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한편 나는 세면대 앞에 서서 흐르는 물에 손을 맡기고 있었다. 묵혀두었던 불순물이 수돗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다. 고개를 내리니 숨이 저절로 깊게 내쉬어졌다. 다시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았다.
‘하... 씨! 뭐야... 성진아, 물 새는 것 같은데? 근데 왜 버스에서 물이 새지?’
‘너 괜찮니? 손 왜 그래, 땀인거야...?’
‘찌지지지지익!’
‘내가 종이 새로 가져올게.’
‘내가 쓸까?’
버스에서부터 있었던 장면들이 거울에 비추어졌다. 이젠 거울도 날 증오하는 것인지 거울조차도 보기 두려워졌다. 숨을 곳이 필요했다. 수도꼭지를 닫고 가까운 변기 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벽에 이마를 갖다 댄 후 눈을 살며시 감았다. 숨을 계속 크게 뱉어 봐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정말 오늘과 같은 날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믿기 힘든 하루의 시작이었다.
눈을 뜨고 수돗물에 적셔진 손바닥을 봤다. 내 땀보단 훨씬 깨끗한 액체지만 지금은 땀처럼 보일 정도로 내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손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 올랐다. 그런 나를 놀리듯이 마르지 않은 수돗물 한 방울이 내 손금을 따라 미끄럼틀을 탔다.
“우욱!”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벽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얘 왜 이렇게 안 와?”
“큰일 보시나.”
“함 전화해 봐.”
“응.”
“화장실 말고 다른 데 간 거 아냐?”
“에이, 그럼 우리한테 말을 했겠지.”
“똥 싸도 말은 해야지.”
“야, 똥은... 부끄럽잖아.”
“사람이 기다리잖어. 전화 안 받아?”
“어.”
“그럼 먼저 가자. 내가 톡할게.”
그렇게 친구들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내가 화장실에 있다는 걸 확신이라도 하는 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정훈아! 전화 한 번만 다시 걸어보면 안 돼?”
“어... 알았어.”
그는 깜짝 놀라 다시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으... 씁.”
상당히 강하게 벽을 가격했는지 난 주먹을 펴기도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땀을 없앨 수 있다면 어떤 곳이든 샌드백처럼 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출혈은 없었지만 뼈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지 매우 지끈거렸다. 아무리 미워도 내 신체의 일부이기에 나는 다시 세면대로 향해 손을 안정시켰다. 그래도 이번엔 심신이 많이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지이이잉’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티슈를 뽑아 손을 대강 닦은 후 핸드폰을 꺼냈다. 진동이 느껴지자마자 날 찾고 있을 친구들의 전화일 거라 예상은 했다.
“어...”
“어디냐?”
“화장실. 지금 나가.”
“빨랑 와. 강의실 앞이야.”
“응.”
화장실을 벗어나 복도를 걷는데 반대편에서 친구들이 전부 날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다시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조금 전 종이 마술을 감상하고 날 쳐다보는 조원들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향해 눈동자를 굴릴 수가 없었다. 바라보는 게 죄인 것 같았다.
“크큭.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아... 그냥. 속이 좀 안 좋은 거 같아서. 미안.”
“어? 혹시 어제 술 마셨어?”
“누구랑?”
“설마 동기 중에 벌써 그렇고 그런...”
“이야~”
“하하... 아니야. 뭐 잘못 먹었나 봐.”
“괜찮아?”
“어... 응. 가자. 북카페 가나?”
“예스.”
서현이는 속이 안 좋다는 내 말에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그녀는 잘못 먹은 음식 때문이 아니란 걸 확신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민규는 눈치를 못 챘는지 내 이유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물론 내 약점은 모를 테고 지금까지의 내 상황도 그녀만큼 알지 못했기에 어찌 보면 그의 반응은 자연스러웠다.
“나 조별 망했어...”
“왜? 누구누구 있는데.”
“송나영, 서혜지, 최승호... 한 명 누구였지? 아... 몰라. 어쨌든 친한 애들이 아무도 없어.”
창호가 소파에서 늘어진 채로 한숨을 쉬었다.
“야, 이럴 때 친해지는 거지! 복 받은 줄 알아라.”
“아니! 뭔가 느낌이 좋지 않은 게 과제만 얘기하고 과제만 하다 끝날 거 같아.”
“아니 인제 한 달밖에 안 됐잖아. 아직은 서먹서먹한 애들이 많은 게 당연하지.”
“그렇긴 한데... 난 먼저 말 거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그럼 그거 한 번 해봐. 너 저번에 했던 거. 크큭... 직빵이다.”
“내가 뭐 했는데?”
“뭐야. 뭔데?”
“얘 저번 뒤풀이 때 개 취해서 내 어깨에 기대고 ‘조심스럽게~ 친구 할래요오~’ 이랬는데.”
“미친, 푸하하하하!”
“아~ 맞어. 크크큭, 창호 그런 모습 처음 봤잖아.”
“아니, 창호야. 말 잘 거는 스타일인데?”
“하... 그건 취해서 그런 거잖아. 아니, 내가 왜 그랬지?”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나와 서현이는 입꼬리만 살짝살짝 올릴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까부터 계속 저기압인 그녀의 눈치만 보고 있으니 소파가 나무 의자처럼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버스에 내려선 괜찮다고 했는데, 막상 마술까지 보니 정이 뚝 떨어지기라도 한 건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에~ 친구 할래요오~ 푸하하핫! 아하하으하... 끄윽.”
“고마해라...”
“아니 근데 어떻게 얘네 셋은 같은 조냐.”
“누구?”
“아, 나랑 성진이랑 서현이 이렇게 됐어.”
“와~ 랜덤 맞아 이거?”
“근데 성진이는 같은 조인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던데. 크큭.”
“어? 내가 왜...”
지호의 말에 깜짝 놀라 동공이 커진 채로 대답했다.
“아까 교수님이 적으라고 주신 종이 거하게 찢던데.”
“서현아, 넌 메로내놔 말고 딴 거 먹어도 돼.”“그래? 나 메로내놔도 좋은데.”“비싸고 맛있는 거 먹어라.”“크큿큿... 왜 갑자기 잘해주시죠?”“왜긴. 베프 챙겨주는 데 뭐... 불만 있어?”“아니? 불만 있는 건 아니고... 좋아서~”“그럼 얼른 골라.”“넵!”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그녀를 나도 모르게 자꾸 흘끔거렸다. 아직도 귓가에서 그녀가 한 말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나이에 이런 말을 들으니 감정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나처럼 자신감이 낮은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고백이어서 그런지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가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절대 멀어지고 싶지 않은 특별한 사람.“얘네는 왜 안 오냐.”한편 술집에선 친구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둘이 데이트하나.”“퐈하하...!”“진짜 안 어울리는데.”“안 어울리는 건 또 뭐야.”“네가 그렇게 저 둘을 잘 알아?”&
“안에 있어?”“변기통 한 칸 잠겨있긴 한데... 성진인지는 모르겠네.”“뭔 소리야.”“불러도 대답이 없어.”“죽은 거 아냐, 그럼?”“근데 똥 싸는 소리 나던데. 얘 아닌가.”“푸크크크큿... 아, 미치겠네.”“그럼 죽은 채로 똥 싸나?”“성진이 아니겠지. 대답이 없으면.”“야, 모르는 거야. 술버릇 나쁜 사람들 막 길가나 어디 뭐야... 아무 건물에 들어가서 똥 싸고 그러잖아.”“뽜하하하하하! 그래도 얘는 정확한 곳에 가네.”“아니 그럼 안에 없으면 얘는 어디 간 거야.”“편의점 갔나? 아이스크림 사러.”“야, 그럼 더 위험한 거 아냐? 가다가 필름 끊겨 있으면 어디 있을 줄 알고.”“아, 성진이 오늘 참~ 사람 귀찮게 하네. 담부턴 술로 나대지 마라.”“내가 함 나갔다 올게.”갑자기 서현이가 자진했다. 술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곤 웃으며 다가왔다.
“제가 오늘 님보다 빨리 뒤지면요. 메로내놔 하나씩 쏘겠습니다.”“오오오올~”“여기 전부 맞지?”“예. 근데 내가 불사조다? 그럼 그쪽이 메로내놔 돌리는 걸로.”“이걸 알아서 내기까지 주선해주고 참 천사시네요. 거절할 이유는 없죠.”“아니, 성진아. 너무 급발진 아니야?”“급발진이 아니고 할 만한 매치이기 때문에 제안한 겁니다.”“푸하하하학... 얼굴 시뻘개지는 애가 뭘 할 만하다 이지랄...”“근데 성진이 죽은 적은 없지 않나? 항상 살아서는 간 거 같은데.”“그래. 우리 지호가 날 잘 아네. 나한테 배팅해라, 지호야.”“그건 저놈이 틈만 나면 줜~나게 쉬니까 살아가는 거고요.”“아니, 그 꼴랑 몇 잔 차이 가지고 똑같은 술찌가, 어? 누가 보면 주량 두세 병 차이 나는 줄 알겠어요~”약 2시간 후."안주 먹을 시간이~ 없어요~""성진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게임~ 스타트! 게임~ 스타트!""하...""게임~ 스타트! 게임~ 스타트!""
“어,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많나요? 저희 어디 가죠오오오오~?”“엠티요오오오~”“크크큭...”“그렇습니다~ 금요일 사회복지학과 총엠티가 있습니다! 와아아아아~”“와아아아...”“지금부터 엠티 일정에 대해서 공지를 해드릴 건데, 그전에 엠티 숙소를 같이 정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후보군이 총 3곳인데요, 저희가 숙소 소개를 해드린 다음 투표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첫 번째 후보군은 작년에 갔었던 술바람이란 곳인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세 곳 중에 시설이 제일 깨끗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넓은 거실에서 레크리에이션도 했었고 저렇게 고기도 구워 먹었었...”“야, 그러면은 토요일 오전 내로 거기서 출발하겠지?”왼쪽에 앉아 있던 정훈이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뭐... 그러겠죠? 왜.”“아, 알바 땜에.”“알바 몇 신데.”“6시요.”“6시면 집에서 자고 가도 될 듯?”“크큭. 잠을 왜 자.”“아, 안 자도 되겠네.
공교대역에서 내리고 개찰구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저 멀리 개찰구를 통과한 그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나 학생들로 붐비는데 그녀를 발견했다는 게 놀랍긴 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막상 뒷모습을 마주하니 약간이나마 물리적 거리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하지만 줄을 서 있으니 앞 사람들에 가려져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아는체해도 될 텐데, 자꾸 지금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아무리 뒷모습이라도 내가 먼저 발견했으니까 먼저 아는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가 어색한 사이도 아니고 동기 중에서 가장 친한 사이인데.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핸드폰 화면과 주위 풍경에 계속 시선이 왔다 갔다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아무도 우리 사이가 친하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믿고 싶었다. 김인성이 해줬던 말이 꼭 정답은 아니란 걸.‘버스가 언제 오려나~’그녀에게 톡을 보내고 재빨리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 넣었다. 그러면서 어떤 대답이 올지 생각하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녀는 톡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내가 보이지 않자 답장을 날렸다.‘으잉? 너 지금 마을버스 줄이야?’‘응 ㅋㅋ’‘어딨어?!’‘글쎄~?’‘ㅋㅋ 지금 찾으라는 거야?!’‘찾아도 뒤로 오셔야 하는데’&lsq
‘나는 친한 사람한테 들키는 건 괜찮거든? 근데 그때처럼 인사만 주고받는 사람한테 들키면 먼저 다가가기가 두렵달까... 좀 그래. 내가 이상한가?’친한 사람. 그리고 인사만 주고받는 사람. 버스에서 들켰을 땐 나와 어느 쪽에 가까운 사이였을까. 그리고 지금은 또 어느 쪽으로 조금 기울었을까. 친한 사람으로 기울었을까, 인사만 주고받는 사람으로 기울었을까. 앞으로는 또 어느 쪽으로 기울까.넌 나한테 다가오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어제 만난 것도 네가 먼저 다가와 줘서 함께 한 거였는데, 그럼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 어느 정도까지가 네 두려움인 걸까.사람이 풀기 힘든 주제 중 하나, 그런데 사람인 주제. 바로 사람과의 관계. 그녀는 시험지를 받자마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32,400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혹시 회원이실까요?”“아, 네.”“그럼 앞쪽에 핸드폰 번호 입력해 주시면 포인트 적립해드리겠습니다~ 카드 꽂아주세요~”“결제되셨습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한편 그 시각 나는 유예지를 통해 정신없이 일을 습득하고 있었다.“만약에 영수증 종이 다 떨어지면 새것 여기 있거든요.”“아아, 네.”“이렇게 뚜껑 열어서~ 이렇게 해가지고... 리필 해주면 됩니다.”“알겠습니다.”&n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