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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4화

Penulis: 십일
재석은 조금 전 도겸에게 한 대 제대로 날리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그냥 한 방이라도 날릴걸... 생각할수록 속이 뒤집힌다.’

정은은 조용히 옷자락을 내리고 재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근데... 내 요구르트는요?”

재석은 순간 멍해졌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정은은 그걸 받아선 몇 번 툭툭 흔든 후, 뚜껑을 열고는 장난기 어린 눈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미녀 구출하느라 고생했잖아요. 한 입, 상 줘야죠.”

“한 입? 한 병도 아니고?”

정은은 중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그럼 난 뭐 마셔요...”

사실 그가 간 편의점에는 블루베리 맛 요구르트가 딱 한 병 남아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병만 사 온 거였다.

“진짜... 쪼잔해.”

재석은 손끝으로 살짝 정은의 콧등을 톡 건드리며 말했다.

하는 말은 투덜거리는 듯했으나, 어투에는 웃음이 섞여 있었다.

‘이 여자는 참...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마음이 무너지게 해.’

“그럼 안 마실 거죠? 내가 다 마실게요?”

정은은 혀를 쏙 내밀고 요구르트를 한 입 마셨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재석이 정은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며 여자의 입술을 사로잡았다.

입술이 맞닿고, 남자의 혀가 재빠르게 정은의 치아 사이를 지나며 남은 블루베리 맛을 훑었다.

입맞춤이 끝나고 나서야, 재석이 숨을 고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안 마신대?”

“뭐라고요...?”

정은은 멍하니 남자를 바라봤다.

재석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블루베리 맛 괜찮네. 다음에도 그걸로 사자.”

‘이 사람... 가끔은 진짜 반칙이다.’

그날 이후, 도겸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로 안 온 걸 수도 있고, 왔지만 더는 정은 앞에 나서지 않은 걸 수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방학도 끝을 향해 다가왔다.

정은은 정식으로 대학원 2학년이 되었다.

그녀의 일상은 다시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갔다.

집, 학교, 그리고 실험실.

단조롭지만 바빴고, 바쁘지만 또 충실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공 수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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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10화

    정은은 통통한 오리에서 뼈를 바르고, 등 쪽을 조심스레 가른 뒤 그 안에 재료들을 채워 넣고 큰 사기그릇에 엎어 넣은 채로 쪘다.하지만 도겸은 까다로웠다. 훈제 햄 특유의 향을 싫어했고, 닭똥집 특유의 비릿함도 먹는 것을 꺼렸다.그래서 정은은 햄 대신 신선한 소갈빗살을 넣고, 닭똥집 대신 잘게 찢은 닭가슴살을 넣었다.그렇게 바꿔 만든 오리찜, 그게 바로 도겸이 유일하게 ‘맛있다’고 말했던 버전이었다.지금 눈앞에 놓인 이 오리찜이 아무리 정통이고, 아무리 유명한 셰프가 직접 만든 거라고 해도 정은이 해줬던 그 맛... 그 느낌은 하나도 없었다. 그걸 지켜보던 강서정이 피식 웃었다.“엄마 같으면 그런 식으로 정성 낭비 안 해.”“어떤 사람은 말이야,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묵묵히 먹으라고 해. 먼저 챙겨주면 괜히 까다롭게 굴고, ‘입에 안 맞다’, ‘싫다’ 등 말이 많아지는 법이니까.”반년 넘는 시간 동안, 서정은 나름의 회복기를 거쳤다.한때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세상이 무너진 줄 알았던 그녀는,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자신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 ‘석사 학위 하나 없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까짓 스펙 하나쯤은 없어도 돼.’‘왜냐고? 난 예쁘고, 돈 많고, 배경도 탄탄하니까! 소정은한테 밀려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생 자체가 끝나는 건 아니잖아?’ ‘엄마가 너무 학벌에 집착해서 나도 같이 휘말린 걸지도 몰라. 아니면... 정은한테 진 게 그냥... 너무 싫었을지도.’이유가 뭐든, 이제는 상관없었다.중요한 건... 학위가 없어도, 자신의 앞날이 여전히 반짝인다는 사실이었다.딸이 다시 외출도 하고, 사람도 만나기 시작하니 서영숙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서영숙의 유일한 고민이 있다면... 바로 무기력한 큰아들, 도겸이었다.“아, 맞다. 너희 일재 삼촌 딸, 유란이가 내일 입국이래. 삼촌은 출장 중이라 공항에 못 간다는데... 네가 대신 마중 좀 나가 줄래?”도겸의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사람 마중은 기사님이 더 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09화

    민지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서준은 민지의 실험대 위를 훑어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말해봐. 뭐가 얼마나 남았어?”그 말에 민지의 눈이 번쩍 빛났다.“그 말... 그 말은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서준은 무표정하게 받아쳤다.“필요 없다면 안 도와줘도 되는데?”“아니야 아니야! 완전 필요해! 이거, 이거, 그리고 이거... 전부 데이터 부족이야!”‘이런 날도 있어야지.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무조건 붙잡고 써야 해.’민지는 재빨리 목록을 정리해 보여줬다.서준은 슬쩍 들여다보다가, 점점 미간을 좁히더니 물었다.“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았다고? 오늘 하루 종일 뭐 한 거야?”민지는 당당했다.“오전엔 커뮤니티 여론 조절하느라 바빴고,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거든?”“그래도 오후 내내 했으면 이 정도는 끝냈어야지.”“어젯밤에 못 자서 계속 졸았단 말이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본인이 가장 잘 알잖아?”서준은 말문이 막혔다.‘그래, 내 탓 맞지... 뭐.’결국 조용히 옆자리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일하자.”그 말을 들은 민지는 잽싸게 또 하나 요구를 더 했다.“그 대신 오늘 밤엔 너희 집으로 가. 각자 자기 집에서 자기.”“응.”서준은 마지못해 대답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또 보니까... 하루 정도는 양보해 줄게.’...한편, 재석과 정은은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냉장고를 열어보니 며칠 전 사둔 식재료가 아직 남아 있었다.서로 눈을 마주친 두 사람.굳이 말 안 해도 동시에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금세 반찬 세 가지와 국 한 가지가 상에 차려졌다.두 사람이 각자 두 가지씩 만들었는데, 모두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식사 중, 자연스레 화제는 커뮤니티 글로 옮겨갔다.재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총장님이 직접 확인했어. 실제로 학생이 올린 글이고, 뒤에 다른 누가 있는 건 아니래.”정은은 그 말을 듣고도, 정작 폭로자에겐 별 관심이 없었다.그녀가 신경 쓴 건 따로 있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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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07화

    정확히 학교의 약점을 찔렀다.그제야 송영한 총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실험실이 학교 안에 있는 한, 재석이 서비대학교 소속이든 아니든 성과는 학교 이름으로 남는다.하지만 실험실이 철수된다면?그 순간부터 조재석 팀은 서비대와 완전히 무관한 독립체가 된다.송영한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이 인간... 진짜로 그렇게 할 놈이야.’협상이 틀어지면, 망설임 없이 학교를 완전히 떠날 사람이었다.“여자 하나 때문에, 이 정도까지 하는 것도 참... 대단하군!”재석은 흔들림 없이 말했다.“전,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할 뿐입니다.”“아주 내가 돌아버리길 바라는구먼!”송영한이 거의 소리치듯 말했고, 재석은 짧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총장님,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건강에 해롭습니다.”“고맙군, 진짜 고마워.”‘이젠 누가 누구한테 조언하는 거야, 어?’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부총장 한중기가 들어섰다.“총장님, 찾아냈습니다. 글 올린 학생, 대학원 2학년생입니다. 방금 불러서 얘기했는데, 본인이 시인했어요.”재석이 물었다.“진짜 학생이었습니까?”“그래, 조 교수가 우려한 그 방향도 확인했지만, 외부 개입은 없었어. 그냥 학생 개인의 행동이야.”한중기는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었다.“마침 그 학생이 여름방학 내내 실험 때문에 학교에 남아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조 교수가 소정은 학생이랑 손잡고 정문이 아닌 쪽문으로 나가는 걸 봤어. 그걸 찍은 거지.”‘정은이가 도시락 들고 실험실에 왔던 그날이구나.’재석은 문득 그 밤을 떠올렸다.“조 교수, 이번 개강 첫날, 주변에서 조 교수의 강의 중단 얘기를 듣고... 혼자만 아는 이 ‘대박 정보’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다 같이 알고 싶어서 터뜨린 것 같아.” 한중기는 계속 설명했다.재석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하긴, 요즘 학생들 반응이 빠르긴 하지...’송영한이 물었다.“지금 여론은 어떤가?”한중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부분 긍정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06화

    글이 처음 올라왔을 땐, 댓글 분위기가 꽤 뒤틀려 있었다.역시 익명 커뮤니티는 못 말렸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댓글 창엔 점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끝내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 댓글 대부분이 축하와 부러움으로 가득 찼다.어쩌면 당연했다.소정은은 희귀했고, 조재석은 말 그대로 전설이었다.이 둘이 붙으면?그건 단 하나의 결론.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다....무한 실험실.민지는 핸드폰을 끌어안고, 불난 듯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손가락이 타는 듯 아파지자, 결국 음성 입력으로 전환.‘헐, 이거 꿀인데?’서준이 옆에서 슬쩍 다가왔다.“뭐 해? 왜 아까부터 핸드폰만 보고 있어?”민지는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중대한 임무 수행 중.”민지는 화면을 쓱 들어 보였다.“봐봐. 내 유도 덕에 댓글 흐름 완전히 정리됐어.”서준이 집중해서 들여다보았다.[윗댓 적당히 해라. 조재석 교수님이랑 소정은 씨는 그냥 연애하는 거잖아. 그걸 뭔 공작처럼 몰고 가냐? 상상 자제 좀.][교칙 운운하면서 몰아가려던 사람들 어쩌냐? 이미 교수님 그만두신 건 알고 있음? 칼같이 선 긋고 나간 사람임.][조재석 X 소정은 커플 지지합니다!!][진짜 무슨 드라마 같은 사랑이네... 부럽다!][...]서준은 말을 잃었다.“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웠냐?”민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너 덕질 안 해봤구나? 이건 기본이야. ‘댓글 여론 컨트롤’이 팬의 예의라고.”“너... 덕질 해? 누구?”서준이 별생각 없이 물었고, 민지의 눈동자가 별로 가득 찼다.“일단 장성진 배우, 그리고 재준, 해이로, 구태우... 아! 그리고 지훈이!”서준이 살짝 찡그렸다.“전부 남자네?”“당연하지! 각자 매력이 다르다고. 예를 들어 장성진은 완전 강아지상. 그 눈, 완전 댕댕이 같고 귀엽고...”민지는 갑자기 말이 뚝 끊겼다.“왜 멈춰?”서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그게... 지금 네 표정이 좀... 무섭거든.”“그래?”서준은 무표정하게 되물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05화

    “그럼... 이 일을 학교 측에서 밀어붙인 거야?”“그건 아닐 수도. 조재석 교수님 본인이 연구에 집중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 솔직히 말하면, 연구는 실적이 남잖아. 근데 강의는 뭐가 남아? 하나같이 교수님 얼굴 보려고 줄 서는 꽃사슴들뿐인데, 흐흐...”“야, 너네 뭘 몰라서 그래. 연구는 그냥 핑계야. 이건... 내부 사정이 꽤 크다고.”“응? 내부 사정? 너 그걸 어떻게 알아?”“야, 가까이 와봐. 진짜 빵 터질 얘기야... 내가 말해줄게. 있잖아, 그게...”“헐, 진짜야?! 장난치지 마!”“사진까지 떴어. 믿을 수밖에 없지, 이건.”“세상에... 이거 거의 드라마급인데?”“야야, 지금 학교 커뮤니티 봐봐. 방금 또 새 글 올라왔어. 폭.탄.급.”“...”개강 첫날부터, 서비대학교 커뮤니티 서버는 게시물 그대로 ‘터졌다’.[조재석 교수, 강의 중단의 진짜 이유는? 사랑이었다?!]이라는 제목의 글 하나가 올라온 지 2시간 만에 추천 수 1000을 넘기고, 메인 페이지 최상단에 박제되었다.‘HOT’ 태그는 물론, 댓글 창도 실시간으로 폭주 중.글 첫머리에 올라온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야간 캠퍼스, 정문이 아닌 외진 쪽문을 나서는 두 사람.조재석 교수와 한 여성.조명은 어두웠지만, 서로 손을 잡은 모습, 그리고 재석의 옆얼굴에 걸린 미소.딱 봐도, 이건 그냥 교수님과 제자 관계 아니었다.커뮤니티는 곧바로 난리 났고, 익명 댓글은 폭풍처럼 쏟아졌다.[미쳤다! 진짜! 조재석 교수님이 설마 연애 중?!][조재석 교수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근데 여자는 누구야? 제자? 아니겠지??][사진 찍은 사람은 누구야... 파파라치냐고... 이러다 진짜 강단 복귀 못 하는 거 아니야...?][...]그날 오후, 학생 식당과 카페, 심지어 도서관 복도까지... 온 학교가 ‘조재석 교수님’으로 들끓었다.사진 각도는 아주 기가 막혔다.재석의 옆얼굴은 분명히 보이는데, 여자의 얼굴은 각도와 머리카락, 그림자까지 겹쳐 완벽하게 가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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