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오전 7시 10분.
수상 무대 공사장 임시 의료 구역.
엘리아나는 간단한 검진을 받고 있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탈수와 피로, 손목 압박 자국 정도.의료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민석은 두 손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아… 오늘 처음 듣는 좋은 소식입니다.”
임태건은 주변을 경계한 채 짧게 말했다.
“긴장 풀 상황 아닙니다.”
“팀장님은 좋은 말도 무섭게 하세요…”
공사장 주변엔 여전히 경호팀과 경찰 특수팀이 움직이고 있었다.
배후 세력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누가 이 모든 일을 설계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엘리아나가 무사했다.
강시온은 의료 텐트 밖을 괜히 서성이고 있었다.
들어가서 상태를 묻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려니 이상하게 긴장됐다.
바지선에서 들었던 말 때문이었다.
‘원래 마음에 드는 사람은 빨리 표시하는 편이라서.’
그 말을 떠올리는 순간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하…”
시온은 괜히 뒷목을 만졌다.
그때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대통령님.”
엘리아나였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 다 보여요. 들어와요.”
시온이 흠칫했다.
“…티 났습니까?”
“많이요.”
오민석이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숨는 게 더 수상했습니다…”
시온은 못 들은 척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엘리아나는 담요를 두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조금 지쳐 보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또렷했다.
천막 틈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빛이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시온은 순간 말을 잃었다.
엘리아나는 그런 시온을 보며 웃었다.
“왜 그렇게 봐요?”
“아, 아닙니다.”
“거짓말.”
“진짜 아닙니다.”
“방금 3초 멍하니 있었는데?”
시온은 괜히 헛기침했다.
“몸은 괜찮습니까?”
“네. 생각보다 빨리 와주셨고요.”
“그건 칭찬입니까?”
“반만요.”
시온은 피식 웃었다.
긴장이 조금 풀렸다.
엘리아나는 한동안 시온을 빤히 바라봤다.
그 시선이 너무 솔직해서 시온은 괜히 눈을 피하게 됐다.
“오늘 멋있었어요.”
“갑자기요?”
“문 열고, 저 찾으러 직접 오고, 다 하셨잖아요.”
“원래 해야 할 일 한 겁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엘리아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대부분은 무서우면 뒤로 숨거든요.”
시온 표정이 잠시 굳었다.
사실 자신도 무서웠다.
철문 앞에서도, 바지선 아래로 내려갈 때도, 폭발 직전 시스템을 복구할 때도.
계속 무서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엘리아나는 그런 시온을 바라보다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그래서 더 좋아졌어요.”
“……네?”
“좋아한다고요.”
너무 당당한 고백이었다.
시온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지금입니까?”
“네.”
“이 타이밍에요?”
“위험한 일 겪고 나면 솔직해지거든요.”
엘리아나는 웃으며 턱을 괴었다.
“사람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렇게 무섭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후회 안 하려고요.”
시온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엘리아나는 그런 반응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귀도 빨개졌네.”
“안 빨개졌습니다.”
“엄청 빨개졌는데.”
“조명 때문입니다.”
“아침 햇살인데요?”
시온은 결국 시선을 돌렸다.
엘리아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대통령님.”
“네.”
“왜 자꾸 피하세요?”
“안 피했습니다.”
“또 거짓말.”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더니 낮게 말했다.
“저는 원래 돌려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는 편이고.”
“그건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그럼 대답은요?”
시온이 당황했다.
“대답이요?”
“네.”
엘리아나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저 혼자 고백했잖아요.”
“아니 지금 그런 걸 정하는 분위기가—”
“전 괜찮은데.”
시온은 말문이 막혔다.
이 사람은 정말 브레이크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꾸 휘말리는 기분이었다.
엘리아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작게 웃었다.
“대통령님은 원래 그렇게 사람 긴장하게 만들어요?”
“제가요?”
“네.”
“전 지금 제가 더 긴장되는데요.”
“그럼 공평하네요.”
두 사람 사이 공기가 묘하게 부드러워졌다.
World Harmony Fest 9일차.오후 2시 30분.행사 운영본부.자판기 앞에 선 남자가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지나가던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오늘도 바쁘겠네요.”남자도 자연스럽게 웃었다.“내일이면 끝이니까요.”직원이 사라지자 남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단말기를 꺼냈다.화면에는 한 문장만 떠 있었다.『D-1』그는 메시지를 지우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목에는 행사 운영본부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마주 오는 직원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같은 시각.대통령 집무궁 임시 상황실.모니터에는 행사 운영 구역 출입 기록이 떠 있었다.오전 11시 17분.정상 승인.한서준은 그 기록을 기준으로 확인 범위를 좁히고 있었다.강시온이 물었다.“운영 권한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아직 많습니다.”한서준이 명단을 띄웠다.“행사 시작 전부터 지금까지 실제로 해당 구역을 드나든 사람들만 추렸습니다.”오민석이 화면을 훑었다.“그래도 꽤 되네요.”한채린이 바로 말했다.“직급보다 사용 시간을 보죠.”“출입증은 사용됐는데 CCTV에 사람이 없거나.”“반대로 CCTV에는 있는데 출입 기록이 없는 구간.”“기록이 반복해서 끊기는 사람부터 확인하면 됩니다.”한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쪽이 빠르겠네.”
오전 11시 40분.World Harmony Fest 운영본부.폐막식 준비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다.스태프들은 장비와 자료를 들고 복도를 오갔다.누구도 내일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했다.임시 상황실.한서준은 전날 밤 외곽 차량 기록에서 새로 추려낸 승합차 한 대를 화면에 띄웠다.“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시온과 한채린의 시선이 동시에 모니터로 향했다.승합차가 행사장 외곽 도로로 들어오는 모습이 정지 화면으로 떠 있었다.“운전자를 찾은 겁니까?”“아닙니다.”한서준이 시간 기록을 확대했다.“차량이 행사장 외곽에 도착하기 직전.”“내부 출입 기록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한채린이 곧바로 물었다.“몇 시입니까?”“오전 11시 17분입니다.”“그 직전 기록부터 보여주세요.”기록들이 빠르게 지나갔다.그리고 한 줄에서 멈췄다.행사 운영 구역.출입 승인.오민석이 화면 가까이 다가갔다.“이게 왜 이상한 겁니까?”“이 구역은 일반 출입증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임태건의 표정이 굳었다.“운영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시온이 물었다.“위조입니까?”“아닙니다.”한서준의 대답은 짧았다.“정상 승인입니다.”상황실이 조용해졌다.억지로 문을 연 것도 아니었다.인증을 속인 흔적도 없었다.정상적인 권한으로 문이 열렸다.시온
World Harmony Fest 9일차.오전 8시.대통령 집무궁 임시 상황실.전날 밤 발견된 배치도가 화면 중앙에 떠 있었다.붉은 원 하나.폐막식 무대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강시온이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물었다.“취소해야 합니까?”한서준은 밤새 들어온 분석 결과를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아직 그 단계는 아닙니다.”“폐막식이 실제 목표인지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시온이 붉은 원을 바라봤다.“하지만 가능성은 가장 높고요.”“네.”한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래서 오늘 안에 찾아야 합니다.”“공격 방식도.”“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도.”오민석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하루도 안 남은 셈이네요.”한채린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상대가 언제 움직일지 모르니 더 짧다고 봐야 합니다.”짧은 정적.시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나눠서 보죠.”“한 차장님은 내부 접근 기록.”“임 팀장님은 무대와 대표단 동선.”“오 비서관님은 현장 보고.”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채린을 바라봤다.“한 실장님은 전체 조율 부탁드립니다.”“알겠습니다.”한채린은 곧바로 태블릿에 역할을 정리했다.어젯밤 복도에
밤 9시.대통령 집무궁 임시 상황실.오후에 시작한 대조 작업이 끝나 있었다.외곽 CCTV.출입 기록.차량 이동.한서준이 세 기록을 한 화면에 띄웠다.“확인 끝났습니다.”강시온이 바로 물었다.“밖으로 나간 기록은요?”“없습니다.”오민석이 화면을 다시 봤다.“정말 하나도 없습니까?”“USB 전달 이후를 기준으로 전부 대조했습니다.”한서준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외곽 CCTV에도 없고.”“출입 인증에도 없습니다.”“차량으로 빠져나간 흔적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시온의 표정이 굳었다.오후에 발견한 내부망 접속 흔적.그 가능성이 이제 다른 기록과 맞물리고 있었다.“그럼 아직 행사장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거군요.”한채린이 행사장 구역도를 띄웠다.“그럼 수색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한채린의 손끝이 화면 안쪽을 가리켰다.“안에 남아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오민석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행사장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닌데요.”임태건이 짧게 말했다.“구역부터 나누겠습니다.”한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내부 출입 기록은 제가 다시 보겠습니다.”시온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말했다.“좋습니다.”
World Harmony Fest 8일차.오후 8시 20분.행사장 야외 정원.낮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 가고 있었다.분수 주변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졌고.멀리 메인 공연장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대표단들은 저녁 만찬을 마친 뒤 삼삼오오 산책을 즐기고 있었고.관람객들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늦은 저녁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공식 일정 대부분이 끝난 행사장은 낮보다 느긋했고.조금 조용했다.엘리아나는 혼자 정원을 걷고 있었다.발걸음은 느렸지만 생각은 좀처럼 느려지지 않았다.어제 이후였다.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안도했고.경호원들이 가까이 지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따라갔다.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마음은 아직 어제의 충격에서 완전히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었다.엘리아나는 난간 앞에 멈춰 섰다.그 순간.“혼자 계셨네요.”익숙한 목소리.엘리아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루카였다.검은 재킷 차림의 그는 무대 위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화려한 조명도.환호성도 없었다.그저 조용히 다가와 옆에 서 주는 사람이었다.“인터뷰는 끝났나요?”“조금 전에 끝났습니다.”“생각보다 빨랐네요.”“도망 나왔습니다.”엘리아나가 피식 웃었다.“또요?”“이번에는 진짜 질문이 너무 많았습니다.”“그 정도는 인기의 대가지요.”루카
오후 5시 30분.World Harmony Fest 행사장 중앙 산책로.강시온과 한채린은 다음 일정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조금 전까지 긴장으로 가득했던 상황실과 달리 밖은 평온했다.음악이 들리고.사람들은 웃으며 산책로를 오갔다.하지만 한채린의 시선은 계속 태블릿에 머물러 있었다.“복구팀에서 장치 식별 정보를 추가로 확인하고 있습니다.”“곧 나옵니까?”“중간 결과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시온은 대답 대신 그녀를 잠깐 봤다.한채린은 걷는 동안에도 보고서를 넘기고 있었다.그때 바람이 세게 불었다.자료 한 장이 그녀의 손에서 빠져 벤치 아래로 밀려갔다.시온이 먼저 몸을 돌렸다.한채린도 동시에 몸을 숙였다.두 사람이 같은 종이를 붙잡았다.손등이 가볍게 스쳤다.한채린이 먼저 손을 떼려 했다.시온도 같은 순간 움직였다.다시 한번.손끝이 짧게 닿았다.둘 다 멈췄다.“죄송합니다.”시온이 먼저 손을 거뒀다.“아닙니다.”한채린은 종이를 받아 일어났다.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이었다.우연히 손이 닿았고.바로 떨어졌다.그뿐이어야 했다.그런데 다시 걷기 시작하고 나서도 손끝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한채린은 일정표를 정리하는 척 손가락을 한번 접었다 폈다.싫어서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오히려 반대였다.조금 전의 짧은 접촉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넘기고 싶지 않은 자신이 더 당황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