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그 눈빛은 황량함에서 소원함으로 바뀌었고, 이내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낯선 그 눈빛은, 그들의 관계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곧이어 황제가 도착하였고, 이내 대오가 출발하였다.이 모든 과정은 마치 기계화처럼 흘러가고 있었다.이경은 태후의 분부를 확인하고는, 황제 태후와 작별을 고하고 마차에 올라 성을 떠났다.그렇게 오전 내내 그녀는 마차에 앉아있게 됐다.초아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도 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다과를 차려다 주어도 별로 먹지를 않았다.그 와중에, 이경이 직접 설계한 이 스프링 마차는 흔들림도 별로 없어 앉아있기에 매우 편안했다.다만 공주의 안색이 그닥 좋지 않았다. 이내 초아가 천천히 마차 앞에 앉았다.이번 대오는 지난번 행군보다는 사람이 적긴 했지만, 대오를 이끄는 주요 인물들은 같았기에, 초아가 고개를 들기만 해도 대열 앞에서 걷고 있는 윤세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다만 오늘따라 유난히 차가워 보이는 것 같았다.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차가움이 아닌, 바람처럼 희미하고 하늘가의 구름처럼 멀게 느껴지는 기운이었다.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듯한.그가 지나가는 곳은 온통 쓸쓸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냥 보고만 있자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그러던 도중, 그녀는 무의식 중에 고개를 돌려 커튼을 사이에 두고 안에 앉아있는 공주의 모습도 보게 됐다.공주는 차벽에 기댄 채 한쪽 다리는 구부리고, 한쪽 다리는 곧게 피고는 조용히 있었다.초아는, 이런 자세는 흔히 남자들한테만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여자가 이런 자세를 취하면 버릇 없는 계집애라고 불리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공주가 이렇게 앉아있는 모습은 기분을 나쁘게 만들기는 커녕 오히려 웃음이 나게 만들었다.마치 원래부터 이렇게 오만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여자들을 향한 이 세상의 모든 구속은, 공주에게 있어서는 전혀
왜 온거지?윤세현의 등장은 이경마저 다소 놀라게 했다.햇빛 아래 비춰진 그의 얼굴은, 약간 창백한 것 외에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웠다.같은 남자인 남신이조차도 한 번 더 보게 되는 모습이었다. 몸이 탄탄하고 드넓은 기세에, 이목구비마저 여자보다 더 뚜렷하고 흠잡을 데 없는 남자는 이 세상에 아마 그 밖에 없을거라 생각했다.그리하여 남자들도 흔히들 그를 질투하게 된다.왜냐하면, 전혀 같은 등급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이다."세자나리, 오셨습니까?" 이내 남신이가 마중을 나가며 인사를 올렸다. 남용도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 뒤따랐다."오라버니, 정말 오셨네요. 어젯밤 그 소식이 가짜인 줄 알았습니다!"그녀는 정말 매우 흥분했다.어젯 밤에야 2황자로부터 들은 소식으로는, 여황 폐하께서 비밀리에 초나라의 태후 마마께 편지를 한 통 드렸는데 마치 세자를 남진에 손님으로 초대하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그녀는 혹여 그런 사실이 전혀 없지 않을까 다소 걱정했었다.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젠 그녀는 한동안 윤세현과 아침 저녁으로 마주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면, 자신이 다른 요녀들보다는 천배 더 낫다는 것을 윤세현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윤세현은 지금 홀몸이라는 것이다. 시기가 너무 완벽했다.말 등에서 뛰어내린 윤세현은 희미한 눈빛으로 눈 앞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곧이어 이서영도 그를 맞이했다. 하지만 남용의 열정에 비해 그녀는 오히려 다소 담담했다.그녀는 충분히 먼 거리를 유지하며 윤세현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세자님."윤세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넘어 시선을 이경에게로 향했다.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갔다.이경의 표정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고, 웃는 듯 마는 듯한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 있었다.다만 호흡은 다소 가빠 보였다."공주!" 그런데 뜻밖에도 윤세현은 몸을 돌려 떠났다.그의 뒤켠으로는 태후가 느릿느릿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그러나 윤세현을 제외하
초아는 공주가 대체 어떻게 태후의 허락을 받은건지 알 수가 없었다.어찌 됐든 오늘 그들은 남진으로 출발할 예정이지만, 그녀가 가장 싫은 것은 바로, 이번 여정의 주인공이 이서영이라는 점이었다.하루 종일 그 여자를 마주칠 생각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공주 마마, 안 가면 안됩니까?" 출발을 앞두고, 초아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있었다."안 가도 돼." 이경은 그녀를 힐끗 보고 말했다. "직접 황제나 태후한테 찾아가서 얘기해.""..."그렇게 초아의 작은 희망은 아예 절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자신은 그저 작은 궁녀일 뿐인데, 직접 찾아가라는건 맞아 죽으라는거 아닌가?대경전 광장에는 이서영의 마차가 특히 눈에 띄게 보였다.이서영은 마차 옆에 서 있었는데, 남진의 2황자 남신과 7공주 남용도 그녀와 함께 있었다.그러나 이경이 지나칠 때 그녀를 첫 눈에 알아본건 그들이 아니었다.바로 이서영의 마차 옆 한 귀퉁이에 선 궁녀였다."마마?" 초아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는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마마, 뭘 보고 계신가요?""저 궁녀..."이경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었다."어떤 사람이야?"이내 초아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고, 그저 평범한 궁녀가 보일 뿐이었다.그나저나 이서영의 곁을 지키는 궁녀가 유아에서 지금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모르겠습니다. 왜 그러시죠? 마마한테 미움을 산 적 있는겁니까?""아니야." 이경은 계속하여 발걸음을 내디뎠다.시선은 여전히 그 궁녀에게로 향했고, 이내 뜻밖에도 그 궁녀도 동시에 이쪽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게 되자, 궁녀의 눈빛이 흔들리게 됐다. 곧바로 눈을 내리깔고는 이경을 향해 몸을 숙였다.사리가 밝으며 공소한 태도였다."전에 있던 유아보다 훨씬 나은 것 같네요." 초아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그래?" 이경은 짧게 답만 한 후, 몸을 돌려 자신의 마차로 향했다.한편, 초아는 이따가 태후랑 황제와 작별을 고해야 했기에, 마지막으로 공주의
다시 시간은 현재로 돌아왔다. 윤세현의 차가운 두 눈동자에는 여전히 약간의 기대감이 스치고 있었다."누구 말하는거야?" 윤여화는 모르는 척하면서 화제를 돌리려 했다.그러나 어두운 윤세현의 시선에 못 이겨 윤여화는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그 계집애 말이야? 지금 궁에서 잘 지내고 있던데, 여기에 올 일이 뭐가 있어?""그 여자를 본 것 같아요. 꿈은 아니었어요." 윤세현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러나 윤여화는 그의 이러한 태도가 그 자신을 설득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내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진지하게 말했다."요즘 며칠 밤동안 네 곁을 지키고 있었어. 안 믿기면 삼촌한테 물어봐. 너가...!"얕은 탄식을 내뱉었다."네 마음 속에는 오직 그 젊고 아릿다운 여자밖에 없지. 내가 너한테 바치는 헌신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나보네."그녀가 뒤에서 무슨 말을 하든지, 윤세현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마치 모든 것이 윤세현과는 좀 멀어진 것 같았다.얼마 지나서야 윤여화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세현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그가 아무 답도 하지 않자, 윤여화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세현아, 네 어머니 이번에 크게 다쳤어. 몸이 성한 곳이 없어. 그러니... 이제라도 효자답게 구는게 좋을 것 같아."……연유월은 다리를 다쳤을 뿐만 아니라 굴욕까지 당하게 됐다.그날 밤 윤세현이 달려왔을 때, 그녀의 옷은 이미 어수선해져 있었다.비록 안에 걸친 옷은 가지런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지긋했던 그녀는 당연히 체면이 서지 않았다.그날 밤, 윤세현은 처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방을 떠났다.연유월은 한편 장군원에 있었다.곧이어 윤세현이 도착했을 무렵, 연유월은 윤홍도의 위패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윤세현의 시선은 가장 먼저 그녀의 옆에 놓인 지팡이로 향했다.한참을 지켜보고 나서야 그는 천천히 다가가, 아버지의 영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어머니, 제가 불효했습니다
그 여자가 왔었나요?순간 당황한 윤여화는 입술이 떨린 채로, 윤세현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그러나 윤세현은 그녀를 강요하지 않았다. 어느새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그저 담담히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조용히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긴 하지만, 그 눈빛은 윤여화에게 약간의 압박을 주기도 했다.그날 밤, 윤여화는 한밤 중에 본가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윤세현의 방문 밖을 지키던 시위들을 전부 내보냈다.하지만 사실 그녀는 돌아간 후 바로 다시 돌아와,뒷마당을 지키고 있었다.그리하여 당시 이경은 날이 밝을 무렵에 뒤뜰로 향하게 되면서, 정자 아래에 앉은 그녀를 보게 된 것이었다."너 세현이한테..."윤여화가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그녀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경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윤세현이 요즘 우울하고 몸도 편치 않다고 하길래, 게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지금까지 깨어나지도 못했다고 하길래 제가 한번 보려고 한겁니다.""지금 상황은 어때?" 이경의 의술을 똑똑히 본 적 있는 윤여화는 초조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오늘 안에는 깨어날 수 있을겁니다."이경은 한마디만 남기고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윤여화가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길을 막았다."깨어날 수 있다는걸 알면서도 왜 깨어날 때 기다리지 않고 그냥 이렇게 가려는거야?”이경은 오히려 반항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더이상 윤세현과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이 년이 진짜...!""윤세현은 저희 초나라의 전신으로서, 백성들을 위해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웠죠. 전 그저 백성들이 이렇게 좋은 수호신을 잃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그녀의 말투는 매우 차분했고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아가씨, 제가 여기에 온 것은 초나라 백성들을 위해서이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건 절대 아닙니다. 괜히 실망시켜서 죄송하네요."이경은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려 했다. 윤여화는 그녀의 차가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
"미친 여자 같으니라고!"윤세현은 겨우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런데 너무나도 더운 나머지, 이마에는 온통 식은 땀이 가득했다.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지?주위에는 모두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는 자신이 대체 어디에 있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세현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침대 옆에 앉아 있던 연유월은 너무 가슴 아파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세현아, 깼구나!"윤사해와 공관 부인도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윤여화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세현아, 몸은 어때?"윤세현은 아무런 대답도 않았고, 다소 막연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렸다.그 얼굴, 그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아.역시 모든 것은 그저 꿈일 뿐이었어.그 여자는 절대 내 곁을 지키며 긴 밤을 보낼 사람이 아니지.한시라도 나랑 멀리 떨어져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어떻게 나를 보러 돌아오려 하겠어!역시 꿈이었어, 지금이라도 깨어나야 해!"세현아, 몸이 어때? 얼른 말해봐!""형님!""세현아..."수많은 사람들이 윤세현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순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윤세현의 눈가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어머니, 몸 어떠세요? 다 나으셨나요?"비록 목소리는 매우 쉬어있었지만, 말이 이렇게 또렷하게 들린다는건 그가 정말 몸이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연유월은 그의 큰 손을 잡고는 눈을 감았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네가 좋아지기만 하면, 엄마도 당연히 좋아지지."...하지만 연유월은 다리가 망가져 걸을 때 절뚝절뚝하고 있었다.그녀가 자신의 방을 나가면서 비틀거리는 뒷모습을 보이자, 윤세현의 무정한 눈빛마저 마침내 흔들리게 됐다."오라버니, 저 내일 출발할 예정입니다. 가기 전에 한번 인사를 드리러 온 것 뿐입니다. 다른 뜻은 없어요."이서영의 얼굴에는 더이상 상처를 가려주는 컨실러는 사라지게 됐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감추지도 않고 뜻밖에도 이렇게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과거의 현주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윤세현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