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는 그의 명령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임학 손에 있던 검은 이미 소한이 뺏어 버린 뒤였다.임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어찌 막는 것이오! 저 짐승이 단이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기나 하오?”소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김단의 상처를 보진 못했다. 하지만 임원에게 그녀가 한양 서쪽에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소한의 눈에는 살의가 가득했다. 명정 대군을 바라보는 그의 몸 전체에는 서늘함이 느껴졌다.사실 명정대군은 소한이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이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소한은 달랐다. 임학과 다르게 침착함을 유지했다. 아무리 위쪽의 총애를 받았어도 그를 죽이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명정 대군은 그를 보며 비웃었다. 소한을 향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곧이어 마음 놓고 유유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소 장군은 아마 모르실듯 합니다.”그는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술을 음미하고는 소한과 임학에게 말했다.“짐은 지금껏 그와 같은 여인을 본 적이 없었소. 그리 굵은 밧줄에도 신음 하나 내지 아니하였고, 고통에 몸이 떨려도 그 표정엔 조금 더 변함이 없었소.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며도 그 고통을 참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아시오? 하하, 하하하하…”명정 대군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임학은 그에게 달려가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소한이 그의 앞에 서있다.명정 대군은 소한의 핏줄이 터질 것 같은 손을 보면서 더욱 비아냥거렸다.“짐이 그렇게 흥분한 적은 처음 입니다. 이전에 여인들은 다 때리기도 전에 숨을 거두었지요, 김단 낭자 만이 죽지 않았소, 하하하! 그거 아시오?그 여인은 절대 죽지 않소. 짐이 힘이 닿을 때까지 때려도 숨을 쉬고 있지 않겠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인은 하늘이 짐에게 준 선물이오. 천생연분 이라는 말이지, 하하하하!”명정 대군은 매일 김단을 때릴 생각 이었다.“이 개만도 못한 놈!" 임학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자신을 막
명정 대군의 표정과 말에 임학은 깜짝 놀랐다.같은 사람이라고?내가 명정 대군이랑?말이 되는 소리!'임학은 또 한번 더 그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무슨 소리!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인간이랑 같은 인간이야! 네 손에서 무고하게 죽은 여인들이 몇 명 인지 몰라!? 단이가 멀쩡하기를 기도해.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땐 나도 죽고 너도 죽는 거야!”명정 대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피를 닦아냈다.드디어 그의 미소가 사라졌다.어두운 얼굴을 하고 임학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도련님께서는 실로 훌륭한 오라비이시옵니다. 그렇다면 짐에게 일러 주시지요, 그 훌륭하신 오라비께서 어찌하여 누이를 친히 세답방에 들이셨는지 말이옵니다.”그의 말에 임학은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명정 대군은 말을 이어 갔다.“도련님의 훈련이 아니었다면, 김단 또한 오늘과 같이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옵니다. 마찬가지로, 짐의 마음에도 들지도 못하였겠지요.”임학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명정 대군을 뚫어져라 노려 보았다.다시 주먹을 한대 내리꽂고 싶었지만 순간 힘이 쭉 빠져버렸다.소한이 임학을 데리고 가기 전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송구하옵니다. 오늘 도련님께서 술을 과하게 드신 탓에, 누이의 상처를 보고 그만 충동적으로 행동하였사옵니다. 부디 넓으신 아량으로 헤아려 주시옵소서.”그의 말투에서는 한치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명정 대군은 소한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소한도 임학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소한은 참는 것뿐이다.‘역시 장군이군, 아주 잘 숨기고 있어.’명정 대군이 코웃음을 쳤다.그는 옆에 있던 술잔을 보고 소한에게 말했다.“짐도 알고 있습니다. 도련님께서 짐과 같이 술을 즐긴 탓에 잠시 정신이 나간 것이지요.”이번 일은 결코 크게 만들면 안된다.그가 김단을 때렸던, 임학이 그를 때렸던 것은 중요하지 않다.만약 이 사실이 부황의 귀에 들어간다면 두 집안의 오랜 계획은
“아씨 정신이 드십니까?”숙희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훌쩍 거렸다. 코를 먹으면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노비, 당장 의원을 부르러 가겠사옵니다. 아, 아니오, 노비, 약을 가져다 드리겠사옵니다! 아니, 의원을 먼저...”숙희는 당황하는 바람에 어쩔 줄 몰라했다.그녀의 모습에 김단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씁쓸함이 올라왔다.김단은 등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숙희의 손을 잡았다.“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여기서 나와 시간을 보내주렴.”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편이 필요했다.김단의 쉰 목소리에 숙희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침상 옆에 꿇고 앉아 김단의 손을 잡았다.“네, 노비가 아씨 옆에 있겠사옵니다.노비 절대로 아씨를 혼자 두지 않겠사옵니다!”숙희는 죄책감에 시달렸다.만약 그녀와 함께 궁에 들어갔다면 달랐을 까,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명정 대군에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김단은 숙희의 표정을 읽고는 그녀를 위로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야.”사실 김단도 알고 있었다.숙희가 그녀의 옆에 있었다면 다치는 사람이 한명 더 늘 뿐이다.더군다나, 죄책감을 느낄 사람은 숙희가 아니다.숙희는 훌쩍거렸다. 그녀는 김단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다.김단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조모는 어떠셔?”숙희가 고개를 끄덕였다.“댁 사람들이 큰 마님께 아씨가 감기에 걸리셨다고 말씀 드렸다고 하옵니다. 큰 마님께 영향이 미칠까 염려되어 시간이 지난 후에 찾아 뵙겠다고 하셨습니다.”김단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모르는 것이 득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었다.숙희는 계속 훌쩍 거리며 물었다.“아씨, 더 궁금하신 것은 없사옵니까?”김단은 숙희의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진산군 댁의 모든 사람에게 마음이 떠난 뒤였다.그저 한숨을 쉬며 물었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숙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곧이어 김단이 혼수상태에 있을 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김단이 관저로 돌아온 그날 밤, 임학은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김단이 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임 씨 부인은 눈가가 붉어졌다.빠른 걸음으로 침상 옆으로 다가갔다.그녀는 글썽이는 표정으로 김단을 바라 보았다.“눈 떴느냐, 그래, 눈 떴다면 다행이니라...”임 씨 부인의 볼 양쪽으로 눈물이 흘렀다.임원도 마찬가지로 붉어진 눈가로 임 씨 부인에게 다가갔다.울먹거리며 김단에게 말했다.“누이, 깨셨소? 어머니께서 하루도 빠짐없이 불경을 읽으셨소. 혹여 누이가 깨지 못하면 어머니가 울다가 눈이 망가질 것만 같았소.”임원의 말에 임 씨 부인은 더 격하게 흐느꼈다.반면 김단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 속에는 그저 역겨움만 남았다.그녀는 그들의 가식적인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자신을 죽음 앞에 데려다 놓은 것도 그들이고, 울먹거리는 사람도 그들이다.만약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그들의 성품을 칭찬할지도 모른다.김단은 또다시 역겨움이 올라오자 고개를 돌렸다.그녀를 보고 임 씨 부인이 흐느끼며 침상 끝에 앉았다.“단아, 네가 화난 건 이해를 한다. 이 어미가 제대로 설명할테니, 무시는 하지 말아다오. 응?”“누이, 어머니께서…”임원의 목소리에 김단의 속이 더 들끓었다. 두 사람을 내쫓으려 입을 열자 숙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희는 임 씨 부인과 임원을 일으켰다.“마님, 아씨께서 금방 눈을 뜨셨사옵니다.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 그만 나가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그녀는 진산군 댁의 부인을 내쫓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하지만 김단은 숙희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옆에 있던 의원이 서둘러 말했다.“마님, 제가 아씨 옆에서 맥을 짚어 보겠습니다!”의원이 말에 임 씨 부인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방 안에서는 나가지 않았다.멀찍이 서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단을 바라 볼 뿐이다.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기 바빴다.의원이 김단의 맥을 짚어 보았다. 많이 다쳤다는 말과 함께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그의 말 덕분에 숙희의 행동이 더욱
“내 하인을 누이가 가르칠 자격은 없소! 썩 꺼지시오!”김단이 누워서 고함을 질렀다.또한 베개를 던지는 바람에 등에 있던 상처가 찢기듯 아팠다.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느껴졌다.김단의 꾸짖음에 임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누이, 이 계집이 무례 한 것이오. 저, 저는 모두 누이를 위해서…”“당장 꺼지시오!”김단이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나가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임원 뒤에 서 있는 임 씨 부인을 노려보았다.“임 씨 부인께서는 정녕 저를 죽일 생각이셨습니까?”임 씨 부인은 또 한번 더 눈물을 쏟았다. 동시에 손을 허공에 저으며 부인했다.“아, 아니다. 나는 네 어미다. 어미가 어떻게 너를 죽일 생각을 했겠느냐...”김단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의원이 서둘러 임 씨 부인에게 말했다.“마님, 지금 아씨께서는 충분한 안정을 취하셔야 하옵니다. 필요하신 말씀이라면 다음에 하시는 게 좋을 듯 하옵니다! 자…”의원이 임 씨 부인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그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진산군 댁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있다.만약 진산군이 이 자리에 있어도 그의 말을 순순히 따랐을 것이다.임 씨 부인은 글썽 거리며 김단을 한번 바라보았다.그제야 임원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방문이 닫히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했다.김단은 임 씨 부인이 서글프게 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마치 그 일에 자신은 무관하는 듯 행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옆에 있던 임원의 행동도 어이없기 짝이 없었다.김단은 마치 억울하다는 듯이 우는 그들의 모습에 기가 찼다.'친 모녀가 맞구나.'그녀는 잠시 생각하고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진산군 댁과 피가 한방울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김단은 적어도 그들처럼 가식적이고, 역겨운 행동은 하지 않았었다.이틀 뒤.어느 덧 6일 째가 되었다.김단은 숙희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침상에서 내려왔다.“아씨, 등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으셨사옵니다.
순간, 김단은 들어가야 할지 말지 고민에 빠졌다.결단을 내리기도 전에 뒤에서 수 나인이 나타났다.“아씨?”수 나인이 기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다 나으신 겁니까? 마님을 보러 오신 겁니까?”이어서 김단을 안쪽으로 안내했다.“마님께서 아씨를 매일 생각하셨사옵니다!”김단은 하는 수없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문이 열리자 그녀는 무리들의 얼굴을 쓱 훑었다.‘재수도 참으로 없구나.’김단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마님에게 예의를 차렸다.“큰 마님께 인사 드리옵니다.”“어서, 어서 와!”큰 마님이 손을 빠르게 저었다.김단은 큰 마님의 옆으로 다가갔다. 큰 마님은 서둘러 김단을 앉혔다.그녀는 그제야 김단을 유심히 볼 수 있었다.잠시 뒤, 큰 마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어찌 이리 말랐냐. 병에 들었다 하였는데,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구나.”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찬 바람을 많이 맞아 입맛이 없었을 뿐 이옵니다. 혹여 큰 마님께 폐를 끼칠까 염려되어 인사를 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 마님께서 꾸짖지 않으시기를 바라옵니다.”“말이 되는 소리!”큰 마님은 덥썩 김단의 손을 잡았다.“단이가 이 조모를 찾아온 것만으로도 기쁘구나.”김단의 눈빛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조모 옆에서는 항상 마음이 따뜻했다.이때, 둘만의 시간을 깨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이, 나와 오라버니는 매일 큰 마님을 찾아뵈어 이야기를 나누었소. 그런데 큰 마님은 오로지 누이만을 생각하고 계셨소! 편애하시는 것이 저 멀리서도 느껴지지 않겠소?”김단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하지만 큰 마님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저 형제간의 우스개 소리라고 생각했다.“조모는 편애하지 않아, 단이를 조금 더 아끼는 것뿐이지.”그녀는 그제야 김단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미소와 달라진 것을 보았다.서둘러 김단의 손을 어루 만지며 물었다.“아직도 많이 아픈 것이야?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떠냐.”조모는 김단이 임원을 꺼려하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소한은 어두운 눈빛을 하고 있다.그의 시선은 김단의 이마에 맺힌 식은 땀을 향했다.“낭자의 혼인에 대해 논의할게 있소.”자신의 혼인이라는 말에 김단은 소한을 바라 보았다.“제 혼인이 소 장군님과 무슨 연관이 있사 옵니까?”그녀의 말에 임원의 기분은 나빠졌다.“누이, 소 장군께서는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오. 이, 이런 식으로 차갑게 대해서는 아니 되오.”임원은 여전히 쭈뼛거렸다.김단을 꾸짖고 싶어도 그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마치 김단을 무서워하지만 소한을 지키고 싶은 모양새였다.우스운 모습에 김단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소한을 보고 답했다.“그렇다면 소 장군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겠사옵니다. 그러나 제 혼인은 소 장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사옵니다.제 혼인이 신경 쓰실 정도로 무료하시다면, 소 장군님의 혼인이나 생각하시기를 권하옵니다.”김단의 말에 소한의 눈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이때, 옆에 있던 임학이 입을 열었다.“정녕 명정대군과 혼인할 생각 이오?”그녀는 임학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임학은 김단의 침묵을 대답으로 받아 들였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너를 죽기 전까지 때렸던 사람이다! 정녕 죽고 싶어서 환장했느냐?”김단은 그제야 임학을 바라보았다. 마치 낯선이를 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이었다.“이제 와서 걱정하시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만약 혼인을 올린다고 했을 때, 그 일에 대해 말했다면 상처투성이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김단의 한 마디에 임학은 숨조차 쉬지 못했다.이전이라면 서슴지 않고 때렸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몸을 보고 주먹을 꽉 쥐었다. 곧이어 분노를 억누른 채 말했다.“다시 묻겠소, 명정 대군과 정녕 혼인을 올리겠느냐 말이오!”임 씨 부인과 진산군은 파혼 시킬 생각이 없었다.주상이 직접 혼인을 어명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는 결코 방법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김단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몸종 하나가 이런 짓을 벌일 줄은 전혀 몰랐다.임학과 그의 무리들이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임원이 소리를 질렀다.“아!”그제야 김단의 팔을 잡고 있던 두 손이 떨어졌다.임원의 몸종 명희가 서둘러 다가갔다.소매를 들치자 임원의 하얀 팔목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날씨가 조금이라도 더웠다면 살이 떨어져 나갔을 지도 모른다. 명희가 다급하게 숙희의 앞으로 다가갔다.“네가 감히 우리 아씨를 물어? 각오해!”김단은 그저 가만히 명희를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숙희가 명희의 머리칼을 잡고 때리기 시작했다.숙희는 명희 위에 앉아 그녀를 때렸다.김단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원은 자신의 몸종이 당하는 것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그만해! 그만하라고! 오라버니, 소 장군님, 명희 좀 도와주세요! 저러다가 죽겠사옵니다! 흑흑흑흑..”임학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만두지 못하겠느냐!”그의 한 마디에 숙희는 제정신을 차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곧이어 머리칼을 정리하고 당당하게 김단의 옆으로 다가갔다.하지만 명희는 자리에 앉아 울기 바빴다.“흑흑, 네가 감히 우리 집 아씨를 물고 나를 때려? 흑흑, 도련님께서 아씨를 대신하여 혼내 주셔야 하옵니다!”“명희야! 흑흑흑..”임원은 명희를 꽉 안았다.눈물을 흘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고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원의 소매는 여전히 들쳐 있었다. 임학은 그녀의 팔목에 선명한 이빨 자국을 보았다.또한 임원이 서글프게 우는 모습을 보고 숙희를 향해 소리쳤다.“감히 네가 내 앞에서 이런 짓을 해?여봐라, 이 년을 당장 끌고 가라! 그리고 곤장 30대를 맞게 하거라!”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인들이 숙희를 잡았다.김단은 숙희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앞을 막았다.임학을 죽일 듯이 노려 보며 말했다.“제 몸종을 왜 도련님께서 가르쳐 드시려고 하옵니까?”숙희를 감싸는 김단의 모습에 임학은 처음 느끼는 분노가 올라왔다.그들이야말로 김단의 가족이다.
김단은 맹영지를 소하가 있는 곳으로 보게 하였다.허나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소하를 바라보지 않았다.“소하라고 하는 사내입니다. 기억하십니까?”김단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허나 소하의 이름을 들어도, 맹영지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소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이리 상황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김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여 낭자를 보살 피겠나이다.”곧이어 소하의 시선이 김단을 향했다.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사실 그는 맹영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눈앞의 감회는 그저 오늘날과 이전의 다름에서 온 것이라 말할까,마음에는 김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할까.헌데 만일 그녀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소하는 여러 생각에 휘잡혔다.허나 생각했던 말은 내뱉지 않았다.“중전 마마께서 낭자와 맹 낭자를 처소로 들이시는 것은,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것이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어쩌면 맹 씨 집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어찌 되었든 간에, 낭자가 중전의 처소로 들어갔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소. 항상 조심해야 하오.”“소하 오라버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제게는 오라버니께서 가르쳐 주신 방도가 있지 않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소하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돌을 은침으로 대신하여, 민대부를 반나절 동안 아우성치게 하지 않았소.”“반나절이라니요, 반 시진도 가지 못했나이다!”김단은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래도 큰 인물이 되지 않았는 가.”“스승이 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김단은 서로 치켜세우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중전 마마께서 기다리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 무렵, 김단이 맹영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경씨가 옆에 서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허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하가 김단에게 맹영지와 함께 궁으로 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는 가.만일 대군께서 한양에 계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터, 한낱 마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궁궐은 워낙 넓고, 궐 안의 금군 중에는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넘쳐 난다.더하여 내각에는 임금을 지키는 호위들이 따로 존재한다.자신이 몰래 궁에 들어가 낭자를 지키려 든다면, 날이 밝기도 전에 역적이라 오해를 받아 온몸이 찢길지도 모른다.김단은 경씨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경씨 도령,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제 몸 하나는 제가 잘 챙길 수 있사옵니다.하물며 소하 오라버니는 금군의 총령이니,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나이다.”경씨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조심하시오.”경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붉은 눈가를 한 채로 입을 열었다.“아씨, 노비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숙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저 김단과 함께 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여도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은 만일 하나 일이 생겨도, 숙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저 작은 의녀에 불과해.중궁전에 거처하면서 내 몸종까지 데려간다 하면, 중전의 사람을 꺼려 한다면서 입을 놀릴 것이야.”숙희는 어렴풋이 그저 둘러대는 것일 뿐이라 느껴졌다.허나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궁 안의 규칙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진정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 가.혹여 자신이 아씨를 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숙희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뜬 눈으로 김단이 맹영지와 함께 궁궐 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양쪽으로 큰 성벽이 둘러쌓여 있어,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맹영지가 긴장을 했다.그녀의 두 손은 김단의 팔을 꼭
“황공하옵니다, 마마.”향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김단은 중전의 처소를 떠났다.그리고 서아름을 살피기 위해, 복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아름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허나 자신의 나인 앞에서는 이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마치 나인에게 곧 죽을 사람처럼 행실 하곤 했다.다행히도 나인은 눈치가 없었다.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서아름을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 덕에 서아름도 마음이 편했다.김단을 보자 서아름이 서둘러 그녀를 배웅했다.“의녀께서 오셨나이까! 어서, 안으로 들이시옵소서!”김단은 서아름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물을 따라 주었다.“다 의녀의 덕분이옵니다. 근래에 걸음걸이도 훨씬 가벼워졌나이다!”사람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낮에는 정신이 또렷하고, 밤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허나, 김단의 안색이 그녀와 반대로 어두웠다.“오늘 날, 전하께서 중전 마마를 옆에 두시고 숙원 마마의 상태에 대해 여쭈셨나이다.소신은 전하께 마마의 몸이 연약하지만,아이는 무탈하다 아뢰었사옵니다.”서아름이 움찔했다.그녀는 덕빈을 오랜 시간 시중을 든 사람이다.어찌 김단의 뜻을 모를 수 있는 가.자신은 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아름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만 무탈하면 돼옵니다. 소인은 그저 덕빈께 아이 하나만 남겨두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아이만 무탈하면, 제 미천한 목숨 하나가 중요하겠나이까.”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그녀는 서아름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아이와 그녀의 목숨은 똑같은 것이라고.사람의 목숨에는 신분이 없듯이, 미천한 목숨이라는 것은 없다.더하여 귀식환 제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제조에 성공만 하면, 서아름을 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허나 김단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귀식환 제조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실패로 돌아간다
김단은 중전의 뜻을 금방 알아챘다.중전이 서아름을 해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만일 김단이 아이가 무탈하다 말했다가, 훗날 서아름이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게 되면, 임금이 그녀를 의심할 것이 뻔하다.중전은 김단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김단은 시선을 거두었다.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말했다.“중전 마마께서 내려주신 귀한 보약 덕에, 숙원 마마의 태아는 무탈 하옵니다. 숙원 마마께서 끝까지 버텨내신다면, 태중의 용태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김단의 말에도 중전의 살기 서린 눈빛은 여전했다.허나 임금은 만족한 듯,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뒤를 돌아 중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다 중전 덕분이오.”중전은 살기 서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금의 칭찬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주상께서 후궁의 일을 신첩에게 맡기셨으니, 어찌 주상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않겠사옵니까.”“잘하셨소!”곧이어 임금은 몸을 뒤로 옮기더니, 중전의 귓가에 속삭거렸다.중전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기다리고 있겠나이다.”“하하하, 알겠소.”임금은 그제야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짐은 아직 정사가 남았소, 자네는 중전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시오.”뒷부분은 김단을 향한 말이었다.김단은 예, 라 대답하며 임금을 배웅했다.임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았다.쌀쌀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의녀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주관이 뚜렷 해지셨소.”중전의 말투에 김단의 심장이 철렁했다.김단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부디 중전 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소신은 마마를 위함이었나이다.”그녀의 말에 중전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천천히 물어보았다.“말해 보시오.”“부디 마마께서 깊이 헤아려 보시옵소서. 전하께서 후손을 이토록 중히 여기시거늘, 만일 소신이 숙원 마마의 태중이 위태롭다 아뢰
임금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수고가 많았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전이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 또한 의녀가 수고가 많다 생각하옵니다. 영지를 돌보시는 것도 벅차신데, 궁중의 후궁들까지 살펴야 하시니 말이옵니다. 차라리 영지를 신첩의 처소로 옮겨 이곳에서 돌보게 하는것이 어떠하옵니까? 의녀는 본디 평양 대군의 관저에 임시로 거처 중이시고,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체면상 온당치 않은듯하여 감히 아뢰옵니다.”평양 대군 관저에 김단은 손님에 불과하다.어찌 손님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단 말인 가.하물며 맹 씨 집안의 자녀가 평양 대군 관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임금도 같은 생각이다.맹영지를 중전의 처소에 머물게 하는 것이, 평양 대군의 관저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맹영지의 친 고모이며, 처소에서 병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가.허나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허나 맹 가의 계집은 이 자만 알아본다 하지 않았소? 만일 이곳으로 옮겨,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중전의 병세를 더욱 악화 시킬지도 모르오.”임금은 중전을 걱정하고 있었다.다정한 말투에 중전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의녀도 처소로 옮겨와 머물면 되지 않겠나이까.”맹영지가 알아보는 사람이 김단 뿐 이라면, 김단을 중전의 처소에 머무르게 하면 되지 않는가.그녀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굳어졌다.중전의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그리하면 의녀도 수고를 덜 하겠지 않나이까.”임금도 중전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곧이어 김단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어찌 생각하는 가?”김단은 내키지 않았다.궁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허나 김단은 공주의 사람이다.공주와 중전이 같은 편이니, 중전의 제안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었다.곧이어 절을 하고 말했다.“중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그녀의 대답은 다른 자가 듣기에는,중전의 제안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옆에
김단의 미소를 보아도, 맹 씨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맹 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서, 어찌 김단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 가.비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자칫하면 그들을 물어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또한 김단의 뒤를 봐주는 자들은, 감히 그들이 거들떠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닌가.오늘 김단은 말리려고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맹 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하여, 그녀가 맹영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맹 씨 부인은 답답함을 느꼈다.허나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짓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맹 씨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김단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곧이어 숙희가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맹 아씨의 친 모친이옵니다. 어찌 친 딸을 해하겠나이까, 혹여 아씨께서 너무 깊게 염려를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내가 그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더냐.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되는 법이지.”김단은 말하면서 맹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맹영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금색의 계화 꽃잎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았다.만일 맹 씨 부인이 ‘맹영지의 상황이 이리 심각할 줄 몰랐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이 직접 맹영지를 맹 씨 집안의 마차로 올려 보냈을 지도 모른다.자신의 피가 흐르는 친 자식을, 어찌 사, 오 년 동안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마치 그녀가 세답방에 버려지고, 삼 년 동안 어떠한 안부도 묻지 않는 그 자들과 같은 모습과 같았다.허나, 정승댁은 세답방이 아니다.맹영지는 노비가 아닌 그저 댁의 맏며느리가 되기 위해 정승댁으로 향한 것이다.어찌 친부모가 되어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 가.더하여 중전이 독이 맹 씨 집안의 소행이라 의심을 품고 있는 중이다.오히려 정승댁이 맹 씨 집안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수 앞을 보아 맹영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
맹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손을 거두고 두려운 표정으로 맹영지를 바라보았다.“어찌 이럴 수 있으십니까?”무언가 떠오른 것 마냥 김단을 향해 바라보았다.“의녀, 영지가..”김단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맹영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 나았나이다.”그녀의 한 마디에 맹영지는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두려운 눈빛이 점차 평온해졌다.맹 씨 부인은 이러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김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낭자께서는 소인만 알아볼 수 있으십니다. 다른 이들이 다가간다 하여도,밀쳐 내실 겁니다. 부인도 똑같이 밀쳐 내실 것이옵니다. 제 몸종도 낭자에게 긁혀 손에 상처를 입었나이다.”김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희가 맹 씨 부인에게 손을 보여 주었다.어제 맹영지에게 긁혀 생긴 상처였다.다행히도 김단의 설득 아래,맹영지는 드디어 숙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제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해 주었다.김단의 말에 맹 씨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데려 가지 못한다는 뜻이옵니까?”“아니옵니다.”김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맹 낭자께서 이곳에 계시는 게 나을 듯 하옵니다. 허나, 낭자께서는 맹 씨 집안의 자식이 아니 옵니까. 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데려 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다.현재의 맹영지의 상황으로 보아, 억지로 데려 가는 수 밖에 없었다.부모가 되어 어찌 자식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단 말인 가.맹 씨 부인은 어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대감이 맹영지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허나 이 상황에 평양 대군 관저의 문을 나갈 수 있다 한들,맹영지가 소리치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의녀께서는 높은 의술을 가지고 계시라 믿나이다. 혹여 영지를 잠재울 수 있는 수가 있사옵니까?”‘잠’ 이라 했지만, 사실 기절을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그리해야 조용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에게 약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