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쿵——!아이의 심장이 울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몸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박동이었다. 황실 성역 전체가 흔들리고, 기둥을 타고 가느다란 균열이 번졌으며, 바닥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이 일제히 빛났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 있는 세이아와 카일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아이의 손이 닿아 있던 두 사람의 가슴 위로 검은 문장이 뿌리처럼 퍼지고 있었다.『첫 번째 계승이 완료되었습니다.』그리고 그 아래, 두 번째 문장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첫 번째 보호자를 죽이고― 그들의 선택을 물려받는다.』세이아의 보랏빛 눈에서 서서히 빛이 사라졌다. 카일의 손에서는 루미에르가 미끄러졌다. 챙——. 은빛 검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세이아!”에드윈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나 세이아에게 닿기도 전에 아이의 등에서 투명한 날개가 거칠게 펼쳐졌다. 보이지 않는 충격이 폭발하며 에드윈을 밀어냈고, 그의 몸이 기둥에 부딪히는 순간 보랏빛 보호막이 산산이 깨졌다. 엘리아와 네이라가 동시에 움직여 쓰러지는 그를 받아냈다.“아버지!”헤르미아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은빛 힘을 끌어올려 세이아와 카일의 가슴을 뒤덮은 문장에 손을 뻗었지만, 이번에는 아이의 등 반대편에서 검은 날개가 튀어나왔다. 날개 끝이 칼날처럼 휘둘러졌고, 헤르미아가 급히 장막을 펼쳤다. 쾅! 충격에 그녀의 몸이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건드리지 마.”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모두가 멈췄다. 조금 전까지 ‘헤르미아’와 ‘노아’, ‘리안’을 하나씩 배워 가던 아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린아이의 음성은 맞았지만, 그 아래에 여러 겹의 울림이 포개져 있었다. 세이아의 부드러운 음색과 카일의 낮은 목소리, 오르페온을 닮은 차가운 울림,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낯선 목소리까지.“지금…….”아이의 양쪽 눈이 번갈아 빛났다. 한쪽은 보랏빛, 다른 한쪽은 푸른빛이었다.“두 번째 계승이 시작됐으니까.”그러나 말을 마친 아이의 얼
“나도…… 살고 싶어.”아렌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처음에는 누구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테오르의 제2날개 핵 곁에서 희미하게 떠 있던 회색 의식이 불규칙하게 떨렸다. 몸도, 온전한 핵도, 과거에 자신을 이루었던 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한마디만큼은 이전보다 분명했다. 누군가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도, 테오르의 자리를 빼앗아야만 남을 수 있는 가짜도 아닌, 자신의 이름을 가진 존재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원하고 있었다.세이아는 아렌에게 손을 뻗으려다가 멈췄다.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 앞에 천천히 앉아 시선을 맞추듯 고개를 숙였다.“다시 말씀해 주세요.”회색 빛이 흔들렸다.“……꼭 다시 말해야 해?”“네.”“왜?”“제가 제대로 듣고 싶어서요.”한동안 침묵하던 아렌이 마침내 말했다.“살고 싶어.”이번에는 누구도 잘못 들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제2날개의 핵이 크게 울렸다. 테오르가 숨을 들이켰고, 그의 가슴에서 퍼져 나온 빛이 아렌을 향해 움직였다. 카일이 즉시 루미에르를 들어 둘 사이를 막으려 했지만, 테오르가 먼저 손을 들었다.“잠깐.”“핵이 저쪽으로 움직인다.”“알아.”“네 몸을 유지하는 핵이다.”테오르는 잠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다가 아렌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하고 태어났고, 자신의 기억을 흉내 냈으며, 한때는 자신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만들어졌던 존재.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얼굴조차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테오르는 전보다 더 확실하게 아렌을 구별할 수 있었다.“내 몸을 저 녀석에게 주겠다는 말은 하지 마.”세이아가 눈을 깜빡였다.“아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할 것 같은 얼굴이었어.”“제가 언제요?”“지금.”세이아가 억울한 얼굴을 하자 카일이 옆에서 낮게 덧붙였다.“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카일까지 왜 그러십니까?”“전적이 많아서.”세이아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반박하기 어려웠다
카일의 손끝이 은빛으로 흩어지고 있었다.“카일.”세이아가 그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하나가 이미 빛이 되어 사라졌고, 남은 손마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놓치지 않겠다며 단단하게 붙잡던 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빛밖에는 잡히지 않았다.“괜찮아.”“괜찮지 않습니다.”“이번에는 나도 인정해야겠군.”카일이 자신의 손을 한번 내려다봤다. 입가에는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푸른 눈만큼은 웃지 않았다.“정말 조금 위험해.”“조금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농담할 때도 아닙니다.”“당신이 울 것 같아서.”“안 웁니다.”“이미 울고 있는데.”그 말을 듣고서야 세이아는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급히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창조의 힘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가슴에서 힘이 움직이는 순간 오르페온의 은빛 계약이 반응했다. 금빛과 보랏빛이 섞인 빛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꿈도, 시간도, 이름도, 창조도. 오르페온은 그 모든 것의 기원이 자신이라고 주장했고, 적어도 지금 펼쳐진 계약 안에서는 힘을 사용할수록 그의 ‘회수’에 휘말리는 것처럼 보였다.어떻게 해야 하지.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카일이 사라진다. 힘을 사용하면 오르페온의 계약에 먹힌다. 어느 쪽이든 그가 정해 둔 답이었다.“세이아.”카일의 목소리가 들렸다.“말하지 마세요.”“들어.”“싫습니다.”“당신이 자주 하는 말이군.”“카일.”“그러니까 나도 한 번쯤은 끝까지 말하게 해 줘.”카일이 남은 손을 들어 세이아의 뺨에 댔다. 이미 감각이 거의 남지 않은 손인지 손길이 어색했다. 그래도 세이아는 그 손바닥에 얼굴을 기댔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손이 사라진 뒤에도 그 온도를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오래 붙들고 싶었다.“내가 없어져도.”“그런 말 하지 마세요.”“끝까지 들어.”푸른 눈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내가 없어지는 건 당신 선택이 아니야
“드디어 찾았구나.”오르페온이 손을 내밀었다.“나의 마지막 창조자.”남쪽 폐허에서 열린 검은 문이 황실 성역의 공간을 가르며 완전히 벌어졌다. 그러나 문 너머에 펼쳐진 것은 무너진 신전도, 리안이 잠들어 있던 오래된 관도 아니었다. 끝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얀 궁전과 높게 솟은 기둥, 한 점의 얼룩도 허락하지 않는 바닥이 눈부신 빛 아래 이어져 있었다. 하늘은 지나치게 맑았고 정원에는 흰 꽃이 만개해 있었다. 얼핏 보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으며, 슬픔이라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세계였다.그런데 세이아는 곧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바람이 없었다.기둥 사이에 피어난 꽃은 단 한 송이도 흔들리지 않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은 정확히 같은 궤도를 반복해서 돌았다. 구름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햇빛이 비치는 각도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아름다웠지만, 그 무엇도 스스로 다음 순간을 선택하지 않았다.헤르미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첫 번째 세계?”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가 멈췄다. 은빛 눈에 혼란이 번졌다.“아니. 저곳이 정말…….”기억 속의 세계는 무너졌다. 수많은 신과 인간이 죽었고, 끝내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나 익숙했다. 기억과 똑같아서 오히려 믿을 수 없었다.오르페온이 웃었다.“남아 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구나.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으니.”세이아가 즉시 물었다.“저곳이 정말 당신들이 말하는 첫 번째 세계라는 증거가 있습니까?”오르페온의 은빛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직접 보고도 믿지 못하는가?”“직접 본다고 해서 그것의 과거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보존된 일부일 수도 있고, 재현된 공간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세계일 가능성도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그들은 기억과 기록, 계약과 이름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다.오르페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
“싫다고 하면요?”아이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검은 방에는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방의 벽에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가두고, 죽이고, 자신의 삶을 버렸던 장면들이 흐르고 있었지만 아이는 더 이상 그쪽을 보지 않았다.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세이아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싫다고?”처음 들어 보는 말처럼 아이가 되물었다.“네.”세이아는 아이가 내민 손을 잡아 주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았다. 선택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고, 그 선택을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아이였다.“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아이의 얼굴이 천천히 굳었다.『거절은 존재하지 않는다.』가슴에 남아 있던 검은 계약이 즉시 대답했다. 아이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 문장을 따라 말하면 됐다. 거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세이아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할 때까지 이곳에 붙잡아 두면 된다고.그렇게 만들어졌다.그렇게 배웠다.그런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그건…….”작은 손이 떨렸다.“안 돼.”“왜 안 됩니까?”“그러면…….”아이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사랑하는 신을 영원히 가둔다.』라는 문장이 심장 주위를 뱀처럼 감싸고 있었다. 세이아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면, 세이아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순간 자신에게 무엇이 남는가.아이는 한참 뒤에야 겨우 말했다.“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잖아.”세이아의 눈빛이 흔들렸다.그제야 알았다.이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존재의 상실이었다.사랑받지 못하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면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세이아가 필요했다.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해도 된다는 증명을 세이아에게서 받아야 했기 때문에.“그래서.”아이가 다시 웃으려 했다. 하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렀다.“둘만 남으면 괜찮아.”검은 사슬이 작은 몸을 더욱 단단하게 감쌌다.“다른 사람
“나는…… 누구야?”남쪽 폐허의 검은 거울 앞에서 이름 없는 아이가 처음으로 세이아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진 순간, 가슴에 새겨진 계약이 불쾌한 듯 꿈틀거렸다. 『사랑하는 신을 영원히 가둔다.』라는 문장은 대답 대신 아이의 심장을 더욱 단단히 휘감았고, 조금 전 생겨난 가느다란 균열 사이에서는 여전히 작은 글자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아니야.』아이는 손끝으로 그 두 글자를 만졌다. 누가 쓴 것인지, 언제부터 자신의 안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숨이 조금 편해졌다. 반대로 세이아를 가져야 한다고, 카일을 없애야 한다고 속삭이는 문장이 강해질수록 가슴은 조여 왔다. 무엇이 자신이고 무엇이 새겨진 명령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세이아.”그래서 아이는 다시 그 이름을 불렀다.이번에는 데리러 오라는 명령도, 자신만 사랑하라는 요구도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싶어서.그러자 검은 거울이 크게 흔들렸다.우우웅―!꿈과 현실의 경계가 얇아졌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검은 거울 속으로 들어간 작은 손이 수면을 통과하듯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황실 성역에서 남쪽의 기척을 좇고 있던 세이아의 꿈이 강제로 열렸다.차가운 손가락이 세이아의 손목을 붙잡았다.“……!”세이아가 반사적으로 힘을 끌어올렸다. 보랏빛 빛이 손끝에서 터지기 직전, 꿈 너머로 아이의 얼굴이 나타났다.은빛 머리카락.보랏빛 눈.어린 얼굴을 이루는 선 하나하나가 낯설면서도 이상할 만큼 익숙했다. 눈매에서는 카일이 떠올랐고, 입술과 턱선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두 사람의 특징을 기억해 한 얼굴 안에 섞어 놓은 것처럼.세이아의 힘이 순간 멈칫했다.“당신은…….”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정체를 몰라 불안해하던 아이가 세이아를 마주하자마자 다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아낸 것처럼.“나를 알아보겠어?”“아니요.”아이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꿈의 연결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