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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신입생이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게 과연 학교생활인가 싶을 정도로 19살과 20살의 나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억압된 교칙과 반강제적 목표로 인해 항상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었기에 20살의 3월은 새로운 나를 알아가는 적응의 기간이었다.
그동안 입학했을 때는 짝꿍이란 시스템과 기존 친구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으나 대학교는 개인주의가 커지기도 하고 온통 안면이 없는 사람들 뿐이기에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빨랐던 지름길은 술자리였다. 첫 술자리에서 나는 소주 석 잔 만에 들켜버린 얼굴색으로 인해 자연스레 동기들에게 이목을 끌 수 있었다. 그날 이후 하나둘 가까워진 동기들이 생겼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나름의 무리가 형성되었다.
물론 술자리가 결정적이긴 했으나 나도 신입생 환영회나 각종 뒤풀이, 동기 단톡방 등 내 기준으로는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나도 새로운 인연이 생기는 걸 싫어하지 않았고 시시콜콜하거나 떠들썩한 자리도 좋아했다.
하지만 점점 친해진다는 것은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이기에 걱정도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다. 그 걱정은 청소년기나 갓 성인이 된 지금이나 똑같은 걱정이지만 성숙해진 탓인지 좀 무겁게 느껴졌다. 혹여 친구들이 날 싫어하거나 멀게 하진 않을까. 나 때문에.
내가 가진 ‘그것’ 때문에.
4월 첫째 주 목요일 오전 7시 30분.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되었다.
"음..."
순간적으로 혈압이 오르고 두통이 있는 듯한 기운을 얻으면서 감각적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덜 뜬 눈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알람을 껐다.
"하..."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이 시간대면 당연한 자연 현상이었다. 눈을 비비고 손과 발을 꼼지락거려보았다. 조금 더 확인하고 싶어 발을 만져봤다. 아무 이상 없었다. 피곤하지만 약간의 희열과 안정을 느꼈다. 이 느낌을 최대한 즐기고 싶었으나 일어나야 했다.
몸을 일으켜 침대를 벗어나 마룻바닥에 발을 디디니 찌릿찌릿한 감촉이 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손과 발에서 열이 발생하는 게 느껴졌다. 거실로 천천히 나가니 조금씩 촉촉해졌다.
매일 이렇게 시작하는 하루지만 남들은 피곤한 채로 시작한다면 나는 그것과 더불어 이 잘라버리고 싶은 손과 발을 데리고 시작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을지 물어보고 싶다.
내 뇌와 신경은 나를 증오하는 악마인 것 같았다. 자꾸 나에게 스트레스만 퍼다 준다. 난 그들에게 아무 잘못도 한 적이 없다. 지켜주려고 노력한 것밖에 없었다. 내가 죽기 전에 이 절실한 맘을 알아주는 날이 오기라도 할까.
“일어났냐?”
아빠가 식탁에서 먼저 식사하고 계셨다.
“야, 가서 거울 좀 봐라. 네 머리가 지금 어떤지. 크큭.”
'...'
눈 뜬 지 2분도 안 지났기에 대꾸할 힘이 없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눈을 비비고 물 한 잔을 마신 후 식탁에 앉았다. 내 앞엔 엄마가 해주신 토스트가 놓여 있었다. 아름다운 토스트의 자태가 주는 시각과 코를 자극하는 고소하고 달콤한 후각에 잠이 확 깨고 식욕이 급속도로 충전되었다.
천천히 한 입 베어 물었다. 오늘도 감탄스러운 맛이었다. 저절로 동생 것까지 준비하고 계신 엄마의 뒷모습에 시선이 갔다. 이 시간대에 일어나면 익숙한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이지만 가끔은 아침을 먹다가 혼자 생각에 빠지곤 한다. 나도 미래의 자식들에게, 미래의 아내에게 음식을 자주 해야겠다고. 이왕이면 정성스럽게. 맛있게.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양말을 신으니 발에 있던 소금기를 잡아주는 것 같았다. 잠시나마 내 발이 뽀송뽀송해지는 걸 느꼈다. 운동화에 방향제를 뿌린 뒤 집을 나섰다.
내 몸이 가장 편안한 시간대는 바로 하루의 첫 외출 후 약 30분 동안이다. 얼마나 편하냐면 집에 있는 것보다 편하다. 손과 발이 취침 중일 때만큼은 난 자신감이 넘친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세상도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잠에서 깨기 시작할 때, 난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빠바밤 빠빠라라라빠빰!’
“신창, 신창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뒤로 물러서서 안전하게...”
어릴 땐 전철을 타면 그저 신기해서 몇 정거장만 가도 여행 가는 것처럼 들떠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고 그랬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에는 애증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전철이 멈춰서고 문이 열리는데 사람들이 제발 타지 말아 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래 이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많긴 했으나 오늘은 탑승하기가 무서울 만큼 꽉꽉 차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고작 네 정거장만 가면 되지만 나에게는 괴로움의 시작이었다. 전철을 탄 지 채 3분도 안 되어 발이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오늘은 공간이 공간인지라 더 빨리 깬 듯했다. 손도 자연스레 반응하기 시작했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 손을 말리든 바지에 닦든 하고 싶은데 그럴 움직임조차 허용되지 않는 빽빽한 상태였다. 발이 점점 가려워져 운동화를 벗고 싶었다. 하루를 시작한 지 2시간도 안 되었으나 고된 하루를 마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전철에서 내렸다. 돼지우리에서 탈출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 서로 앞다투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는 전철을 타야 하는데 내려갈 길이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리를 따라 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말하니까 바로 나타나네.”“어? 뭐야, 내 뒷담 깠냐?”“크크... 아니, 이 미친놈아. 너는 진짜 운 좋은 줄 알어라.”“요즘에 운 좋은 일이 있었나?”“어제 술 마실 때 타과 분한테 염병을 했다매요.”“염병? 아~ 반가워서 그랬지, 반가워서.”“심지어 나이도 한 살 많으신데, 어휴.”“그래서 어제 전철에서 사과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다음에 또 마시자고 하셨습니다.”“이제 증거물 하나씩 수집하는 거지. 그리고 나중에 조원 평가할 때 워스트 선정.”“아, 안 되겠다. 이제 술 따라드릴 때마다 절 한 번씩 해야겠다.”“야, 뭔 제사 지내냐?”“프흐흐흡...!”“성진, 그럼 어제 그분이랑 같이 내렸겠네.”“어? 어.”“엥? 같은 동네 살아?”“저번 조별 할 때 그분이 동네에서 마주쳤다고 그랬어, 얘네 둘이랑.”민규가 나랑 서현이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충격적인 그의 발언에 공들였던 내 보호막이 금가기
그다음 자연스레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손을 뿌리치려는 동작이 나와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건 그녀의 미적지근한 피부 말곤 없었다. 내 손과 그녀의 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 있는 것 같았다. 감각을 방해하려는 막이 아닌, 더 편안한 감각을 느끼게끔 도와주려는 막.“이번만 봐 드립니다.”잠깐의 정적이 지나간 후 자리에 도로 앉으며 말했다.“넵...!”그녀의 손이 다시 멀어지면서 혈류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슬쩍 내 손바닥을 확인하니 탈출하려는 불순물과 보호막이 금세 엄청난 전투를 벌였던 건지, 여기저기 울긋불긋했다. 생각해보니 기상 후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촉촉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신기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본모습으로 돌아오겠지만, 믿기지 않는 현재까지의 몸 상태에 너무 얼떨떨했다.“근데 너 옷 귀엽게 입고 왔네.”“그래? 고마워. 내가 진짜 좋아하는 옷이야.”“스트릿 잘 어울린다.”“내가 키가 작아서 그래...”“에이~ 키랑 뭔 상관이야. 어떻게 입는지가 중요하지.”“그것도 맞긴 한데 내가 마른 편도 아니어서 오버핏 위주로 입게 되더라구.”“네가 마른 편이 아니면 난 고도비만이야.”“푸흐흐흡... 아냐. 나 많이 나가. 하체 비만이라.”“그러면 너 키에 몸무게 몇 정도가 적당한 것 같은데?”“음... 그래도 사십칠, 팔?”“야, 그 정도면 적당한 게 아니구 그냥 아이돌이잖아.”“아이돌은 더 말랐지~”“그런가. 그래도 사십칠이면 나 초딩 때 몸무게인데.”“크흐흐흐흡... 넌 남자잖아~ 그럼 다음 주에 잘 안 입는 거 한 번 입고 와 볼게.”“잘 안 입는 거? 뭔데.”“청바지인데 슬림핏?”“아... 그래~ 근데 뭐 내가 잘 어울린다고 하면은... 자주 입을 건가?”“음~ 그럴 수도? 근데 진짜 객관적으로 봐줘야 해.”“어... 알겠어.”오늘따라 손바닥이 유난히 찌릿찌릿했다. 근데 왜 허벅지 쪽도 간지럽나 했는데 핸드폰 진동이었다.“어, 정훈이네. 여보세요?
짐을 싸기 시작하니 엠티에 간다는 실감을 느꼈는지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당장 떠오르는 것부터 가방 안에 하나둘 채우고, 그러면서 중간중간 놓쳤던 것들도 가방 속으로 향하고, 그리고 당장은 넣지 못하지만 출발하기 직전 챙겨야 할 것들도 미리 생각해 놓고. 대부분은 이런 리듬으로 여행 가방을 채울 것이다.하지만 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것이 있다. 만약 이걸 깜빡한다면 속옷이나 세면도구를 두고 온 것보다 수백 배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그래도 저것들은 돈만 있으면 대충 사서 갈 수라도 있는데, 얘는 살 순 있으나 사용은 못 한다. 시간을 돌리는 것밖에 답이 없다.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뇌리에 박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가방을 싸는 와중에도 그것만큼은 머릿속에 잘 저장해두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굳이 억지로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알아서 뒤통수를 톡톡 건들어주었다.사실 그전까지는 놀러 갈 때 이 친구를 챙긴 적이 없었다. 존재 자체를 몰랐다. 알게 된 것도 얼마 전 타인에게 우연히 선물 받아서 그때 처음 마주한 것이었다. 근데 지금은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절대 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그걸 선물해 준 분이 아니었다면 몇 날 며칠 동안 엠티를 갈지 말지 머리 쥐어뜯을 게 뻔했다.이 친구는 가방에 넣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 동행할 예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손에서 떼지도 못하고 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소중한 친구다.그래서 그런지 다른 준비물들과는 다르게 특별 대우라는 게 존재하는데 바로 나와 잠자리를 갖는 것이다. 그 친구가 침대로 오는 순간부터 나와 절대 몸을 떼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계약을 맺는다. 신기한 건 그 계약이 언제까지 유효한지는 나만 모른다. 날이 밝을 때까지일 수도 있고, 길면 며칠이 될 수도 있다.
“직관대역엔 자주 놀러 오세요?”개찰구를 향해 같이 걷던 중 이지은이 먼저 침묵을 깼다.“여기는 술 먹을 때만 와서... 가끔 옵니다.”“아~”“근데 알바는 여기서 해요.”“네? 어디요...?”“저기 가위바위보드게임 카페요.”“에? 허어얼~ 저 거기 몇 번 갔었는데. 주말에 하세요?”“네.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아~ 나중에 한번 가야겠다. 저 보드게임 좋아하거든요. 친구들이랑 가끔 해요.”“주로 무슨 게임 하세요?”“음~ 다 비쳐 코드나... 라스 배 안에 가스 정도? 거의 하던 것만 해서... 아! 거기서 일하시니까 많이 아시겠네요. 그럼 재밌는 거 추천해주세요, 크크큭...”“저도 안 해본 게 많아서... 간단한 거 좋아하세요?”“어려운 것보단 낫죠. 배우는 데 시간 너무 잡아먹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음... 요트에 다있오 아세요?”“안 해봤네요. 들어본 것 같긴 해요!”“주사위 여러 개
“음~ 우와. 그것도 인연이네요.”“그러게요. 뭔가 동네 친구 생긴 것 같아서 좋네요.”“하하... 동네 친구, 좋죠.”난 서현이의 얼굴을 흘깃하며 대답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눈동자가 알아서 돌아갔다.“앗, 제가 오바했나요?”“예? 무슨... 대학에서 이렇게 쿵 짝 잘 맞는 호구조사 나누기 쉽지 않은데요, 뭐.”“푸하학하...!”이지은의 입술이 위아래로 터져버렸다. 서현이도 웃다가 귓속으로 파고드는 엄청난 데시벨에 눈이 동그래지며 금방 소심해졌다.“아아... 죄송해요오... 크흡.”“예? 왜 죄송... 계속 웃으셔도 되는데.”“푸후흐흡... 이분 평소에도 이런가요?”“네... 뭐 별 차이 없는 거 같은데요.”“말씀하시는 게... 크큭. 이따 집 갈 때 안 심심하겠다.”“흐흡... 혹시 지금 저한테 부담 주시는 건가요?”“아유... 같이 내릴 사람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요.”서현이는 시선을 이리저리 딴 곳으로 옮기다 치킨 한 조각을 빠르게 처리한 뒤 입을 열었다.
그렇게 1시간 후.“어서오세요~ 몇 분이셔?”“아... 일행 있어요!”“아! 네.”이지은도 약속대로 합류했다. 그런데 우리와 잘 맞는 동기가 나타난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진정 지금이 초저녁이 맞는 건지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이 가관이었다.“어... 흡. 저 왔는데.”“어? 지은씨다!”“아니, 지은씨. 왤케 늦게 와요.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에? 지금 일곱 신데... 끝나고 바로 왔는데...”“예, 일곱 시. 저희~ 어제저녁 여섯 시에 왔어요. 그럼 몇 시간 지났냐. 무려! 열세 시간! 와~”“푸흐흡... 어떡하지.”“야, 노민규. 너 나가서 술 깨고 와. 지은씨, 죄송해요... 크흡.”그나마 정신이 온전한 서현이가 민규를 일으켜 세웠다.“아~ 괜찮아요! 근데 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제가 있어도 되는 건지...”“그럼요, 저 멀쩡해요! 딸꾹... 흐히.”“정신력으로오~ 버텼습니다. 열세 시간으을. 저희 이 정도예요~”“아우~ 닥치고 빨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