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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uthor: Major_Canis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0 14:14:43

도로는 한산했다. 타라는 일정한 속도로 차를 몰았다. 신호등은 색을 바꾸고, 차량들은 천천히 움직였으며, 그날 오후의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만은 잿빛 먹구름에 둘러싸인 듯했다. 손은 핸들을 붙잡고 있었지만, 정신은 한참 뒤에 머물러 있었다.

그 말들이 또다시 귓가를 맴돌았다.

“그 이름은 단 한 번도 아내로 등록된 적이 없어.”

“등록된 이름은 내 거야.”

“없애 버릴 거야.”

타라의 숨이 턱 막혔다. 정신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방금 전 일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그녀의 집중력을 무너뜨렸다.

5년 동안.

그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결혼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가슴은 점점 답답하게 조여 왔다. 분노와 절망, 그리고 공허함이 뒤섞인 감정이 그녀의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랐다.

앞쪽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었다.

하지만 타라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조금 전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서류 한 장이 다시 머릿속을 스쳤다.

그 이름.

그 날짜.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 순간, 옆쪽에서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고 타라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에서 달려오던 차량 한 대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모든 일은 너무 순식간에 벌어졌다.

반응은 이미 늦어 버렸다.

불과 몇 초 사이, 거대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고, 강한 충격에 그녀의 몸이 앞으로 내던져졌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머리가 어딘가에 세게 부딪혔고, 잠시 동안...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혼란스럽고 뒤엉킨 소음.

사람들의 다급한 외침.

억지로 열리는 자동차 문.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

“도와주세요! 아직 의식이 있어요!”

타라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시야는 흐릿했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지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가씨, 제 말 들리세요?”

대답하려 했지만 목소리는 목구멍에서 막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단 하나의 생각만이 떠올랐다.

공항에 가야 해.

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타라는 자신이 어떻게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오게 되었는지,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또 어떻게 아직도 조금 떨리는 손으로 그 의자에 앉아 있게 되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말뿐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임신 3주 정도 되셨습니다. 다행히 이번 사고가 태아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운전하실 때 꼭 조심하세요.”

세상이 또 한 번 멈춰 선 것만 같았다.

“저... 제가 임신이라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초기 임신 상태와 임신 주수, 앞으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설명했지만, 타라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리 없어요.”

타라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무도 황당한 현실을 비웃는 웃음이었다.

“제가... 임신이라고요?”

그녀는 다시 한번 중얼거리며 아직 평평한 자신의 배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왜 못 믿으시는 거죠?”

에반스 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 검사 결과가 누구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타라 씨의 것이 맞습니다.”

타라는 손에 들린 검사 결과지를 다시 바라보았다.

애시본 가문의 주치의였던 산부인과 의사의 진단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애드리언이 가족의 건강을 모두 맡겨 둔 의사였고, 타라 역시 그에게 진료를 받아 왔다.

그 의사는 타라가 아이를 갖기 어려운 몸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타라는 수많은 설명을 들었고, 처방받은 약도 꾸준히 복용했다. 그때마다 애드리언은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며 그녀를 다정하게 위로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입양하면 된다고.

바로 그 애드리언의 위로가 있었기에 타라는 입양을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전혀 다른 검사 결과였다.

임신 3주.

타라는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이 떠올랐다.

애드리언이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왔던 밤.

오랜 시간 끝에 처음으로 그가 그녀를 안아 주었던 밤이었다.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손길이었지만, 타라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밤이었다.

그때 그녀는 잠시나마 생각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다시 좋아질지도 모른다고.

사랑을 나눈 뒤에는 보통 상대의 기분도 한결 좋아지니까.

“그럼 저는...”

눈물이 하나둘씩 멈출 새도 없이 흘러내렸다.

“정말... 임신한 거군요?”

“물론입니다.”

에반스 박사는 눈앞의 여자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건강 상태도 좋고 태아에게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임신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타라는 다시 한번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쓰라림으로 가득했다.

“그럼 그동안... 그 의사가 거짓말을 했던 걸까요?”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타라는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지금 자신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아니면 완전히 무너져야 하는 걸까.

이 아이는...

방금 전 자신을 없애 버리겠다고 말한 남자의 아이였다.

그 사실을 의식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타라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에게 내려진 이 운명이 너무도 기가 막혀서.

“정말 대단하네...”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삶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

정작 그녀의 몸속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

화면에는 또다시 빅터의 이름이 떠 있었다.

빅터.

타라는 몇 초 동안 그 이름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타라, 지금 어디쯤이냐?”

남자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재촉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타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자신이 무너져 있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된다.

“가는 중이에요, 아버님.”

그녀는 애써 목소리를 평온하게 유지하며 대답했다.

“그래. 한 시간 후면 착륙한다.”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타라는 진료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분간은 무리하지 마시고, 힘든 일은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가 당부했다.

타라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안은 채 병원을 나섰다.

지금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아직은.

아직 무너져서는 안 된다.

절대로.

공항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활기찬 분위기는 타라의 마음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녀는 도착 게이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아직도 몸 곳곳이 쑤셨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손과 관자놀이에 난 상처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하려 했지만...

타라는 빅터가 분명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그를 발견했다.

빅터 알리스터 애시본.

그는 차분한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그의 위엄 있는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압도했다. 그의 시선은 곧장 타라를 향했고, 처음으로 그의 눈빛에 작은 변화가 스쳤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타라의 관자놀이에 붙은 붕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타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타라는 옅게 미소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버님. 그냥... 작은 상처예요.”

빅터의 미간이 더욱 깊게 구겨졌다.

“그렇게 보이진 않는구나, 타라.”

“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타라는 그를 안심시키려 애쓰며 말했다.

“어제 조금 넘어졌을 뿐이에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덧붙였다.

“별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빅터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몇 초 동안 더 타라에게 머물렀다.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차를 향해 걸어갔다.

“왜 제가 아버님이 오신 걸 애드리언에게 알리지 않길 바라시는 거죠?”

차에 올라탄 뒤, 타라가 조용히 물었다.

빅터는 정면을 바라본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

“녀석에게 깜짝 선물을 해 주고 싶어서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리고 네오 그룹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도 직접 확인하고 싶고.”

그는 타라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걸 가장 잘 설명해 줄 사람은... 바로 너다. 네 설명은 훨씬 구체적이고, 여러 면에서 내 기대를 만족시켜 주거든.”

타라는 잠시 말을 잃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모두가 자신을 이용하기만 하는 이 상황에서, 아직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 보고서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애드리언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의 재무 보고서도 필요하다.”

빅터가 말을 이었다.

“네게서 받을 수 있겠지?”

타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스 씨께 직접 요청하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한스는 애드리언의 관리 아래 있는 재무 매니저였다. 애드리언이 맡은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자금 집행은 한스의 승인 아래 이루어졌다.

“맞는 말이다.”

빅터가 옅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애드리언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이상한 부탁이었지만, 타라는 더 묻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항 로비에는 빅터를 목적지까지 모셔다 줄 고급 세단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차는 곧 공항을 빠져나갔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러다 빅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벼운 어조였다.

“그러고 보니.”

그가 말했다.

“곧 너희 결혼기념일 파티가 열린다고 들었다.”

타라의 심장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예년처럼 그 기념일을 기대하고 있었다니.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네.”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선물로는 무엇을 받고 싶으냐?”

빅터가 다시 물었다.

“시아버지인 내가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타라는 빅터를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원하는 게 뭐든 말해 보거라.”

빅터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시본 가문의 일원인 이상, 내게서 선물 하나쯤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뭐든... 말인가요?”

타라가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물었다.

“그래.”

빅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엇이든.”

타라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그녀는 늘 바깥에 서 있었다.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내고,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얼굴이 되어 주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손이 되어 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모든 것을 움직이는 사람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잃었다는 사실조차 깨닫기 전에.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결혼.

정교하게 쌓아 올린 거짓 위에 세워진 삶.

지금과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문다면,

무엇을 하든 결국은 아무 의미도 남지 않을 것이다.

결코.

타라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두 손이 서로를 꽉 움켜쥐었다.

그것은 연약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형태를 갖춰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인정도 아니었고,

동정도 아니었다.

타라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자리였다.

누구도 쉽게 빼앗을 수 없는 위치.

누구도 함부로 밀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자리.

타라는 천천히 빅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 달랐다.

더 이상 공허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고요하지만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를 애시본의 CEO로 만들어 주세요, 아버님.”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걸... 제 선물로 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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