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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아침 선물

Author: 루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8 09:34:18

“여보, 아침 뽀뽀 배송 왔습니다. 수령인 어디 있나요?”

이서가 침대 머리맡에서 속삭이자, 도진의 눈꺼풀이 움찔했다. 아직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이불 가장자리에 얇게 걸렸고, 밤새 함께 덮었던 담요에서는 말끔한 세탁 비누 향이 났다. 이서는 휴대전화 화면의 알람을 조용히 껐다. 오늘만큼은 녹음된 남편의 목소리보다 먼저 그를 깨워 보고 싶었다.

“수령인 강도진! 주소는 우리 방, 배송 물품은 어제 예약하신 특별 선물입니다.”

도진이 한쪽 눈을 뜨더니 베개를 끌어안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잠옷 깃이 비뚤어지고 앞머리가 이마를 덮은 얼굴은 회의실에서 보던 대표와 딴판이었다.

“신분증 검사하세요, 아주머니.”

“누가 아주머니예요? 배송 거부하시면 회수해 갑니다.”

“안 돼. 수령인 본인 맞습니다. 결혼증명서도 있고, 아내 좋아하는 경력도 평생이야.”

도진이 황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서는 웃음을 삼키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젯밤 앞치마 주머니에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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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55화. 춤추는 대표

    “저 사람이 회사에서는 한 번도 안 웃는다면서요?”이서가 은빛 초대장에 끼워진 도진의 공식 사진을 가리키자, 도진은 어젯밤 거실에서 추던 춤이 생각났는지 그녀의 손부터 붙잡았다. 커플 가운을 입고 양말이 미끄러져 엉거주춤하던 남자와 사진 속 빈틈없는 대표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아무리 봐도 우스웠다.“사진 속 남자는 좀 무섭지? 그런데 실제로는 아내가 웃어 주면 꼬리가 흔들리는 편이야.”“꼬리는 어디 숨겼는데요?”“당신이 손 내밀면 바로 보일걸. 사랑에 빠진 남편은 비밀이 없거든.”초대장은 하주그룹이 후원하는 자선 행사에 부부를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정장 차림의 참석자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시간도 있었다. 어젯밤 자신이 먼저 꺼낸 ‘진짜 무도회’라는 말이 갑자기 현실이 되자, 이서는 반듯한 글씨를 다시 읽었다.도진은 참석을 재촉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 부담스러우면 가지 않아도 되고, 가더라도 언제든 먼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서는 초대장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잠시 창밖을 보았다. 그와 함께 공개된 자리에 서는 일이 여전히 낯설었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사람의 기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원했다. 초대장 한쪽에 인쇄된 무도회장 사진에는 둥근 조명 아래로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서 있었다. 이서는 한때 낯설기만 했던 도진의 세계 속으로 누가 등을 떠밀어서가 아니라 자기 발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사진 가장자리를 매만지던 그녀가 고개를 들자 도진은 아무 말 없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갈래요. 대신 하나만 부탁해도 돼요?”“열 개도 괜찮아. 내 월급까지 내놓으라면 비서실과 상의해 볼게.”“간단한 춤 수업이요. 어제처럼 당신 발을 밟을 순 없잖아요.”그날 오후, 거실의 카펫이 걷히고 작은 스피커에서는 느린 춤곡이 흘렀다. 초빙된 강사가 발을 움직이는 순서와 손을 놓는 위치부터 설명했다. 이서는 발끝으로 바닥에 작은 선을 그으며 숫자를 셌다. 반면 도진은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왼쪽과 오른쪽을 헷갈리는 척했다.“여보, 남편이 큰일 났어. 오른발이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54화. 거실 무도회

    “잠옷에 양말 신고 춤추는 재벌 부부, 신고 대상 아닌가요?”이서가 내민 손을 도진이 붙잡자 거실 한복판에서 또 한 번 우스꽝스러운 발소리가 났다. 영화 속 주인공은 화면 너머 광장에서 팔을 휘두르고 있었고, 현실의 강도진은 크림색 목욕가운 자락을 걷어 올리느라 한 박자 늦었다. 앞서 그의 춤을 보고 한참 웃었던 이서는 손끝에 힘을 주어 남편을 자기 쪽으로 끌었다.“자, 영화 속 주인공보다 멋있게 해 봐요.”“여보, 난 당신이 손 내민 순간 이미 대상을 받았어. 남우주연상 말고 남편 행복상.”“수상 소감은 춤 끝나고요. 발부터 움직이세요.”도진은 정말로 격식을 갖춘 무도회에 나온 사람처럼 한 손을 등 뒤로 돌리고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발끝이 이서의 양말 위에 살짝 올라갔다. 이서가 앗, 하고 웃자 그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가 이번에는 가운 끈을 밟았다. 마룻바닥 위에서 양말이 미끄러졌고, 두 사람은 서로의 팔을 붙든 채 소파 쪽으로 비틀거렸다.“미안! 발 괜찮아? 아프면 바로 앉자.”“안 아파요. 다만 우리 남편 춤 실력이 생각보다 위험하네요.”“회사에선 아무도 내 발 가까이 안 오는데. 당신이 첫 피해자야.”그가 이서의 발등을 살핀 뒤 안도하자 그녀는 자기 양말 앞코를 흔들어 보였다. 도진은 벗겨진 가운 끈을 고쳐 묶고 거실 탁자를 조금 밀어 공간을 만들었다. 넓어진 바닥에 영상의 푸른빛이 흘렀다. 과자 접시는 이미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고, 창밖에서는 밤바람이 얇은 나뭇가지를 흔들었다.둘만 있는 집에서 괜히 공연을 앞둔 사람처럼 긴장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서는 발코니에서 처음 춤 비슷한 걸 추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도진이 품을 조금만 좁혀도 심장이 먼저 놀랐는데, 지금은 스스로 그를 당겨 놓고 다음 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보다 제 마음이 먼저 바뀌었다.도진이 다시 손을 내밀자 이서는 이번에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 가까이에 손을 가져갔다가 눈을 맞췄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바닥이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53화. 남편의 취향

    “로맨스 영화를 고른 사람이 그렇게 뻣뻣하게 앉아요?”이서의 물음에 도진의 어깨가 움찔했다. 조금 전 “이번에는 내가 고른 영화 봐도 돼?”라고 묻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더니, 남자는 커플 가운의 허리끈까지 반듯하게 고쳐 매고 리모컨을 눌렀다. 과자 그릇이 치워진 거실에는 빔프로젝터의 작은 작동음만 남았고, 화면에서는 오랜만에 재회한 부부가 서툰 첫 데이트를 시작하고 있었다.“뻣뻣한 게 아니라 집중 중이야. 아주 중요한 장면이라서.”“당신이 고른 영화인데 왜 제 표정만 검사해요?”“그야 당신이 좋아할지 궁금하니까. 웃으면 나도 안심되고.”도진은 곧장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주인공들이 손을 잡을 때마다 눈동자가 이서 쪽으로 움직였다. 극 중 아내가 남편의 취향을 하나씩 물으며 다시 연애하자고 하는 장면에서는 아예 팝콘을 집던 손까지 멈췄다. 이서는 그가 자신의 반응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영화가 싫지는 않았다. 다만 남편이 좋아해서 고른 작품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겪는 일과 닮아서 고른 것 같았다. 이서는 화면 아래에 놓인 그의 손을 살폈다. 엄지손가락이 무심코 가운 끈을 문지르고 있었다. 자신을 기쁘게 해 주려다 정작 자기 취향은 뒷전으로 밀어 놓는 사람. 그 다정함을 오래 받으려면 자신도 한 걸음쯤 그에게 다가가야 했다.“혹시 이거 저 때문에 골랐어요?”“응. 두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알아 가잖아. 보고 나면 당신도 기분 좋을까 해서.”그는 멋쩍게 웃으며 가운 소매를 접었다. 이서는 리모컨을 가져와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부부가 마주 웃는 얼굴로 멈추자 도진이 그녀를 돌아봤다.“재미없어? 그럼 다른 거 틀게. 당신 좋아하는 건 목록으로 다 준비했어.”“그 목록에 강도진 씨가 좋아하는 건 몇 개나 있는데요?”대답이 없었다. 도진은 과자 봉지를 정리하는 척하다 이서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내려놓았다. 오늘의 커플 가운도 이서가 고른 차림이었다. 정작 이 사람은 쉬는 저녁에 어떤 영화를 보며 웃을까. 함께 사는 남편인데도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52화. 영화관 독점

    “이 넓은 집에서 영화 보는데 왜 꼭 옆에 앉아요?”이서가 소파의 빈자리를 가리키자 도진은 크림색 가운의 소매를 한 번 걷어 올리고는 아주 당당하게 그녀 옆에 앉았다. 낮에 발견한 커플 가운을 입고 영화를 보자던 약속대로였다. 두 사람의 가슴에는 이름이 수놓인 하트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거실 벽에는 빔프로젝터가 쏘아 올린 푸른 화면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여보, 저쪽에 앉으면 영화는 잘 보이겠지. 그런데 내 최애 배우 얼굴은 안 보이잖아.”“최애 배우가 누군데요?”“한이서. 출연작은 내 결혼생활 전편. 평점은 별 오조오억 개.”“그 배우 지금 계약 해지하고 싶은데요?”“안 돼. 내가 평생 전속 팬클럽 회장이야. 회비는 매일 사랑으로 내고 있어.”이서는 웃다가 그의 가운 깃을 바로 펴 주었다. 이름표 아래의 하트가 맞닿자 도진이 그것을 내려다보며 괜히 어깨를 붙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와 같은 옷을 입는 일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런 유치한 장난을 기다리는 자신이 더 신기했다.영화 준비는 이미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서가 테이블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감자 과자부터 팝콘, 말린 과일, 젤리, 작은 빵과 견과류까지 그릇마다 수북했다. 소파 앞 탁자도 모자라 보조 의자 위까지 과자가 쌓여 있었다.“우리 오늘 영화 보러 온 거예요, 과자 창고 재고 조사하러 온 거예요?”“당신이 뭘 먹고 싶어 할지 몰라서 조금씩 준비했어.”“조금씩이 이렇게 많으면 많이는 얼마나 사요?”“그건 아직 비밀인데. 당신 생일에는 거실 하나 더 빌려야 할지도.”이서는 팝콘 한 그릇과 따뜻한 차 두 잔만 남겨 두었다. 도진은 남은 간식들을 정리하면서도 한 번씩 그녀를 돌아봤다. 혹시 다른 것이 먹고 싶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눈이었다. 이서는 그를 붙잡아 옆자리에 앉혔다. 무엇을 준비했느냐보다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좋다고 말하자, 도진은 과자 봉지를 쥔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정리된 탁자에는 팝콘 그릇과 찻잔 두 개만 남았다. 빔프로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51화. 목욕가운 소동

    “오늘은 당신이 고른 데이트 장소로.”도진이 내민 쪽지를 읽은 이서는 침대 끝에 앉은 채 잠시 생각했다. 반듯하게 정돈된 침구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고, 나란히 놓인 베개에서는 아직 두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 오늘은 집이요. 저녁에 둘이 영화 봐요. 옷도 편하게 입고.”“여보, 집으로 데이트 신청하다니. 난 출입 허가받은 남자친구야, 동거 허가받은 남편이야?”“둘 다요. 대신 영화 시작하면 애칭 방송 금지.”“그건 좀 잔인한 상영 규정인데.”도진은 투덜거리면서도 쪽지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서는 그가 휴대전화에 시간을 적는 동안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내와 저녁, 다른 일정 배정 금지’라는 글이 눈에 들어오자 괜히 웃음이 났다. 누군가의 하루 끝에 자신이 이렇게 또렷하게 적혀 있다는 게 좋았다.늦은 오전, 샤워를 마친 이서는 욕실 앞에 놓인 가운을 집어 들었다. 조금 전 세탁실에서 보내 준 것이었다. 그런데 팔을 끼우자 손끝이 소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허리끈을 조이니 옷자락이 발목까지 내려왔다. 거울에는 커다란 흰 천에 파묻힌 작은 얼굴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이 집 목욕가운은 왜 이름표가 하트예요?”가운 안쪽의 작은 자수에는 이름 대신 분홍색 하트가 수놓여 있었다. 이서는 팔을 흔들며 드레스룸으로 나갔다가 문 앞에서 도진과 마주쳤다. 그는 그녀를 보자 걸음을 멈췄고, 웃음을 삼키려다 입술 한쪽이 자꾸 올라갔다.“아이고, 우리 애기 어디 갔지? 가운만 혼자 걸어 다니는데.”“도진 씨, 제가 사람이에요, 옷걸이예요?”“제일 예쁜 옷걸… 아니, 내 아내.”도진은 급히 말을 고치고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소란에 다가온 복례가 가운 크기를 잘못 구분했다며 사과하자 이서는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다. 긴 소매가 도진의 턱에 닿았고, 두 사람은 또 웃었다. 복례가 물러나자 도진은 아내의 손이 어디 있는지 찾는 시늉을 했다. 이서는 소매를 걷어 올리려 했지만 접을수록 두툼한 천이

  •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50화. 아침 선물

    “여보, 아침 뽀뽀 배송 왔습니다. 수령인 어디 있나요?”이서가 침대 머리맡에서 속삭이자, 도진의 눈꺼풀이 움찔했다. 아직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이불 가장자리에 얇게 걸렸고, 밤새 함께 덮었던 담요에서는 말끔한 세탁 비누 향이 났다. 이서는 휴대전화 화면의 알람을 조용히 껐다. 오늘만큼은 녹음된 남편의 목소리보다 먼저 그를 깨워 보고 싶었다.“수령인 강도진! 주소는 우리 방, 배송 물품은 어제 예약하신 특별 선물입니다.”도진이 한쪽 눈을 뜨더니 베개를 끌어안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잠옷 깃이 비뚤어지고 앞머리가 이마를 덮은 얼굴은 회의실에서 보던 대표와 딴판이었다.“신분증 검사하세요, 아주머니.”“누가 아주머니예요? 배송 거부하시면 회수해 갑니다.”“안 돼. 수령인 본인 맞습니다. 결혼증명서도 있고, 아내 좋아하는 경력도 평생이야.”도진이 황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서는 웃음을 삼키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젯밤 앞치마 주머니에 몰래 넣어 둔 카드의 뒷면이 떠올랐다. ‘선물은 내일 아침 내가 직접 줄게.’ 그 말에 거창한 뜻은 없었다. 쿠폰 없이도 원할 때 먼저 다가가겠다는, 자신을 위한 작은 약속이었다.그는 장난을 치면서도 이서가 가까이 오기 전까지 손을 뻗지 않았다. 이서는 그 기다림이 좋아 잠시 그의 얼굴을 살폈다. 처음 이 침실에서 깨어났을 때는 낯선 남자의 팔부터 밀어냈었다. 지금은 같은 침대에서 먼저 눈을 뜨고, 그가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할지 궁금해한다. 그 변화가 기특해서 손끝으로 그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넘겨 주었다.“입맞춤 선물, 지금 받아도 괜찮아요?”“네. 아주 많이 괜찮습니다. 근데 나 지금 꿈꾸는 거면 어떡하지?”“꿈이면 배송비 두 배 받죠.”이서가 먼저 몸을 기울였다. 도진도 눈을 맞추다가 천천히 감았다. 잠결의 따뜻한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서는 물러나기 전에 그의 셔츠 앞섶 대신 잠옷 소매를 살짝 잡았다. 서툰 첫 키스 때와 달리 이제는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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