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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Author: 네입클로버
“이 두 벌은 누가 사겠다고 해서 사진 찍어 보내려는 거야.”

강지연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이 두 벌?”

온하준은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었다.

“강지연, 네 옷만 팔면 되잖아. 내 옷까지 네가 마음대로 처리할 권한이 있어?”

강지연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세트로 원한다잖아. 한 벌만으론 안 산대. 네 걸 안 끼워 주면 내 것도 안 팔려.”

“강지연!”

그는 또 화가 난 얼굴이었다.

요즘 온하준은 유난히 쉽게 화를 냈다.

“왜 이렇게 예민해? 어차피 다시 입지도 않을 거면서. 필요한 사람한테 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순환 재활용이지.”

강지연이 말을 덧붙였다.

“정 그렇게 싫으면 돈 받고 반 나눠 줄게.”

온하준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더니 그녀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는 잔뜩 굳어 있는 얼굴로 옷장에서 깨끗한 옷을 꺼내며 말했다.

“오늘 김도윤이랑 이하나랑 모임 있는 거 알지? 애들이 가지 말라고 계속 붙잡아두는 걸 너랑 있으려고 일부러 집에 돌아온 거거든. 그런데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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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42화

    강지연은 사실 그 팔찌가 자신에게 주려는 것이라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다만 온하준이 준 선물을 받아도 되는 건지 망설이고 있었을 뿐이었다.선물을 받는다는 건 사실상 그만큼 한 관계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와도 같았다.설령 지금 눈앞의 열일곱 살 온하준이 예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해도 강지연은 그 마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그녀의 망설임을 눈치챈 온하준은 곧바로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팔찌를 걸어 주었다.강지연은 황급히 손을 빼려 했지만 이미 그의 손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움직이지 마.”“이건 아무 의미도 없어. 그냥 늦어버린 생일 선물일 뿐이야.”“생일 선물?”강지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그래. 네 이름이 새겨진 팔찌라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고 반품도 안 돼. 네가 받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액세서리 가게에 맡겨 두고 직원이 알아서 처리하게 할 수밖에 없거든.”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팔찌를 마저 채워 주었다.가느다란 백금 팔찌였고 작은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어 어둑한 계단에서도 유난히 반짝거렸다.“여기 네 이름이 새겨져 있어.”온하준은 팔찌의 잠금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강지연은 속으로 이 세상에 처리할 수 없는 액세서리는 없다고 생각했다.회수하든, 중고로 팔든,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해도 결국 처리 방법은 있기 마련이었다.문제는 온하준이 그럴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었다.“부담 가질 필요 없어.”온하준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말했다.“원래 네 생일 선물로 특별 주문한 거야. 최아현도 있고 이승우도, 차유준도 다 있어. 다만 선물이 다를 뿐이야. 우리가 함께 지나온 이 몇 년을 기념하는 거로 생각하면 돼.”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몇 년이었어. 하지만 너희가 곁에 있었기에 그 시간이 그렇게까지 어둡지만은 않았거든. 이제 우리 고등학교 3학년이잖아. 앞으로 서로 다른 길로 흩어질지도 모르니까. 오랜 시간이 흘러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41화

    “좋은 친구잖아!”강지연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온하준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그저 어딘가 미묘한 의미가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왜? 뭐 문제라도 있어? 나랑 최아현, 그리고 너. 우리 세 사람의 우정이 네가 밖에서 그런 애들이랑 어울리려는 생각을 막기엔 부족한 거야?”강지연은 자기 그릇에 있던 닭 다리를 집어 그에게 넘겨주며 말을 이었다.“이 정도면 됐지?”“이건...”온하준은 자기 그릇에 담긴 닭 다리 세 개를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그러니까 나랑 최아현에게 있는 건 너한테도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야. 우린 그런 사이란 말이지.”강지연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정도 우정이면 네가 이제 여기저기 찝쩍거리고 다닐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온하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너무 쉽게 나온 대답에 강지연은 당황한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사실 그녀는 이미 마음속으로 어떻게 설득할지 여러 가지 말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솔직히 김도윤과 김도진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만약 온하준이 그 두 사람을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도 아직은 생각해 두지 못한 상태였다.하지만 의외로 그가 이렇게 쉽게 승낙해 버린 것이다.“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온하준이 되묻자 강지연은 젓가락으로 밥을 콕콕 찌르며 물었다.“너... 이유는 왜 안 물어봐?”“우리 좋은 친구라면서.”“응?”온하준은 웃음을 거두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가만히 있어.”그러더니 갑자기 그녀의 머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뭐 하는 거야?”강지연은 순간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뭐가 묻었어...”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희미하게 흐려진 말끝이 마치 그의 목구멍 안에서 굴러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온하준은 그녀의 머리에서 하얀 솜털 같은 것을 집어내더니 툭 던져 버리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덧붙였다.“내가 네 말 아니면 누구 말을 듣겠어?”마치 ‘오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40화

    강지연은 몇 번이나 끼어들어 말을 꺼내려 했지만 도무지 틈이 나지 않았다.온하준과 김도윤이 나란히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달려 나가 생각할 틈도 없이 온하준의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연?”온하준의 눈빛은 방금 경기에서 승리한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그가 막 김도윤과 김도진에게 그녀를 소개하려던 참이었다.“이쪽은...”“온하준.”강지연은 그들이 누구인지 전혀 듣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온하준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렸다.그리고는 약간 따지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살짝 애교 섞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나랑 저녁 같이 먹기로 약속했잖아.”온하준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강지연은 이미 말을 꺼내 버린 이상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또 약속 어길 거야? 됐어!”그녀는 홱 고개를 돌렸다.누가 봐도 화가 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온하준의 당황한 기색은 서서히 풀렸다.그리고 그의 눈빛에는 막 기울어 가는 저녁노을처럼 은은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그때 김도윤이 웃으며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온하준, 이건 너...”하지만 온하준은 가볍게 웃기만 할 뿐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오히려 김도윤의 짐작을 그대로 인정하는 듯한 태도였다.“차유준, 그럼 네가 애들 데리고 가서 먹어. 계산은 내가 하는 거로.”차유준이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거의 칼날에 가까울 만큼 날카로웠다.그런데도 온하준은 태연하게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오늘 이렇게 많은 친구가 찾아왔는데 제대로 대접해야지. 고생 좀 해.”차유준은 당장이라도 사람 하나 죽일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하지만 온하준은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더 얄밉게 말했다.“미안해 친구들. 이번엔 시간이 좀 어긋났네. 오늘은 차유준이랑 나가서 먹어. 다음에 내가 제대로 한 번 대접할게.”그는 손을 가볍게 휘저으며 사람들을 돌려보냈고 차유준의 등을 툭 밀어내며 겨우 그 많은 인원을 정리했다.사람들이 흩어지고 나자 온하준은 강지연 앞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39화

    강지연은 또 다른 삶에서 수많은 소란을 겪었었다.인터넷에 몇 번이고 이름이 올랐었고 그녀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나서서 해명해야 했었다.솔직히 말해 너무 피곤하고 허무한 일이었다.그래서 이번만큼은 직접 나서지 않기로 했다.이미 여론은 충분히 넓게 퍼져 있었고 그 흐름을 이용해 학교 관련 기관에서 수습하게 만드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런데 의외로 온하준이 직접 나서 버렸다.열일곱이라는 나이는 마치 막 태어난 송아지처럼 혈기가 넘치는 시기였기에 싸우는 것이 자연스럽고 오직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었다.또 그렇기에 열일곱 살의 온하준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가 천 원을 내줬다는 말을 꺼낼 수도 있었던 것이다.강지연은 문득 이 시공간에서 스물일곱 살의 온하준은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궁금해졌다.자리에 앉은 온하준의 눈빛에는 열일곱 소년 특유의 패기와 투명함이 담겨 있었다.강지연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을 살피며 성공한 뒤의 온하준에게서 느껴지던 그 날카로운 기운을 찾아보려 했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그 누구도 강지연보다 위에 설 수 없다고 말하던 이 소년과 그녀가 기억하는 온하준을 같은 사람으로 이어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뭘 그렇게 봐?”온하준이 갑자기 닭 다리 하나를 그녀의 그릇에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시선이 잠시 흔들렸던 강지연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원래는 네가 나한테 닭 다리를 줘야 하는 거 아니야?”마치 공을 세운 사람에게 상 하나 안 주냐는 듯한 어린 소년의 자만 같았다.강지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나 점심에 닭 다리 안 샀는데. 저녁에 이 누나가 닭 다리 사 줄게.”“뭐라고? 그 말 당장 고쳐!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네.”온하준은 누나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강지연과 최아현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더 크게 웃어댔다.겉으로 보면 그저 입으로 장난치며 온하준을 놀리는 것 같았지만 강지연의 속마음은 달랐다.사실 이 시공간의 강지연은 온하준보다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38화

    열일곱 살의 온하준은 이런 사람이었나?놀란 건 강지연만이 아니었다.문 뒤에 서 있던 이하나 역시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너... 너...”그녀는 한참 동안 ‘너’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 이 학교에 더는 못 다니겠어!”온하준의 대답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그건 네 문제야.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해.”그 말이 끝나자 교실 안에서 책상이 밀리는 소리가 났다.그가 교실에서 나올 준비를 하는 듯했다.“온하준! 거기 서!”이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너랑 강지연은 도대체 무슨 사이야? 강지연이 너한테 뭘 해줬길래 그렇게까지 감싸는 거야?”교실은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온하준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천 원.”“뭐... 뭐라고? 천 원?”이하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걔가 나한테 천 원을 내줬어.”그 말을 끝으로 교실 안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며 온하준이 밖으로 나왔다.강지연은 재빨리 몸을 돌려 자리를 피했다.복도를 달려가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계속 천 원이라는 그 말이 맴돌고 있었다.식당 근처까지 거의 다 왔을 때 뒤에서 최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연아!”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최아현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더니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채 헐떡거리며 말했다.“내가 너 찾으려고... 이 학교를 다 뒤졌어. 드디어 찾았네... 그 게시글... 봤어?”“응. 나 다 알았어.”강지연의 심장 역시 빠르게 뛰고 있었다.“가자. 밥 먹으러.”최아현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진짜 대단해! 게시글에 모든 사실을 다 까발리다니! 댓글 봤어? 속이 다 시원하다니까! 이하나랑 주시은, 그리고 교감까지 욕을 아주 제대로 처먹고 있던데.”“봤지, 당연히.”강지연뿐만 아니라 지금 학교에 있는 대부분 학생들이 이미 다 봤을 것이다.지금도 그녀의 곁을 지나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37화

    문과반 수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강지연과 차유준은 아직 식당에도 가지 않은 상태였다.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차유준 이었다.삭제되었던 CCTV 영상은 차유준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니라며 극구 부정했다.“아마 너의... 좋은 친구일 거야.”차유준은 서로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하준?”강지연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그 말을 들은 차유준은 다시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강지연은 그가 왜 웃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보다 온하준이 어떻게 그 영상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컸다.“복구된 영상 온하준한테도 보낸 거야?”차유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걔가 직접 알아낸 거겠지.”“뭐라고?”강지연은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차유준의 얼굴에 그 미묘한 미소가 다시 번지고 있었다.“넌 네 친구에 대해 나보다도 아는 게 없는 것 같네.”“무슨 뜻이야?”강지연은 말을 덧붙였다.“그래도 네가 더 잘 알겠지. 너희는 피는 안 나눴지만 제일 좋은 형제잖아.”차유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온하준은 컴퓨터 쪽으로 굉장히 뛰어나. 웬만한 컴퓨터공학 전공생들보다도 더 잘해.”“그래?”강지연은 온하준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그는 원래 학년 전체에서 독보적인 1등이었고 나중에는 대학에 가자마자 테크 회사를 창업해 AI 분야와 빠르게 접목한 사람이기도 했다.그렇다면 고등학생 때부터 그런 기초가 있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다시 물었다.“그럼 너는? 너는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차유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아마 온하준 덕분이겠지.”강지연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차유준을 한참이나 노려봤지만 그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차유준.”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너 그거 알아? 네가 웃을 때마다 왠지 묘하게 낯익은 느낌이 들어. 정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48화

    온하준은 영수증을 한 장 한 장 다 훑어보더니 갑자기 차갑게 웃었다.“손님...”이안은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몰라 조금 망설여졌다.“당신하고는 상관없어요. 열 개 전부 다 꺼내 주세요.”온하준이 거칠게 말했다.이하나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하준아...”그때 이안은 뒤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강지연을 발견했다.걱정이 들어 먼저 강지연에게 물었다.“다시 오셨네요. 괜찮으세요?”온하준과 이하나는 동시에 그쪽을 돌아봤고, 또 동시에 강지연을 보았다.강지연은 자기 착각인지는 몰라도 온하준의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55화

    골목 반대편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온하준이었다.“무슨 일이야?”온하준은 주변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곧장 이하나에게 다가갔고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했다.이하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그의 팔에 매달려 투정 부렸다.“하준아, 여기 사람들이 우리가 외지인이라고 막 무시해! 비어 있는 번호라길래 열 배 주고 사겠다는데도 절대 안 된대! 너무한 거 아니야?”온하준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달랬다.“괜찮아. 내가 얘기해 볼게.”이하나는 더 크게 소리치며 몸을 비틀었다.“난 오늘 이 진료소 뒤에 있는 번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5화

    이하나랑 같이 돌아간 줄 알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온하준은 아직 파티 때 입었던 정장 차림이었다. 수많은 재계 남성들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외모였지만 지금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그는 파티장 계단 맨 아래쪽에 서 있었는데 그녀를 기다리는 듯했다.“이쪽으로 갈까요?”장시범이 옆길을 가리키자 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옆길로 비켜 나가려던 찰나, 온하준이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와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날 봤으면서 다른 사람이랑 가겠다는 거야?”말투는 평온했지만 속내는 전혀 읽히지 않았다.오늘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46화

    요즘 날씨는 밤만 되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강지연이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또각또각 들려오기 시작했다.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끝에는 샴푸의 향기가 은은하게 맴돌았다. 마치 어젯밤 시골에서 홍순자와 같이 자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그날 밤은 정말 오랜만에 깊이 잘 수 있었다.강지연은 알람 소리에 맞춰 깼다.눈을 뜨기 직전까지 반쯤 잠든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할머니 집에 있는 줄 알았다.이불 속 온도는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알맞게 포근했고 숨을 쉴 때마다 여전히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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