있었다.“네가 데려온 아이가 유모를 괴롭혔구나.”“증언을 되묻는 것을 괴롭힘이라 부르신다면, 심문청부터 없애셔야겠습니다.”황제의 손가락이 멎었다.“앉혀 주었더니 말이 곱지 않네.”“환자가 죽기 전에 내봉고의 혈계 원본을 열람하게 해 주십시오.”“강옥은 죄를 씻는 대가로 스스로 서약했다. 면천을 누리고 약속을 버리면, 그 값은 누가 내지?”무강은 탁자 아래에서 손을 폈다. 분노로 굳은 손가락이 아팠다.“그 여자가 죽으면 연회의 약차 사건도 끝내 확인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조사하라 하신 일입니다.”“그래서 내 금술을 남들 앞에 벗겨 놓겠다?”황제가 몸을 기울였다.“살려 달라고만 해. 네가 부탁하면 짐이 못 들어줄까.”어릴 때도 저런 목소리였다. 다친 새를 돌려주기 전에 누구의 편인지 물었다. 무강은 새가 살아 있었는지보다, 자신이 대답했던 말을 더 선명하게 기억했다.“공개된 조사를 청하는 겁니다.”황제의 눈에서 온기가 사라졌다.
“턱을 놓지 마.”아란의 말에 설연은 강옥의 뒤통수를 받쳤다. 유모의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손목을 움켜쥐었던 손가락이 하나씩 풀리고 있었다.무강이 침상 곁에 무릎을 꿇었다.“고리 안쪽에 끊어진 선이 있나.”아란은 등잔을 끌어당겼다. 붉은 고리 밑으로 가느다란 획 세 개가 보였다. 그중 하나가 타들어 가듯 검어졌다.“하나가 검게 변해요.”“말을 멈춰. 금지된 말을 하면 벌을 받는 서약이다. 혈계라고 해.”설연이 그를 돌아본 순간, 유모의 가슴이 튀어 올랐다. 막혔던 숨이 쇳소리를 내며 터졌다. 아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입가에 흘러나오는 침을 닦았다. 무강은 손을 떼지 않았다. 맥박을 짚는 손끝이 희었다.설연이 물었다.“당신이 멈춘 거야?”“아니. 첫 벌이 끝난 거다.”그 말이 구해졌다는 기쁨을 잘랐다.문밖으로 백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나갔다. 물과 마른 천을 가져오되 아무도 환자에게 말을 시키지 말라는 지시였다. 정문익이 직접 문을 열고 들어왔다.“무슨 일이오?”“황실 서약에 쓰는 금술이다. 북방에서 탈영 서약을 어긴 병사에게 같은 표식을 봤다.”무강은 강옥의 목을 가리켰다.“같은 혈계라도 벌은 다르다. 그 병사는 세 번째에 죽었어. 강옥의 조건부터 알아야 한다.”설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거짓말을 알아본다는 술법?”“그랬다면 밀서를 봤다는 거짓말부터 벌했겠지.”아란이 젖은 천을 바꾸며 말했다. 그녀는 강옥이 했던 말을 종이에 짧게 적었다. 살려고 먼저 증언했다. 나를 찾지 않았다. 본 적 없다.마지막 문장 밑에만 선을 그었다.“마음속 배신은 모릅니다. 특정한 말을 못 하게 묶은 거예요. 지금 확인하려고 다시 말하게 하면 안 되고요.”정문익이 그 종이를 받았다. 평소라면 문답의 정확한 표현부터 확인했을 사람이 환자의 입가를 보고 붓을 멈췄다.“원문은 어디 있소?”무강이 답했다.“왕실 문서 창고인 내봉고. 거기 있는 서약서에 벌과 멈추는 방법이 적혀 있을 거다.”강옥이 설연의 소매를 당겼다. 입술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