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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Author: June
아버지 창훈은 갑자기 격렬한 기침 발작을 일으켰다. 몸이 경련하듯 들썩이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얼굴은 순식간에 퍼렇게 질렸고, 손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떨리는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떨어진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본 순간, 사라는 모든 걸 알아차렸다.

분노가 핏줄을 타고 끓어올랐지만, 지금은 혜영을 상대할 때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먼저였다.

그녀는 미친 듯이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눌렀다.

“도와주세요! 의사 선생님 좀 빨리 와주세요!”

의료진이 우르르 병실로 몰려들었다. 각종 장비가 동원되고, 아버지의 활력 징후를 확인하는 동안 사라는 구석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상태가 악화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진료를 마친 주치의가 마스크를 벗으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표정이 심각했다.

“금창훈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습니다. 신부전이 급속도로 진행됐어요. 당장 중환자실로 옮겨 집중 치료를 해야 합니다.”

사라의 다리가 힘없이 풀렸다.

“얼마나… 심각한가요?”

“위중합니다.”

의사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중환자실 병상이 모두 차 있습니다. 대기 환자도 많고, 시내 다른 병원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대기요…?”

사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의사 선생님, 우리 아빠 지금 기다릴 수 있는 상태 아니에요!”

아버지는 여전히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피부는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모님.”

의사가 무력하게 말했다.

“일단 약물로 최대한 안정시키면서 병상이 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이 가슴을 죄어왔다. 사라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선우였다. 신가 그룹의 후계자인 그는 의료계에도 인맥이 넓었다. 마음만 먹으면 길을 열 수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의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됐다. 하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선우가 아니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혜영의 달콤한 목소리였다.

사라의 피가 식어버렸다.

“사라예요. 선우랑 당장 통화해야 해요. 응급 상황이에요.”

“어머, 사모님이네요!”

가짜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였다.

“대표님 지금 샤워 중이에요. 오늘 하루 종일 저 돌보느라 너무 지쳤거든요. 불쌍해서 좀 쉬게 해줘야죠.”

이를 악물었다. 지금 화낼 시간이 아니었다.

“우리 아빠가 위독해요. 중환자실 병상이 필요해요. 당장 바꿔주세요.”

“아이고, 타이밍 참 안 좋네요.”

혜영은 한숨 섞인 연기를 했다.

“저도 오늘 입덧이랑 어지럼증이 좀 심했거든요. 근데 대표님이 저랑 아기 걱정돼서, 도시 최고 의료팀을 전부 대기시켜 놨어요. 혹시 무슨 일 생길까 봐요.”

사라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아버지는 죽어가는데, 남편은 임신한 내연녀 곁에서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

“제발 좀…”

말을 잇기도 전에 혜영이 끊어버렸다.

“어머, 샤워 물소리 멈췄네. 오늘 너무 힘들었을 텐데 좀 쉬게 해야겠어요. 이해하시죠?”

뚝.

통화가 끊겼다.

병원 복도에 선 사라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문득 스쳤다.

비 오는 밤, 코트를 건네던 남자.

차 안에서 들리던 차갑지만 단호한 목소리.

망설일 틈도 없이 번호를 눌렀다.

“작은 아버님, 저 사라예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말했다.

“죄송하지만 아버지가 위독해요. 중환자실 병상이 꼭 필요한데 병원이 없대요. 제가 너무 큰 부탁을…”

“병원 주소 보내요.”

말을 끊는 낮고 단단한 목소리.

“내가 처리합니다. 10분.”

전화는 끊겼지만, 그 짧은 말이 선우의 어떤 달콤한 약속보다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정확히 10분 뒤, 병원장이 직접 병실로 들어왔다. 그 뒤로 유명 전문의들이 포함된 의료진이 줄줄이 따라왔다. 모두 교과서나 논문에서 보던 이름들이었다.

“금창훈 환자를 VIP 중환자실로 옮기겠습니다.”

병원장이 공손하게 말했다.

“국내 최고 신장 전문의들을 긴급 협진에 투입했습니다. 최상의 치료를 받으실 겁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아버지는 24시간 집중 모니터링이 가능한 전용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날 저녁, 아버지 상태가 안정된 걸 확인한 뒤 사라는 선우와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앉아, 3년의 추억이 전부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공간을 둘러봤다.

휴대폰을 꺼내 혜영이 보냈던 메시지와 사진, 영상 전부를 선우의 이메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비싼 보석을 자랑하는 영상. 선우가 사준 아파트에서 찍은 둘의 밀착 사진들.

“아빠가 우리 너무 사랑해. 뭐든 다 해준대.”

배를 쓰다듬으며 속삭이던 녹음 파일까지 전부 보낸 뒤,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적었다.

“선우, 이건 네 여자친구 혜영이 보낸 것들이야. 그렇게 서로 사랑한다면, 난 물러날게.”

그리고 지호가 준비해 준 이혼 합의서를 사진 찍어 첨부했다.

“이혼 합의서 준비됐어. 내일 변호사 통해 지호에게 연락해.”

전송 버튼을 누른 뒤, 사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에 걸린 웨딩 사진을 하나씩 떼어내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었다. 선우가 사준 보석, 옷, 화장품이 전부 검은 봉투 속으로 사라졌다.

이삿짐 업체를 불러 밤새 짐을 옮겼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집은 그녀가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텅 비어 있었다. 차갑고 낯선 공간처럼 느껴졌다.

사라는 한 번 마지막으로 둘러봤다.

그리고 캐리어를 끌고 문을 나섰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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