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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Author: 네입클로버
다음 날 아침, 차량 문제가 해결되었다.

강지연은 순회 공연단과 함께 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인 수성으로 향했다. 이 도시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곳이자 운명을 이어준다는 전설 속 인연의 천사 인형의 고향이기도 했다.

거리의 골목마다 가게마다 거의 빠짐없이 같은 인형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자 강지연은 문득 집 안에 줄지어 놓여 있던 인형들이 떠올랐다.

외롭지 말라고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런 명목으로 하나둘 늘어났던 것들.

그때의 그녀는 어리석게도 그 인형들이 정말 자신을 지켜주는 줄 알고 있었다. 그 시절에 어리석음이 문득 떠올라 강지연은 혼자 웃음을 흘렸다.

장시범은 그녀가 인형을 사고 싶어 하는 줄 알고 물었다.

“선배, 하나 고를래요?”

강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인형이 싫어진 건 아니었지만 이제 인형이라는 물건은 그녀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해외에서 걸려 온 낯선 번호였다. 전화받자 상대는 정중하게 자신을 호텔 프런트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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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14화

    그날을 기점으로 소문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야, 그런데 나 사실 예전부터 들었어. 강지연... 너희도 알지?”“뭘 알아? 뭔데? 말해 봐.”“강지연, 돈 많은 남자한테 붙어산대.”“말도 안 돼. 무슨 소리야?”“너 진짜 못 봤어? 매주 학교 앞에 데리러 오는 차 있잖아.”“차도 한 대가 아니야. 매번 달라. 어떤 날은 몇천만 원짜리였다가 어떤 날은 억대 차도 오던데?”“그러면 다 다른 사람인 거야?”“그건 모르지. 여러 남자를 홀렸을 수도 있고 한 남자가 차를 여러 대 갖고 있을 수도 있고.”“나 봤는데 데리러 오는 사람도 늘 같은 사람은 아니더라. 어떤 날은 검은 머리 남자였고 어떤 날은 외국인이었어. 아무튼 강지연 사생활이 문란해 보여.”“외국인도 있다고?”“아, 원래 예술 하는 애들 좀 그렇잖아. 사생활이 다 복잡하대.”“그런데 확실한 거 맞아?”“확실하지. 야, 네가 말해 봐. 너 예전에 강지연이랑 온하준이랑 같은 반이었다며. 강지연 집이 그런 차를 탈 만한 형편이었어?”“아니. 강지연 집 진짜 어려웠어. 동생도 있다고 들었는데 옷도 늘 후줄근한 것만 입고 다녔거든. 걔네 부모가 강지연을 싫어해서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갔다더라. 그래서 주말마다 할머니 집으로 갔다잖아.”“맞아. 그런데 요즘 하고 다니는 거 봐. 신발, 가방, 휴대전화까지 다 비싼 거잖아.”“그리고 반 나누기 전에는 온하준을 좋아한다면서 계속 들이댔거든. 그런데 온하준이 안 받아줬잖아. 그러다 반 갈리고 나서는 밖에서 돈 있는 남자 만난 거겠지.”“온하준네도 돈 많다며?”“그럼. 돈 없으면 강지연이 좋아했겠어? 결국 돈 있는 집 아들을 물려고 했던 거지. 그런데 그런 집 애가 강지연을 진지하게 만나겠냐. 그냥 갖고 노는 거지.”“맞아. 부잣집 애가 진심으로 만나려면 깨끗한 여자를 만나겠지 뭐 하러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애를 만나겠어.”그런 소문 속에서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사람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너희 너무 심한 거 아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13화

    강지연과 차유준에게 이번 스피치 대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탄탄한 원고와 막힘없는 영어. 해성의 쟁쟁한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두 사람의 발표는 유난히 또렷했고 점수는 현장에서 바로 공개되는 방식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최고점을 받았다.결과가 확정되고서야 대회 측은 두 학생이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하지만 점수는 이미 공개됐고 발표까지 모두 끝난 뒤였기에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었다.결국 강지연과 차유준이 나란히 1등 상을 가져갔고 학교로서는 큰 경사였다.이 대회가 입시에 직접적인 가산점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영예를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더구나 강지연이 다니는 학교는 공립이었다. 수준이 탄탄하긴 해도 해성에는 사립 외국어학교가 따로 있었고 영어는 그쪽이 더 강하다는 인식이 있었다.다음 날 조회 시간, 학교에서는 두 사람을 따로 불러 특별히 표창했다.운동장 앞에서 상을 주고 작은 시상식까지 덧붙여 사진도 찍었다. 박수는 한동안 멎지 않았다. 최아현은 누구보다 크게 손뼉을 쳤다.그런데 박수 소리 사이로 뒤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쳇, 원래 온하준 거였는데 저 둘이 뺏어 갔네.”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최아현이 들을 만큼, 그리고 남학생 줄에 서 있던 온하준이 들을 만큼.최아현이 홱 돌아봤지만 누가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 목소리가 한 번 더 이어졌다.“명단 다 나왔던 거 아니야? 그런데 갑자기 다시 뽑았잖아. 그 안에 꼭 무슨 꿍꿍이가 있었다니까.”최아현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이번에는 말이 길었던 탓에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반 유건우가 옆에 선 애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마침 해산해도 된다는 방송이 울렸고 최아현은 그대로 유건우에게 달려가 멱살을 움켜잡았다.“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건데? 똑바로 말해.”유건우는 얼굴이 확 붉어졌지만 기세를 꺾지 않았다.“난 같은 반인 온하준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원래 온하준이 나가야 했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12화

    “차유준.”강지연은 무심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차유준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웃자 강지연은 그다음 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너 앞으로 세계 유람하지 마.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하지만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강지연이 뜸을 들이자 차유준이 웃으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왜 그래? 대회 걱정돼?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내가 옆에 있어 줄게.”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차유준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더 얹었다.“나중에 대학 가고 취직해도 계속 옆에 있어 줄게.”강지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거, 고백이야?’차유준의 귀 끝이 햇살에 붉게 물들었다. 그도 자기가 뱉은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알아차린 듯 급히 손사래를 쳤다.“아, 아니. 그 뜻이 아니야. 오해하지 마. 너 진경시에 있는 무용대학 가는 게 목표잖아. 나도 목표가 그쪽이거든. 나는 뉴스 쪽 일을 하고 싶어. 그래서 나중에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들어갈 거야. 그러니까 우린 동창으로서, 또 같은 고향 친구로서 자주 보고 서로 챙겨 줘야 하지 않겠어?”화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생활로 옮겨 갔다. 차유준이 정말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강지연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의 결말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차유준, 너 진짜 그런 생활 괜찮겠어?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정해진 일정대로 사는 거.”그건 강지연이 알던 다른 세계의 차유준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햇살 속에서 환하게 웃는 차유준의 미소는 더욱 눈부셨다.“안 괜찮을 게 뭐야? 가족이랑 같이 무난한 하루를 쌓아 가다가 늙는 거. 그게 제일 좋은 인생일 수도 있지.”강지연은 그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말을 꺼냈다.“차유준, Ádh mór ort.”세레니아 말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잠깐이나마 흔들리는 기색이라도 건져 보고 싶어 꺼낸 말이었지만 차유준은 오히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그거 무슨 말이야? 무슨 언어야?”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조금도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11화

    대회는 일요일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강지연은 그 주에는 집에 가지 않았다.차유준과는 다음 날 함께 대회장으로 가기로 약속해 둔 상태였다.그런데 여학생 기숙사에서 나오자마자 나무 아래 서 있는 차유준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칭찬 배지가 들려 있었다.강지연은 그걸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뭐야, 이거? 옛날에 유치원에서 주던 배지 아니야?”차유준도 따라 웃더니 칭찬 배지를 그녀에게 건넸다.“오늘 경기에서 제일 잘한 선수, 강지연에게 드립니다. 자, 다들 박수!”차유준이 혼자 손뼉까지 치며 말하자 강지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이런 건 경기 끝나고 정해야지. 벌써 주면 반칙이잖아.”“너는 그냥 최고야.”차유준은 말끝을 가볍게 흐리며 배지를 그녀의 캔버스 가방에 달아 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법 잘 어울렸다.가슴팍에 달았다면 민망했을 텐데 가방에 다니 오히려 말끔해 보였고 눈에 띄는 배지가 캔버스 천 위에서 또렷하게 살아나 괜히 반듯한 느낌까지 났다.강지연은 손끝으로 배지를 만지며 웃었다.“이거 완전 한정판이네.”십몇 년 뒤에서 돌아온 강지연은 고모에게서 배운 감각 때문인지 진지하게 그 물건이 하나의 상품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그런데 차유준은 왜 하필 이런 걸 준비한 거지?’아침 햇살 아래, 차유준은 환하게 웃으며 선언하듯 말했다.“지금 발표합니다. 강지연 어린이는 오늘 무대에서 제일 멋진 선수였습니다.”그 한마디에 강지연의 웃음이 뚝 멈췄다. 순간 그녀는 이 배지의 출처를 떠올렸다.어릴 때부터 강지연은 춤을 좋아했고 무용 학원에서는 원래 센터에 서던 아이였다.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학원비를 내야 했고 부모는 그 돈을 내 주지 않았다.그 학기, 학원 아이들은 방송국에 가서 단체 무용을 선보였지만 강지연은 그 무대에 서지 못했다.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칭찬해 주며 한 사람씩 칭찬 배지를 달아 주었다.지금 생각하면 유치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강지연에게 칭찬 배지는 단순한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10화

    그날 밤, 이하나는 집으로 돌아왔다.집 안은 컴컴하고 휑했다. 엄마는 야간 근무 중일 테고 아빠는 아마 또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겠지.원래부터 이렇게 망가진 집은 아니었다. 이하나에게도 한때는 제법 그럴듯한 가정이 있었다.큰 집에 살았고 해성에서 가장 고급이라는 백화점에 가서도 사고 싶은 걸 앞에 두고 크게 망설인 적이 없었다. 그 시절의 자신은 분명 ‘공주’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부유했고 여유로웠다.하지만 아빠의 투자 실패 이후 모든 것이 뒤집혔다.큰 집은 순식간에 월세방으로 바뀌었고 비싼 차는 겨우 굴러가는 싸구려 차로 바뀌었다. 그 차를 학교 앞에 세우는 것조차 창피해서 늘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했다.예전에 가던 식당도, 예전에 쓰던 물건도, 예전에 누리던 생활도 더는 돌아오지 않았다.아빠는 거액의 빚을 떠안았고 엄마의 월급만으로는 집안 살림조차 버거웠다.떠안은 빚을 언제쯤 다 갚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가장 좋아하던 집이 이제는 가장 견디기 싫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아빠는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왔고 엄마는 집에 없었다. 집에 있어도 둘은 싸우기만 했다.말다툼으로 끝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손이 먼저 나가고 물건이 곧이어 날아갔다. 그릇이 깨지고 전자제품이 망가지고 의자는 성한 걸 찾기 힘들었다.이하나는 그저 예전처럼 살고 싶었고 이런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지독한 생활을 더는 하루도 견딜 자신이 없었다.그런 상황에서 온하준을 만났고 그의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온하준은 큰 집에 살고 있었고 아직 고3이면서도 식당을 운영할 만큼 능력이 있었으며 돈 쓰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무엇보다 잘생겼다.이하나는 온하준만 붙잡으면 이 끔찍한 집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 오늘 온하준은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감정도 없고 그저 고마운 마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이하나는 이 모든 게 결국 강지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처음에는 문과반 강지연이 온하준과 무슨 관계가 있겠냐고 여겼다.이하나가 전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709화

    이하나는 여전히 겁먹은 얼굴이었다. 조금 전 울었던 흔적이 채 지워지지 않아 눈은 붉게 부어 있었고 억울함을 가득 머금은 채 온하준을 올려다봤다.“무슨 일이야?”온하준이 먼저 물었다.“하준아...”이하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눈가에는 다시 눈물이 맺혔다.“너... 이제 내가 싫지?”온하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짧게 말했다.“아니.”“난 그냥...”이하나가 변명하려는 순간, 온하준이 말을 끊었다.“널 탓을 할 생각은 없어. 여자애니까 당연히 예쁜 걸 좋아하겠지. 나도 이해해. 무엇보다 네 도움을 받은 대가로 준 선물이야. 나도 누구한테 빚지는 건 싫거든.”이하나의 눈가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그대로 멈췄다.“그럼... 나한테 선물을 준 이유가 그저 빚 갚으려고 준 거란 말이야?”“응.”온하준은 이하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물건으로 갚을 수 있는 신세가 제일 깔끔해.”이하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러면 네 가게에서 일하게 해 준 것도, 월급을 준 것도, 나중에 옆 가게에 일자리 구해 준 것도 다 그거 때문이야?”온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도움받았고 고마웠으니까.”이하나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진 듯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던 그녀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이번에는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이었다.“그러면 넌 지금 내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네? 강지연이 그런 말 안 해? 내가 허영심 많다고.”온하준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강지연은 그런 말 안 해. 그리고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 허영심이 많던 순수하든 다 상관없어.”이하나의 눈빛이 다시 반짝였다.“그 말은 내가 어떤 사람이든 넌 상관없다는 거야?”“응.”기쁜 마음에 다시 눈물을 흘리려는 찰나, 온하준의 다음 말이 그 기분을 잘라냈다.“우린 그저 동창일 뿐이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나한텐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나를 도와줬다는 거고 난 그걸 갚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44화

    어차피 끝까지 질투한다고만 믿을 거라면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었다.그녀는 다시 이어폰을 끼었다. 반 시간쯤 지나서야 차는 집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계기판 위에는 아직도 그녀의 반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강지연은 그 반지를 집어 들지 않고 그대로 차에서 내렸다.한 사람이 애써 소중히 여기던 물건이 다른 사람 눈에는 잡초만도 못한 가치로 보일 때, 그 노력은 결국 우스운 꼴이 된다.다리가 불편하니 걸음이 당연히 온하준만큼 빠를 리 없었다.온하준은 금방 그녀를 따라잡았고, 둘은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온하준은 이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9화

    강지연은 허탈감이 극에 달했다. 이제 정말 온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는 원하지도 않았다.“온하준, 너 왜 그렇게 집착해? 꼭 내가 이 집에서 네 아내 자리 지켜야 해? 난 영원한 약속 같은 거 필요 없어. 제발 이하나가 내 자리 좀 위협하게 놔둬, 응?”온하준은 걸음을 멈추고 비웃음만 흘리더니, 그녀가 투정 부린다고 여긴 듯 아무 말 없이 안방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방금 일을 겪은 강지연도 온몸이 땀범벅이라 다시 샤워를 하고 티셔츠로 갈아입은 뒤 누웠다.밤에는 큰비가 내렸다.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려 오히려 수면을 돕는 백색소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3화

    온하준과 이하나의 얼굴빛은 정말 볼만했다.강지연은 사실 내내 두려웠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절름거림을 드러낼까 봐, 남들의 수군거림이 발목을 잡을까 봐.그래도 스스로에게 다짐했듯 계속 그림자 속에만 웅크린 겁먹은 생쥐처럼 살 수는 없었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 온하준과 이하나의 표정을 보고 있는데 물러설 이유가 더는 없었다.“지연아!”조민서는 진심으로 가슴이 아파서 직접 다가와 강지연의 손을 끼고 섰다. 몸도 마음도 기대설 버팀목이 생겼다.그런데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은 정작 이때 이하나의 손을 꽉 붙들고 그녀가 휘청이지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33화

    당연히 이런 말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아버지랑 어머니가 집을 뒤집어엎을 거고, 그러면 여기서 벗어나는 일만 더 어려워질 테니까.유서원이 또 시작했다.“너 말이야, 너 벌써 결혼한 지 5년이야. 얼른 사위랑 아들 하나 낳아서 사위를 꽉 묶어 놔. 네가 안 낳지? 그러면 밖에는 애 낳아 줄 년들 널리고 널렸어! 넌 어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올해 안에 임신 안 하면 다시 이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마...”“...”“내가 딱 말해 줄게. 넌 평생 쓸모없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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