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한채린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5분 드리겠습니다.”
“너무 짧은데요?”
“국가 위기입니다.”
“맨날 그 말씀 하십니다.”
“사실이니까요.”
시온은 머리를 긁적이며 회의실 한쪽으로 이동했다.
빈 메모장을 켰다.
그리고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다.
뭘 써야 하지?
국민은 지금 불안하다.
나도 불안하다.하지만 대통령이 같이 불안해하면 안 된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국민이면 무슨 말을 듣고 싶을까.’
5분 뒤.
긴급 생중계가 시작됐다.
푸른 배경 앞.
대한민국 국기가 보였다.
카메라 불빛이 켜졌다.
시온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전국민이 보고 있다.
어쩌면 세계도.
손끝이 조금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국민 여러분.”
목소리가 아주 살짝 떨렸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위협받았습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겁주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시온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짧은 침묵.
“우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회의실에서 모두가 조용히 화면을 보고 있었다.
“정부는 지금 이 순간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현장을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불안하더라도, 혼자가 아닙니다.”
방송이 끝났다.
회의실 안은 잠시 조용했다.
오민석이 먼저 훌쩍였다.
“왜 제가 울죠…”
시온은 당황했다.
“진짜 우세요?”
“감동 포인트가 이상하게 꽂혔습니다…”
임태건도 작게 말했다.
“…괜찮았습니다.”
시온은 바로 그를 바라봤다.
“팀장님 기준 괜찮음이면 거의 최고 칭찬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오민석이 속삭였다.
“오늘 두 번째 농담이었습니다.”
“들립니다.”
“죄송합니다.”
한채린은 태블릿을 덮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시온을 바라봤다.
“…합격입니다.”
시온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새 보고가 들어왔다.
“긴급 보고입니다!”
요원이 다급히 외쳤다.
“테러 직전 축제장 내부 출입 기록 중 삭제된 ID 하나 발견됐습니다.”
“누굽니까?” 한채린이 물었다.
화면에 이름이 떴다.
서유진.
시온이 눈을 깜빡였다.
“누구입니까?”
이번엔 한채린의 표정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홍보수석입니다.”
“우리 사람이잖아요?”
“네.”
“그런데 왜 삭제 기록이…”
아무도 쉽게 말하지 못했다.
회의실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한채린은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즉시 위치 확인.”
잠시 후 추가 보고가 들어왔다.
“현재 연락 두절 상태입니다.”
오민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부 협조자… 진짜였어?”
시온은 스크린의 이름을 바라봤다.
서유진.
아직 제대로 마주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적일 수도 있다고?
그때 다른 요원이 급하게 외쳤다.
“추가 정보 있습니다!”
화면이 전환됐다.
축제장 지하 주차장 CCTV.
검은 모자를 쓴 여성이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 잡혀 있었다.
얼굴은 흐렸지만 출입 카드 기록과 시간대가 일치했다.
그리고 그녀가 향한 곳은—
폭발이 일어난 무대 전력 구역 근처였다.
회의실 분위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임태건이 낮게 말했다.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시온은 쉽게 말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특히 같은 편이라 믿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한채린은 이미 돌아서며 말했다.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시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갑니다.”
“위험합니다.”
“이제 저 빼고 다 움직이지 않습니까.”
“각하.”
“저도 알아야 합니다.”
짧은 침묵.
한채린은 시온을 바라봤다.
그 눈빛엔 걱정과 피로, 그리고 아주 미세한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
“…5분 안에 출발 준비하십시오.”
오민석이 얼굴을 감쌌다.
“왜 대통령이 점점 현장형으로 진화하는 겁니까…”
시온은 재킷을 걸치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그는 단순히 끌려다니고만 있지 않았다.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이름.
새로운 의심.그리고 사건은 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World Harmony Fest 9일차.오후 2시 30분.행사 운영본부.자판기 앞에 선 남자가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지나가던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오늘도 바쁘겠네요.”남자도 자연스럽게 웃었다.“내일이면 끝이니까요.”직원이 사라지자 남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단말기를 꺼냈다.화면에는 한 문장만 떠 있었다.『D-1』그는 메시지를 지우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목에는 행사 운영본부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마주 오는 직원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같은 시각.대통령 집무궁 임시 상황실.모니터에는 행사 운영 구역 출입 기록이 떠 있었다.오전 11시 17분.정상 승인.한서준은 그 기록을 기준으로 확인 범위를 좁히고 있었다.강시온이 물었다.“운영 권한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아직 많습니다.”한서준이 명단을 띄웠다.“행사 시작 전부터 지금까지 실제로 해당 구역을 드나든 사람들만 추렸습니다.”오민석이 화면을 훑었다.“그래도 꽤 되네요.”한채린이 바로 말했다.“직급보다 사용 시간을 보죠.”“출입증은 사용됐는데 CCTV에 사람이 없거나.”“반대로 CCTV에는 있는데 출입 기록이 없는 구간.”“기록이 반복해서 끊기는 사람부터 확인하면 됩니다.”한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쪽이 빠르겠네.”
오전 11시 40분.World Harmony Fest 운영본부.폐막식 준비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다.스태프들은 장비와 자료를 들고 복도를 오갔다.누구도 내일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했다.임시 상황실.한서준은 전날 밤 외곽 차량 기록에서 새로 추려낸 승합차 한 대를 화면에 띄웠다.“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시온과 한채린의 시선이 동시에 모니터로 향했다.승합차가 행사장 외곽 도로로 들어오는 모습이 정지 화면으로 떠 있었다.“운전자를 찾은 겁니까?”“아닙니다.”한서준이 시간 기록을 확대했다.“차량이 행사장 외곽에 도착하기 직전.”“내부 출입 기록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한채린이 곧바로 물었다.“몇 시입니까?”“오전 11시 17분입니다.”“그 직전 기록부터 보여주세요.”기록들이 빠르게 지나갔다.그리고 한 줄에서 멈췄다.행사 운영 구역.출입 승인.오민석이 화면 가까이 다가갔다.“이게 왜 이상한 겁니까?”“이 구역은 일반 출입증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임태건의 표정이 굳었다.“운영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시온이 물었다.“위조입니까?”“아닙니다.”한서준의 대답은 짧았다.“정상 승인입니다.”상황실이 조용해졌다.억지로 문을 연 것도 아니었다.인증을 속인 흔적도 없었다.정상적인 권한으로 문이 열렸다.시온
World Harmony Fest 9일차.오전 8시.대통령 집무궁 임시 상황실.전날 밤 발견된 배치도가 화면 중앙에 떠 있었다.붉은 원 하나.폐막식 무대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강시온이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물었다.“취소해야 합니까?”한서준은 밤새 들어온 분석 결과를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아직 그 단계는 아닙니다.”“폐막식이 실제 목표인지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시온이 붉은 원을 바라봤다.“하지만 가능성은 가장 높고요.”“네.”한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래서 오늘 안에 찾아야 합니다.”“공격 방식도.”“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도.”오민석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하루도 안 남은 셈이네요.”한채린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상대가 언제 움직일지 모르니 더 짧다고 봐야 합니다.”짧은 정적.시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나눠서 보죠.”“한 차장님은 내부 접근 기록.”“임 팀장님은 무대와 대표단 동선.”“오 비서관님은 현장 보고.”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채린을 바라봤다.“한 실장님은 전체 조율 부탁드립니다.”“알겠습니다.”한채린은 곧바로 태블릿에 역할을 정리했다.어젯밤 복도에
밤 9시.대통령 집무궁 임시 상황실.오후에 시작한 대조 작업이 끝나 있었다.외곽 CCTV.출입 기록.차량 이동.한서준이 세 기록을 한 화면에 띄웠다.“확인 끝났습니다.”강시온이 바로 물었다.“밖으로 나간 기록은요?”“없습니다.”오민석이 화면을 다시 봤다.“정말 하나도 없습니까?”“USB 전달 이후를 기준으로 전부 대조했습니다.”한서준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외곽 CCTV에도 없고.”“출입 인증에도 없습니다.”“차량으로 빠져나간 흔적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시온의 표정이 굳었다.오후에 발견한 내부망 접속 흔적.그 가능성이 이제 다른 기록과 맞물리고 있었다.“그럼 아직 행사장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거군요.”한채린이 행사장 구역도를 띄웠다.“그럼 수색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한채린의 손끝이 화면 안쪽을 가리켰다.“안에 남아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오민석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행사장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닌데요.”임태건이 짧게 말했다.“구역부터 나누겠습니다.”한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내부 출입 기록은 제가 다시 보겠습니다.”시온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말했다.“좋습니다.”
World Harmony Fest 8일차.오후 8시 20분.행사장 야외 정원.낮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 가고 있었다.분수 주변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졌고.멀리 메인 공연장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대표단들은 저녁 만찬을 마친 뒤 삼삼오오 산책을 즐기고 있었고.관람객들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늦은 저녁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공식 일정 대부분이 끝난 행사장은 낮보다 느긋했고.조금 조용했다.엘리아나는 혼자 정원을 걷고 있었다.발걸음은 느렸지만 생각은 좀처럼 느려지지 않았다.어제 이후였다.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안도했고.경호원들이 가까이 지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따라갔다.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마음은 아직 어제의 충격에서 완전히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었다.엘리아나는 난간 앞에 멈춰 섰다.그 순간.“혼자 계셨네요.”익숙한 목소리.엘리아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루카였다.검은 재킷 차림의 그는 무대 위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화려한 조명도.환호성도 없었다.그저 조용히 다가와 옆에 서 주는 사람이었다.“인터뷰는 끝났나요?”“조금 전에 끝났습니다.”“생각보다 빨랐네요.”“도망 나왔습니다.”엘리아나가 피식 웃었다.“또요?”“이번에는 진짜 질문이 너무 많았습니다.”“그 정도는 인기의 대가지요.”루카
오후 5시 30분.World Harmony Fest 행사장 중앙 산책로.강시온과 한채린은 다음 일정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조금 전까지 긴장으로 가득했던 상황실과 달리 밖은 평온했다.음악이 들리고.사람들은 웃으며 산책로를 오갔다.하지만 한채린의 시선은 계속 태블릿에 머물러 있었다.“복구팀에서 장치 식별 정보를 추가로 확인하고 있습니다.”“곧 나옵니까?”“중간 결과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시온은 대답 대신 그녀를 잠깐 봤다.한채린은 걷는 동안에도 보고서를 넘기고 있었다.그때 바람이 세게 불었다.자료 한 장이 그녀의 손에서 빠져 벤치 아래로 밀려갔다.시온이 먼저 몸을 돌렸다.한채린도 동시에 몸을 숙였다.두 사람이 같은 종이를 붙잡았다.손등이 가볍게 스쳤다.한채린이 먼저 손을 떼려 했다.시온도 같은 순간 움직였다.다시 한번.손끝이 짧게 닿았다.둘 다 멈췄다.“죄송합니다.”시온이 먼저 손을 거뒀다.“아닙니다.”한채린은 종이를 받아 일어났다.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이었다.우연히 손이 닿았고.바로 떨어졌다.그뿐이어야 했다.그런데 다시 걷기 시작하고 나서도 손끝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한채린은 일정표를 정리하는 척 손가락을 한번 접었다 폈다.싫어서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오히려 반대였다.조금 전의 짧은 접촉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넘기고 싶지 않은 자신이 더 당황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