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
“음... 천천히, 애드리언.”
그 목소리에 남편의 서재로 향하던 타라의 걸음이 멈춰 섰다.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설마, 잘못 들은 걸까?
“너랑 함께 있는데 어떻게 천천히 할 수 있겠어.”
그 순간, 타라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방금 그 목소리는... 애드리언?
언제부터인지 그녀의 숨은 짧고 거칠게 끊어지고 있었다. 타라는 급히 몸을 지탱할 무언가를 찾았다. 손끝이 애드리언의 서재 문 옆에 놓인 작은 탁자의 가장자리에 닿았고, 그녀는 그것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마치 손을 놓는 순간, 자신의 몸도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거의 발소리도 내지 않은 채 문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다리는 떨렸고 머릿속은 웅웅 울렸다. 그럼에도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도 선명해 외면할 수 없었다.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고, 이어진 나지막한 웃음소리에 타라의 피가 차갑게 식어 갔다.
“애드리언.”
여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애교가 넘쳤다.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했다.
“정말 참을성이 없네.”
타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니.
그럴 리 없어.
“내 사랑 카라와 함께 있는데 내가 어떻게 태연할 수 있겠어?”
애드리언이 웃으며 말했다.
카라.
그 이름이 인정사정없이 타라를 후려쳤다. 그녀는 탁자를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손톱이 나무 표면을 파고들어 하얗게 질렸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온몸의 감각이 마비된 뒤였다.
“타라가 알게 되면 말이야.”
카라는 낮게 웃으며, 단순한 대화 이상의 무언가를 즐기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때 표정이 어떨 것 같아?”
애드리언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사람처럼 함께 웃었다.
“걘 절대 모를 거야. 내가 자기를 정말 사랑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거든.”
애드리언은 가볍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게 훨씬 쉬운 거지.”
타라는 숨이 점점 더 막혀 왔다.
“가끔은 정말 신기하다니까.”
카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저 사람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 우리가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말이야.”
여자는 다시 낮게 신음했다.
“그 사람은 한 번도 진실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
애드리언이 대답했다.
“우리가 보여 주는 것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을 뿐이야, 자기.”
타라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아주 작은 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도록 애썼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 자리에서 끝까지 모든 것을 듣고 가라고 붙잡는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카라가 신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생각할수록 웃기지 않아? 매년 자기 ‘결혼기념일’을 그렇게 성대하게 챙기면서도, 정작 혼인신고는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지도 않잖아.”
타라의 심장이 그대로 멎는 것 같았다.
“가끔 걱정되기도 해. 언젠가 저 사람이 가족관계등록부를 확인하면 말이야. 등록된 이름이 내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면 놀랄까, 아니면 완전히 무너질까?”
타라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녀는 탁자 가장자리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시야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확인할 일은 없을 거야.”
애드리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설령 확인한다고 해도, 그땐 이미 아무 의미도 없을 테니까.”
“게다가.”
애드리언의 목소리가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우린 네오 그룹 프로젝트만 끝나길 기다리면 돼.”
네오 그룹.
애드리언이 현재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 그리고 그 모든 실무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타라였다.
“대부분의 고객은 타라만 믿고 거래를 이어 가고 있어.”
그가 다시 말했다.
“그 여자의 평판이 모든 고객을 붙잡아 두고 있는 거야. 아직은 그 여자가 필요해.”
“그리고 그다음은?”
카라가 조용히 물었다.
“없애 버릴 거야.”
그 말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졌다. 감정도, 망설임도 전혀 없었다. 마치 타라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인 것처럼.
마치 지난 5년이 단 한순간도 가치 있었던 적이 없다는 듯이.
타라의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탁자를 붙잡고 있던 손에도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몸을 지탱했다.
지금 쓰러지면 안 돼, 타라. 강해져야 해.
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
“좋아.”
카라가 가볍게 말했다.
“나도 이제는 계속 연기하는 게 지겨웠거든.”
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태평했다.
“그럼 이번 우리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은 성대하게 치르자. 이제야 우리의 진짜 신분에 걸맞게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자기?”
“물론이지.”
애드리언이 대답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하지만 그 문밖에서, 타라의 마음속 무언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곧 다가올 결혼기념일도.
애드리언과 함께 지켜 왔다고 믿었던 결혼도.
결국... 그 어느 것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타라의 숨결이 떨렸다. 그녀는 천천히 탁자에서 손을 떼었다. 몸은 간신히 서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가족관계등록기관.
문득 그곳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야 해...”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 모든 거짓을 직접 확인해야 해.”
얼마 지나지 않아 타라는 자신의 혼인신고가 등록되어 있다고 믿었던 가족관계등록기관에 도착했다.
“발몽 씨.”
직원이 시스템을 확인한 뒤 말했다.
“혼인신고 기록에 고객님의 이름은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럴 리 없어요.”
타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반박했다.
“부탁이에요. 한 번만...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세요.”
직원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지만, 결국 다시 한번 시스템을 조회했다.
“벌써 세 번째 확인입니다, 발몽 씨. 하지만 타라 엘리스 발몽이라는 이름은 어떤 혼인신고 기록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럴 리 없어요! 저는 애드리언 애시본과 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어요!”
타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애드리언의 서재 문 너머에서 들었던 모든 말이 다시 귓가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렇다면 그동안...
“아시다시피 여러 번 확인해 봤습니다.”
행정 직원이 차분하게 말했다.
“다만 가족분 중 한 분의 기록은 있습니다. 카라 에반젤린 발몽 씨께서 2022년 4월 22일에 애드리언 루시엔 애시본 씨와 혼인신고를 하셨습니다.”
타라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직원 한 사람이 급히 부축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이... 이게 사실이 아닐 거죠?”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그녀의 뺨을 이미 눈물이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부 거짓말이잖아요!”
“사본을 발급해 드릴까요?”
직원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타라는 아까부터 자신의 이름이 혼인신고 기록에 있는지 없는지만 집요하게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받을... 받을 수 있나요?”
잠시 후, 혼인신고서 사본 한 장이 타라의 손에 쥐어졌다.
그와 동시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타라, 나 빅터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타라는 잠시 말을 잃었다.
“빅터... 님?”
“이런, 타라.”
수화기 너머에서 빅터가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장인을 잊은 건 아니겠지?”
타라가 빅터 애시본을 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왜 그가 자신에게 전화를 한 걸까?
“네, 빅터—”
“아빠라고 불러, 타라.”
빅터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왜 아직도 그렇게 딱딱하게 구는 거지? 넌 내 며느리잖아.”
타라는 긴장한 듯 침을 삼키고는 말을 고쳐 했다.
“네, 아버님. 무슨 일이세요?”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 뒤 그녀가 물었다.
“두 시간 후 공항으로 나를 데리러 와라. 지금 홀랜드 시로 가는 중이다.”
빅터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왔다는 사실은 애드리언에게 말하지 마. 할 수 있겠지?”
그날 아침, 카라는 아파트를 일찍 나섰다. 그녀는 여행 가방 안에 남아 있던 가장 수수한 정장을 입었다. 더 이상 예전처럼 브랜드 정장이나 값비싼 가방을 들고 각종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모든 사치스러운 것들은 이제 그녀의 자존심을 조금도 되돌려주지 못하는 옷가지로 바뀌어 있었다.떠나기 전, 헬레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정말 오늘 일자리를 알아보러 갈 거니?"카라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선택의 여지가 없어."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닫았다.가는 내내 카라는 구직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아직 채용 중인 몇몇 회사에 연락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죄송합니다. 해당 직무는 이미 채용이 완료되었습니다.""추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카라는 그것이 그저 정중하게 돌려 말한 거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 관한 기사는 여전히
다음 날 아침, 그 작은 아파트는 다시금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카라는 밤새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수십 명의 기자들 앞에서 혼인증명서를 내보이던 타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과 아드리안에 관한 소식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었다. 게다가 찾아온 수사관들 때문에 머릿속은 더욱 복잡했다.한편 헬레나는 간소한 식탁에 앉아 아까부터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찻잔만 바라보고 있었다.그날 무엇을 해야 할지 미처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카라와 헬레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카라의 심장이 다시 평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또 누구야?" 헬레나가 낮게 중얼거렸다.문을 열자, 이번에는 수사관이 아니었다. 마흔 살 정도로 보이는 한 여성이 제복을 입은 채, 아동보호기관의 로고가 찍힌 서류철을 들고 있는 남성과 함께 서 있었다."안녕하세요. 저희는 아동보호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여자는 신분증을 내보인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리오라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그 이름에 카라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오라?""네." 여자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도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을 무렵, 카라와 헬레나는 마침내 자신들이 빌린 아파트로 돌아왔다. 두 사람의 걸음은 몇 시간 전 밖으로 나섰을 때보다 훨씬 느려져 있었다. 아까까지 가득 차 있던 두 개의 여행 가방은 이제 훨씬 가벼워졌지만, 이상하게도 카라의 가슴은 오히려 더욱 답답해졌다.여행 가방 안에 생긴 빈 공간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삶이 조금씩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듯했다.아파트 문이 닫히자마자 카라는 낡기 시작한 작은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얇은 쿠션으로는 등에서 느껴지는 뻐근함조차 가라앉힐 수 없었다. 헬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옆에 앉았다.두 사람 모두 지쳐 있었다. 하루 종일 도시를 돌아다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때라면 자신들을 미소로 맞이했을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수차례 거절당하고 냉소적인 시선을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헬레나는 천천히 갈색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물건들을 팔고 받은 돈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지폐를 한 장씩 천천히 세었다. 마치 다시 셀 때마다 돈의 액수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같았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다.그녀는 길게 숨을 내쉰 뒤 소파에 등을 기댔다.
“가자. 어서 가는 게 좋겠어.”헬레나가 재빨리 카라의 팔을 잡아끌었다.결국 카라와 헬레나는 정말로 그 호텔을 떠났다.두 사람은 각자 여행 가방을 끌며 로비를 지나갔다. 처음 호텔에 들어왔을 때보다 발걸음이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대기 공간에 앉아 있던 몇몇 투숙객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저 힐끗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고, 한낮부터 텔레비전과 소셜 미디어를 가득 채운 뉴스에서 카라의 얼굴을 알아본 순간 곧바로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었다.카라는 걸음을 재촉했다. 턱에는 힘이 들어갔고, 여행 가방 손잡이를 쥔 손가락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귀에 들려오는 모든 수군거림을 무시하려 애썼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할수록 그 목소리들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호텔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두 사람은 서둘러 택시 한 대를 세웠다. 운전기사가 내려 트렁크를 열고는 그들이 가지고 나온 짐더미를 바라보았다.“죄송합니다, 부인.”운전기사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짐이 너무 많습니다. 차 한 대로는 다 실을 수 없어요.”
타라를 태운 차는 천천히 법정 마당을 빠져나갔다. 아직 차량이 정문을 벗어나기도 전인데, 뒤쪽의 분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소란스러워져 있었다.아까부터 법정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던 기자들은 거의 뛰다시피 각자의 중계 차량으로 향했다. 일부는 편집부에 전화를 걸기에 바빴고, 또 다른 이들은 방금 촬영한 영상을 곧바로 전송했다. 스튜디오로 돌아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생방송을 진행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속보입니다! 애시본 그룹 전 CEO의 재판이 다시 한번 세상을 발칵 뒤집었습니다!”“오늘 재판에서 아드리안 애시본은 자금 횡령 및 권한 남용 혐의로 공식적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습니다.”“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오늘 재판에서 지금까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진실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아드리안이 타라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은 불과 몇 분 만에 퍼져나갔다. 이어 타라가 아드리안과 카라의 혼인증명서 사본을 공개하는 장면도 빠르게 확산됐다.그리고 가장 많이 공유된 한마디.“나를 임신시킨 남자는…… 내게 이미 죽은 사람이야.”
“결혼했다고?”“말도 안 돼!”“그럼 그 불륜 소식은…….”타라는 누구도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리오라는 보육원에 버려진 아이가 아니야, 아드리안. 리오라는 너와 카라의 친딸이야. 너희는 온갖 핑계를 대서 그 죄 없는 어린아이를 우리 집에 들여보냈지. 너희가 쉽게 지켜볼 수 있도록.”자신도 모르게 타라의 손이 꽉 쥐어졌다. 그녀는 최대한 침착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그리고 지금까지…….”타라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얼굴을 들었다.“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어.”분위기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기자들이 본능적으로 서로 앞다투어 앞으로 몰려들었다. 카메라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사방에서 온갖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