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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그대로 살아도 됩니다.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4 08:22:02

유리는 테이블 위에 손을 얹은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은 불안도, 긴장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의 공기를 손끝으로 가늠하고 있는 아주 조용한 감각의 움직임.

그녀는 눈을 감았고, 창문 너머로 번지는 구름의 흐름을 귀로 느끼려는 듯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그날은 손님이 없었다.

책방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

거리의 기척조차 어딘가 물러서 있는 듯했다.

유리는 오후가 가까워올 무렵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책 한 권을 펼쳤다.

그러나 읽지 않았다.

페이지는 넘겨지지 않았고, 문장은 눈길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책 속의 이야기로 자신을 위로하지 않았고,

누군가의 말을 빌려 마음을 정리하려 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자신과 함께 앉아 있는 이우의 숨소리와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유지되고 있는 이 정적이 가장 안정된 서사라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대로 살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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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위험한 여자   137. 이건 조용함이 아니라, 우리의 대화예요

    유리는 고개를 숙이며 살짝 웃었고, 그 웃음 안엔 조용한 지난날의 눈물이 천천히 말라붙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밤에 하루의 끝이 내려앉고 있었다.둘은 말없이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서로를 향해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그 말 없음은 아무 말보다 풍부했고, 더 깊고 오래 남았다.유리는 이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천천히 겹쳤다.이우는 그 손을 받아 다시 조용히 감싸쥐었다.그 손 위에 오늘 하루가 포개졌다.말하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남기지 않으면서도 가장 선명하게 남겨지는 것들.그것이 지금의 그들이었다.그날 밤. 유리는 노트를 덮었다.그녀는 ‘적지 않음’이 때로는 가장 깊은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었다.이우는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둘은 그렇게 포개지는 하루들 속에 자신들의 숨결을 조용히 남기고 있었다.사라지지 않도록. 하지만, 조용히.늦은 오후였다. 창밖엔 먼 산 능선 위로 해가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고,그 붉은빛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책방의 유리창 너머로 스며들고 있었다.햇살은 따뜻하지 않았고, 어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공기엔 끝이라는 말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유리는 아무것도 펼쳐놓지 않은 책상 앞에 앉아 오래도록 손끝을 모으고 있었다.찻잔도, 노트도, 책도 없이 그녀는 그 자리에 그냥 ‘사람’으로만 앉아 있었다.이우는 멀찍이서 조용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말을 건네지 않았고, 시선을 굳이 마주하려 하지도 않았다.그저, 그녀가 오늘 하루를 그 자리에서 흐르듯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그들은 이제 삶을 말하지 않았고, 사랑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오래 함께하면 어떤 단어들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지고,어떤 감정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햇살이 더 기울었다.붉은 기운은 창문을 빠져나갔고, 그 뒤를 따라 서늘한 어둠이 조용히 안으로 들어왔다.조명이 켜지지 않은 책방 안, 공기는 점점 고요해졌고,시간은

  • 너무 위험한 여자   136. 아무 말 없이도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

    오후에는 구름은 조금 더 내려앉았고, 공기는 더 촘촘해졌다.말없이 머무는 시간이 하루를 채워가기 시작했고,둘 사이에는 더 이상 남겨야 할 감정도, 덜어내야 할 말도 없었다.유리는 조용히 일어나 이우에게 다가가 그의 책 위에 작은 메모 한 장을 내려놓았다.그 메모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그러나 이우는 그 빈 종이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았다.'아무 말 없이도 당신은 여기에 남아 있다.'해가 저물 무렵, 그들은 함께 가게 문을 닫았다.열쇠가 돌고, 조명이 꺼지고, 문을 닫는 소리가 울릴 때마다그 안에서 쌓여 있던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식음이 슬픔이나 상실이 아니라 정리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이우는 유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유리는 고개를 기댔다.그 자세로 둘은 한참을 서 있었다.그들이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는 건더 이상 머물 이유를 찾지 않아도 스스로가 이유가 되었다는 뜻이었다.밤이 오는 시간, 가게 안엔 다시 불이 켜졌고, 스탠드 하나만이 작게 테이블 위를 비추고 있었다.둘은 서로 마주 앉았고, 잔을 들었다.그 찻잔 안에는 오늘 하루가 담겨 있었다.질문하지 않은 시간, 설명하지 않은 마음,기억하지 않아도 잊히지 않을 손끝.그 모든 것들이 말 없이 눈빛 안에서 서로에게 닿고 있었다.유리는 이우를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그 손끝이 이우의 손등에 닿는 순간,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 숨결처럼 흘렀다.“당신은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일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그러나 이우는 알아들었다.그 말이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었다.그날 밤, 유리는 일지를 펼치지 않았다.이우가 건넨 찻잔, 그 안에 맺힌 마지막 한 방울이 그녀의 하루를 이미 충분히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말하지 않아도 남는 사람.말보다 오래 곁에 남아주는 사람.유리와 이우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하며 조용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햇살은 들

  • 너무 위험한 여자   135. 말보다 오래 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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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위험한 여자   134. 그대로 살아도 됩니다.

    유리는 테이블 위에 손을 얹은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은 불안도, 긴장도 아니었다.그저, 하루의 공기를 손끝으로 가늠하고 있는 아주 조용한 감각의 움직임.그녀는 눈을 감았고, 창문 너머로 번지는 구름의 흐름을 귀로 느끼려는 듯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그날은 손님이 없었다.책방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거리의 기척조차 어딘가 물러서 있는 듯했다.유리는 오후가 가까워올 무렵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책 한 권을 펼쳤다.그러나 읽지 않았다.페이지는 넘겨지지 않았고, 문장은 눈길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그녀는 더 이상 책 속의 이야기로 자신을 위로하지 않았고,누군가의 말을 빌려 마음을 정리하려 하지도 않았다.대신, 그녀는 자신과 함께 앉아 있는 이우의 숨소리와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유지되고 있는 이 정적이 가장 안정된 서사라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이대로 살아도 될까요.”유리가 말했다.그 말은 무게가 없었지만, 깊이는 있었다.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고,누군가로부터 허락을 받기 위한 말이 아니라이미 마음속에 도달해 있는 문장을 천천히 꺼낸 것에 가까웠다.이우는 그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찻잔을 조용히 그녀 앞에 내려놓고자신도 맞은편에 앉으며 짧게 숨을 고른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대로 살아도 됩니다.”그는 그렇게 말했다.'이대로'가 아니라, 그대로라고.유리의 방식, 유리의 리듬,유리가 지금껏 걸어온 그 모든 침묵과 두려움,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그 말 한 줄이 유리의 눈을 오래도록 젖게 했다.눈물은 흘러내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 안쪽에서 조용히 머금은 물결이 흔들리고 있었다.해가 기울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가게 문을 잠갔다.조기 마감이라는 작은 팻말 하나가 문 앞에 걸렸고, 그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시선은 그들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가게

  • 너무 위험한 여자   133. 조용히 굳어지는 삶이라는 것

    빛이 드문 아침이었다.어느 계절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날씨,해는 구름에 가려 제 위치를 잃었고 공기에는 온도의 감각조차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유리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책방의 문을 열고,천천히 진열대의 먼지를 닦았다.천천히, 그러나 반복되는 그 일상의 행위는무언가를 시작한다기보다 무언가를 이어가는 일이었다.이우는 그녀보다 한 박자 느리게 움직이며 주방의 커피포트를 정리하고 있었다.서로 말은 없었지만 그 고요 속에서 둘은 이미 같은 하루를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없었다.거리의 나뭇잎들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창밖의 풍경은 누군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춰 있었다.그런 정적이 유리에게는 불안이 아니었다.그녀는 이제 멈춘 시간 속에서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무엇보다 누군가와 함께 멈춰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단단한 위로가 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이우도 마찬가지였다.그는 더 이상 변화를 좇지 않았고,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도 없었다.그가 바라는 것은 딱 지금 이 자리,유리가 있는 이 공간을 조용히 함께 지나는 것뿐이었다.정오에 가게 안에는 손님이 없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그 텅 빈 공간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채우고 있었다.유리는 찻잔을 정리하다잠시 멈춰 햇빛이 조금 스며드는 창가를 바라보았다.빛이 머물러 있는 그곳은 오랫동안 침묵 속에 있었지만,그 침묵은 서로를 마주하지 않아도 서로를 가장 잘 감싸주는 언어가 되어 있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이우에게 한마디를 건넸다.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그는 알 것 같았다.'당신과 있는 이 정적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대화 같아요.'오후가 깊어갈수록 시간은 조금 더 천천히 흘렀다.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혹은 전화를 걸어올까기대하거나 기다리지 않는 그 시간은 둘에게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었다.유리는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 표지를 조심스럽게 쓸었다.누군가의 삶이 묻어난 문장들 위에 자신의 하루를 겹쳐가며 무

  • 너무 위험한 여자   132. 말 없는 사랑, 가장 완벽한 완성

    밤에 가게 불이 꺼지고, 둘은 창가에 나란히 앉아 어둠을 바라보았다.거리의 불빛은 멀었고, 가게 안은 조용했다.이우는 유리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쥐었다.그 손 위로 더 이상의 질문도, 확인도 없었다.말 없는 손끝의 무게가 하루를 온전히 덮고 있었다.유리는 눈을 감았다.'이대로 괜찮다'는 확신이 말보다 더 단단하게 가슴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그날 밤, 유리는 일지에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왜냐면 그 어떤 문장보다도 조용히 맞잡은 손 하나가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말 없는 사랑. 그러나 가장 완성에 가까운 사랑.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하루를 사람으로 천천히 쌓아가고 있었다.아침은 늦게 도착했다. 해는 구름 뒤에 숨어 있었고,기온은 낮지도, 높지도 않았지만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밤새 머물러 있던 침묵의 냄새를 조금씩 몰아내고 있었다.유리는 커튼을 열지 않았다.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이면 충분했다.오히려 그 흐린 채광이 지금의 그녀에게는 더 알맞은 배경이었다.그녀는 조용히 주방으로 향해 차를 끓였다.불은 약하게, 물이 끓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그녀의 손끝은 서두르지 않았고, 그 느린 움직임이 그녀의 오늘을 가늠케 했다.아무 일도 없지만,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하루.이우는 이미 깨어 있었다.그는 창문 쪽 책상에 앉아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밖은 변한 게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가게 문을 힐끔거리는 시선, 바람이 스치는 골목의 기척까지.그러나 그가 느끼는 시간은 분명히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침묵이 불안이 아니라 신뢰가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하지만 지금, 그 침묵이 그를 괴롭히지 않고 그를 지탱해주는 무엇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정오 무렵. 둘은 마주 앉아 각자의 찻잔을 손에 들었다.말은 없었다. 질문도 없었고, 안부도 없었다.하지만 그 고요한 시간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서로에게 말하고 있었다.유리는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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