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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일세종환
"그래서요? 저와 이혼하라고 할 건가요?"

강나래의 반문에 임서연은 마음이 찔렸다.

보름 동안 여러 차례 돌려가며 심인혁에게 물었지만 심인혁은 이혼에 관한 생각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예전과 다름없이 잘해주며 심지어 예전보다 더 잘해주고 있었다. 꼭 마치 그의 내연녀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임서연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내연녀라 생각했다.

정말 따지고 본다면 그녀와 심인혁의 관계에 끼어든 사람은 강나래였다.

대학 시절 심인혁은 임서연을 무척 사랑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유학 때문에 싸웠다. 그리고 심인혁은 길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여자를 만나 그 여자와 결혼까지 했다.

임서연에게 이건 모욕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날 병원에서 강나래를 만나지 않았다면, 심인혁이 강나래를 아내라 소개하지 않았다면, 임서연은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심인혁이 어떻게 나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

몇 번이고 증명을 거친 뒤 심인혁이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전보다 더욱 사랑하고 있었다.

임서연이 원하는 건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전부 사주었다.

임서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심인혁은 가장 빠르게 달려왔다.

지금은 대추차를 끓이는 법을 배우고 있고 임서연을 위한 요리까지 해주고 있다.

심인혁의 돈과 사랑은 전부 임서연의 것이었다.

불쌍한 강나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아내라는 명분만 가지고 있을 뿐.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도 않은 그 명분 말이다.

이제 임서연은 심인혁의 아내라는 명분을 다시 빼앗아 올 생각이었다.

임서연은 심호흡을 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곧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그럼 더없이 고맙겠군요."

강나래는 심인혁이 얼른 이혼 협의서에 사인하기를 바랐다. 같은 집에서 살며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건 일분일초도 견딜 수가 없었다.

강나래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임서연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따듯한 대추차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심인혁은 그를 훑어보는 강나래의 눈빛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여보, 깼어?..."

여보라는 호칭에 임서연의 얼굴에 질투가 끓어 넘쳤다.

"서연이가 아프다고 그래서. 병원도 가기 싫다기에 집으로 데려왔어."

심인혁은 변명하느라 급급한 나머지 대추차를 내려놓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강나래는 데어서 조금 빨개진 그의 손을 보고 있었다.

처음 주방을 사용하는 남자는 장갑을 낄 줄도 몰랐다.

'됐어, 데이라지. 쌤통이야.'

심인혁은 뜨거운 대추차가 담긴 잔을 강나래에게 넘겨주려 했다.

"난 국수를 끓여야 하니까 이 대추차를 서연이에게 가져다줘."

뜨거운 잔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강나래의 손에 들어왔다.

강나래는 너무 뜨거운 나머지 잔을 놓칠뻔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임서연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나래 씨."

강나래는 대추차를 건네주었다.

임서연은 잔을 받았다.

"아!"

갑자기 비명과 함께 뜨거운 대추차가 쏟아졌다.

임서연의 하얀 팔에 대추차가 쏟아지자 곧 커다란 물집이 생겼다.

급히 주방에서 달려 나온 심인혁은 그 광경에 강나래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강나래 역시 궁금했다.

"난..."

"나래 씨 잘못이 아니야. 내가 제대로 잡지 못해서 그래. 인혁아, 나래 씨를 탓하지 마."

진짜 아팠던 임서연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아팠던 심인혁은 강나래에게 화를 냈다.

"그렇게 뜨거운 잔을 왜 곧장 건네준 거야? 탁자 위에 놓아두어야지!"

"당신도 나에게 곧장 건네줬잖아..."

"서연이의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 서연이가 없으면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심인혁은 싸늘하게 강나래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서연이에게 아무 일도 없기를, 서연이의 프로젝트에 아무런 지장도 없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허리를 숙여 임서연을 안아 든 심인혁은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강나래는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닥에 널려 있는 파편과 찐득거리는 대추차, 그리고 데어서 조금 빨개진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차마 내뱉지 못한 변명의 말을 다시 삼켰다.

심인혁은 강나래가 일부러 대추차를 임서연에게 쏟은 거라 확신했다. 그는 병원 치료를 마친 임서연을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심희연이 집으로 돌아가지만 임서연이 객실에 묵을 것이다.

결국 강나래가 돌봐야 하는 건 똑같았다.

심씨 가문의 사람들은 강나래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하여 강나래는 발버둥을 치는 대신 출근을 택했다. 벌써 아침 여덟 시였다.

요즘은 연구소에 강나래가 나서야 하는 일이 없다고 해도 의심을 피하기 위해 평소대로 출근해야 했다.

거실로 나온 심인혁은 강나래에게 말했다.

"휴가 내. 당신은 회사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잖아. 이참에 퇴사하고 얌전히 전업주부로 살아."

생활비 70만 원짜리 전업주부로 말인가?

강나래가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

심인혁이 말했다.

"당신!"

싸우는 소리가 조금 컸기에 사랑방에 누워 있던 임서연이 그 기척을 듣고 나와 두 사람의 싸움을 말렸다.

"인혁아, 나 때문에 싸우지 마. 내가 제대로 잡지 못한 거야."

그 말을 들은 심인혁은 더 이상 강나래와 다투지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휴가를 내라며 고집을 부렸다.

"당분간 사직서는 내지 않아도 돼. 하지만 휴가는 반드시 내야 해. 서연이의 상처가 나을 때까지. 당신이 다치게 했으니 당신이 책임져야지."

"말했잖아, 내 탓이 아니라고. 내가 넘겨줄 땐 잔을 곧잘 잡고 있었어. 어쩌다 대추차가 쏟아진 건지는 임서연 씨에게 물어야지. 내가 아니라."

강나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반박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심인혁의 질책뿐이었다.

"그 말은 서연이가 일부러 펄펄 끓는 대추차를 본인 몸에 쏟았다는 거야? 서연이는 아주 중요한 연구를 진행해야 해! 열심히 연구할 줄만 알지 별다른 잔꾀도 없는 서연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강나래는 화가 나 웃음을 터뜨렸다.

중요한 연구 사업? '자체 개발 칩' 프로젝트에 이름만 걸었을 뿐 핵심 데이터에는 접근할 수도 없는 사람이?

잔꾀가 없는 사람이라고?

정말이지 여자의 눈물에 깜빡 속은 모양이었다.

강나래는 그저 남자 보는 눈이 형편없었던 자신을 탓하며 성큼성큼 집을 나섰다.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온 심인혁이 강나래의 손목을 잡았다.

"말했잖아, 휴가 내라고. 아니면 퇴사하든가."

강나래가 휴가를 내고 집에서 임서연을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인 건지, 퇴사하고 얌전히 가정주부로 살기를 바라는 심인혁의 사심인 건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나도 말했지. 그럴 일은 없다고."

"만약 그 일자리를 잃는 게 손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보상할게."

"보상한다고?"

'그럼 4년 동안 당신에게 쏟아부은 내 마음은 어떻게 보상할 건데?'

"그래. 당신이 사직서를 내고 집에만 있는다면 원하는 건 모두 줄게."

지금의 강나래는 마치 가시 돋친 흰 장미처럼 그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있었다.

심인혁은 본능적으로 강나래가 통제를 벗어난 이 상황을 배척하고 있었다.

처음엔 임서연이었고 지금은 강나래였다.

"좋아. 나에게 이 집을 줘."

갑자기 심인혁이 이혼 서류에 사인하게 만들 방법이 떠오른 강나래는 살짝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 집을 나에게 넘겨줘. 그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면 당장 사직서를 낼게."

심인혁은 방이 세 개 딸린 작은 집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임서연에게 연구비를 보낼 필요도 없으니 곧 더 큰 아파트를 살 계획이었다.

하여 그는 망설임 없이 허락했다.

"양도 계약서를 작성하라고 할게."

"작성된 다음 나에게 보여줘."

손목을 잡고 있던 심인혁의 손에 힘이 조금 빠졌다. 강나래는 손을 빼내며 손목을 주물렀다.

심인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더니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양도 서류를 작성하라 시켰다.

강나래 역시 출근하겠다 고집을 부리지 않고 심인혁과 함께 회사로 갔다.

심인혁은 그녀에게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곧 비서가 양도 서류를 가져왔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꼼꼼하게 살핀 강나래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직접 사인하는 모습을 봐야겠어요. 제가 올라갈 수 없다면 그에게 내려오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답했다.

"잠깐만요, 스테이플러를 가져다주세요. 서류가 흩어질까 봐 그래요."

비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가 멀어지자 차에 강나래 혼자 남았다. 강나래는 가방에서 이혼 협의서 중 남편의 사인을 받아야 하는 페이지를 꺼내 양도 서류에서 사인이 필요한 페이지와 바꾸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심인혁의 손에는 스테이플러가 들려 있었다. 슈트 주머니에는 금색의 만년필이 꽂혀 있었다.

그 만년필은 강나래가 심인혁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었다.

벌써 4년이 지났는데도 그는 아직 그 만년필을 사용하고 있었다.

강나래는 주머니 속의 그 만년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스테이플러."

심인혁은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지하 주차장은 매우 어두웠다. 강나래는 고개를 숙인 채 진지하게 서류를 한데 집었다. 그리고 그의 사인이 필요한 페이지를 펼친 뒤 그에게 건넸다.

계약서는 비서가 작성한 것이었기에 진작에 내용 검토를 마친 상태였다. 심인혁은 아무런 의심 없이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날짜를 적었다.

그가 사인을 했다.

심인혁은 강나래가 선물한 만년필로 혼인신고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오늘도 같은 만년필로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했다. 처음과 끝이 제대로 맞물린 셈이었다.

그 순간부터, 이혼 협의가 효력을 발생했다.

한 달 뒤면 그들은 더 이상 부부가 아니게 될 것이다.

서류를 손에 든 강나래는 울지 않았다.

그녀는 심인혁 때문에, 이 결혼 생활 때문에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어두운 불빛 아래, 심인혁은 기뻐하는 강나래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사직서를 내라고 신신당부할 뿐이었다.

"약속은 이행했으니 비서에게 당신을 하성그룹까지 데려다주라고 할게. 당장 사직서를 제출해."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성그룹에서 근무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대충 하성그룹을 한 바퀴 돌고 오면 그만이었다.

강나래는 인사팀의 매니저가 안면 인식 시스템에 그녀의 정보를 등록시켜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권한은 그저 그뿐이었다.

심인혁의 차는 9억짜리 벤틀리였다. 강나래는 그 차에 몇 번 타보지도 못했다. 심인혁의 비서가 그녀를 데려다주는 건 처음이었다.

길가의 낙엽은 마치 불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바람이 불자 낙엽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개를 돌린 채 창밖을 보는 강나래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이혼 서류가 다리 위에 놓여 있었다.

운전을 하던 비서는 몇 번이나 백미러로 그녀를 관찰했다. 오늘따라 강나래가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 특히 몇 번이나 약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마치 반지를 빼려는 것만 같았다.

"사모님, 도착했습니다."

"네."

강나래는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먼저 들어가세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일 처리가 끝난 뒤 대표님께 말씀드리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알겠어요."

강나래는 비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안면 인식 시스템을 통과해 하성그룹의 빌딩으로 들어갔다. 오연홍이 그녀를 하성그룹에 위장 취직시켰을 때 인사팀의 매니저가 직접 마중을 나왔었다. '사직서'를 내려는 지금 당연히 인사팀 매니저인 서아영을 찾아가야 했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기도 전에 강나래는 커피를 들고 있는 서아영을 발견했다.

서아영 역시 강나래를 발견하고는 잠시 놀라더니 곧바로 다가왔다. 서아영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나래 씨 왔어요?"

"아영 씨."

"무슨 할 말이 있다면 사무실로 가서 얘기해요!"

대표님의 둘째 고모가 직접 위장 취업을 부탁한 사람이었으니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대화 도중 강나래는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 훤칠한 남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어딘가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만났던 사람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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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늦은 후회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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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늦은 후회   제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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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강나래와 심인혁의 집? 아니면 임서연이 묵고 있는 곳? 임서연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마 출퇴근 시간에 편하게 임서연을 데려다주기 위한 심인혁의 뜻이었을 것이다. 다정하게 대하는 심인혁의 태도가 바로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다정함은 물론 돈도 주었고 그녀를 지지해 주었으며 지켜 주었다. 임서연에게는 숱한 것들을 주었다... 아내인 강나래는 영영 가져보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다. 강나래는 명분을 얻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 밤 술자리에서 심인혁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강나래에게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까지 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속인 걸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강나래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눌렀다. 어차피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마쳤다. 이제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기다리면 이혼 접수가 완료될 것이다. 이 늪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든 편할 테니까. 갑작스럽게 돌아온 강나래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었다. 임서연이 심인혁을 데리고 차에서 내린 뒤, 심인혁은 곧바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인혁아, 이쪽이야." 심인혁은 휘청거리며 끝내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임서연은 알고 있었다. 심인혁이 강나래와 살고 있는 그 집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임서연을 안고 여보를 외치던 것처럼 말이다. 임서연은 그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심인혁과 강나래의 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심인혁을 소파에 눕히자마자 심인혁이 임서연의 손목을 잡았다. "서연아." "임서연." 이번에는 그녀의 이름을

  • 너무 늦은 후회   제25화

    "호텔에서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었어요. 제가 층수를 누르는 걸 깜빡해서 대표님께서 귀띔해 주셨고요." 사실 강나래는 이 일을 잊고 있었다. 하준혁이 귀띔하고 나서야 생각이 났던 것이다. 하지현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언니였군요! 우 매니저가 말한 사람이 바로 언니였어요! 예쁜 언니, 우리 오빠, 우리 오빠가... 세상에! 우리 오빠가 드디어 눈을 떴군요!" "뭐라고요?" 강나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현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날 언니가 묵었던 호텔이 우리 가문 소유예요. 오빠가 특별히 호텔 매니저에게 언니를 잘 보살펴주라고 당부한 다음에..." 그리고 우 매니저는 당장 그 사실을 두 사람의 부모님에게 알렸다. 오빠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고 결혼을 재촉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던 오빠가 갑자기 웬 여자를 걱정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호기심이 동했을 것이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날 낯선 이로부터 받았던 호의가 하준혁이 베푼 것이었다니. 강나래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우리 오빠는요, 그러니까..." '됐다, 꾸며내지도 못하겠네.' 하지현은 변명을 포기했다. 하지현은 깨끗한 수건과 칫솔을 가져다주며 유쾌하게 말했다. "예쁜 언니, 일찍 자요~" 하지현은 문을 닫자마자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이렇게 좋은 기회에 왜 언니를 우리 집으로 보낸 거야? 두 사람 다 성인이잖아. 성인 둘이 서로 가까이 지내다 보면 사랑이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데. 도대체 알기는 아는 거야?] 하준혁이 답장을 보냈다. [너희 집으로 보내지 않으면. 내일 강나래 씨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하지현이 말했다. "음? 언니의 부모님은 엄한 분이시구나?" 타자를 하려던 그때 하준혁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어린애는 쓸데없는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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